1.
호텔로 돌아가는 동안, 나는 묘한 거리감과 소외감을 느꼈다. 그는 보통 이상의 친밀함과 쾌활한 유머를 보여주었지만 따스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자주 몸이 차갑다고 불평했는데, 그 차가움이 그의 정신마저 싸늘하게 만들어놓은 것 같았다. 여전히 음악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지만, 방금까지 함께 했던 음악가들에 대해서는, 그들의 성품이나 연주와 관련하여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또한 나의 바이올린 연주에 대해서도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어떤 언급도 없었다. 갑자기 내 머릿속에서 우리가 함께 보낸 다섯시간 동안 글렌은 어떤 인간관계에 대해서도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2.
열다섯 살에 쓴 <나의 학업 계획>이란 수필에서 글렌은 특유의 유머와 문학적 과장법을 동원하여 학문에 관한 자신의 관점을 서술하고 있다.
이런 주제로 글을 쓰기에 나는 좀 불리한 것 같다.......
그렇지만 내가 고등교육을 완전히 등한시하리라고 추측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나는 고등교육이 정신을 자극하며 일깨워주고 새롭게 해주어서, 이 고등교육을 받지 못했더라면 정체되었을 정신에 막대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잘 정리된 문구는 1911년에 간행된 마니토바 학교 검인정 교과서 '추수와 귀뚜라미, 그리고 가격 규제'의 서문에 힘입은 바 크다.)
내가 공부하는 과목은 상급반 세 과목뿐이다. 프랑스어와 영어, 역사인데 더할 나위 없이 잘 선택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프랑스어 수업에서는 루소를 읽으며 혁명가들을 지지하고 있으며, 영어 시간에는 <웰링턴>을 읽으며 반동주의자들을 편들고 있는 한편, 역사 수업에서는 밀라노 법령과 칙령에 관해 비판적인 분석을 글로 쓰면서 빈회의에 똑똑한 고등학생 몇 명만 참석했더라면 모든 것이 얼마나 나아졌을까를 확인하고 있다.
이번 연주 시즌의 내 계획은 독주회 몇 차례와, 해밀턴과 토론토의 교향악단과 함께 협연하는 것이다. 이것은 (이 글의)제목과는 별 관계가 없지만, 내가 학교에서 왜 과외 활동을 할 시간이 조금도 없는지 충분한 설명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나의 학업 계획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이 작문에 대한 교사의 코멘트는 '기발하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