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동물원이란 공간의 의미는 무엇일까? 평소에 접할 수 없는 야생동물들을 볼 수 있는 곳? 아니면 자연에 있어야 할 야생동물들을 가두는 나쁜 곳? 동물원은 우리에게 친숙한 공간이다. 그곳은 학창시절 우정을 나눴던 공간이고, 연인과의 아련한 추억이 담긴 공간이며, 따뜻한 봄날 아이와 함께했던 기억이 서려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우리는 친구, 연인, 가족과 함께 동물원을 찾지만, 그곳에 속해 있는 동물의 삶에 대해서는 대체로 무지하다. 동물원을 방문하면서 동물들의 복지에 대해 고민하기보다는 일상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동물과의 조우에 감사하고 동행한 사람들과 추억을 쌓기 바쁘다.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사실은 동물원은 애초에 동물이 아니라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라는 것이다. 동물원이 더 자연에 가깝고, 야생다운 환경을 만들기 위해 공을 들이는 이유도 동물보다는 관람객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서일 수밖에 없다. 관람객이 환경에 몰입하여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각종 체험형 동물원이 등장하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동물의 행복은 우선시되는 목표가 아니다. 인간의 흥미와 편리를 위해 동물들의 삶이 희생되고 있는 곳, 이것이 동물원의 이면에 감춰진 진실이다. <너구리 집을 나가다>는 독자가 동물원이 내포하고 있는 문제점과 동물들이 겪고 있는 고통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동물원은 제국주의 국가의 침략과 폭력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야만이 전시되던 시대를 거쳐 동물원도 꾸준히 진화해왔다. 다행스럽게도 진보의 물결은 동물원에도 불어닥쳤다. 동물원의 교육적 기능과 동물 복지가 거론되었고, 멸종위기종을 번식시키고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보전센터의 역할도 대두되었다. 동물원의 존재 목적이 관람에서 보전으로 패러다임이 전환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동물원 동물들의 삶에 이상 징후가 있다는 것은 최근 발생한 여러 가지 사례를 통해 감지되었다. 불법 포획되어 쇼 돌고래로 살다가 고향의 제주 바다로 돌아간 제돌이의 삶이 그랬고, 인간에 의해 동물원에서의 삶을 강요당하다가 인간의 실수로 우리를 나와 인간의 안전을 위해서 사살당한 퓨마 뽀롱이의 비극적인 삶이 그랬다.



인간은 자연에서 멀어질수록 자연을 그리워하고 야생의 동물들을 더 가까이 두고 보고 싶어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인간이 다양한 동물을 한 장소에서 편하게 보기 위해 만든 동물원이라는 공간이 내포하고 있는 부작용이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것이다. 인간이 자연이 아닌 인공의 환경에서 동물이 태어나게 했다면 그리고 그들이 죽는 순간까지 불행한 조건 속에 살다 갔다면 그것은 모두 인간의 책임이다. 일생을 닫힌 공간 안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시달리고 있는 동물원의 동물들은 그들이 생명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이윤과 효율의 잣대만으로 평가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 <너구리 집을 나가다>의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




너구리 집을 나가다 – 브릿G (britg.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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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버리다 -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가오 옌 그림, 김난주 옮김 / 비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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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출간된 하루키의 에세이 <고양이를 버리다>를 읽으면서, 내가 하루키의 소설 이상으로 그의 에세이에도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걸 새삼 느꼈다. 한권 한권 그의 책들이 쌓이면서 어느 순간 서가의 한 켠이 하루키의 소설과 에세이로 채워지게 되었는데, 이번에 <고양이를 버리다 >을 서가에 꽂으며 살펴보니 소설 보다 에세이가 생각 보다 훨씬 많았던 것이다.


 

사실 하루키의 신작 에세이 <고양이를 버리다>는 출간 소식을 접하자 마자 반가운 마음에 구매를 결정했다. 그 이유는 내가 삶과 일상에 대한 빛나는 통찰 등이 담겨 있는 하루키 에세이 특유의 매력에 빠져 있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고양이를 버리다>라는 제목 때문이었다. 나는 하루키의 팬 이전에 애묘인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하루키가 고양이를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지 그의 전작 에세이 <장수 고양이의 비밀>을 읽으며 여실히 느꼈기 때문이었다.

 


하루키가 애묘인으로서 어린 시절부터 많은 고양이를 키워왔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장수 고양이의 비밀>에서는 이러한 애묘인으로서의 하루키가 잘 표현되어 있다. 그와 정을 나눠왔던 수많은 고양이들 중에서 그의 곁에서 이십 년이 넘는 세월을 함께한 장수 고양이 '뮤즈'와의 일화들이 에세이에 담겨 있다. 고양이에게는 고양이의 삶이 있고, 응분의 생각이 있고, 기쁨과 괴로움이 있지만, 하루키는 인간과 고양이라는 종의 구분을 넘어서 고양이의 생각과 행동을 구석구석까지 생생히 느끼며 마음을 교류하는 기묘한 체험을 하게 해준 그의 반려묘 '장수고양이'와의 추억에 대해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있다.

 


"뮤즈는 같이 살기에 매우 이상적인 고양이였다. 예쁘고, 영리하고, 튼튼하고, 숱한 수수께끼를 품고 있었다. 우리와 고양이 사이에는 늘 가벼운 긴장감이 흘렀고, 그건 그것대로 또 상당히 안정적이었다. 그런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고양이는 흔치 않다." (장수 고양이의 비밀, p. 145)

 


<장수 고양이의 비밀>의 온기 어린 기억이 아직도 마음 한 켠에 남아있던 때에 <고양이를 버리다>의 출간 소식을 들었으니 어찌 구매를 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너무나도 반가운 마음에 구매를 했던 나는 책을 받아보고 조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 놀랐던 건 생각보다 얇고 가벼운 분량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는 책의 내용과 하루키가 남긴 작가 후기를 보며 이렇게 출간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이해하게 되었다.

 


"짧은 글이라서 어떤 형태로 출판하면 좋을지 꽤나 고민했는데, 결국 일러스트와 함꼐 독립된 조그만 책 하나로 꾸미기로 결정했다. 내용이나 문장의 결로 봐서, 내가 쓴 다른 글과 같이 엮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p. 98, 작가 후기 중에서)

 


내가 책을 읽으며 당황했던 건 책의 분량 보다도 그 내용에 있었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나는 <고양이를 버리다>라는 제목을 보고 예전 <장수 고양이의 비밀> 등에서 느꼈던 애묘인으로서의 하루키의 모습을 다시 한번 느끼기 위해 책을 구매했다. 따라서, 당연히 그러한 내용 전개를 기대하고 예상하면서 애묘인으로서 하루키와 어울리지 않는 '고양이를 버리는' 행위가 어떤 반전을 머금고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서둘러 책을 읽어 나갔는데, 책의 내용 전개가 내 예상과는 좀 달랐던 것이다.

 


물론 <고양이를 버리다>라는 제목처럼 에세이에서는 하루키가 고양이에 얽힌 두가지 추억을 언급하고 있긴 하다. 하지만 이번 에세이에서 고양이와의 추억은 그와 추억을 공유했던 다른 누군가의 추억의 한 켠을 차지하는 에피소드로 등장한다. 그때 비로소 책의 표지를 다시 살펴보니 <고양이를 버리다>라는 제목 밑에는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라는 부제가 달려 있었다. <고양이를 버리다>는 하루키가 그의 아버지의 역사와 그와 함께한 추억들을 반추하고 있는 책이다

 


"우리는 그 여름날, 같이 자전거를 타고 줄무늬 암고양이를 버리러 고로엔 해변에 갔다. 그리고 우리는 함께, 그 고양이에게 추월당했다. 뭐가 어찌되었든, 우리는 멋지고 그리고 수수께끼 같은 체험을 공유하고 있지 않은가." (p. 87)

 


"그 때 해안의 파도 소리를, 소나무 방품림을 스쳐 가는 바람의 향기를, 나는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해낼 수 있다. 그런 소소한 일 하나하나의 무한한 집적이, 나라는 인간을 이런 형태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p. 87)

 


내가 하루키의 에세이를 좋아하는 이유는 여행과 음악, 책 등 다방면에 걸친 취향 그리고 귀중하고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온 충고를 자신의 일상에서 벌어졌던 소소한 에피소드와 엮어서 독자에게 들려주기 때문이다. 그의 글을 읽다보면 하루키 특유의 낙천적이고 밝은 분위기가 나에게까지 전해지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 하지만 우리네 삶이 그렇듯이 하루키 또한 마냥 즐겁고 유쾌한 에피소드만을 다루고 있진 않다.

 


일정 경지에 올라선 작가 답게 이야기를 쓰는 일은 제로에서 뭔가를 만들어내는 일이며, 이는 모두에게 즐거운 일은 아니고 때로는 본의 아니게 피가 흐르기도 하는 비정한 세계에 속하는 것임을, 또 그에 책임은 오롯이 자신이 짊어지고 살아갈 수 밖에 없다는 작가로서의 숙명을 언급하기도 하고, 세상을 살아간다는 건 마치 갖가지 함정이 생각지도 못한 장소에서 은밀히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으며, 아무 일 없이 매일 평온하게 살아가기란 그리 간단치가 않음을 토로하기도 한다.

 


"만약 아버지가 병역에서 해제되지 않아 필리핀이나 버마 전선으로 보내졌다면만약 음악 교사였다는 어머니의 약혼자가 전사하지 않았다면그렇게 생각해가다 보면 정말 기분이 묘해진다. 정말 그랬다면, 나라는 인간은 이 지상에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 (p. 89)

 


하루키는 신작 에세이 <고양이를 버리다>에서 그가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 기반이 되는 그의 아버지의 역사에 대해 아버지가 세상에 존재했을 때는 알지 못했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던 그의 아버지의 과거에 대해 더듬어 간다. 그 역사 속에는 그가 아버지와 공유했던 추억 중 가장 인상적인 에피소드이자 본 에세이의 제목이기도 한 고양이를 버리러 간 날에 대한 기억도 있다. 그 역사들은 아버지의 역사이지만 동시에 가족의 역사이며 또한 자신의 역사이기도 하다.

 


인생에 있어 결과로서의 형태는 분명 중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데 진정으로 도움이 되고 보탬이 되는 것은 좀 더 다른 것 아닐까? 하루키가 말했듯이 어쨌든 영원히 이기기만 하는 인간은 세상에 아무도 없으니까... <고양이를 버리다>를 읽고 나서 하루키의 에세이의 매력은 읽고 나면 우리가 살아가는데 정말로 보탬이 되는 무엇인가를 어렴풋이 알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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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사실주의 화가들은 고전주의나 낭만주의 화가들처럼 신화나 역사의 이상화된 주제를 그리지 않았다. 그들은 화가가 경험하는 현실 속에서 벌어지는 노동자나 농민, 시민들의 일상을 주요 주제로 삼아 이를 과장하거나 미화하지 않고 눈에 보이는 대로 재현하였다. "눈에 보이지 않는 천사는 그릴 없으며 시대를 사는 미술가는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있는 것만을 그릴 있다" 했던 귀스타브 쿠르베의 말은 사실주의의 성격을 대변하고 있다.




사실주의에 이어 새로운 예술인 인상주의가 등장하게 요인으로 크게 3가지가 언급된다. 첫번째 요인은튜브 물감 등장이다. 튜브 물감은 19세기 중반이 지나 등장했다. 이전에는 안료를 기름에 개서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그날 갠것은 그날 쓰지 않으면 굳어서  사용할수 없었다. 튜브 물감이 등장하면서 물감 저장이 가능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화가들의 행동패턴이 변화할 있었다. 화실 밖을 나와 야외에서 그림 그리기가 가능해지면서 화가들은 대자연과 빛에 심취할수 있게 것이다. 두번째 요인은철도 등장이다. 1840년도 프랑스 철도망의 완성되면서 여유 있는 중산층을 중심으로 교외 나들이붐이 일었고, 시민들은 이전 시대에 비해 원하는 어디든지 쉽게 이동할 있게 되었다. 마지막 세번째 요인이자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사진 등장이다. 공식 특허 등록을 기준으로 하면 사진의 발명은 1839 다게르로 기록되어 있다. 사진의 발명으로 인간의 시각으로 인지할 없는 사물의 역동적인 움직임이나 세부 디테일까지 포착이 가능해졌다.




인상주의(impressionism) 현대미술의 시작으로 인정받는 이유는 이전 예술과 다르게감각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변화를 가지고독특한 회화적 효과를 추구했기 때문이다. 사진의 등장으로 경쟁력을 상실한 사실주의 기법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사물을 바라보는 화가의 주관적인 느낌과 인상이 전면에 부각되기 시작한 것이다.




김설단 작가의 <저수지의 시체들> 읽으며 받았던 첫인상은 마치 사실주의를 넘어 현대미술의 새로운 챕터를 인상주의의 태동을 지켜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소설은 본격 논두렁 하드보일드 스릴러를 표방하는 작품소개에 걸맞게무령이라는 가상의 촌동네를 배경으로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을 흥미롭게 조명하고 있다. 극의 흥미를 배가시키는 가장 요인은 독창적이면서도 디테일이 살아있는 풍경묘사라고 생각한다. 이는 소설의 전반부에 걸쳐 표현되어 있는데, 소설의 시작부부터 특징이 나타난다. 1 중에서 해당 내용을 인용해보면 다음과 같다.




태수는 걸음을 멈추고 초소 위쪽 귀퉁이의 양철 씌운 전등이 드리우는 빛의 삼각형을 응시했다. 비스듬한 원뿔형 공간 안에 유유히 떠다니던 눈송이들이 공기의 흐름을 따라 한꺼번에 방향을 틀었다. 마치 잔고기떼처럼.”



목덜미까지 바짝 세운 검은 양모 코트의 깃이 귓가에서 펄럭였고 동시에 레몬색 불빛을 머금은 눈송이들이 발밑에서 솟구쳐 올랐다. 태수는 빛의 강물을 거스르며 약동하는 노란 생명체들을 쳐다보았다. 바람이 잦아들자 한순간 눈송이들이 공중에 그대로 멈추었다. 마치 누군가 버튼을 눌러 시간을 멈춘 세상이 하나의 장면으로 얼어붙었다.”




인상주의가 사물을 바라보는 새로운 인식체계로 미술의 새로운 장을 것처럼, 소설이 텍스트의 한계를 넘어 영상과 경쟁할 있는 결정적인 요소가 있다면 그것은 차볋하된 분위기나 상황 조성을 가능하게 하는 독창적인 시각이라고 생각한다. 소설은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 소설의 배경과 독특하게 형성된 분위기 속에서 매력적인 케릭터들이 살아 움직이는 것을 보는 것은 다른 즐거움이었다. 특히 등장인물간의 대화는 각각의 인물이 가지고 있는 성격을 드러내면서 극의 전개에도 윤활유 역할을 하고 있다



희망적이시네요.”

뭐가요?”

희망을 가져야죠. 살아가려면

살아가려면 희망을 버려야 하는 알았는데요.”

어느 쪽을 바라보는지에 달려 있겠죠.”

- 27 -

감정과는 무관한 문제입니다.”

세상에 감정과 무관한 문제라는 없어요.”

논리적으로 옳은지 그른지의 문제라는 뜻입니다.”

논리라는 역시도 감정의 갑옷에 불과하죠.”

과학과 종교가 같다는 말씀이나 다름없군요.”

과학 역시 일종의 이야기라는 점에서는 매한가지죠.”

- 39 -



또한비극을 통해서만 진실을 보도록 창조된 인간 고유의 눈동자가 검고 단단한 점으로 응축되었다.” 같은 문장들은 작가가 가진 아포리즘을 드러내는 동시에 냉철하면서도 무미건조한 하드보일드 소설의 분위기를 나타내고 있는 인상적인 표현이었다.



하지만 차별화된 시각으로 시공간을 조율하는 소설의 가장 장점은 때로는 소설의 흥미를 떨어뜨리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소설 특유의 감각적이고 디테일이 살아있는 장면 조성이 때로는 조금 과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때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섬세하게 조각한 감정의 결에 발목 잡혀 하드보일드 스릴러 소설 본연의 속도감 있는 전개가 조금 더뎌진 같은 느낌을 받았다. 범인을 추적하면서 예상치 못한 반전을 맞이하기 위해 폭발적으로 전개되어야 하는 순간에 감정의 물결을 만나 전개가 둔화되는 같은 아쉬움이랄까? 감각에 대한 인식의 변화로 스타일리쉬한 장면들을 구성해낸 점은 너무나 좋았지만, 소설의 스피디한 전개와 균형을 맞춘다면  좋을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소설을 읽으면서 아쉬웠던 점을 한가지만 덧붙인다면 대화체나 챕터 구분 등이 명확하게 되어 있지 않아서 가독성이 떨어지는 느낌이 있었다. 대화체 표시나 단락 나누기, 띄어쓰기 등이 보강된다면 독자들의 접근성이 높아지는데 많은 기여를 있을 것이다.



정리하자면 <저수지의 시체들>무령이라는 촌동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비트코인과 관련된 지능형 범죄를 매력적인 케릭터와 디테일한 묘사로 표현한 수작이다. 소설의 장점은 앞에서 언급한 대로 소설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독창적인 시각와 디테일한 묘사, 매력적인 인물들과 짜여진 인물간의 대화들, 삶의 철학과 아포리즘을 담아낸 내용 등에 있다. 작가의 후속작이 기대가 된다.




저수지의 시체들 – 브릿G (britg.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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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크크 2022-04-18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잭와일드 선생님!
부크크 편집팀입니다.

그간 자가출판플랫폼으로 잘 알려져 있던 부크크에서 기획출판 브랜드인 부크크오리지널로 독자 여러분을 만나고 있습니다.
이번에 김설단 작가님의 <저수지의 시체들>을 출간할 예정인데요.
앞 띠지에 선생님의 리뷰 중 ˝감정의 섬세한 결을 조각해가는 하드보일드 스릴러˝라는 문장을 인용해도 괜찮을지 여쭙고자 합니다.
연락처를 알 수 없어, 이렇게 댓글로 문의 드리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더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아래 메일로 편하게 문의해 주십시오.

editor@bookk.co.kr

감사합니다. :)
 





최근 들어 딸아이가 유독 고양이 인형에게 무한의 애정을 보내며 우연히 길에서 만나는 길고양이에게도 급관심을 보이고 있어 덩달아 고양이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져가고 있는 와중에 견월 작가님의 <9회말 2아웃 만루 고양이의 선물> 만나게 되었다. 소설은 제목에서부터 고양이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인 야구가 언급되어 있어 흥미를 가지고 접근할 있었다. 소설을 읽으며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집 <장수 고양이의 비밀> 떠올랐다. 애묘인으로 알려져 있는 하루키는 어린 시절부터 많은 고양이를 키웠는데, 에세이집에서는 중에서 유일하게 자신과 20년이 넘는 세월을 함께 고양이뮤즈 비밀에 대해 밝히고 있다.




장수 고양이의 이름은뮤즈 당시 하루키의 아내가 빠져 있던유리의 이라는 순정만화 등장인물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라고 한다. ‘뮤즈 하루키와 여러가지 비밀과 추억들을 공유한 고양이다. 비밀 하나는뮤즈 하루키의 출세작인노르웨이의 탄생에 기여했다는 점이다. 고양이와 시간을 보내면서 고양이는 반려동물로서 인간과 한가족으로 살아가고 추억을 공유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얇은 같은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하루키의 표현대로라면 기분 내키면 응석을 부리긴 해도나는 고양이, 당신들은 인간이라는 선이 그어져 있는것 같다고 할까? <9회말 2아웃 만루 고양이의 선물> 고양이게서도 이런 면을 엿볼 있다. 인간과 서로 감정을 교류하며 살아가지만 고양이는 세상을 보는 독특한 관점과 자신만의 비밀을 내포하고 있다. 정말 고양이들은 고양이들만의 삶이 있고, 응분의 생각이 있고, 기쁨이 있고, 괴로움이 있는 것일까?




하루키는 에세이집에서 뮤즈는 예쁘고, 영리하고, 튼튼하고, 숱한 수수께끼를 품고 있었던 같이 살기에 매우 이상적인 고양이였음을 밝히고 있다. 그와 고양이 사이에는 가벼운 긴장감이 흘렀지만, 그건 그것대로 상당히 안정적이었고, 또 그러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고양이는 흔치 않았음을 고백하고 있다.뮤즈 만난 것은 인생 최고의 행운이었다는 것이다. 하루키의 사례처럼 <9회말 2아웃 만루 고양이의 선물> 소설의 모티브가 고양이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소설은 고양이에게 건네는 감사의 인사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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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연못 / 개구리 뛰어드는 / 물소리 '퐁당'”




일본 정형시 하이쿠(俳句)를 이야기할 때 흔히 언급되는 대표적인 시입니다. 지은이는 마츠오 바쇼 (1644∼1694)로 일본에서 가장 사랑받는 하이쿠 시인이며, 하이쿠를 문학의 한 장르로 완성시킨 인물로 평가됩니다. 하이쿠는 서술을 극도로 아낀 채 최소한의 상징어와 여백만으로 구성되는 짧은 시를 가리킵니다. 석아산 작가님의 <벤지 이야기>를 읽으며 짧지만, 따스한 여운을 남기는 한편의 하이쿠를 읽은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벤지 이야기>에서 세상을 떠나는 할아버지는 남겨질 손자에게 따뜻한 유산을 남깁니다. 앞으로 손자인 다로가 살게 될 세상은 분명 조부인 벤지가 살아온 세상과는 다를 것입니다. 하지만 다로의 세상에도 벤지가 살아온 세상이 그랬듯이 그 시대만의 일렁임은 존재하겠죠. 다로의 꿈은 현실의 거친 삶의 파도 앞에 좌초되거나 위기를 겪게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삶의 위기를 맞은 다로에게 필요한 것은 힘든 현실 속에서도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았던 조부의 마음가짐, 그리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손자를 묵묵히 지켜봐 주고 지지해주는 가족의 따뜻한 온기 아닐까요? 모든 것을 포기한 채 한강으로 갔던 다로를 할아버지가 십몇 년 전에 남긴 편지가 그를 구제해주었듯이 말입니다.




우리를 만드는 것은 우리가 겪는 경험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경험에 반응하는 태도입니다. 이 세상에 완전한 어른은 없다는 말처럼 다로도 자신의 시대에 존재하는 일렁임을 경험하고 극복하면서 서서히 어른이 되어가겠지요. 시대의 풍랑을 힘겹게 견뎌내야 할 때 내가 살아 있고 사랑받는 존재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것…. 묵묵히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즉, 가족의 온기를 느낄 수 있는 것….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이것 이상의 응원이 있을까요? 각자가 가진 삶의 조각들이 가족의 사랑 안에서 하나의 조각으로 완성되는 것…. 이것이 우리가 꿈꾸는 행복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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