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만약 오늘날 누군가 세상의 유일한 위생 대책으로서 전쟁의 아름다움에 대해 말한다면, 아마도 그는 문학사에 포함되지 않고 정신분석학의 역사에 포함될 것입니다. 명예의 범죄 또는 동해(同害) 처벌법에서 일어나는 일이 전쟁에서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제는 아무도 그러한 것을 실행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라,인류 공동체가 전에는 그것을 선으로 평가했었지만 지금은 악으로 평가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여전히 도덕적이고 감정적인 반응이 될 것입니다(때로는 도덕 그 자체가 살인 금지에 예외들을 허용할 수도 있습니다. 집단적 감수성이 더 큰 선을 보장하는 희생과 공포를 허용하는 것과 마찬가지이지요)

-'전쟁에 대해 생각하기'중..

2.
무솔리니는 어떠한 철학도 갖고 있지 않았으며,단지 수사학만 갖고 있었을 뿐입니다.

-'영원한 파시즘'중..

※참고:원형 파시즘의 공통된 특징-위 글에서 요약,정리
ㄱ.전통의 숭배
ㄴ.비합리주의
ㄷ.행동을 위한 행동
ㄹ.불일치는 바로 배반
ㅁ.차이에 대한 두려움
ㅂ.좌절된 중간 계층들에 대한 호소
ㅅ.국제적인 음모의 강박관념,외국인 혐오증
ㅇ.적의 힘과 과시된 부에 의해 형성된 모욕감
ㅈ.삶을 위한 투쟁이 아닌 투쟁을 위한 삶
ㅊ.약한 자들에 대한 경멸
ㅋ.영웅주의,죽음의 숭배
ㅌ.남성주의,남근의 대용품인 무기를 가지고 게임
ㅍ.질적인 민중주의,전체에 대한 부분으로서 민중의 역할 주장.
ㅎ.새로운 언어,빈약한 어휘와 초보적인 통사사용으로
복잡하고 비판적인 사고를 위한 도구 제한.

3.
인터뷰는 과거에는 신문들이 언제나 아주 인색하게 사용했던 수단입니다. 인터뷰한다는 것은 자기 고유의 공간을 누군가에게 선물하여 그가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도록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떤 작가가 책을 출판하였을 때 일어나는 일을 생각해 보십시오. 독자는 신문으로부터 하나의 판단과 방향 설정을 기대하며 유명한 비평가의 견해 또는 기사제목의 진지함을 신뢰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신문은 무엇보다도 그 작가와 인터뷰를 하는 데 성공하지 못하면 패배한다고 생각합니다. 도대체 작가와의 인터뷰란 무엇입니까? 숙명적으로 그것은 광고입니다. 작가가 보잘것 없는 책을 썼다고 주장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만약 당신이 인터뷰를 허락하지 않으면 우리는 서평조차 싣지 않을 것이오>하는 암시적인 강요는 통상적인 것이지요.
(중략)
대답은 간단합니다. 이 게임에서 각자 무엇인가 얻을 것이 있고, 잃을 것은 전혀 없습니다. 게임이 소용돌이칠수록 매일매일 연이어 선언들이 나타나고, 독자는 맥락을 잃고 처음에 했던 말을 잊게 되지요. 그 대가로 신문은 뉴스를 짜내고, 정치가는 미리 예정된 유리함을 얻지요.그것은 독자와 시민들에게 피해를 주는 <사악한 협정>입니다. 하지만 모든 범죄와 마찬가지로 그것은 결국 보상을 지불하지 않습니다. 신문과 정치가들이 대가로 얻는 것은 불신과 사람들의 <알게 뭐야?>라는 반응뿐입니다.

-'신문에 대하여' 중..

4.
그렇지만 주목해야 합니다. 믿지 않는 자는 아무도 위에서 자신을 관찰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따라서-바로 그렇기 때문에-용서해줄 누군가도 없다는 것을 안다는 점을 말입니다. 자기가 악행을 저질렀다는 것을 안다면, 그의 고독은 끝이 없을 것이며, 그의 죽음은 절망적인 것이 될 것입니다. 오히려 그는 신자 이상으로 공개적인 고백의 죄 씻음을 시도할 것이며,타자(他子)들의 용서를 구할 것입니다.

-'타자가 등장할 때' 중..

5.
..그것은 무서운 단락입니다. 우리를 지속적으로 유혹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나라의 공항에서 지갑을 도둑맞기만해도, 나중에 집에 돌아와 그 나라 사람들을 믿지 않아야한다고 주장하기에 충분하지요.
게다가 더욱 무서운 불관용은 차이의 최초 희생자인 가난한 자들의 불관용입니다. 부자들 사이에는 인종 차별주의가 없습니다. 부자들이 혹시라도 인종차별 원칙을 만들어 냈을 수는 있습니다.
(중략)
지식인들은 야만적 불관용에 대항하여 싸울 수 없습니다. 생각없는 그 순수한 동물성 앞에서,생각은 무장해제되기 때문입니다.
(중략)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 거기에 도전이 있습니다. 인종적이고 종교적인 이유로 서로 총을 쏘는 어른들에게 관용을 가르친다는 것은 시간 낭비입니다. 그것은 너무 늦습니다. 그러므로 야만적 불관용은 그 뿌리부터 없애버려야 합니다. 그것이 책으로 씌여지기 전에,그리고 너무 단단하고 두꺼운 행동의 껍질이 되기 전에 아주 어린 유년기에 시작되는 지속적인 교육을 통해서 말입니다.

-'이주,관용 그리고 참을 수 없는 것'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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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웃는 사람은 비웃음을 당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에게만 사악하다.

'프란티에게 바치는 찬사' 중..

2..
스승님에게서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소이다.
기계를 사용하는 사람은 자기 일의 기계가 되고
자기 일에서 기계가 된 사람은 기계의 마음을 갖게 된다고 말이오...
난 당신들의 발명품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그걸 사용한다는게 왠지 부끄러울 것 같소.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중..

3.
장난감 생산 업체들은 차 트렁크의 문과 유리창을 열 수 있게 만든
끔찍할 정도로 진짜 자동차와 똑같은 장난감을 그 아이들에게
제공해주고 있단다. 장래에 컴퓨터화된 군대의 지휘관이 될 수도 있는
아이들에게는 너무나 끔찍한 놀이란다.
그런 아이들은 아무런 감정도 없이 핵전쟁을 알리는 붉은 버튼을
누를 수 있을 테니까!
너희들은 벌써 그런 사람들을 알아볼 수 있을 거야.
부동산과 주식 매매만 생각하며 비열한 독점판매 위에서
자신들의 인격을 형성시켜 온 부유한 부동산 투기업자들,
세든 사람들을 한 겨울에 내쫓아 버리는 사람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란다.
(중략)내 아들 스테파노야,난 너에게 권총을 선물할 거란다.
권총은 놀이가 아니니까.그건 놀이를 위한 실마리를 제공해준단다.
권총을 가지고 너는 상황과 총체적인 관계들,논리적인 사건들을
만들어내야 한단다. 넌 입으로 <빵> 하고 소리쳐야 할거야.
그러면 넌 그 놀이가 이미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 아니라 네가
그 놀이에 참가하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거야.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중..

4.
이제,논의의 대상이 되고 있는 이 작품들의 문체적 가치를 평가해
보자면 이 작품이 이런 대접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지에 대한
몇가지 의구심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뿐만 아니라 대중의 열광이
완전한 속임수에서 기인한 것은 아닌지, 혹은 투기를 목적으로
야기된 것은 아닌지 하는 의혹마저 생기게 된다.
무엇보다 여러가지 측면에서 서사구조에 일관성이 없다.
[5만 리라]에서 앞면에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얼굴 정반대 쪽에
대칭적으로 위치한 내비치는 무늬의 인물은 [성 안나] 혹은
[동물의 성모]로 해석될 수 있다.[10만 리라]에서는 내비치는
무늬에 새겨진 그리스풍의 여인과 알렉산드로 만초니의 초상화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인다. 혹시 아피아니가
신고전주의적 감각으로 해석한 루치아가 아닐까?
(중략)
그러나 일관되지 않은 내용이 가져오는 결과는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신고전주의를 원하든 부르주아 리얼리즘을 원하든 그렇게
까다로운 내용 속에 (그러나 두 예술가의 초상과 뒷면의 풍경은
저급한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규범에 영향을 받은 것처럼 보인다.
중도 좌파 정책에 대한 양보일까?)

'희한한 세개의 비평'-이탈리아 은행,[5만,10만 리라]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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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의 풍경 - 잃어버린 헌법을 위한 변론
김두식 지음 / 교양인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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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리 읽혔으면 한다.

 

한국의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좋다.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이라면

이 나라의 헌법에 대해 바른 시각을 가져야하지 않을까

이 책은 그 시각을 찾도록 도와준다.

절대 딱딱한 책 아니고..

어떤 부분은 거의 내부고발자 수준에서 쓰여진 것도 있고..

 

법이 그들만의 성이 되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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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노동계급의 형성
구해근 지음, 신광영 옮김 / 창비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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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이상한(?) 경로로 읽기 시작한 책.

 

한국 사람이 영어로 책을 쓰고

스스로 번역하면 편견이 생길 수 있다하여

다른 사람이 번역을 한 책이다.

 

제목 그대로다.

원제는 '한국의 노동자'

 

반 억지로 읽고 있는 책이라

정독을 하고 있진 않지만

 

읽으면서 이런 책이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기억은 약한 자의 마지막 무기'라고 했던가

 

전태일을

공순이들을

난쏘공을 기억해야 할 필요가 여기 있다.

 

감추고 싶은 과거는 누구나 있기 마련이다.

그것이 국가인 경우에도 물론이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감추어져서는 안된다.

잊혀져서는 더더욱.

 

 

어여 다 읽어야지.

근데 왜케 눈에 안들어오냐-_-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처음에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내 느낌은 '사치스럽다'는 거였다. 이런 이야기를 책으로 읽고 교실에 편하게 앉아서 입으로 이야기한다는 게 조금 사치스럽게 느껴졌던 것이다. 조금 과장되게 말하면 죄스럽게 느껴졌다고나 할까? 읽으면서는 한국의 현대사에 대해 아직도 잘 모르는 내가 참 부끄러웠고, 사치스럽다는 생각 자체가 어떤 하나의 벽이었음을 깨달았다. 만약 내가 사치스럽다는 생각때문에 책 읽기를 포기했다면 나에게 여전히 노동운동의 모습은 다가갈 수 없는 곳으로, 벽으로 막혀있었을 것이다. 사회과학서적이지만 딱딱하지만은 않았던, 사람냄새가 물씬 느껴져서 조금 놀라기까지 했다. 무엇보다 저자가 이 책에 들인 노력이 곳곳에서 느껴졌던 책이었다.

'기억은 약한 자의 마지막 무기'라는 말을 어디서 들은 적이 있는데 이 책을 읽고 그 말이 떠올랐다. 전태일을, 공순이들을, 난쏘공을 기억해야 할 필요가 바로 여기 있다. 수업시간에 선생님께서도 말씀하셨지만 부끄러운 부분을 드러내는 것은 누구에게나 참 어려운 일이다. 그것은 국가에게도 마찬가지다. 감추고 싶은 마음은 알겠지만 그것이 정말로 감추어져서는 안된다. 잊혀져서는 더더욱 안된다. 루쉰이 '먹으로 쓴 것이 피로 쓴 사실을 가릴 수는 없다'고 했는데 한국 노동운동과 언론의 경우 되새길 필요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공식적인 언론을 통해 전해지는 것이 다는 아니라는 것이 누구나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이런 책을 읽으면 내가 아는게 아는게 아니구나하는 걸 느낀다.

읽으면서 한국의 노동이 다른 개념들과 어떻게 엮여있는지, 예를 들면 유교적 전통에 입각한 육체노동을 천시하는 사회 분위기, 뿌리 깊은 성차별, 당시 시대를 반영한 반공이데올로기, 군대의 조직을 닮은 사업장 등과 어떤 관계를 맺고 진행되어왔는지 알 수 있었다. 물론 이런 한국적 상황 뿐만 아니라 세계화의 물결과 같은 자본의 논리와는 어떤 관계를 가지면서 진행되었는지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웠다.

새로운 통제 기술이나 금전적인 유인 등이 어떻게 노동계급의 연대감을 파괴시키고 점점 개인화시키며 서로 경쟁하게 만드는지도 알게 되었다. 읽는데 조금 시간은 걸렸지만 그 정도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생각된다. 아는 형 중에 서울 YMCA에 다니는 형이 있는데 한번 읽어보라고 권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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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인을 기다리며
존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 들녘 / 2003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적을 상정하면 내부적으로 단합이 더 잘 될까?

일견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상은.

 

서로가 서로를 파멸할 뿐.

 

느린 호흡의 문장임을 단번에 알았지만,

그래서 천천히 읽어야함도 알았지만,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내 머리는 내 머리가 아니었기에

그렇게 하지 않았다.

현재형의 문장들. 자신을 객체화 시켜버린 주인공.

판타지소설처럼 불분명한 시대와 장소.

 

사뮤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에 대한 오마쥬인가?

(그는 사뮤엘 베케트 전문가이기도 하단다)

 

 

여튼,

이런 진지한 문제에 관심을 갖기에는 여유가 없어져버렸다.

촘스키의 책도, 조지 오웰의 책도, 각종 철학 책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관심이 없어져버린걸까

 

어디갔지? 그 여유가.

 

 

그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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