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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44
존 밴빌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11월
평점 :
삶, 인간의 일생이란 무엇일까?
인간의 일생을 단순하게 정의하자면 한사람이 태어나서 죽을때까지
살아온 매 순간순간의 누적 (accumulation of every single moment)
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일생은 생명의 탄생으로부터
시작되어 그 지난한 시간과 역사를 거치며 하나의 거대한 세계관을
형성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세계관의 형성과정에서 개인은 집단, 조직, 국가라는
사회적 관계 (Social Relation) 안에서 수많은
사건들을
경험하게 되며, 이 같은 경험들은 개인의 잠재의식 속에
어떠한 형태로 저장되었다가 추후에 재생, 재구성,
재해석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기억 (記憶, Memory)이라고 한다.
과거
경험에 대한 기억 (Retrospective Memory)은 마치 동식물이
퇴적, 암석화의 과정을 거쳐 화석이 되듯이 사건의 잔상과 흔적,
진실의
파편 속에서 원형만이 살아남아 개인의 의식속에 퇴적되고
암석화된다. 우리가 어떤 일을 겪고 경험을 하든지간에
그것을 현재 시점에서 어떻게 재생되고 재구성하느냐에 따라
행복한 기억이 될 수도 뼈아픈 추억이 될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모든 개인은 모더니스트 (Modernist)인 동시에
자기 자신의 역사가 (His own Historian)라고 할 수 있다.
이 소설은 기본적으로 경험과 기억에 대한 이야기다.
기억은 과거의
경험이 재구성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저장된
원형을 재생하기 위한 하나의 동기가 필요하다.
소설 속에서는 상처(喪妻)라는 현실 속 아픔이 그 동기가 되었고
주인공 맥스는 이 같은
아픔을 통해 어린시절 겪었던 또 하나의
상실의 기억을 떠올리며 치유를 희망한다.
과거의 클로이와 현재의
애나는 모두 맥스가 자신의 세계관을
형성하고 자신이 아닌 다른 것을 받아들이기 위한
변형의 매개체였다. 현실의
애나를 잃은 상실감은
맥스가 과거의 기억을 재해석하고 동시에 존재 (Being)와
원형 (Archetupe)에 대한 탐구를 시작하는 동기가 되었다.
맥스가 존재와 원형을 탐구하기 위해 먼저 확인하는 것은
과거에 대한 기억이다.
과거는 그 힘에 의해서 자신이 지워지는
느낌이 들 정도로 맥스에게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며
또한 맥스 안에서 고동치는 두번째
심장이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우리의 모든 순간들 가운데 삶에 어떠한 영향도
주지 않는 완전히 무의미하다고
생각되는 순간이 있을까?
하지만 그 모든 과정 가운데에서도 삶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오는
변곡점 (變曲點)이 있으며 맥스는 이러한 변곡점과 그것을 극복한
기억을 통해 현재의 상실을 치유할 통찰력을
얻고자 한다.
이는 "기억하려는 노력만
충분히 기울이면 사람은 인생을
거의 다시 살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주장하고 "과거, 그러니까
진짜 과거 보다는 우리가 내세우는 과거가 더 중요하다."고 하는
맥스의 태도에도 잘 드러나
있다.
라쇼몽
(羅生門)의 대사처럼 진실이란 어차피 그 사람이
진실이라고 생각하고 싶은 것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른다.
피에르 보나르는 현실이 아닌 기억을 그린 화가였다.
특히, 정감 있고 소박한 일생생활을 묘사하여 행복한 내면의식을
표현한 앵티미스트 (Intimiste)였다.
일상속에서 포착한 즐거웠던 순간들을 내재화하고 재해석하는
과정을 통해 세월속에서 화석화된 일상의 단면들을
캠버스에
표출하였다. 현실의 한 장면을 보면서 그리는 대신
'기억'으로 재구성한 행복한 일상의 순간들은 '진실'은
아닐 수도 있지만 오히려 불완전한 기억 덕분에
창조와 감동의 원천이 된다.
피에르 보나르가 ‘기억’을
그림으로 표현하였듯이
맥스 역시 ‘기억’에 매달린다.
기억은 맥스의 삶 안에서 고동치는 존재이자
미래의 삶에 대한 이정표이기 때문이다.
인생을 살아가는 간다는 것은 어쩌면 조금씩 퇴보하고
소멸해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기억을 통해서만이 진정한 불멸을 꿈꿀수 있다.
기억은
움직임을 싫어하며 사물을 정지된 하나의 그림으로
저장한다는 맥스의 고백처럼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는 행복한
기억들을 화석화하여 영원과 불멸의 세계에
편입시키고자 하는
욕망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불멸에의 욕망은 언제나
한결 같은 모습으로 그곳에 있는
존재
바다 (The Sea)로의 회귀로 귀결된다.
바다는 당신에게 묻는다. 빛을 반짝이며 흘러가는 물결처럼
과거와 현재라는
당신만의 역사 속에서,
즉, 유년의 기억과 현실의 존재 사이에서,
당신은 어떤 모습이고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