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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링 - 제22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도선우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2월
평점 :
1.
예견된 파국
: Welcome to the
Jungle
세월호 사건을 바라보는 대표적인 프레임은
신자유주의이다.
세월호는 우연하게 발생한 단순한 해양사고가 아니라 대한민국
사회시스템의
구조적 모순이 집약된
예견된 사고라는 것이다.
이윤 극대화를 위한
증축과 개축, 과적과 평형수 부족이 그렇고,
선원들 대부분이
비정규직이었다는 점이 그렇다.
또한, 절대
타협할 수 없는
안전을 담보하고 관리해야할 국가기관이
구조적 유착으로 탈규제에 이르게 된 정황이 그렇다.
세월호는 국가와 사회의 부재
속에 약육강식의
원초적 본능과 무질서만이 존재하는 정글에서 잉태되었다.
또한 이는 원자화된 개인의 처절한
몸부림만 남아있는 2000년대
대한민국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여기 세상 속으로 던져진 한 사내가 있다. 그는
등장부터가
폭력적이었다. 후미진 공원의 화장실에서 17세 미혼모를
모태로
세계에 대한 이물(異物)감을
느끼며 태어난
그는 살아가면서
본능적으로
세상의 부조리함을 느끼게 된다.
보육원,
학교, 선도연합회, 소년원, 권투연맹을 거치며 소년을
둘러싼 세계의
부조리는 더욱 치밀해지고
체계화되었고
결국엔
삶 자체가 되었다. 누구도 자신을 보살펴줄 사람이 없다는
것과
살아남기 위해서는
스스로 지키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세계에
대한 면밀한
관찰을 통해 내 모습이 아닌 세상이
원하는 나의 모습으로 허상을 만들며
세상에 대한 방어벽을
구축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은 그의 삶 자체를 무너뜨린
그 이름마저 신자유주의스러운 신자유대교의
붕괴라는 예견된
비극이 있기까지 스파링에 불과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라고 하는 신자유주의의
본질적 문제는 무엇인가?
2.
경쟁사회
: 당신은 안녕한가?
신자유주의는 자본주의 매커니즘을 통해서 개인에게
무제한의
사익 추구를 허용하는 시장 친화적 이론으로
정의할 수 있다.
절대 경제논리로 평가할 수
없는 사랑과 우정과 같은 인류보편적
가치마저도 시장경제라는
악마의 멧돌 (Satanic Mills) 앞에서
경제논리로 전락한다.
시장의 기능을 극대화하기 위해 국가와 사회는 후퇴하고
상품만이 남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개인에게 선택의 자유와
기회의 평등은 보장되지만 이는 자기책임의 원칙이라는 덫을 위한
장치에 불과할 뿐이다.
얼마전 화제가 된 공익광고를 보면서 광고 메시지
이면의 의미가
떠올라 섬찟 놀랐던 적이 있다. 그것은 알파고와의 대국으로
화제가 된 프로바둑기사
이세돌 9단이 경쟁에 지치고 상처 받은
이들에게 전하는 위로의 메시지를 담은‘경쟁사회’라는
광고였다.
"포기하지
마라. 좌절하지 마라. 경쟁에서 이겨라.
저는
그런 말을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좌절할 수도
포기할 수도 있죠. 경쟁에서 질 수도
있습니다.
저도 지는데 익숙한 선수인데... 대신, 이런 말을
하고 싶어요.
괜찮아.
넌 잘 하고 있어"
무한경쟁 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진정한 위로는
무엇일까?
"괜찮아,
승패와 상관없이 넌 잘하고 있어"라는
말이
위로가 될 수 있을까?
수저계급론, 헬조선으로 대표되는 불공정성이
지배하는 현실에서
이러한 불공정의 원인이나 경쟁 구도를 만든
지배권력에 대한
문제제기도 없이 던지는 한마디 위로가현실을 바꿀수 있을까?
이유도 모른 채 경쟁에 내몰려야 하는 개인에게
"괜찮아,
넌 잘하고 있어"라는 말은
거대한 시스템을 위한
또 하나의
현상유지의 방편에 그치는 것은 아닐까?
마치 신자유주의라는 쇠로 만든 새장 (The Iron Cage)을
유지하기 위해 개인은 시스템의 부속품처럼
자신의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것처럼…
이 소설의 문제제기는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소설 속 장태주는 이 세계의 문제는
개인이 아닌
사회 구조적 문제이고 이를 공론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문제를 해결해야할 대상으로 보지 않고 문제의
영역으로부터
배제시키는 시각과 부조리가 관행으로
자리잡고 하나의 삶으로
편입되는 과정이 전체의
문제를개인의 문제로 변화시켰다고 말한다.
따라서 그는 그를 둘러싼 세계의 질서에 문제를 제기하며
복서로서 그의 주특기인
인파이팅 스타일로
세상의 질서를 바꾸기 위한 시도를 한다.
복싱이 수천년에 걸쳐 진화하며 대중 스포츠로 남은
이유는 상대를
제압하고자 하는 인간의 원초적 본능이
제한된 규칙 안에서 충실히
발현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인파이팅 스타일의 타이슨과
아웃복서 스타일의 알리가 모두 복싱의 전설로 남을 수 있었던
이유도
"상대를 쓰러트리려는 의지"라는
공통분모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복싱에서 “스타일”이 아닌
“의지와 자세”가 중요한 것처럼
세계의 본질을 파악하고
변화를 시도하는 노력도
역시 진짜로 하고자 하는 “의지와 자세”가
중요하다.
그럼 우리가 진짜로 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3.
오래된 미래
: 인간가치 회복과 연대를 통한 질서 정립
완벽한 이념은 없다. 이데올로기는 적절한 방법으로
통제되어야
한다. 지나친 경쟁 속에서 세계의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우리가
우선적으로
해야할 것은 이성의 한계를 인정하고 인간 본연의
가치를
회복하는 것이다.
물질적인 잣대로 평가할 수 없는 인간의 가치가
저 악마의 맷돌의 수레바퀴 아래로
빨려 들어가기 전에…
그리고 쉽사리 변하지 않는 세계에 절망하며
무릎꿇지 않고
같이 공감, 분노,연대하며 상호협력과 공생의 질서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낡은 질서를 청산하고 연대를 통해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가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원하는 삶의 반복되는 패턴이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장태주의 모습은
행복마저도 시스템화하고자 하는
신자유주의 시대 우리의 불신과 불안을
보는 것 같아
서글프기까지 하다.
기억과 회상을 통해서 현재의 자아가 과거의 자아를
반성적으로
성찰하는 것은 성장소설의 전형적 구성형태이다.
소설 속 장태주도 두개의 자아로 분리되어
과거의 자아가 겪었던
사건을 현재의 자아의 관점으로 서술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과거의 위대한 유산을
미래적 가치로 환원하는 것,
이것이 신자유주의 문제의 해결책인 동시에
우리가 꿈꾸는 오래된 미래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