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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편집자 - 어느 여가사회학자의 행복에 관한 연구
최석호 지음 / MBC C&I(MBC프로덕션) / 2017년 1월
평점 :
품절
새해 목표 중
하나인 '꾸준히 독서하기'를 실천하기 위해 자주 방문하는
인터넷 서점에 접속했다. 1월이기 때문인지 다행히도 목표를 실천하려는 내 열정은 아직 불타오르고 있는
상태였고 나는 카테고리별 추천도서와 주요 키워드를 따라 서핑한 끝에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시간편집자'라는 이 책의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때 들었던 생각은 '최근 유행하는
타임슬립 (Time Slip)을 소재로 한 시류에 편승한 책이 아닐까?'였다. 하지만 이런 나의 생각을 반전시킨 것은 이 책의 부제(副題)였다.
'어느 여가사회학자의 행복에 관한 연구'
일단 '여가사회학'이란 생소한 이름의 학문에 호기심을 느꼈다. 여가에 관한 학문이 있었나? 또
'행복'이라는 단어에 주목했다. 행복은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고 인류 공통의 관심사이지만 개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추구하는 방식과 지향점이 다른 것인데 과연 보편적인 연구가 가능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올해 우리 가족의 새 식구가 되는 아기의 태명을 '행복이'라고 지었을 정도로 요즘 행복한 삶의 구체적 실천 방식에 대한 내 관심도가 높아진 것도 하나의 계기가 된 것
같다. 이런 과정을 지나 이 책은 장바구니를 거쳐 내 방 서재로 무사히 배송되었다.
책을 받아보고
나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이 책의 표지였다. 예전에 분명 어디서 보았던 그림인데… 그런데 그
그림이 맞나? 이런 무채색 톤의 그림이 아니였던 것 같은데… 하지만 저 메시지를 들고 있는 여자의 모습은
확실히 기억에 있는데…
궁금증을 뒤로
하고 책에 대해 탐독해나갔다. 인간의 낙원에 대한 갈망은 삶의 고통의 반증이다. 낙원에 대한 열망은 현실의 삶의 고통에 비례하기 때문이다. 저자가
지적한바와 같이 인간은 고통속에서 문명화과정 (Cvilising process)을 거쳐왔고 이를 통해
사회는 열정적이지만 위험한 상태에서 안전하지만 지겨운 상태로 변화되었다. 문명화 과정 속에서 이상향에
대한 갈망도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형태로 표출되었다. 서양에 ‘에덴동산’, ‘유토피아’, 아르카디아’가 있었다면 동양에는 '무릉도원', 태평성세의 상징 '요순시대', 홍길동의 '율도국'이
있었다.
모든 이상향은
유토피아처럼 현실세계 어디에도 없는 곳이거나 천국처럼 죽어서나 도달할 수 있는 곳으로 현실의 삶에서는 거의 달성 불가능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인간의 의지’의 유무를 기준으로 유토피아형과 아르카디아형 이상향으로 구분해볼 수 있다. 유토피아형은 토마스 모어의 구상처럼 인간의 의지가 실현되는 인공적 이상사회를 의미한다. 유토피아형에는 태양의 도시 ‘캄파넬라’, 플라톤의 ‘폴리테이아’, 베이컨의 ‘노바 아틀란티스’ 등을 들 수 있다. 아르카디아형은 산과, 들, 초원에서 자연과 함께 평화롭게 사는 목가적 이상향을 의미한다. 아르카디아형에는 인류 최초의 고향 ‘에덴동산’, 요정들의 낙원 ‘아발론’, 축복 받은 이들이 사는 땅 ‘엘리시움’ 등을 들 수 있다. 동양에서는
‘요순시대’와 ‘무릉도원’이 두가지 유형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현대인의
이상향은 어떤것 일까? 단조롭고 지루한 일상을 반전시켜줄 수 있는 ‘대항운동 (Counter-balancing)’이자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언젠가는 현실이 될 것 같지만 잡힐듯 잡히지 않는
꿈과 같은 것… 문명화가 진행된, 일과 삶의 조화 (Work
& Life Balance)가 중요시되는 현대인들에게 현실적인 이상향의 모습은 아르카디아형 보다는 유토피아형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일 (Work)은 현대인들이 가정과 삶(Life)을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불가결한 것이 되어버렸고, 이러한
현실의 문명사회에서는 목기적 이상향 보다는 인간의 의지가 반영되고 실현되는 사회가 이상향의 모습일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평범한 직장인들에게는 짧지만 지친 일상에서 탈피하여 리프레쉬할 수 있게 해주는 유급휴가는 유토피아형 이상향의
하나의 형태라고 할수 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표지의 그림이 내게 다시 말을 걸기 시작한다. 일단 책을 받았을 때부터 궁금했던 그림의 원본과 저작자를
찾아보았다. 표지의 그림은 페르낭 레제 (Fernand Leger,
1881 ~ 1955)의 <여가 - 루이
다비드에게 보내는 경의>였다. 그림의 이름이 말해주듯이
‘여가’와 여자가 들고 있는 ‘루이 다비드에 대한 경의 (Hommage a Louis David)’라는
문구는 이 그림의 의미를 말해주는 두 키워드이다. 루이 다비드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신고전주의 화가였고
동시에 급진적 자코뱅파의 일원이자 공화주의자이기도 했다. 레제는 이러한 다비드의 화가의 삶 이면의 정치적인
면모에 주목했었던 것으로 보인다. 노동운동의 역사는 노동시간 단축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동시간 단축은 고통 속에서 이루어진 문명화와 노동자들의 투쟁의 결과물이다.
저자가 책에서 언급하였듯이 미국은 1938년 ‘공정노동기준법’을 제정하면서 8시간 노동을 하게 되었고 프랑스도 1936년 40시간 노동제가 보편화되면서 노동자들이 유급휴가를 떠날 수 있게 되었다.
사회적 역사적
배경을 접어두고 그림의 이미지에 주목해보면 바닷가로 휴가를 떠난 노동자 가족의 행복한 모습이 원색의 밝고 경쾌한 색채를 통해 다가온다. 자전거와 정장이 전원적 배경과 어우러지는 이 그림이야말로 현대인이 꿈꾸는 유토피아형 이상향이 아닐까? 하지만 우리는 이 그림이 가지고 있는 다른 하나의 키워드인 ‘루이 다비드에 대한 경의’를 놓쳐서는 안된다. 그림이 내포하고 있는 메시지는 휴가는 결코 쉽게 얻어진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피땀 어린 노력과 투쟁을 통해
쟁취한 역사적 산물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노동자들은 고통스런
문명화의 결과로서 노동시간 단축과 유급휴가를 얻었고, 이를 통해 일과 삶의 조화를 이루는 현대적 유토피아를
꿈꿀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문화적 환경의 변화와 사회적 위치의 차이 등으로 인해 현대인들은 진정한
의미의 여가를 즐기지 못하고 있다.
다시 한번
표지의 그림을 살펴보았다. 원작과 다르게 어두운 톤의 배경 속에서 무채색으로 변한 행복한 가족의 모습…
이 책의 표지는 그 힘들고 어려운 역사적 과정을 통해 휴가를 쟁취해냈지만 정작 제대로 활용을 못하여 행복의 의미가 퇴색되어버린 현대인들을 표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미지 언어가
나와 내 삶을 바꾼다’는 저자의 주장을 체험하게 된 순간이었다.
인간은 행복을 찾아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로
떠나지만 진정한 행복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현재에 있다. 행복은 기업의 VISION처럼 먼 훗날의 미래에 달성해야 할 목표가 아니라 현재 당신 자신이 내리는 선택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돌아본 바와 같이 사람들은 행복을 목표로 삼지만 지금 이순간 행복해야
한다는 사실을 망각한다. 행복해지길 원하는 그대, 당신의
선택은 무엇인가? 행복한 삶을 위한 작지만 단단한 첫 시작을 '시간선택자'로 하는 것도 나쁘진 않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