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슈퍼히어로 뽑기맨 - 제7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청소년 37
우광훈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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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공정한 사회일까요? 영화 내부자들의 이병헌의 대사처럼 대한민국에도 정의 같은 달달한 것이 남아 있긴 한 걸까요? 먼저 공정함이란 무엇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원숭이와 코끼리, 물고기로 이루어진 집단에게 공정해야 한다는 것을 명분으로 나무에 오르는 똑같은 과제를 부여한다면 과연 공정한 것일까요? 우리는 모두 선천적으로 다른 재능을 가지고 태어나고 서로 다른 환경 속에서 후천적으로 재능을 계발합니다. 만약 우리가 물고기의 재능을 나무에 오르는 것만으로 판단한다면 물고기는 일생을 자괴감 속에서 살아가겠죠.

 


공정한 사회는 원칙의 공정성과 절차의 공정성이 준수되는 사회입니다. 공정한 사회는 원칙을 기준으로 지속가능한 선순환 구조여야 합니다. 사회 구성원이 합의하여 만든 게임의 규칙이 존재해야하고 그 룰을 통해서 어느 누구에게도 공정한 혜택의 기회가 돌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원칙의 공정성을 뒷받침해줄 투명한 집행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공정한 게임의 규칙이 존재해도 그것이 제대로 집행되는지 감시할 심판이 부재하고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는다면 제대로 운영되지 않을 수 있겠죠.

 

 



2016
년 동그라미재단의 기회불평등 조사에 따르면 62.6%가 우리사회는 공정하지 않다고 답했습니다. 공정하다고 답한 사람은 10%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개인의 노력 보다 사회경제적 배경이 중요하다는 인식은 점점 확산되고 있습니다. '헬조선', 'N포세대', '수저계급론' 등 늘어나는 신조어는 이러한 세태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헬조선'과 함께 거론되는 '노오력'이라는 신조어도 있습니다. '노력' '노오력'은 다릅니다. '노력'이 달성가능한 목표를 위해 개인이 가능한 모든 수단을 최대한으로 활용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노오력'은 개인이 달성할 수 있는 최대한의 목표 그 이상을 요구합니다. 개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달성할 수 없는 목표치를 설정하고 달성하지 못하면 그것을 개인의 능력과 태도, 열정의 부족으로 돌리는것... 이것이 '노오력'의 실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설 속 진서아빠의 상황도 '노오력'에 해당합니다. 진서아빠의 직업인 택배기사는 시장의 효율성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주의 극단에 위치해 있습니다. 한국종합물류협회 자료에 따르면 국내 택배시장의 규모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업체간 치열한 경쟁으로 택배 단가는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무한경쟁 상황에서 회사는 비용절감을 위해 택배기사를 비정규직 개인사업자로 고용하고 택배기사들은 줄어가는 본인 몫의 수익을 지키기 위해 비정상적인 근무시간을 소화해내고 있습니다. 진서아빠는 여가 시간, 가정을 돌볼 시간, 심지어는 자신의 허리까지 희생하며 '노오력'했지만 이 비정상적인 수익구조에 대항하지는 못했습니다.

 

 

 

이 잔인한 세상에서 유일하게 남은 도덕성은 선입견도 편견도 없이 공정한 운(Chance)밖에 없다는 영화 <다크 나이트>의 하비 덴트의 말처럼 '노오력' 끝에 사회에서 소외된 진서아빠가 인형뽑기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단지 수성대학교 정문 앞에서의 우연한 마주침 때문만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인형뽑기 열풍의 원인 중 하나로 거론되고 있는 것은 현실의 불공정성입니다. 누구나 소액의 대가만 지불하면 사회적 신분과 배경에 대한 차별 없이 공평하게 한번의 인형뽑을 기회를 부여 받습니다. 또한 부여 받은 기회내에서는 어떠한 외부의 개입 없이 조이스틱을 조작하는 나의 능력 여부로 인해 결과가 산출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결국 인형뽑기 열풍은 '공정한 경쟁이 보장되는 사회'를 열망하는 대중의 심리가 담겨있는지도 모릅니다. 작은 진입장벽을 통해 부여받을 수 있는 누구나에게 공평한 기회... 매력적이지 않나요?

 

 

뽑기의 또다른 매력은 뽑기의 대상인 인형에 있습니다. 진서아빠와 진서가 인형뽑기 속 쵸파와의 운명적 만남으로 인형뽑기의 여정이 시작된 것처럼 인형들은 우리에게 행복했던 시절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킵니다. 더군다나 뽑기기계 속 인형들은 저마다 자기에게 손을 뻗어달라며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장에라도 그랜드 라인으로 달려나가 항해를 시작할 것 같은 추억 속 영웅들이 좁디 좁은 인형뽑기 기계 속 아크릴 상자에 갖혀 있다면 어떨까요? 작은 비용을 투자하여 얻은 기회로 내 영웅들을 구출해내고 싶은 생각이 들 수도 있지 않을까요?


하지만 공정한 것 같아 보이는 인형뽑기라는 신세계는 소설 속 조사장의 말처럼 쉽게 뽑히지 않도록 확률이 조작된 태생적으로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확률은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사건 중 특정 하나의 사건이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수로 표현한 것이기 때문에 확률을 논할 때 전제가 되는 것은 각각의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이 동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사위나 동전을 던져 특정 상황이 나오는 것, 로또 복권이 당첨되는 것이 그 좋은 예가 되겠죠. 하지만 현실에서 발생하는 확률적 상황은 이러한 교과서적인 확률의 정의에 어긋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치 윷과 같이 크기와 모양이 달라서 안면과 겉면이 나올 확률 자체가 다른 경우가 발생하는 것이죠. 애초에 인형뽑기는 헬조선의 도피처로서의 멋진 신세계가 아닌 디스토피아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에 있어 모범답안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삶이 던지는 시험에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하고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각자가 다른 시험지를 받았다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깨닫지 못한 채 타인의 답을 모방하거나 존재하지 않는 모범답안을 찾다가 실패하게 됩니다. 나무에 오르는 것을 기준으로 물고기를 판단하는 것이 공정하지 않듯이 우리는 우리에게 부여되고 스스로 계발한 재능을 토대로 세상이 던지는 질문에 각자의 답안을 작성하면 되는 것이지요.

 

 



진서가 언급하는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살인마는 안톤 시거는 우연히 만나는 사람들을 살인의 대상으로 선택하고 동전 던지기를 통해 살인 여부를 결정합니다. 이는 개인의 의지와 '노오력'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삶의 우연성을 상징합니다. 동시에 '전부를 걸어야만 전부를 얻을 수 있다.'는 안톤 시거의 말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한번씩 주어진 삶에 임하는 진지한 탐구 자세와 의지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소설에서 아빠와 진서가 숄더어택이란 비기를 전수 받은 영감님을 처음 만나게 된 계기는 해적왕 골드로저 피규어를 뽑을 때였죠. 만화 원피스에서 해적왕 골드 로저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깁니다.
 

 


"
사람의 꿈, 시대의 일렁임, 계승되는 의지. 이 세가지는 인간이 자유의 답을 찾는 한 절대로 멈추지 않는다."

 

 

 
앞으로 진서가 살게 될 세상은 분명 아빠와 엄마가 살아온 세상과는 다를 것입니다. 하지만 진서의 세상에도 아빠와 엄마의 세상이 그랬듯이 그 시대만의 일렁임은 존재하겠죠. 원피스의 쵸파처럼 최고의 의사가 되겠다는 진서의 꿈은 거친 삶의 파도 앞에 좌초되거나 위기를 겪게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삶의 위기를 맞은 진서에게 필요한 것은 힘든 현실속에서도 남편이란 이름으로 또 아빠란 이름으로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았던 진서 아빠의 마음가짐, 그리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아빠를 묵묵히 지켜봐주고 지지해 준 엄마의 기다림 아닐까요? 이러한 진서 가족의 의지는 앞으로 자신의 삶을 헤쳐나갈 진서에게도 계승되겠죠.

 

 



우리를 만드는 것은 우리가 겪는 경험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경험에 반응하는 태도입니다. 이 세상에 완전한 어른은 없다는 진서 엄마의 말처럼 아빠도 엄마도 그리고 진서도 자신의 시대에 존재하는 일렁임을 경험하고 극복하면서 서서히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겠지요. 시대의 풍랑을 힘겹게 견뎌내야할 때 내가 살아 있고 사랑 받는 존재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것... 묵묵히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 가족의 온기를 느낄 수 있는 것...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이것 이상의 응원이 있을까요진서 가족의 경우처럼 각자가 가진 삶의 조각들이 가족의 사랑 안에서 하나의 조각(One Piece)으로 완성되는 것... 이것이 우리가 꿈꾸는 행복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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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박성관 옮김, 와이다 준이치 사진 / 문학동네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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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츠바나 다카시의 서재를 읽으면서 이소룡과 그의 미완의 마지막 작품이자 유작인 사망유희(死亡遊戱, Game of Death)가 떠올랐다. 먼저 20만권이란 압도적인 지식의 세계 속을 홀로 부유하며 성장해온 다츠바나 다카시의 모습은 무술, 쿵푸를 바탕으로 태극권, 유도, 가라데, 무에타이, 태권도 등의 요소를 조합하여 상대방의 동작을 미리 저지하는(Stop-hitting) 절권도(截拳道)로 재창조한 이소룡의 모습과 닮아 있다.

 

 

 

 

 

 

또한 고양이 빌딩이라는 공간 속에 의학, 생물학, 역사, 종교, 과학 等에 이르기까지 찬란하게 펼쳐진 지식의 스펙트럼은 5층의 사망탑을 한층씩 올라가며 강한 상대와 차례대로 대결을 벌이는 사망유희의 계단형 격투 구조를 연상시켰다. 무엇보다도 고양이 빌딩의 서가는 다카시의 지식, 추억, 고뇌의 편린들이 축적된 개별적 세계이자 역사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다카시의 순수한 '지적 호기심'이 동력이 된 것이다. 이소룡이 무도인으로서 전통이나 계파에 구애 받지 않고 순수하게 강함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탐구한 과정도 다카시와 유사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본 도서 리뷰의 방식을 사망유희의 계단형의 일대일(Head to Head) 격투구조 형식을 차용해보기로 하였다. 계단형 격투구조 자체는 고양이 빌딩 곳곳을 순회하며 해설하는 본 도서의 전개와도 유사점이 있다. 일대일 격투구조는 스스로 학습하며 성장한다는 다카시의 앎에 대한 철학을 상징하기도 하고 또한 본 리뷰에서 도서의 방대한 지식세계를 모두 다룰 수 없는 현실적 한계를 고려한 타협점이기도 하다. 사망유희처럼 여기서도 고양이 빌딩의 장소마다 인상 깊었던 점 한가지와 그것에 대한 소회 위주로 서술해보고자 한다.

 

 

 

 

 

 

 

 

 

고양이 빌딩 1

 

 

고양이 빌딩 1층은 의학, 생물학, 심리학, 핵발전 등에 대한 도서로 채워져 있다.

1층에서는 다카시의 연구에 대한 생각과 최신기술에 대한 습득방식에 대한 고민이 옅보였다. 현대 사회에 있어 연구의 자유의 중요성은 누구나 인정하는 부분일 것이다. 다카시는 전쟁중이거나 독재국가가 아니라면 연구의 자유를 제한하는 일은 있을 수 없으며 또 있어서도 안된다고 주장하는데 절대적으로 자유로워야 할 문학과 예술 분야에 조차 블랙리스트가 존재하는 한국의 현실이 오버랩되며 만감이 교차하였다.

또한 최신기술이 실시간으로 적용되고 있는 현장과 그것이 도서라는 체계적인 형태로 정리되는데 까지의 시차 (time lag)에 대해 언급하는 부분은 4차 산업혁명과 디지털 트랜스포매이션이 화두가 된 현재, 지식습득의 형태와 방안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많다고 생각한다.

 

 

 

 

 

 

고양이 빌딩 2

 

 

고양이 빌딩 2층의 서가는 그리스도교와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에 관한 책들을 보유하고 있다. 2층에서 주목한 것은 저자가 언급한 일본의 역사였다. 다카시는 헤이안, 카마쿠라, 무로마치, 도쿠가와, 호조시대를 거치며 일본의 정치는 권력이 공식적인 곳에서 비공식적인 실력자가 있는 곳으로 이행해온 과정의 연속이었다고 묘사하고 있다. 이는 국정논단과 비선실세로 인해 국정의 정상적 시스템이 붕괴된 한국적 상황에서 흥미롭게 다가왔다. 또한 학문적으로 정통으로 인정받고 교과서에도 게재되어 있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진실이라고는 할 수 없다는 다카시의 주장에서는 국정 교과서 논란이 떠올랐다. 역사는 사실의 집합체이며 모든 사실을 집대성할 수 없다는 현실적 한계를 고려해볼 때, 객관적 사실만을 선택한다는 것 그 자체도 객관적이라고 할수는 없다. 따라서, 여타의 학문과 마찬가지로 역사도 하나의 관점에서만 판단할 수 없는 것이며 과학의 진보는 현상을 보는 다른 시각의 반복에서 이루어져왔다는 다카시의 주장에 공감한다.

 

 

 

 

 

 

 

 

고양이 빌딩 3

 

고양이 빌딩 3층은 신비주의와 신화, 종교, 과학에 관한 책들로 가득하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책을 사랑하는 독자로서 정보의 홍수 속에서 전통적인 (Conventional) 종이책의 역할을 언급하는 대목이었다. 다카시는 책이라는 것은 텍스트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콘텐츠 이상의 의미를 갖는 요소들이 모두 독자적으로 자기표현을 하는 종합미디어라고 주장한다.

 

책의 존재 목적은 그 안에 담긴 텍스트를 독자에게 효과적으로전달하기 위한 것이다. “효과적이라는 것…” 진부한 논쟁이긴 하지만 종이책과 전자책의 차이점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책은 독자가 텍스트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종이책은 오감만족의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표지가 전달해주는 시각적 이미지, 종이의 질감과 잉크의 향기, 책장을 넘길 때 손가락과 입술에 느껴지는 감촉, 사각거리는 소리는 총체적으로 책의 의미를 부연해주는 것들이며 전자책으로는 구현하기 힘든 것이다. 종이책 본연의 장점은 본 도서 <다츠바나 다카시의 서재>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지식인의 책에 대한 여정을 서가 정밀 촬영술을 통해서 독자들에게 시각적 즐거움과 함께 텍스트의 의미를 보다 풍성하게 느끼게 해준다. 이 책은 종이책으로 읽어야 하는 책이다. 절대적으로!!

 

 

 

고양이 빌딩 옥상


고양이 빌딩 옥상은 로마 等 서양사와 철학과 관련된 책이 주로 모여 있는 곳이다.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을 언급하는 대목에서 디자인 씽킹 (Design Thinking)의 개념이 떠올랐다.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이란 파리잡이통에 갇힌 파리에게 어떻게 하면 밖으로 나올 수 있는지 가르치는 것을 의미한다. 본능에 이끌려 파리잡이통에 들어온 파리는 위쪽으로 밝은 외부를 향해 날려고 하고 그렇게 함으로서 덫에 걸려 파리는 외부로 나가지 못하게 된다. , 파리는 전체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채 본능에 따라 날기만 하기 때문에 아무리해도 덫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이에 대한 해결책은 본능에 반하는 방향으로 날아 미로와 같은 구조를 통과하여 유리병 밑 가장자리로 빠져나가는 것이다. 이는 현대 철학의 문제는 질문이 잘못된 것이고, 당연히 그 질문에 맞게 대답하는 것도 방향이 잘못될 수 밖에 없는 것을 의미한다. 디자인 씽킹은 문제에 대한 공감(Empathize)하는 과정을 거쳐 문제를 정의(Define)하고 이에 대한 구체적인 아이디어(Ideate)를 제시하는 것을 반복하는 사고의 방법론이다. 현상문제에 대한 진심어린 공감에서 우러나온 문제제기를 토대로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며, 한번 제기한 문제제기도 적절한 것이었는지 끊임없이 검증하는 과정을 거친다.

 

 

산초메 서고 / 릿교대학 연구실

 

 

산초메 서고와 릿교대학 연구실에는 미술과 영화, 음악에 대한 서적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서 흥미로웠던 것은 역사는 현재 시점으로부터 역순으로 배워야 한다는 다카시의 주장이었다. 일본인들은 모두 조몬시대와 야요이시대는 잘 알고 있지만 현대사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다카시는 일본의 역사교육은 새로운 시대를 정면에서 가르치려고 하지 않지만 진짜 가르쳐야 할 것은 현대의 역사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과거의 200년이 이해가 되면 그것을 기반으로 현재의 시점이 이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적은 한국의 현실에도 유효한 부분이다. 한국의 학생들도 현대사에 대해서는 깊이 학습하지 않는다. 수학의 확률 통계와 마찬가지로 고조선, 삼국시대, 조선시대까지의 역사는 수학능력시험을 위해 열심히 공부하지만 현대사는 교과서에서 차지하는 비중 자체가 작고 학생들도 신경써서 공부하지 않는다. 하지만 현재 바로 이 시점도 역사의 한페이지로 기록되는 것임을 감안할 때 현대사 학습은 현재의 상황이 어떻게 만들어져왔고 각자의 위치에서 우리는 어떠한 목소리를 내야 하는지에 있어 필수적인 것이라 생각한다.

 

 

한국 버젼의 <다츠바나 다카시의 서재>를 기다리며

 

 

이 책은 한국 뿐만 아니라 책을 사랑하는 모든 독자들에게 의미가 있는 책이다. 책을 선택하는 기준에서부터 학문과 지식을 대하는 자세에 이르기까지 다카시는 전기회로의 임피던스에 비유하며 독자들에게 통찰력을 제공하고 있다. 다카시의 주장처럼 어느 누구의 그 어떤 상황에도 완벽하게 적합한 책은 존재하지 않는다. 책을 사랑하는 독자가 해야할 것은 책의 머리말을 읽어 보거나 훌훌 넘겨가며 부분 부분 읽어보면서 책과 나와의 임피던스를 맞추며 나에게 적합한 책을 찾는 것이다. 이 부분은 특정 무술의 형태나 한계에 매달리지 않고, 자신의 신체특성이나 스타일에 맞는 프리스타일 파이팅을 추구하는 이소룡의 무예철학과도 많이 닮아 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아쉬운 부분이 느껴졌다. 독자들이 지식인의 서재를 궁금해하는 이유는 지식인이 읽는 도서의 목록 그 자체만이 아니다. 도서의 목록을 넘어 지식인이 그 도서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사회적 역사적 맥락 속에서 해설을 듣고 싶은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일본인 저자 다카시는 한국의 독자들과 다른 공간에서 사회적 역사적 맥락을 경험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한국인 독자들에게 채워줄 수 없는 그 무언가가 느껴졌다. 또한 서가 정밀 촬영술도 서가 형태와 느낌은 놀라울 정도로 잘 전달해주었지만 언어적 한계로 인해 책의 텍스트를 부연하고 돋보이게 해주지는 못했다. 저자가 일본에 서양철학이 소개된 역사와 일본 출판업계 및 고서점의 현실에 맞추어 독자들에게 조언하는 등 일본의 독자들을 염두에 두고 책에 대한 설명을 전개한 부분도 있다.

 

 

 

 

 

이소룡은 "산다는 것은 순전히 사는 것이지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을 아니다."고 하였다. 지식을 탐구한다는 것은 지식 축적을 통해 어떤 목적 달성을 염두에 두는 것이 아니라 앎이라는 그 자체로서 빛나는 경험이라는 것을 다카시는 보여주고 있다. 일본의 다카시처럼 한국에도 지식과 학문에 대한 긴 여정을 애정어린 조언과 함께 독자들에게 공유할 사람은 없는 것일까? 그 누군가가를 기다리며 오늘도 나는 책과 나와의 임피던스를 맞춰보며 나만의 책으로의 여행에 빠져본다.

 

 

 

 

 

#다츠바나 다카시, #서재, #이소룡, #사망유희, #절권도, # 독서,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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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 색연필 스케치 - 깊이와 감동이 있는 순수 컬러링의 재미 5분 스케치 시리즈
김충원 지음 / 진선아트북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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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투리 시간의 효율적인 활용을 통해서도 훌륭한 취미를 즐길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 마법과도 같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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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편집자 - 어느 여가사회학자의 행복에 관한 연구
최석호 지음 / MBC C&I(MBC프로덕션)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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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목표 중 하나인 '꾸준히 독서하기'를 실천하기 위해 자주 방문하는 인터넷 서점에 접속했다. 1월이기 때문인지 다행히도 목표를 실천하려는 내 열정은 아직 불타오르고 있는 상태였고 나는 카테고리별 추천도서와 주요 키워드를 따라 서핑한 끝에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시간편집자'라는 이 책의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때 들었던 생각은 '최근 유행하는 타임슬립 (Time Slip)을 소재로 한 시류에 편승한 책이 아닐까?'였다. 하지만 이런 나의 생각을 반전시킨 것은 이 책의 부제(副題)였다.

 

 

'어느 여가사회학자의 행복에 관한 연구'

 

 

일단 '여가사회학'이란 생소한 이름의 학문에 호기심을 느꼈다. 여가에 관한 학문이 있었나? '행복'이라는 단어에 주목했다. 행복은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고 인류 공통의 관심사이지만 개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추구하는 방식과 지향점이 다른 것인데 과연 보편적인 연구가 가능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올해 우리 가족의 새 식구가 되는 아기의 태명을 '행복이'라고 지었을 정도로 요즘 행복한 삶의 구체적 실천 방식에 대한 내 관심도가 높아진 것도 하나의 계기가 된 것 같다. 이런 과정을 지나 이 책은 장바구니를 거쳐 내 방 서재로 무사히 배송되었다.

 

 

책을 받아보고 나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이 책의 표지였다. 예전에 분명 어디서 보았던 그림인데… 그런데 그 그림이 맞나? 이런 무채색 톤의 그림이 아니였던 것 같은데… 하지만 저 메시지를 들고 있는 여자의 모습은 확실히 기억에 있는데…

 

 

궁금증을 뒤로 하고 책에 대해 탐독해나갔다. 인간의 낙원에 대한 갈망은 삶의 고통의 반증이다. 낙원에 대한 열망은 현실의 삶의 고통에 비례하기 때문이다. 저자가 지적한바와 같이 인간은 고통속에서 문명화과정 (Cvilising process)을 거쳐왔고 이를 통해 사회는 열정적이지만 위험한 상태에서 안전하지만 지겨운 상태로 변화되었다. 문명화 과정 속에서 이상향에 대한 갈망도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형태로 표출되었다. 서양에 ‘에덴동산’, ‘유토피아’, 아르카디아’가 있었다면 동양에는 '무릉도원', 태평성세의 상징 '요순시대', 홍길동의 '율도국'이 있었다

 

모든 이상향은 유토피아처럼 현실세계 어디에도 없는 곳이거나 천국처럼 죽어서나 도달할 수 있는 곳으로 현실의 삶에서는 거의 달성 불가능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인간의 의지’의 유무를 기준으로 유토피아형과 아르카디아형 이상향으로 구분해볼 수 있다. 유토피아형은 토마스 모어의 구상처럼 인간의 의지가 실현되는 인공적 이상사회를 의미한다. 유토피아형에는 태양의 도시 ‘캄파넬라’, 플라톤의 ‘폴리테이아’, 베이컨의 ‘노바 아틀란티스’ 등을 들 수 있다. 아르카디아형은 산과, , 초원에서 자연과 함께 평화롭게 사는 목가적 이상향을 의미한다. 아르카디아형에는 인류 최초의 고향 ‘에덴동산’, 요정들의 낙원 ‘아발론’, 축복 받은 이들이 사는 땅 ‘엘리시움’ 등을 들 수 있다. 동양에서는 ‘요순시대’와 ‘무릉도원’이 두가지 유형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현대인의 이상향은 어떤것 일까? 단조롭고 지루한 일상을 반전시켜줄 수 있는 ‘대항운동 (Counter-balancing)’이자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언젠가는 현실이 될 것 같지만 잡힐듯 잡히지 않는 꿈과 같은 것… 문명화가 진행된, 일과 삶의 조화 (Work & Life Balance)가 중요시되는 현대인들에게 현실적인 이상향의 모습은 아르카디아형 보다는 유토피아형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Work)은 현대인들이 가정과 삶(Life)을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불가결한 것이 되어버렸고, 이러한 현실의 문명사회에서는 목기적 이상향 보다는 인간의 의지가 반영되고 실현되는 사회가 이상향의 모습일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평범한 직장인들에게는 짧지만 지친 일상에서 탈피하여 리프레쉬할 수 있게 해주는 유급휴가는 유토피아형 이상향의 하나의 형태라고 할수 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표지의 그림이 내게 다시 말을 걸기 시작한다. 일단 책을 받았을 때부터 궁금했던 그림의 원본과 저작자를 찾아보았다. 표지의 그림은 페르낭 레제 (Fernand Leger, 1881 ~ 1955) <여가 - 루이 다비드에게 보내는 경의>였다. 그림의 이름이 말해주듯이 ‘여가’와 여자가 들고 있는 ‘루이 다비드에 대한 경의 (Hommage a Louis David)’라는 문구는 이 그림의 의미를 말해주는 두 키워드이다. 루이 다비드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신고전주의 화가였고 동시에 급진적 자코뱅파의 일원이자 공화주의자이기도 했다. 레제는 이러한 다비드의 화가의 삶 이면의 정치적인 면모에 주목했었던 것으로 보인다. 노동운동의 역사는 노동시간 단축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동시간 단축은 고통 속에서 이루어진 문명화와 노동자들의 투쟁의 결과물이다. 저자가 책에서 언급하였듯이 미국은 1938년 ‘공정노동기준법’을 제정하면서 8시간 노동을 하게 되었고 프랑스도 1936 40시간 노동제가 보편화되면서 노동자들이 유급휴가를 떠날 수 있게 되었다.

 

사회적 역사적 배경을 접어두고 그림의 이미지에 주목해보면 바닷가로 휴가를 떠난 노동자 가족의 행복한 모습이 원색의 밝고 경쾌한 색채를 통해 다가온다. 자전거와 정장이 전원적 배경과 어우러지는 이 그림이야말로 현대인이 꿈꾸는 유토피아형 이상향이 아닐까? 하지만 우리는 이 그림이 가지고 있는 다른 하나의 키워드인 ‘루이 다비드에 대한 경의’를 놓쳐서는 안된다. 그림이 내포하고 있는 메시지는 휴가는 결코 쉽게 얻어진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피땀 어린 노력과 투쟁을 통해 쟁취한 역사적 산물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노동자들은 고통스런 문명화의 결과로서 노동시간 단축과 유급휴가를 얻었고, 이를 통해 일과 삶의 조화를 이루는 현대적 유토피아를 꿈꿀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문화적 환경의 변화와 사회적 위치의 차이 등으로 인해 현대인들은 진정한 의미의 여가를 즐기지 못하고 있다.

 

 

다시 한번 표지의 그림을 살펴보았다. 원작과 다르게 어두운 톤의 배경 속에서 무채색으로 변한 행복한 가족의 모습… 이 책의 표지는 그 힘들고 어려운 역사적 과정을 통해 휴가를 쟁취해냈지만 정작 제대로 활용을 못하여 행복의 의미가 퇴색되어버린 현대인들을 표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미지 언어가 나와 내 삶을 바꾼다’는 저자의 주장을 체험하게 된 순간이었다.

 

인간은 행복을 찾아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로 떠나지만 진정한 행복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현재에 있다. 행복은 기업의 VISION처럼 먼 훗날의 미래에 달성해야 할 목표가 아니라 현재 당신 자신이 내리는 선택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돌아본 바와 같이 사람들은 행복을 목표로 삼지만 지금 이순간 행복해야 한다는 사실을 망각한다. 행복해지길 원하는 그대, 당신의 선택은 무엇인가? 행복한 삶을 위한 작지만 단단한 첫 시작을 '시간선택자'로 하는 것도 나쁘진 않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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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함무라비
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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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현실이 드라마 보다 극적이다.

신문배달, 구두닦이, 외판원을 전전한 10대 소년은 고단한 현실 속에서도 삶의 희망을 놓지 않았다. 오히려 가난을 스승으로 여기며 주경야독 끝에 검정고시에 합격하며 배움에 대한 끈을 이어나갔다. 그가 복싱을 시작한 계기는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친 하나의 문장 때문이었다.

 

 

 

 

 

 

 

그는 천부적 재능 보다는 타고난 성실함과 노력으로 승부하는 복서였다. 세계챔피언이 되어 행복한 가정을 이루겠다는 꿈을 가진 그에게 휴식은 사치였다. 82 11월 마침내 WBA 라이트급 챔피언전에 진출했고 그는 투혼을 발휘했으나 14라운드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져 이후 두 번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자신이 물려준 가난 때문에 복싱을 시작했다고 자책하며 3개월 후 아들의 뒤를 따랐다. 경기의 주심도 선수가 위험한 상태에서 경기를 강행했다는 죄책감에 7개월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세상에 나오지도 않은 그의 2세에게 그가 지어준 이름은 지완(知完, 완전히 알다)이었다.

 

 

 

만약 주심이 선수의 몸상태를 보다 면밀히 관찰하고 경기 운영에 대한 재량권을 더 발휘했더라면? 만약 선수보호를 위한 복싱규칙 개정이 경기 후 뒤늦게가 아닌 경기 전에 이루어졌더라면? 만약 프로모터가 자본의 논리에 휩쓸리지 않고 보다 신중하고 공정하게 시합을 주선했었더라면? 만약에... 만약에...

 

 

 

복싱은 현존 최고(最古)의 스포츠 경기로 인간의 원초적 본능이 충실하게 발현되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복싱을 싸움이라고 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복싱에는 규칙이 있고 규칙에 따라 공정하게 경기를 진행하는 심판이 있기 때문이다.

 

 

 

 

 

 

 

복싱이 오늘날의 대중 스포츠가 된 것은 수많은 시행착오와 희생 속에서 만들어진 문명화의 역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신체적 약자, 이유도 없이 경쟁에 내몰려야 하는 자들에게 체급과 규칙은 최소한의 보호구였고, 링 위에 오르면 철저하게 혼자였던 선수들에게 심판은 공정한 경쟁을 위한 최후의 보루였다.

 

 

 

이 소설을 읽은 후 얻은 최고의 수확은 ‘대한민국 법원은 분쟁의 조정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을까?’라는 질문에 어느 정도의 답을 얻었다는 것이다.

 

 

 

 

 

 

 

판사들은 그들 자신이 ‘상처 입은 치유자’로서 사회적 약자들이 처한 상황에 공감하고 단순한 처벌뿐만이 아닌 치유의 영역까지 고민하고 있었다.

 

 

 

 

 

 

 

하지만 복싱에서 주심의 역할은 진행 보조에 그치고 승패를 포함한 경기의 운영은 전적으로 복서의 실력과 전략, 전술에 달려 있듯이 결국 사회문제의 해결은 결국 시민들의 깨어있는 힘에 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권리 위에 잠자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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