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슈퍼히어로 뽑기맨 - 제7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청소년 37
우광훈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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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공정한 사회일까요? 영화 내부자들의 이병헌의 대사처럼 대한민국에도 정의 같은 달달한 것이 남아 있긴 한 걸까요? 먼저 공정함이란 무엇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원숭이와 코끼리, 물고기로 이루어진 집단에게 공정해야 한다는 것을 명분으로 나무에 오르는 똑같은 과제를 부여한다면 과연 공정한 것일까요? 우리는 모두 선천적으로 다른 재능을 가지고 태어나고 서로 다른 환경 속에서 후천적으로 재능을 계발합니다. 만약 우리가 물고기의 재능을 나무에 오르는 것만으로 판단한다면 물고기는 일생을 자괴감 속에서 살아가겠죠.

 


공정한 사회는 원칙의 공정성과 절차의 공정성이 준수되는 사회입니다. 공정한 사회는 원칙을 기준으로 지속가능한 선순환 구조여야 합니다. 사회 구성원이 합의하여 만든 게임의 규칙이 존재해야하고 그 룰을 통해서 어느 누구에게도 공정한 혜택의 기회가 돌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원칙의 공정성을 뒷받침해줄 투명한 집행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공정한 게임의 규칙이 존재해도 그것이 제대로 집행되는지 감시할 심판이 부재하고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는다면 제대로 운영되지 않을 수 있겠죠.

 

 



2016
년 동그라미재단의 기회불평등 조사에 따르면 62.6%가 우리사회는 공정하지 않다고 답했습니다. 공정하다고 답한 사람은 10%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개인의 노력 보다 사회경제적 배경이 중요하다는 인식은 점점 확산되고 있습니다. '헬조선', 'N포세대', '수저계급론' 등 늘어나는 신조어는 이러한 세태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헬조선'과 함께 거론되는 '노오력'이라는 신조어도 있습니다. '노력' '노오력'은 다릅니다. '노력'이 달성가능한 목표를 위해 개인이 가능한 모든 수단을 최대한으로 활용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노오력'은 개인이 달성할 수 있는 최대한의 목표 그 이상을 요구합니다. 개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달성할 수 없는 목표치를 설정하고 달성하지 못하면 그것을 개인의 능력과 태도, 열정의 부족으로 돌리는것... 이것이 '노오력'의 실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설 속 진서아빠의 상황도 '노오력'에 해당합니다. 진서아빠의 직업인 택배기사는 시장의 효율성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주의 극단에 위치해 있습니다. 한국종합물류협회 자료에 따르면 국내 택배시장의 규모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업체간 치열한 경쟁으로 택배 단가는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무한경쟁 상황에서 회사는 비용절감을 위해 택배기사를 비정규직 개인사업자로 고용하고 택배기사들은 줄어가는 본인 몫의 수익을 지키기 위해 비정상적인 근무시간을 소화해내고 있습니다. 진서아빠는 여가 시간, 가정을 돌볼 시간, 심지어는 자신의 허리까지 희생하며 '노오력'했지만 이 비정상적인 수익구조에 대항하지는 못했습니다.

 

 

 

이 잔인한 세상에서 유일하게 남은 도덕성은 선입견도 편견도 없이 공정한 운(Chance)밖에 없다는 영화 <다크 나이트>의 하비 덴트의 말처럼 '노오력' 끝에 사회에서 소외된 진서아빠가 인형뽑기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단지 수성대학교 정문 앞에서의 우연한 마주침 때문만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인형뽑기 열풍의 원인 중 하나로 거론되고 있는 것은 현실의 불공정성입니다. 누구나 소액의 대가만 지불하면 사회적 신분과 배경에 대한 차별 없이 공평하게 한번의 인형뽑을 기회를 부여 받습니다. 또한 부여 받은 기회내에서는 어떠한 외부의 개입 없이 조이스틱을 조작하는 나의 능력 여부로 인해 결과가 산출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결국 인형뽑기 열풍은 '공정한 경쟁이 보장되는 사회'를 열망하는 대중의 심리가 담겨있는지도 모릅니다. 작은 진입장벽을 통해 부여받을 수 있는 누구나에게 공평한 기회... 매력적이지 않나요?

 

 

뽑기의 또다른 매력은 뽑기의 대상인 인형에 있습니다. 진서아빠와 진서가 인형뽑기 속 쵸파와의 운명적 만남으로 인형뽑기의 여정이 시작된 것처럼 인형들은 우리에게 행복했던 시절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킵니다. 더군다나 뽑기기계 속 인형들은 저마다 자기에게 손을 뻗어달라며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장에라도 그랜드 라인으로 달려나가 항해를 시작할 것 같은 추억 속 영웅들이 좁디 좁은 인형뽑기 기계 속 아크릴 상자에 갖혀 있다면 어떨까요? 작은 비용을 투자하여 얻은 기회로 내 영웅들을 구출해내고 싶은 생각이 들 수도 있지 않을까요?


하지만 공정한 것 같아 보이는 인형뽑기라는 신세계는 소설 속 조사장의 말처럼 쉽게 뽑히지 않도록 확률이 조작된 태생적으로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확률은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사건 중 특정 하나의 사건이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수로 표현한 것이기 때문에 확률을 논할 때 전제가 되는 것은 각각의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이 동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사위나 동전을 던져 특정 상황이 나오는 것, 로또 복권이 당첨되는 것이 그 좋은 예가 되겠죠. 하지만 현실에서 발생하는 확률적 상황은 이러한 교과서적인 확률의 정의에 어긋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치 윷과 같이 크기와 모양이 달라서 안면과 겉면이 나올 확률 자체가 다른 경우가 발생하는 것이죠. 애초에 인형뽑기는 헬조선의 도피처로서의 멋진 신세계가 아닌 디스토피아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에 있어 모범답안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삶이 던지는 시험에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하고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각자가 다른 시험지를 받았다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깨닫지 못한 채 타인의 답을 모방하거나 존재하지 않는 모범답안을 찾다가 실패하게 됩니다. 나무에 오르는 것을 기준으로 물고기를 판단하는 것이 공정하지 않듯이 우리는 우리에게 부여되고 스스로 계발한 재능을 토대로 세상이 던지는 질문에 각자의 답안을 작성하면 되는 것이지요.

 

 



진서가 언급하는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살인마는 안톤 시거는 우연히 만나는 사람들을 살인의 대상으로 선택하고 동전 던지기를 통해 살인 여부를 결정합니다. 이는 개인의 의지와 '노오력'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삶의 우연성을 상징합니다. 동시에 '전부를 걸어야만 전부를 얻을 수 있다.'는 안톤 시거의 말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한번씩 주어진 삶에 임하는 진지한 탐구 자세와 의지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소설에서 아빠와 진서가 숄더어택이란 비기를 전수 받은 영감님을 처음 만나게 된 계기는 해적왕 골드로저 피규어를 뽑을 때였죠. 만화 원피스에서 해적왕 골드 로저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깁니다.
 

 


"
사람의 꿈, 시대의 일렁임, 계승되는 의지. 이 세가지는 인간이 자유의 답을 찾는 한 절대로 멈추지 않는다."

 

 

 
앞으로 진서가 살게 될 세상은 분명 아빠와 엄마가 살아온 세상과는 다를 것입니다. 하지만 진서의 세상에도 아빠와 엄마의 세상이 그랬듯이 그 시대만의 일렁임은 존재하겠죠. 원피스의 쵸파처럼 최고의 의사가 되겠다는 진서의 꿈은 거친 삶의 파도 앞에 좌초되거나 위기를 겪게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삶의 위기를 맞은 진서에게 필요한 것은 힘든 현실속에서도 남편이란 이름으로 또 아빠란 이름으로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았던 진서 아빠의 마음가짐, 그리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아빠를 묵묵히 지켜봐주고 지지해 준 엄마의 기다림 아닐까요? 이러한 진서 가족의 의지는 앞으로 자신의 삶을 헤쳐나갈 진서에게도 계승되겠죠.

 

 



우리를 만드는 것은 우리가 겪는 경험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경험에 반응하는 태도입니다. 이 세상에 완전한 어른은 없다는 진서 엄마의 말처럼 아빠도 엄마도 그리고 진서도 자신의 시대에 존재하는 일렁임을 경험하고 극복하면서 서서히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겠지요. 시대의 풍랑을 힘겹게 견뎌내야할 때 내가 살아 있고 사랑 받는 존재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것... 묵묵히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 가족의 온기를 느낄 수 있는 것...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이것 이상의 응원이 있을까요진서 가족의 경우처럼 각자가 가진 삶의 조각들이 가족의 사랑 안에서 하나의 조각(One Piece)으로 완성되는 것... 이것이 우리가 꿈꾸는 행복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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