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 - '수유+너머'에 대한 인류학적 보고서
고미숙 지음 / 휴머니스트 / 2004년 1월
평점 :
절판


나에게는 손톱을 물어뜯는 나쁜 습관이 있다. 얼마나 오래되었는지도 모를만큼 오래된 습관이다. 주변에 사람들이 있을 때는 심하게 그러지는 않지만 감정의 동요가 심해지면 나도 모르게 손톱을 물어뜯고 있다. 예전에는 양손의 열 손가락 모두 '손톱 밑'이라는 신체의 구조상 생기는 특수한 공간이 없었다. 피가 날 정도로 물어뜯지는 않았지만. 모든 나쁜 버릇들과 마찬가지로 무의식적이고 의식한 순간에도 이런면 안되는데 하고 생각하지만 그만두지 못한다. 이것때문에 정신병원에 가볼까 생각도 했었다.

지금은 그렇게 심하지는 않다. 양손의 새끼 손가락과 약지 손가락은 남들이 보기에 손톱 기르냐고 할 정도로 깍기를 귀찮아하고 있을 정도고, 엄지손가락은 가끔 손톱 밑이라는 공간을 만들어내곤 한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 가지 않는다. 아무튼 새끼 손가락과 약지 손가락을 제외한 나머지 손가락들은 가려울 때는 물론이고 여러가지로 요긴하면서도 그곳에 낀 이물질 때문에 위험할 수도 있는 공간을 상실한 채 내 손 끝에 가지를 뻗고 매달려 있다.

아무튼 나는 흥분, 불안, 초조, 긴장, 설렘, 등의 감정의 요동이 느껴질 때나 깊은 생각에 골몰해 있을 때는 손톱을 물어뜯는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손톱을 물어뜯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나쁜 책이다. 하지만 얼마만에 느껴보는 설렘이던가.

 

 

이 책은 우연히 듣게 되었던 휴머니스트 출판사의 편집장 선완규씨의 특강 때 내게 찾아왔다. 그는 어떤 질문을 했고 나는 대답을 했을 뿐이다. 그랬더니 그는 아무 말 없이 이 책을 내게 주었다. 나는 이 책을 내게 주는 건지, 아니면 이 책을 돌려보라는 것인지(지금 생각해보니 돌려보라는 것이었으면 시작할 때 줬지 왜 그 타이밍에 줬을까하는 생각이 들며 어리버리한 내 생각에 웃음이 난다.)알 수가 없었고 혹시나 뒤에 사람들이 '돌려보라고 준건데 저사람 뭐하는거야 안돌리고'하고 생각하지나 않을지 걱정했지만 이후의 상황으로 미루어보아 이 책을 나에게 준 것 같았다. 자기 출판사의 책이니까 그렇게 쉽게 주었을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이편이 사실에 더 가까울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받은 인상은 '책이란 원래 이렇게 그냥 주고 받고 하는 것이다'였다. 그런 생각이 들자 100권도 안되는 책에 대한 소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내가 너무나 작게 느껴졌다.

 

아무튼 이 책은 그렇게 내게 왔다. 지금까지 왔던 어떤 책들보다 뜻하지 않은 만남이었다. 사실 지금까지 내게 온 책들이 처음 나타난 순간에 나는 놀라는 척 하면서도 '이번엔 너냐? 올 줄 알았다'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언젠가부터 연구공간 '수유+너머'가 내 레이다에 포착되면서부터 같이 알게 된 이 책의 제목은 읽고 싶은 책 목록에 올라가게 되었다. 한동안 시간이 흐른 뒤에 그 목록에서 삭제되었다. 다분히 충동적이었다고 판단해서였다. 하지만 그로부터 얼마 뒤 이 책은 자신의 이름을 삭제한 나에게 적극적으로 찾아왔다.  

 

분과학문 체계의 답답함과 공부를 더 하려면 대학원에 가는 수 밖에 없을까하는 현실적 고민에 사로잡혀 있던 그 즈음 나는 스스로 작은 위안을 삼고자 내 블로그와 알라딘 나의 서재에서 '책이 책을 부른다'를 시작했다. 알라딘 나의 서재는 덧글이 하나도 달리지 않고 있지만 말이다. 경계를 넘나드는 공부를 하고 싶었다. 그저 넓고(얕게) 알아서 아는 척하고싶다가 아니라, '지식은 힘이 아니라 기쁨'이라는 것을 믿기에 그렇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경계를 '넘나드는' 또는 '횡단', '가로지르는'이라는 표현에서 느껴지는 뉘앙스는 뭔가 허전했다. 그것은 내게 '표면적인 겉핥기'라는 이미지를 떠오르게 했다. 이 책에서는 이런 크로스오버적인 공부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심해를 탐사하는 고래의 충혈된 눈과

단 몇걸음에 히말라야를 종단하는 거인의 다리'

 

 

이 책의 후반부에 이르러서야 이 책에는 느낌표가 굉장히 많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만큼 이 책은 사람을 흔들리게 한다. 내가 관심이 있어서 그랬던 것인지 모르지만 저자의 문체는 내게 흡인력있게 다가왔다. 책을 읽으면서 엉뚱하게도 나는 스펜서 존슨씨가 생각났다. 세계적 베스트셀러 '누가 내 치즈..'의 저자이자, 내가 읽은 거의 유일한 자기계발 관련 책인 '선물'의 저자이기도 한 사람. 책을 읽으면서 나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스펜서 존슨씨, 과거에서 배우고, 오늘을 살고, 미래를 계획하라굽쇼? 그것을 다른 사람과 나누라굽쇼? 좋으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저에게는 와 닿지가 않는 걸까요? 제가 삐딱해서일까요? 이 책처럼 실제 일어나고 있는 구체적 현상에 대해 써주실 수는 없습니까? 그렇게 치즈를 말하고 선물을 말하고 행복을 말하시는데, 저는 그것이 적용되는 실제 삶의 모습(꾸며낸 삶이 아니라)을 보고싶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이 책은 나에게 일종의 선물로서 다가왔다. 게다가 이 책의 내용을 읽으면서 우리가 주고받는 선물의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는 부분도 있었고, 스펜서 존슨씨의 선물과 같이 삶에 대한 태도를 주고 받는 개념으로의 선물도 볼 수 있었다.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있다고 생각하거나(the web of life) 환경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새만금 사업과 관련해서 벌어졌던 삼보일배 이야기부분에서 나처럼 목이 메이거나 눈물을 흘리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다 읽고 누구에게나 권해주고 싶었다. 엄마에게도, 아빠에게도, 형에게도, 여자친구에게도, 어린 학생들에게도. 하지만 인문학 근처에서 얼씬거리지 않으면 들어보지도 못했을 학자들의 이름과 낯선 용어들을 본다면 이 책은 나와 상관없는 책이구나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럴 가능성은 충분히 높다. 이 책의 메시지가 거기에 있지 않다 하더라도, 그런 용어가 중요하지 않다하더라도 이런 요소는 널리 읽히는데 방해가 되는 요소임에 틀림없다.

 

읽다보면 누구나 궁금해 하는 그곳. 길을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 길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나도 가끔 스스로에게나 힘들어하는 친구들에게 이야기하고, 이 책에서도 힘주어 이야기하고 있듯, '세상에 잘못 들어선 길이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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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쪽 극단에 서는 것보다 더 말끔한 논리는 없습니다.

..(중략)..

극단에 선다는 것은 개인적으로는 매우 행복한 일입니다. 극단에 서 있는 사람은 고민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신은 언제나 옳고, 남은 언제나 틀리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는 자기 확신 속에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세상에 두려울 일이 없습니다.

 

2.

사람은 자기가 처한 입장에 따라 사건을 이해하고, 당시의 상황을 재구성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상황을 재구성하고 나면 나중에는 자신이 재구성한 '이야기'를 믿게 되어 있습니다.

..(중략)..

그분들은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믿는 진실'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비록 자기가 꾸며낸 진실이라 하더라도 말입니다. 자기 거짓말을 자기가 믿을 수 있는 것이 인간이라는 존재입니다.

 

3.

이상해 보이지 않는 행동에 대해서 관용하는 것은 이미 관용이 아니지요.

 

4.

예를 들어 마광수의 [즐거운 사라]가 출판되었다고 칩시다. 기독교인인 저는 그 작품에 대해 청소년의 영혼을 좀먹는 쓰레기 같은 책이라며 구입 거부 운동을 벌일 수 있습니다.

..(중략)..

그러나 국가 공권력이 [즐거운 사라]의 저자 마광수를 붙잡아 가려고 할 때에는, 마광수와 어깨를 걸고 함께 싸울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는 저의 책이 청소년들의 이성을 마비시킨다는 명분으로 판매금지되고 제가 붙잡혀가는 사태를 막기 위해서라도, 이는 반드시 필요한 태도입니다.

 

5.

우리 법원은 자백한 사람은 '충분히 반성한 사람'으로, 자백하지 않은 사람은 '아직도 정신 못차린 사람'으로 단정하는 관행이 있습니다. 자백과 반성의 정도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은 근거없는 선입견입니다. 순전히 관대한 처벌을 받겠다는 계산으로 자백하는 사람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고, 반대로 억울한 마음 때문에 끝까지 자백을 안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6.

조사받을 때 거짓말을 해서라도 자기를 보호하려고 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에 속한 문제입니다. 진술 거부권의 행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국가가 인간에게 기대할 수 없는 것을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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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글이 "1980년대 중반 남성 노동자들이 스스로 행동하기 시작했을 때, 그들은 10년 이상 정의를 위해서 투쟁해온 여성들의 어깨 위에 자신들이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한 말은 절대적으로 옳다.

 

2.

자기 몸을 희생해서 저항한 전태일의 소식을 듣고, 여러 대학학생들이 그가 사망한 병원의 영안실로 달려갔다. 그들은 전태일의 장례식을 개최하려고 했지만, 경찰이 이를 저지했다. 학생들은 전태일이 관계당국을 상대로 외롭게 투쟁하면서 자기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지식인들과 사귀기를 바랐다는 사실을 전해들었을 때 특히 큰 충격을 받았다. 전태일은 자주 "대학생 친구가 하나 있었으면 원이 없겠다"고 말했다.

 

3.

현대중공업 노조활동가들은 동료노동자들을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으로 만들고 점차 집단적인 행동에 무감각하게 만든 것은 이런 새로운 통제기술과 금전적인 유인이었다고 말했다.

경영전략은 더욱더 교묘해진 반면 노조전략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중략).."지난 10년 동안, 자본은 완벽하게 준비했고, 장기적인 전략을 가지고 우리를 상대했지만, 활동가들이 한 것은 자본과 국가를 타도의 대상으로 여기는 똑같이 단순한 논리를 가지고 조합원들에게 파고드는 것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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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비단 그것만이 아니다. 만약 내가 시에서 가장 조용한 거리에 있는 차안판사의 관저에 살면서, 월요일과 목요일에는 재판을 주재하고, 아침에는 사냥을 나가고, 저녁에는 고전을 읽으면서, 거들먹거리는 경찰의 행동거지에 귀를 막는다면, 그리고 내가 불편한 시기를 적당히 넘기겠다고 다짐하고 있다면, 물러나는 물결의 힘에 사로접혀 헤엄치기를 포기한 채, 망망대해와 다가오는 죽음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 느낄 법한 걸 느끼지 않았을 수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나에게 최악의 수치심을 느끼게 하고 죽음에 대해 완전히 무관심하게 만드는 것은, 나의 불안감이 얼마나 우발적인 것이며, 내 창문 밑에서 하루는 칭얼거리다가 다음날에는 더 이상 칭얼거리지 않게 된 갓난아이 때문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2.

문명이라는 게 야만인들이 가진 마덕들을 타락시키고 그들을 종속적인 존재로 만드는 것이라면, 나는 문명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3.

때때로 섹스는 나와 전적으로 다른 존재인 것 같았다. 나한테 기생해 살면서 제 스스로의 욕망에 따라 커졌다가 작아지고, 도저히 떼어낼 수 없는 이빨로 나의 살에 달라붙어 사는 우둔한 동물인 것 같았다.

 

4.

나는 내가 말한 것들을 정말로 믿는가? 나는 지적 무감각, 지저분함, 질병과 죽음을 아무렇지도 않게 대하는 태도 등 야만적인 방식이 승리하리라는 걸 정말로 기대하고 있는가? 만약 우리가 사라지면, 야만인들은 우리들의 잔해를 발굴하며 그들의 오후 시간을 보낼 것인가?..(중략)..내가 제국의 정책 집행 방식에 대해 왈가왈부하며 화를 내는 것은 변경에서의 편안한 말년을 방해받지 않으려는 노인의 투정이 아니라 그 이상의 어떤 것일까?

 

5.

너무 억지스러운 방식이긴 하지만, 그는 내게 어떤 인상을 심어주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그는 지저분하고 어지럽던 내 사무실을 말끔히 정돈해놓고, 거들먹거리며 방안을 거닐고, 의도적으로 무례하게 대함으로써 나에게 뭔가를 알리고자 한다. 그는 자신이 주도권을 쥐고 있을 뿐만 아니라(어떻게 내가 그것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겠는가?) 사물실에서 처신하는 방법과 사무실을 편리하면서도 우아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까지 알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자 한다. 그는 왜, 이런 것을 나한테 과시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중략)..결국 내가 아직도 '유서깊은 가문'출신이라는 사실 때문에 그러는 걸까? 그는 틀림없이, 정보부에 있는 상급자들의 사무실을 눈여겨보고 그 실내장식을 여기에 도입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그런 식으로 하지 않으면, 내가 자기를 경멸할 것이라고 두려워한 것일까?

 

6.

나는 감방으로 돌아가야 한다. 몸짓만 해서는 아무 효과도 없을 것이고, 아무도 주목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자신을 위해서 나 혼자에 대한 몸짓으로라도 서늘한 어둠 속으로 돌아가 문을 잠그고 열쇠를 구부려버리고, 피에 굶주린 애국심으로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소리에 내 귀를 막고 입을 닫고 다시는 말문을 열지 말아야 한다. 어쩌면 나는 동료시민들에게 잘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바로 이 순간, 구두를 만드는 사람은 사람들이 외치는 소리가 자기 귀에 들리지 않도록 콧노래를 부르며 구두에 마지막 손질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주부들은 부엌에서 콩 껍질을 벗기며 불안해하는 아이들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이야기를 해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농부들은 지금도 조용히, 도랑을 보수하는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사람들이 존재한다면, 내가 그들을 모른다는 건 얼마나 애석한 일인가! 지금 이 순간, 군중으로부터 큰 걸음으로 멀어지는 나에게 무엇보다 중요하게 된 건 내가 막 일어나려고 하는 잔혹 행위에 오염되지 않아야 하며, 또한 가해자들의 무기력한 증오에 물들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죄수들을 구할 수가 없다. 따라서 내 자신이라도 구하는 길을 택하자. 언젠가 누군가가 이것에 대해서 얘기하게 된다면, 그리고 먼 훗날 누군가가 우리가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다면, 제국의 변방 오지에도, 마음속에서는 야만인이 아니었던 자가 적어도 한 사람은 있었다는 얘기를 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

 

7.

"짐승에게도 망치는 사용해서는 안 돼!"

분노가 무섭게 솟구친다. 나는 하사관을 향해 몸을 돌려 그를 밀쳐버린다. 나한테는 신과 같은 힘이 있다. 그것은 금세 지나가버릴 것이다. 그것이 내게 있는 동안, 잘 사용해보자!

 

8.

온전하고 정상적인 상태에 있을 때만 정의에 대한 생각을 즐기다가, 머리가 붙잡히고 파이프가 목구멍 속으로 쑤셔넣어지고, 그 속으로 소금물이 부어져 기침을 하고 구역질을 하고 도리깨질을 하는 상황이 되면, 언제 그랬느냐 싶게 정의에 관한 생각들을 깡그리 잊어버리는 그 육체 말이다. 그들은, 내가 야만인들에게 무슨 말을 했으며 야만인들이 내게 무슨 말을 했는지 강제적으로 실토하게 하려고 내게 온 게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만나면 해주리라고 준비했던 고차원적인 말을 할 기회도 갖지 못했다. 그들은 인간성의 의미를 내게 보여주기 위해 감방에 왔던 것이고, 한 시간도 안되는 시간에 많은 것들을 내게 보여줬다.

 

9.

제국은 역사의 시간을 만들어냈다. 제국은 부드럽게 반복되는 순환적인 계절의 시간이 아니라, 흥망성쇠와 시작과 끝, 그리고 파국이라는 들쭉날쭉한 시간 개념에 의존하고 있다. 제국은 역사 속에 존재하고 역사에 대해 음모를 꾸미도록 운명지어져 있다. 제국의 속마음에는 오직 한 가지 생각만 있을 뿐이다. 그 생각은 어떻게 하면 끝장이 나지 않고, 어떻게 하면 죽지 않고, 어떻게 하면 그 시대를 연장시킬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것은 낮에는 적들을 쫓아다닌다. 그것은 교활하고 무지비하다. 그것은 사냥개들을 이곳저곳에 파견한다. 밤이 되면, 그것은 재앙에 대한 상상을 먹고 산다. 도시가 약탈당하고, 사람들이 강간당하고, 죽은 사람의 뼈가 산처럼 쌓이고, 수많은 땅이 황폐해질지도 모른다는 상상말이다. 그것 말도 안되는 미친 상상이지만 전염성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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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물리학자들은 풀어야 할 문제를 풀었다기보다는 풀 수 있는 문제를  풀어왔던 것이다.

 

2.

이 연구에 감명받은 파코는 그 즉시 윌리엄 화이트의 '공공장소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위해 원서를 내고 합격통지서까지 받았다. 그러나 그는 사람이 몰리는 공원과 그렇지 못한 공원 사이에 어떤 법칙이 존재한다면, 사람이 몰리는 매장과 그렇지 못한 매장 사이에도 반드시 어떤 법칙이 존재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중략)..그러나 실상 파코의 주장은 기본적으로 소비자의 심리를 파악해서 좋은 판매 전략을 세우고 매장 설계와 진열에 이를 응용하는 것이지 소비자의 심리를 파악해서 보다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자는 것이 아니다. 고객에게 보다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가장 좋은 판매 전략이 아니냐고 되묻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소비자를 위한 서비스와 판매 촉진을 위한 서비스가 대치할 때 과연 그들은 무엇을 따를까?

..(중략)..

손님이 왕이라고? 손님은 주머니에서 돈이 지불되기 전까지만 왕이다.

 

3.

심지어 런던 웨스트 엔드에 자리한 한 현대식 레스토랑은 무려 98데시벨의 수치를 기록했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영국 노동청에 따르면 98데시벨이라는 수치는 돼지가 사육장에서 사료를 먹을 때 내는 소음 정도라고 한다.

 

4.

네발 동물들의 걸음걸이는 더욱 재미있다. 토끼는 뛸 때 두 앞발끼리는 같은 위상(박자)으로 움직이고 이 두 앞발의 움직임은 뒷발과는 반대위상이 된다. 반면 기린은 한쪽 앞발과 같은 쪽 뒷발이 같은 위상으로 움직인다. 왼쪽 앞발과 왼쪽 뒷발이 같이 움직이며 오른쪽 발들은 이와 반대 위상으로 움직인다. 말은 좀 더 특이하다. 대각선 발들이 같은 위상으로 움직인다. 왼쪽 앞발과 오른쪽 뒷발이 같은 위상으로 움직이며 오른쪽 앞발과  왼쪽 뒷발이 같이 움직인다. 코끼리는 더욱 특이하다. 네발이 모두 제각각 90도 위상차를 갖고 움직인다. 같은 위상으로 움직이는 발은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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