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놉티콘- 정보사회 정보감옥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63
홍성욱 지음 / 책세상 / 2002년 5월
평점 :
절판


그동안 (나에게는) 개념적 존재였던 '빅 브라더'가

실제 사회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

그 역사와 사례, 그에 반하는 운동들을 살펴보고 있다.

 

푸코에 대한 다른 학자들의 비판도 재미있었던 부분.

 

 

 

불신의 제도화.

 

감시와 역감시.

 

권리와 권리의 충돌.

 

통치자가 있었다. 통치자는 권력을 가졌다.

통치자를 감시하고 사람들의 목소리를 전달하기 위해

의회를 만들었다. 의회도 곧 권력화 되었다.

의회를 감시하고 사람들의 목소리를 전달하기 위해

시민단체를 만들었다. 다음은?

 

이미 미국에서 60-70년대 개발되었던 화상 전화는

사람들이 전화받는 자기 모습을 보이기를 꺼려했기 때문에

실패하였지만 오늘날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우리의 권리는 항상 협상되고 조정된 권리이다.

 

 

 

파놉티콘에서 권력은 시선의 비대칭에서 나왔다.

오늘날 전자 파놉티콘에서

권력은 시선이 아닌 정보의 비대칭에서 나온다.

 

푸코도 후기에 지적했듯 권력이 항상 감시하고 통제하고..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영화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도 생각나고..

 

 

파놉티콘을 생각해낸 벤담은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란 명제로

유명한 공리주의자,자유주의자라는 점도

곰곰히 생각해볼 만한 문제이다.

-다수가 갖는 정당성에 대한 사상적 뿌리일까? 

 

 

 

어쨌거나,

다른 학자들은 가벼운 에피소드 정도로 생각했던

벤담의 파놉티콘에 관심을 기울이고 하나의 담론을 만든

푸코의 시선이 놀랍다.

 

조지 오웰의 빅 브라더 개념도 참 놀랍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감금의 정치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105
최정기 지음 / 책세상 / 200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기대가 너무 커서 그랬는지

읽을 때는 약간 루즈한 감이 있었다.

 

저자의 문체 자체가 약간 그랬던 것 같고,

제목에서 느껴지는 바로 그 뉘앙스가

글에 고스란히 베어있어 조금만 읽어도 곧 저자가 말하려고 하는게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이기도 하다.

 

하지만

다 읽고 나면 곧, 내가 방금 읽은 책이 

그렇게 단순한 내용을 다루고 있지 않음을 알게된다.

나아가 내가 방금 읽은 책이

진부한 내용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된다.

 

 

신분제가 타파되고 자유로운 개인이 강조된 근대사회는

우리의 역사의식에서 과거보다는 나아진,

긍정적인 사회로 인식되고 있다.

현대사회도 분명 많은 문제가 있지만

근대보다는 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알게모르게 주입되어있는 '역사는 진보한다'는 역사관 때문이다.

이거 참 깨기 어렵다.

 

진보역사관이 많은 비판을 받았고

지금은 오히려 대세가 아니라는 사실을 머리로는 잘 알면서도

(아직 대세인가?-_-)

자기가 살고 있는 시대가 과거보다는 분명 나아졌을 거라는,

앞으로는 더 나아질 거라는 일종의 '희망'과 연관되는 역사관이라

이리도 끈질긴 것인가?

 

진보역사관은 역사관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정당화 도구,

'선전'이 아닌가 싶다.  

 

 

근대사회는 정상과 비정상, 이성과 비이성을 구분하고

차별하기 시작한 사회다. 

더구나 한국의 근대는 자발적 근대가 아니다.

일제에 의해 강압된 근대이다.

 

저자는 한국의 역사에서 감금의 정치가 행해진 곳을 시기별로

일제 강점기, 권위주의 시대, 민주화시대로 나누고 각각의 장을

나환자 수용소, 교도소, 정신병원으로 잡는다.

 

1.당신들의 천국,나환자수용소:근대적 질서의 형성

2.나쁜 사람들의 집,교도소:권위적 질서의 재생산

3.자유 속의 총체적 통제,정신보건시설:일탈 행위의 배제 

 

각기 다른 층위에 병렬적으로만 인식되었던 곳이

역사적으로 이렇게 이어진다는 사실,

각기 다른 기능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시설들이 더 크게보면

사회적으로 같은 기능을 하고 있음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소록도의 역사적 배경과 기능, 체제들도

종교적,지리적,인본주의적으로 낭만적으로만 생각했던 나를

부끄럽게 만드는 내용들이었다.

 

 

그리고 이들의 감금이 갖는 의미가 

이들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이들로부터 사회, 즉 정상인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의미가

훨씬 본질적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도

막연하던 것이 구체적으로 제시되니 한편으로는 재밌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슬퍼졌다.

  

자본이 어디 빠질까만은 정신병원과 자본의 관계에 이르러서는

 

-입원 환자 수를 기준으로 의료 급여가 지급되고

각종 시설 비용이 지원된다.

이런 지원금은 정신병원의 주 수입원이 되고 이에따라

병원은 치료보다는 수용위주,환자의 몸에 대한 통제 위주가 된다.

 

역겨운 기분까지 든 것이 사실이다.

 

 

이어령씨가 쓴 글이었나

예전에 어디선가 읽었던 글의 내용 중에 이런게 있었다.

 

 

옛날에는 바보도, 미친사람도 함께 살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권력과 지식 나남신서 88
콜린 고든 지음 / 나남출판 / 1991년 2월
평점 :
품절


어디선가 푸코가 내 안테나에 희미하게 잡히기 시작했고

집에 마침 책이 한권 있어서 읽었다.

여러 대담을 모아놓은 것으로

첫 글(인민적 정의에 관하여:마오주의자와의 대화)과

마지막 글(육체의 고백)은 도무지 집중이 되지 않았지만

(번역탓이라고 믿고 싶다.-여전한 핑계대기;)

 

중간에 실린 글들은 은근히 내 머리를 두드렸다.

머리에 한대 맞은 느낌은 맞는데 외부에서 때린게 아니라

내부에서 충격이 온다.

 

이데올로기와 억압은 만능 코드지만

이 말은 곧 다른 시선을 제한하는 장애물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메타 담론에 대한 거부.

 

푸코는 언어나 기호라는 분석의 근거는 진부하다고 말한다.

물론 그가 일생을 두고 관심을 가졌던 것은 '권력'이고

이런 주제라면 언어나 기호보다는 전투나 전쟁과 같은 모델이

더 어울릴 수도 있겠다.

 

그는 지금까지 권력은 부정적으로만

인식되어오고 분석되어왔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것으로는

권력의 총체적인 현상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게다가 이것은 실제 현상과도 모순된다.

 

 

니체,프로이트,맑스는 분석되거나 이해되어서는 안되며

그들이 살아움직이고, 그들의 목소리를 내도록 해야한다.

이것이 그들의 존재 이유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문화로 보면 역사가 달라진다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15
조한욱 지음 / 책세상 / 200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신문화사에 대한 소책자.

 

역사를 보는 방법과 그 변천과정,

새롭게 등장한 문화사의 의의 등을

비교적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정치사->사회사->문화사

 

문화사에 입각한 책들 몇권

[설탕과 권력]

-이번 기호학 수업 때 내가 맡지는 않았지만 우리 조에서

유용하게 써먹었다.

[고양이 대학살]

[인간의 내밀한 역사]

 

세상을 보는 방법.

-두껍게 읽기

-다르게 읽기

-작은 것을 통해 읽기

-깨뜨리기

 

 

포스트 모더니즘과 역사학의 만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뉴욕 3부작 Mr. Know 세계문학 17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빵굽는 타자기'와 '거대한 괴물'

그리고 '뉴욕 삼부작'에 이르기까지..

이로써 벌써 폴 오스터의 작품을 세권이나 읽어버렸다.

폴 오스터가 특별히 내 마음 속에

이렇다 할 자리를 잡기도 전에 말이다.

 

형이 빌려온 '환상의 책'까지 읽어버린다면

어쨌든 나는 표면적으로 폴 오스터의 책을

네권이나 읽은 것이 되고

한 작가의 작품을 네 권이나 읽었다는 것은,

(세 권이라도 상관없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더 재미있는 법이니까,..

더구나 그 작가가 내 머리속에 어떤 자리를 잡기도 전에,

좀 더 쉽게 이야기하자면, 누가 나에게 폴 오스터가 어떠냐고

물어봤을때 적절하게 대답할 수 있는 말들이 정해지기 전에)

미스테리하다.

 

폴 오스터의 문체 자체는 그닥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지만

내 마음에 드는 것은 그도 그 사실을 알고 있으며

문체를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는 점이다.

(사실이 그렇지 않다면 대단히 미안한 일이지만)

그보다는 아이디어나 이야기를 엉뚱한 곳에서 풀어나가는 솜씨를

좀 더 자랑스러워할 것 같다.

뉴욕 삼부작은 그런 그의 솜씨가 유감없이 발휘된 작품인 것 같다.

 

폴 오스터라는 이름의 인물을 작품 속에 집어넣어

등장인물들과 대화를 시키는 것이나(유리의 도시)

아주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인 사건들을 출몰시키는,

수많은 이름들이 등장하는가 하면,

아주 적은 인물로도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유령들) 솜씨

-이 이야기에 나오는 이름들에서 나는

영화 '저수지의 개들'을 떠올렸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이야기가 순환한다는 것이다.(잠겨있는 방)

 

거기다 세 편 모두 글쓰는 일이 등장한다.

 

롤랑 바르트는 68혁명 이후 기존의 신화체계에서 사용하는 말들을

사용해서 아무리 신화를 파헤쳐봤자 세상을 바뀌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그 대안으로 새로운 글쓰기,기존의 신화를 훔칠 수 있는,

새로운 신화를 만들 수 있는 창조적 글쓰기를 내세웠다.

 

어찌된 일인지 나는 폴 오스터의 이 소설을 읽으며

롤랑 바르트를 떠올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