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러나 시민혁명을 거치지 못한 우리는 국가의 구성원으로서의 책임과 권리를 갖는 시민이라는 자각을 심화시킬 기회를 별로 갖지 못했다. 시민혁명의 결여는 이 땅에 개인주의가 발전할 수 있는 토양을 없애버렸다. 제국주의와 맞서 싸우기 위해 집단으로서의 민족을 강조할 수밖에 없었던 민족 해방운동에서도 개인주의가 설 자리는 없었다. 국민총화를 외친 독재자에게나 독재타도를 외친 민주화운동세력에나 개인주의는 이기주의의 동의어일 뿐이었다. 정당한 개인주의의 결여는 우리 사회에 국가주의적 사고방식이 횡행하도록 길을 터주었다.

 

2.

남한 단독선거를 향한 움직임이 구체화될 무렵, 김구는 '삼천만 동포에게 읍고함'이란 유명한 글에서 "통일된 조국을 건설하려다 38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일신의 구차한 안일을 위하여 단독정부를 세우는 데는 협력하지 않겠다"고 자신의 입장을 확고히 밝혔다.

..(중략)..

특히 백범 암살 사건에 대한 처리과정을 보면 대한민국 정부가 진정 임시정부를 계승한 정부인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현역 육군 소위였던 암살범 안두희는 사건 발생 48일만에 2계급 특진하였다.

 

3.

임시정부는 독립운동 진영의 폭넓은 이념적 스펙트럼에서 가장 오른쪽에 자리잡은 보수적인 세력이었다. 그런 임시정부이지만, 임시정부의 건국강령이나 헌법은 국가보안법이 지배해온 대한민국에서 감히 입 밖에 낼 수 없는 불온하기 짝이 없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임시정부는 토지혁명을 통해 '문란한 사유제도' 대신 토지 국유화를 실현하고, 대생산기관 역시 국유로 한다는 것을 '건국강령'을 통해 천명하였으며, 임시정부의 헌법인 '임시헌장'(1944)은 파업의 자유를 인민의 자유와 권리의 하나로 보장하였다. 토지 국유화, 중요산업과 대생산기관의 국유화, 파업의 자유 등의 정책은 1980년대 급진, 좌경, 용공으로 탄압받았던 재야단체들이나 1950년대의 진보당에서 오늘날의 민주노동당에 이르기까지 한국전쟁 이후 이남에 출현한 어떤 진보정당의 정강정책보다 급진적인 것이었다.

 

4.

역사는 반복되는 것일까? 임시정부를 계승하였다고 자임하는 대한민국 역시 국군에 대한 작전 지휘권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똑같이 작전지휘권이 없다 해도 상황은 너무나 달랐다. 1950년 7월 이승만은 작전지휘권을 미국에 이양하면서 맥아더에게 보낸 편지에서 한국 국민과 정부는 "귀하의 전체적 지휘를 받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남의 나라에서 군대를 조직해야 했기에 수치를 느끼며 작전지휘권을 중국에 넘긴 임시정부와 달리, 이승만 정권의 작전지휘권 이양은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치욕과 영광 사이의 거리,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대한민국은 최소한 그만큼 떨어져 있다.

 

5.

남북 대결이 지속되는 동안 남과 북은 민족사적 정통성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그 과정에서 남은 임시정부의 법통을 들고 나왔고, 북은 항일무장투쟁의 혁명전통을 내세웠다.

..(중략)..

일제에 우리가 국권을 빼앗겼던 시기 우리의 민족사적 정통성은 모든 민족해방운동 세력에 분점되어 있었던 것이지 민족 해방운동 내의 어느 특정세력이 독점했던 것은 아니다. 또 분단시대에 민족사적 정통성에 집착한다면 결국 우리가 이룰 수 있는 통일이란 남에 의한 흡수통일이나 북에 의한 적화통일일 수밖에 없다.

 

6.

태극기는 중국인의 기본 도안에 일본에 사죄하러 가는 일본 국적의 배 안에서 영국인 선장을 산파로 해서 태어나 조선 사람들에게 선보이기도 전에 일본에 나부끼는 기구한 운명을 갖게 된 것이다.

..(중략)..

한국 현대사에서 온갖 영욕을 함께한 태극기가 감정을 갖고 있다면 가장 민망했던 때는 1980년대 학생들의 성조기 소각 사건 때가 아니었을까? 광주 이후 반미의 무풍지대였던 한국은 갑자기 세계에서 반미운동이 가장 치열한 곳이 되었고, 학생들은 광주학살의 배후로 미국을 지목하고, 성조기를 채우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부는 성조기를 태운 학생들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했다. 학생들이 태극기를 태운 것도 아니고, 또 정작 미국에서는 성조기를 불태우는 행위가 헌법상의 표현의 자유로 인정받는데 말이다.

 

7.

같은 민족이기 때문에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는 유감스럽게도 다른 민족이라면 차별해도 괜찮다라는 길을 열어두고 있다.

 

8.

더불어 사는 사회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나 나에게 맹목적으로 복종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산다는 것이 아니다.

..(중략)..

왜 더불어 살아야 하는가? 약자와 소수자의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은 공자님 말씀이다. 인류가 더불어 사는 사회를 이루려는 것은 실은 마음에 안 드는 것들을 모조리 쓸어버릴 수 없고, 또 쓸어버릴 때는 엄청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9.

2002년 1월 한완상 전 교육부총리는 국무회의에서 '능력중심 사회실현을 위한 학벌문화 타파 추진 대책'으로 기업체의 입사서류에서 학력란을 없애겠다라는 보고를 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 김용갑 의원은 "사회주의병이 또다시 도졌구나 하는 생각에 당혹감을 금길이 없다"라는 성명을 냈다.

 

10.

공안기관원들이야 상부의 지시가 있어 움직이고, 또 그런 일을 하면 돈이 나오고 진급도 하고 상도 받는데,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상 받는 것도 아니고 뻔히 감옥갈 일을 누구의 지시도 받지 않고 했다는 말을 그들은 믿어주지 않았다. 그러니 없는 배후를 만들어내야 했고, 광주 시민의 항쟁은 고정간첩의 사주를 받은 것이라야 자신과 상급자들을 납득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화해할 수 없는 세계관의 차이였다. 양심이라는 것을, 자발성이라는 것을, 자기희생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자들과, 그것들을 소중히 간진한 사람들 간의 전쟁이었다. 그리고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11.

다른 나라에서는 반미감정이 고조되면서 미군이나 미국인에 대한 테러가 자행됐지만, 우리는 자기 머리를 깎는 삭발이나 자기 밥을 굶는 단식으로 미국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이보다 어떻게 더 차분하고 이성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까?

..(중략)..

이런 현실을 그대로 두고 그저 전화로 유감스럽다는 한마디 듣자고 시민들이 모인 게 아니다. 부시가 "한국민을 존경한다"는 립서비스를 했을 때 오히려 모욕감을 느낀 것은 우리 속이 좁하서일까?

 

12.

'정통 관료'라는 말이 공무원사회에 국한된 말이라면 한국사회 전반에서 군사문화의 막강한 헤게모니를 대변하는 말은 "너, 군대갔다왔어?" 또는 "군대 갔다 와야 사람이 된다"는 말이다. 물론 "군대 갔다 와야 사람이 된다"는 말도 역사적으로 나름대로 근거가 있다.

..(중략)..

군대 갔다 오면 사람이 된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여성들은 여군을 다녀오지 않는 한 사람이 될 자격을 갖지 못한 불쌍한 존재가 된다.

 

13.

2000년 초 헌법재판소가 하위직 공무원 시험에서 제대군인들에게 부여된 5%의 가산점을 위헌이라고 판결했을 때 전국의 예비역들은 놀라운 전우애를 과시해 헌법재판소와 여성단체의 홈페이지를 초토화시켰다. 당시 예비역들의 분노는 방향이 잘못됐을 뿐 충분히 이유가 있는 것이다. 군가산점이란 정부가 군복무를 마친 사병들에게 해준 유일한 배려였기 때문이다.

 

14.

엄청난 문제점을 안고 있었음에도 조선왕조가 500년을 버틸 수 있었던 이유를, 당시 지배층이 그들 나름대로 엄격한 책임감으로 사회를 지탱해왔다는 점을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다. 그것을 선비정신이라 부르든 유교 지식인들의 자기성찰이라 부르든 불행히도 오늘날의 상류층은 그런 전통사회 지배층의 책임감과는 전혀 무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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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리 나라가 세계에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지금 인류에게 부족한 것은 무력도 아니요, 경제력도 아니다. 자연 과학의 힘은 아무리 많아도 좋으나 인류 전체로 보면 현재의 자연 과학만 가지고도 편안히 살아가기에 넉넉하다. 인류가 현재에 불행한 근본 이유는 인의(仁義 )가 부족하고 자비(慈悲)가 부족하고 사랑이 부족한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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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둠 가운데 홀로 반짝이는 저 별 하나, 저것은 외딴 집이다.

별이 하나 꺼진다.

저것은 사랑을 간직하고 문이 닫히는 집이다.

또는 슬픔을 간직하고 문이 닫히는 것인지도 모른다.

 

2.

마치 사람이 어느날 정말로 시간을 가질 수 있기나 한 것처럼.

마치 인생의 종말이 되면 그가 상상하는 그 평화를 차지하게 되기나 하는 것처럼 말이다.

 

3.

자기의 보물들을 초라한 순서로 늘어놓음으로써,

그는 조종사 앞에 자기의 비참을 펼쳐 보이는 것이었다.

 

4.

고대 민중의 지도자는, 혹 인간의 고통을 애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인간이 죽어 없어짐을 애처롭게 생각했을 것이다.

개인의 죽음이 아니라 모래바닥에 파묻혀 버릴 인류의 죽음을 말이다.

그래서 그는 사막이 파묻어 버리지 못할 돌기둥이나마 세우라고 자기 백성을 이끌고 갔던 것이다.

 

5.

그러나 빛이 하도 목마르게 그리워서 그는 올라가고야 말았다.

 

6.

"이거 봐요, 로비노, 인생에는 해결책이 없는 겁니다.

움직이는 힘이 있을 뿐이오. 그것을 창조해야 됩니다.

그러면 해결책은 저절로 따라오는 거지요."

 

7.

사자는 때려잡은 후에도 역시 무서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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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근심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거나

아니면 권태로 무기력한 상태에서 살게끔 되어 있다고

마르탱은 특별히 결론지었다.

..(중략)..

"따지지 말고 일합시다. 삶을 견딜 만하게 만드는 유일한 방법이 그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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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2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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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 blindness에 비해 '눈먼 자들의 도시'는 약간 가볍지만 괜찮은 번역이라고 생각된다. 중후반까지는 무서울 정도의 흡인력으로 읽게 만들다가 그 이후에는 약간 지루하게 만드는 소설이었다. 파트리트 쥐스킨트의 '향수'를 읽었을 때처럼 영화로 안만드나하는 생각도 들고.

읽으면서 머리에서 떠나지 않은 생각은 '인간이란 무엇일까'였다. 공기가 없으면 죽듯, 삶의 불행이란 지금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나에게 없어서는 안될 것 같은 물질들의 결핍으로 오는 것이 아니다. 삶의 불행이 태어나기 위해서 반드시 복잡한 사건들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아주 단순한 하나의 사건만으로 인간은 인간이 아니게 될 수 있다.

윤리라는 것이 아직 의의를 갖고 있다면, 우리는 지금 거기서 아무 의미도 찾을 수 없는 상황에서 그것의 의미가 생겨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존 쿳시의 [야만인을 기다리며]가 심히 생각났던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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