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들판을 걷다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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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이다안정된 상태라고 느끼는 순간기다렸다는 듯 미지의 것이 느닷없이 닥친다이렇게 질서가 무너진 혼돈 속에서 우리 삶은 현실부정과 절망,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잠식되어 간다삶은 질서와 혼돈으로 점철되어 있다안정된 질서 속에 갑자기 혼돈이 찾아오기도 하는 반면, 모든 것을 상실한 듯 한 절망적 순간에 새로운 질서가 나타나기도 한다삶의 길을 걸어간다는 것은 질서와 혼돈의 경계 위에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삶의 불확실성 속에서 인생의 의미가 빛을 잃어가고절망과 두려움이 고개를 드는 순간 우리는 무엇에 의지하며 세상을 살아가야 할까?

 

찰리 채플린은 삶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을 남겼다이는 일견 행복으로 충만해 보이는 삶도 면밀히 들여다보면 두려움과 고통삶에 대한 ‘비의(悲意)’가 내포되어 있다는 삶의 내밀한 속성을 잘 포착해낸 체험적 진리라고 생각한다소설가 제임스 설터도 "나뭇잎을 들어 올려 햇빛에 비추어 보면 잎맥이 보이는데다른 건 다 버리고 그 잎맥 같은 글을 쓰고 싶다."는 말을 했다이는 저마다의 방향으로 복잡하게 얽혀있는 잎맥처럼 삶은 다면적이고 정답을 찾기 힘든 것이지만삶에 대한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멀리서 숲을 조망하기 보다는 숲 안으로 깊숙이 침잠하여 나뭇잎의 형태와 주위환경에 따라 흔들리는 그 미세한 변화들에 주목해야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클레어 키건의 <푸른 들판을 걷다>를 읽었다. 그녀는 "한 세대를 대표하는 작가"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자국 아일랜드와 해외 평단에서 오래전부터 거장으로 인정 받아왔다. 국내에서도 <맡겨진 소녀>로 처음 독자들에게 선보인 후 <이처럼 사소한 것들><푸른 들판을 걷다>까지 3개의 작품이 불과 1년만에 차례로 소개되었고, 국내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 중 한명이 되었다. <맡겨진 소녀>를 읽으며 '한없는 사랑과 세심한 배려라 할지라도 그것을 미처 경험해보지 못한 이들에게는 아프게 다가올 수 있다는 것. 하지만, 결국 그 진심이 담긴 호의가 마음을 움직이고, 삶을 비추고, 온기를 불어넣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에 대한 리뷰는 평론가 베리 피어스의 말로 대신하고자 한다. 그의 말이 그 어떤 평가나 카피문구 보다 강력하기 때문에...

 

"십여 년 만에 드디어 나온 클레어 키건의 신작이 114쪽에 불과한 데 실망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안심하길... 키건은 단어 하나 낭비하지 않는 작가니까..."

 

<푸른 들판을 걷다>는 국내에 세 번째로 소개되는 클레어 키건의 작품이자 처음으로 선보이는 소설집이다. 직전에 소개된 그녀의 작품들을 읽으며 '단어 하나도 낭비하지 않는 작가', '단편 소설의 여왕'이라는 클레어 키건을 대표하는 수식어에 깊이 공감했고, 출간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소설집에 대한 기대를 하고 있었다. <푸른 들판을 걷다>는 저마다의 삶에서 상실과 결핍을 보유한 인물들에 대한 7편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는 가족의 묵인 하에 아버지에게 성적학대를 받다가 용기를 내어 가족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소녀 ('작별 선물'), 종교와 세속적인 삶 사이에서 고뇌하는 사제 ('푸른 들판을 걷다')가 등장한다. 또한, 연인을 떠나보내고 뒤늦은 후회와 번민 속에서 살아가는 남자 ('검은말')와 가정 보다 땅에 집착하는 남편과 사랑이 결핍된 결혼생활을 이어가는 아내 ('삼림 관리인의 딸'), 운명에의 순응과 도전 사이에서 고뇌하는 젊은이 ('물가 가까이')가 있다. 연인에 대한 책임을 애써 회피하며 이기적인 태도를 보이는 남자 ('굴복')가 있는 반면, 연인과 아이를 잃고 방황하다가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는 여자 ('퀴큰 나무 숲의 밤')도 있다.

 

클레어 키건의 작품들은 쉽게 읽히진 않는다. 그 안에는 삶과 죽음이 있고삶의 의미를 위협하며 넘실대는 사랑과 집착, 탐욕, 상처들이 은유적으로 표현되어 있다클레어 키건은 소설 속에서 벌어지는 상황마다 필수불가결한 만큼의 적확한 단어를 사용하여 분위기를 선명한 이미지로 전달하지만 복잡미묘한 삶에 대한 구체적인 해석은 독자의 몫으로 돌리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경계가 불분명하지만 색채가 선명한 수채화'라는 <맡겨진 소녀>에 대한 허진 번역자의 평가는 이 작품에서도 유효하다. 하지만 다양한 감정들로 점철된 7편의 이야기들을 곱씹어 보면 작품에 내재되어 있는 아포리즘이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낸다그 감정의 용광로 속을 비집고 드러나는 삶의 체험적 진리를 엿보는 건 마치 만화경 속으로 다채로운 빛깔의 싸이키델릭한 이미지들을 보는 것과 같다우리가 삶에 대해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시작 (출생)이 있고 (죽음)이 있다는 것우리가 삶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과 공포가 상존하고 있다.

 

다른 사람이 무엇을 겪고 있는지 아는 사람이 있을까?“ (p. 211, '퀴큰 나무 숲의 밤')

이제 그는 한 여자를 알았고, 그러자 여자를 절대 이해하지 못하리라는 깨달음이 더욱 확실해졌다.“(p. 237, '퀴큰 나무 숲의 밤')

 

살아가면서 개개인이 켜켜이 쌓아올린 저마다의 사연들은 상실과 결핍의 기억을 머금은 채 조용히 빛난다어쩌면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역사와 존재이유, 상처와 결핍을 가진 하나의 섬이 아닐까섬은 연결과 단절의 이중성을 가진 특별한 공간이다수면 위 드러난 부분을 기준으로 보면 섬은 단절된 공간이지만 드러나지 않은 수면 밑으로 섬과 섬들은 연결되어 있다서로의 고유한 존재 방식상실과 결핍의 기억들은 우리 각자를 섬으로 만들지만 우리는 삶의 흔적아픔을 매개로 서로를 이해하고 위로한다. 이런 의미에서 삶이란 저마다 쌓아둔 사연들로 섬들이 나누는 대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서로가 단절된 채 살아가는 것 같아 보이지만 우리는 함께 더불어 살아가며 서로의 존재를 느끼고 온기를 나누는 존재들이니 말이다.

 

그녀 인생의 너무나 많은 부분이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p. 126, '삼림 관리인의 딸')

 

'상실' '결핍'의 경험은 그들의 삶의 온도를 변화시킨다이러한 온도 변화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공간 감각을 둔화시킨다눈앞에서 아름답게 펄럭이는 '현재'가 좋았던 과거 같기도 다가올 미래 같기도 하지만 어찌 됐든 현재의 내 것 같지는 않은 기분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남겨진 이들은 결코 없던 일이 될 수 없고잊을 수도 없는 일들을 품에 안은채 고통속에서 삶을 견뎌내야 한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상실과 결핍을 대면하게 될 때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들은 저마다 다르게 나타난다인간이란 저마다의 상황 속에서 그만의 역사와 고유한 존재 방식, 중력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다그렇기 때문에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이해'이다

 

삶은 변화무쌍하고 다면적인 것이며, 진실에 한 걸음 다가가기 위해서는 숲 안으로 침잠하여 그 미세한 감정의 떨림들을 느끼고 경험해봐야 한다. 하지만, 타인의 상황과 감정을 이해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이해는 마음이 구겨져 있는 사람 특유의 과시와 무시이기심과 거부를 넘어서야 하고, 이해의 얼굴을 한 위선을 극복해야만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은 타인과 삶의 온도를 맞춰가는 일이며상대적 성숙의 시간을 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하지만 그러한 과정을 거치며 우리는 삶의 고통을 무조건적으로 거부하거나 부정하지 않고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위로의 경험을 얻는다그것은 오직 사람에게서만 경험하고 얻을 수 있는 특별한 것이다밝은 곳에서는 어두운 곳이 잘 보이지 않지만인간은 서로 간에 존재하는 적당한 어둠 속에서 희미한 빛과 온기로 서로를 알아보는 존재이다.

 

"첫 곡은 느린 왈츠, 평생 이 춤을 출 수 있을까요? (Could I have this dancd for rest of my life?)이다. 신랑이 신부를 플로어로 이끌다가 드레스 자락이 신부의 구두 뒤꿈치에 걸린다." (p. 50, '푸른 들판을 걷다')

 

<맡겨진 소녀>를 읽고 내가 남긴 리뷰의 제목은 '삶이란 내리는 빗속에서 춤을 추는 것'이었다. 산다는 것은 폭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내리는 빗속에서 춤을 추는 일에 가깝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정말 그렇지 않을까? 삶이란 두려움에 짓눌리지 않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해내면서, 이러한 과정을 통해 쌓여진 사소하고 다정한 것들이 모여 지리멸렬한 생을 흘러가게 하는 위대한 힘이 생성되는 것 아닐까? 키건의 <푸른 들판을 걷다>에도 춤에 대한 묘사가 자주 등장한다. 소설을 읽고 나서 나는 삶은 '춤을 추는 것'이라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되었다.

 

"잘하는 게 많았는데 춤도 그중 하나였어요. 동전만 한 자리에서 춤을 춰도 스텝 하나 틀리지 않았죠." (p. 126, '삼림 관리인의 딸')

 

삶은 ''이다. ''은 때로는 동적으로, 때로는 정적으로 인생이라는 긴 세월 동안 끊임없이 재연된다. ''의 형태와 종류도 다양하다. 때로는 홀로 추는 '독무', 때로는 연인 또는 동료와 함께 추는 '이인무', , 다수가 함께 만들어가는 '군무' 등으로 다양한 형태로 삶에 표출된다. ''은 일정시간 동안 혼자서 추는 '독무'일수는 있어도 절대로 공연이 끝날때 까지 홀로 출 수 없는 춤이다. 또한 어느 일방의 리드만으로 지속될 수 없다선율에 맞추어 함께 추는 춤은 아름다운 장면만으로 구성되지도 않는다때론 춤을 추는 과정에서 상대의 발을 밟기도 하고때로는 박자를 놓쳐서 상대가 손을 떨게 만들기도 한다하지만 이러한 과정을 거쳐 삶의 주어는 ‘에서 ‘우리로 변한다삶은 타인과 함께 추는 춤이다. 외로운 섬들이 서로가 가진 사연으로 대화를 하고, 의미 있는 몸짓을 나누는 것. 삶은 그런 것이라 생각한다.

 

"그녀는 인간 혼자서는 스스로를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사랑을 나누는 행위 너머에 진짜 앎이 있다고 믿었다." (p. 61, '푸른 들판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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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릴 너머 - 범죄 전문 피디의 묻기, 뚫기, 그리고 뒤집어엎기
도준우 지음 / 글항아리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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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교양채널에 관심이 없는 사람, 아니 TV 프로그램 자체에 아예 관심은 끊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알', 즉, '그것이 알고싶다'라는 프로그램은 익히 알고 있거나, 아니면 한번쯤 들어보기라도 했을 것이다.

그것이 알고싶다'는 1992년부터 방영을 시작하여 2024년 9월까지 1,400회가 넘는 회차를 방영한 프로그램으로, 그 긴 세월동안 많은 시청자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비슷한 성격의 시사·교양 프로그램은 SBS 뿐만 아니라 타 방송사에도 많이 있지만, 인지도 측면에서는 압도적이라고 할 수 있다. 고백하건대 필자도 그 어떤 프로그램 보다 꾸준히 지속적으로 챙겨보고 있는 '그알'의 애청자다.

30년이 넘게 이어져온 프로그램이니 만큼 진행자도 1대 진행자 '문성근'씨부터 현재의 7대 진행자 '김상중'씨까지 다양한 인물들이 거쳐갔다. 진행자가 이 정도이니 출연자와 PD들은 그 오랜세월 동안 프로그램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제작에 기여한 사람들이 부지기수일 것이다.

최근 '그알'의 팬이라면 반가워할만한 책이 출간되었다. '그알' 출신 PD이자 최근에는 유튜브 채널 '그알저알'과 '스모킹권'에도 출연하고 있는 '도준우' PD의 책이 출간되었다. 사실 '도준우' PD를 알고 있는 팬이라면 그가 여러 방면에 다양한 재능과 끼를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 것이다. '그알저알'에서도 힙합과 랩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공개했고, 그가 펼치는 입담도 범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스릴너머'를 보고서 인간 '도준우'에 대해서 더 깊게 알게 된 것 같다. 내가 예전에 알고 있었던 도준우 PD가 시사교양 PD이면서 여러방면에 끼를 보유한 사람으로 생각했다면, 이번에 '스릴너머'를 통해 새롭게 알게 된 그는 내 예상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 있었다. 학창시절 부터 '전국 노래자랑'과 '영파워 가슴을 열어라' 에 참여하기 위해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개그맨을 꿈꾸던 그는 학부에 진학하여 대학내에 최초로 힙합동아리를 만들고 진지하게 랩퍼가 되기 위한 길을 걸었었다.

PD가 된 이후에도 그는 시사교양이 아닌 예능 PD를 지망하고 예능국에 근무했었고, 예능국의 권위적인 조직문화와 근무 분위기를 참지 못하고 방송인의 꿈을 접으려고 했었다는 사실도 처음으로 알게 된 사실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시사교양으로 방향을 틀어 '그알'의 PD가 된 결과로 그와 인연을 맺게 되었고, 그런 과정을 거쳐 '그알'이라는 훌륭한 프로그램을 완성시키는 일원이 된 것이 사실이니 어쨌든 감사할 일이다. 하지만, 티저북은 '그알'의 PD가 되어 이제 막 첫방송을 준비하는 대목에서 끝을 맺으니 너무 하다는 생각도 든다. 본 책으로 넘어가 다음에 이어질 이야기를 계속 읽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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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24-09-09 12: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도준우PD ‘훈민정음 랩‘ 들어보면 20대 그 패기와 힙함이 너무 좋아요
 
여기 살아 있는 것들을 위하여 - 숲과 평원과 사막을 걸으며 고통에서 치유로 향해 간 55년의 여정
배리 로페즈 지음, 이승민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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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우리는 조류를 거스르는 배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떠밀려 가면서도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So we beat on, boats against the current, borne back ceaselessly into the past.)” - <위대한 개츠비> 에서

 


우리 시대 최고의 자연주의 작가 배리 로페즈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에세이 <여기 살아 있는 것들을 위하여 (Embrace Fearlessly the Burning World)>을 읽으며 나는 <위대한 개츠비>의 마지막 문장을 떠올렸다. 상실과 결핍, 몰이해라는 인간의 한계와 그러거나 말거나 상관없다는 듯 무심하게 흘러가는 세계 속에서 저마다의 속도와 방향으로 한 조각의 진실과 삶의 의미를 구하려 애쓰는 '인간'과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를 조망하는 시선이 서로 닮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절망에 믿음을 걸라고 강하게 유혹하는 시대 속에서 배리 로페즈는 인간자연그리고 이들 간의 관계에서 그 강력한 유혹을 뿌리칠 수 있는 근거를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p. 88) 또한, 잃어버린 것에 대한 절망 속에서 죽기보다 앞에 놓인 가능성을 위해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그의 말은 계속해서 과거로 떠밀려 가는 현실의 삶에도 불구하고 의지를 가지고 단 한 걸음이라도 앞으로 나아감으로서 더 나은 삶이 가능해질 수 있다는 그가 남긴 삶에 대한 아포리즘이다.

 

 

시도하기란 나의 바깥 세계는 물론이고 내 능력의 경계 너머를 탐색하는 일이고, 그의 많은 글이 이 둘의 조합에서 동력을 얻는다. 한편 한편의 에세이는 작가가 애써 시도한 것의 기록이면서 독자들에게 저마다의 탐험에 나설 것을 청하는 초대장이다.” (p. 9)

 

 

<여기 살아 있는 것들을 위하여>의 부제는 숲과 평원과 사막을 걸으며 고통에서 치유로 향해 간 55년의 여정이다. 서문의 리베카 솔닛의 말처럼 배리 로페즈의 에세이는 그가 살아오며 마주친 자연과 세계에 대한 경이로운 기록이자 내면으로 침잠하여 돌아본 자신의 삶에 대한 회고이기도 하다. 마치 거대한 숲을 조망하면서도 숲을 구성하고 있는 나무마다의 살아온 이력과 역사를 동시에 살피고 있는 것과 같다. 삶에 대한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멀리서 숲을 조망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숲 안으로 깊숙히 침잠하여 나뭇잎의 형태와 주위환경에 따라 흔들리는 그 미세한 변화들도 놓치지 않아야 한다. 긴 역사의 연결성도 중요하지만 나무 마다 저마다의 방향으로 복잡하게 얽혀있는 잎맥처럼 삶은 다면적이고 정답을 찾기 힘든 것이기 때문이다. 배리 로페즈의 초대를 받은 독자들은 저마다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 자신의 내면으로 떠나는 탐험을 시작한다.

 

 

인간은 인간이기 때문에 항상 더 나은 미래를 꿈꾼다. 인간은 현재의 삶을 딛고 더 나은 삶을 꿈꾸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저마다 개별적 삶을 살면서도 타인과 또 세계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한 시대를 이루고, 그것이 되풀이되고 순환되는 과정을 거쳐 역사를 이루며 발전하는 인간의 삶이 마치 밤하늘의 별자리 같다는 생각을 했다. 별자리는 저마다 거리와 밝기가 다른 별들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각각의 별들은 한 곳에 고정되어 있지 않고, 제각기 다른 속도와 방향으로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별들은 인간의 가시거리를 아득하게 넘어서는 먼 곳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각각의 별들의 위치와 움직임을 감지해내지 못하고 고정되어 있는 하나의 군집된 별자리로 인식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삶도 연속적으로 발생하는 직선적 사건이 아닌, 별자리처럼 시공간이 뒤섞인 원심형의 배열에 가깝다. 동시대에서 같이 호흡하면서도 온전히 현재를 살아내지 못하고 누군가는 과거의 한때에 머무르고, 또 누군가는 현재를 넘어 미래를 향해 있는 것은 인간이 물리적 시간인 크로노스 (Kronos)' 보다 주관적이고 심리적 시간인 카이로스 (Kairos)'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의 기억은 현재의 우리를 구성하는 것인 동시에 미래를 꿈꾸고 호흡하게 하는 두 번째 심장이다. 상실과 결핍, 몰이해라는 인간의 현실적 한계와 그러거나 말거나 상관없다는 듯 무심하게 흘러가는 세계 속에서 저마다의 속도와 방향으로 한 조각의 진실과 삶의 의미를 구하려 애쓰는 인간의 삶이 군집을 이룬 채 살아가는 별들과 서로 닮아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돌이켜 보면 삶은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이다. 안정된 상태라고 느끼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 미지의 것이 느닷없이 닥친다. 이렇게 질서가 무너진 혼돈 속에서 우리 삶은 현실부정과 절망,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잠식되어 간다. 삶은 질서와 혼돈으로 점철되어 있다. 안정된 질서 속에 갑자기 혼돈이 찾아오기도 하는 반면, 모든 것을 상실한 듯한 절망적 순간에 새로운 질서가 나타나기도 한다. 삶의 길을 걸어간다는 것은 질서와 혼돈의 경계 위에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삶에서 인생의 의미가 빛을 잃어가고, 절망과 두려움이 고개를 드는 순간과 마주칠 때 우리는 무엇에 의지하며 세상을 살아가야 할까?

 

 

우리에게는 우리를 삶의 예의로 다시 데려다줄 타인이 필요하다.” (p. 117)

 

 

사람은 누구나 각자의 '진실'이 다르고, 본능적으로 자신을 정당화하고 방향으로 움직인다. 그렇기 때문에 건강한 관계를 위해서는 '경계'가 필요하다. 우리 앞에 놓인 수많은 경계들, 그리고 그 수많은 경계에도 불구하고 맺어지는 수많은 관계들...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역사와 존재이유를 가진 하나의 섬이다. 섬은 연결과 단절의 이중성을 가진 특별한 공간이다. 수면 위 드러난 부분을 기준으로 보면 섬은 단절된 공간이지만 드러나지 않은 수면 밑으로 섬과 섬들은 연결되어 있다. 배리 로페즈의 글은 타인의 고통에 대한, 주변 세계의 아름다움에 대한, 그리고 구원의 힘에 대한 더 넒은 인식을 직조해낸다는 리베카 솔닛의 말처럼 우리는 저마다 독자적인 세계를 가진 개별적 주체인 동시에 서로 신뢰와 사랑을 매개로 연대하며 살아가는 존재들이기도 하다.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는 것들을 견뎌내고 살아남으려면 우리는 상상력을 더 확장해야 한다. 서로를 신뢰해야 한다. 지금은 안전하다고 생각한 모든 장소가 녹아 하나의 물이 되어버린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만드는 법을 잃어버린 보트를 찾아 헤메고 있다.” (p. 328)

 

 

우리는 상실과 결핍을 안고 살아가는 불완전한 존재들이다. 연약하고 불완전한 우리는 불안과 두려움 앞에서 용기를 가지고 상황에 대응하고 그 안에서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기 보다는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기 쉽다. 하지만 어쩌면 그러한 불완전함과 취약성이야말로 각자의 개별적 상황과 다른 정체성을 가진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는 공통분모가 아닐까? 신뢰와 사랑, 자발적인 책임이 동반된 관계를 구축하고 용기와 위로를 나누는 것은 서로의 결핍과 불완전함을 일정 부분 해소해줄 수 있는 심연과 어둠의 해독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절망 속에서도 우리는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 절망속이라 해도 함께 있다면 타인의 고통을 느낄 수 있고 자신의 아픔도 진정시키는 순간을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신뢰와 공감을 기반으로 진실된 관계를 구축하고 서로 연대하며 살아갈 수 있다.

 

 

우리는 미래에 대한 희망적인 계획이나 구상을 청사진 (Blue Print)’으로 표현한다. 하지만 미래를 그리는 행위는 특정 시점의 순간을 박제하는 사진 보다 그림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사진을 찍는 행위가 순간의 단면을 정확히 스크랩하는 것이라면,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일정 시간에 걸쳐 대상을 관찰하면서 시간의 흐름에 걸쳐 변화하는 대상의 입체적 모습을 화폭에 담는 것이다. 따라서, 사진은 특정 시점에 국한된 대상의 모습을 무엇보다 정확히 포착하는 반면 그림은 일정 시간 동안의 대상의 변화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묘사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사진이 아닌 그림을 지향하면서 신뢰와 사랑 그리고 책임이 동반된 관계를 그려 나갈 필요가 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현실의 행복과 미래의 기적을 일궈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림 속 불분명한 선들로 이뤄진 한 사람의 형상 그리고 그가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구축하며 쌓아온 세월의 궤적은 사진 보다 불분명해 보일 수는 있어도 그 시간의 농축성을 기반으로 안정된 과거와 현재, 그리고 질서 너머의 미래 모습도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인생을 살아가는 간다는 것은 어쩌면 조금씩 퇴보하고 소멸해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이 죽음을 예정하고 있는 유한한 존재라는 것과 그러한 운명에도 불구하고 삶 속에서 인간적 가치를 유지하는 것은 존재와 소멸의 문제와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정글과 같은 삶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 절망속이라 해도 함께 있다면 타인의 고통을 느낄 수 있고 자신의 아픔도 진정시키는 순간을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자각과, 상대방의 존재에 대한 인정그리고 이해는 품이 드는 일이다. 그것은 환경의 제약 속에서 타인과 삶의 온도를 맞춰가는 일이며, 상대적 성숙의 시간을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을 거치며 우리는 삶을 무조건적으로 거부하거나 부정하지 않고 흐릿하게 잡힐 듯 떠오르는 희망에 대해, 삶의 온기에 대해 느낄 수 있는 것 아닐까?

 

 

앞으로 우리가 살게 될 세상, 또 우리 후손들이 살아갈 세상은 배리 로페즈와 그의 세대들이 살아온 세상과는 분명 다를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세상에도 우리 후손들의 세상에도 배리 로페즈가 경험했던 세상이 그랬듯이 그 시대만의 일렁임은 어김없이 존재할 것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우리 세대의 열망은 거친 삶의 파도 앞에 좌초되거나 위기를 겪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삶의 위기를 맞은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절망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신뢰와 사랑을 기반으로 한 연대가 있다는 것 아닐까? 배리 로페즈가 우리에게 남긴 수많은 체험적 진리 중에서 가장 귀중한 유산은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에게는 우리를 삶의 예의로 다시 데려다줄 타인이 존재하며, 이로 인해 절망에 믿음을 걸라고 강요하는 시대 속에서도 그 강력한 유혹을 뿌리칠 수 있다는 것. 잃어버린 것에 대한 절망 보다 앞에 놓은 가능성을 위해 앞으로 나아가라는 것. 이러한 인류의 의지는 앞으로 자신의 삶을 헤쳐나갈 후손들에게 지속적으로 계승될 것이라는 것.

 

 

우리는 모두 언젠가 죽는다. 죽음은 우리가 각자의 삶을 충실히 살아내도록, 사랑하고 사랑받을 기회를 남김없이 활용하도록 일깨운다. 그리고 스테그너처럼 큰사람의 죽음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려 하면서도 변변히 행하지 못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를 일깨운다. 윌리스 스테그너가 보여준 최선은 충분하고 또 충분하였다.” (p. 151)

 

 

우리를 만드는 것은 우리가 겪는 경험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경험에 반응하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시대의 풍랑을 힘겹게 견뎌내야할 때 내가 살아 있고 사랑 받는 존재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것... 묵묵히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 신뢰와 사랑을 기반으로 한 온기를 느낄 수 있는 것...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이것 이상의 응원이 있을까? 각자가 가진 삶의 조각들이 신뢰와 연대를 통해 하나의 조각(One Piece)으로 완성되는 것... 이것이 우리가 꿈꾸고 지향해야 하는 삶 아닐까? 책 중에서 윌리스 스테그너를 추모하며 남긴 그의 말을 그에게 다시 되돌려주고 싶다. 진실한 관계 구축은 기적과 같은 힘을 발휘하여 어떤 짐이라도 함께 짊어질 수 있다. 그렇게 우리는 그의 말처럼 삶의 길 위에 설 것이고, 그가 남긴 발자취를 따라 흔들림 없이 함께 걸어갈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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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9월
평점 :
절판


하루키의 ''을 좋아한다. 내가 '소설'이 아닌 ''이라 표현한 것은 나름의 의미가 있다. 학창시절 '노르웨이의 숲'으로 하루키를 처음 만난 나는 그 후 거의 30여년간 그의 팬답게 수줍고 조용한 하루키언이자 하루키스트로 활동해왔다. (나는 그의 데뷔작인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가 아닌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으로 바꿔 재출간하기 전 '노르웨이의 숲'으로 그를 처음 접했다.) 그의 책 신간이 공개되면 매번 예약구매할 정도로 유난을 떨진 않았지만, 익숙하고 당연한 의식처럼 관심있게 챙겨 봐오곤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내가 그의 소설보다 에세이에 더 애정을 품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한 권 한 권 그의 책들이 쌓이면서 어느 순간 서가의 한 켠이 하루키의 책들로 채워지게 되었는데소설보다 에세이가 훨씬 많았던 것이다소설가인 그를 소설로서 처음 만나 팬이 된 나인데, 왜 나는 소설 보다 그의 에세이에 더 애정을 갖게 된 것일까?

 

 

물론 소설 만큼이나 그의 에세이도 좋았던 이유가 가장 클 것이다. 하루키는 에세이를 통해 일상의 빛났던 순간들여행과 음악책 등 다방면에 걸친 자신의 취향귀중하고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온 충고를 독자에게 건넨다. “세상엔 실로 갖가지 함정이생각지도 못한 장소에서 은밀히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아무 일 없이 매일 평온하게 살아가기란 그리 간단치가 않다.”며 삶의 아포리즘을 드러내기도 하고, "일정 수준의 경지에 올라선 작가답게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일은 모두에게 찬사를 받는 것이 불가능한본의 아니게 타인에게 해를 끼치기도 하는 비정한 세계에 속해 있다는 것또 그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작가가 짊어지고 살아가야 한다"는 작가의 숙명을 비장하게 언급하기도 한다. 그의 에세이에는 소설로서는 독자에게 전하지 못하는 메시지와 그를, 또 그의 소설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한 단초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단순히 스토리만이 아닌 주인공이 구축한 세계와 그 세계에서 성장하는 주인공을 그리는 하루키만의 스타일에 매료되어 왔던 내가 그의 최근소설에서 예전만큼의 감흥을 느끼지 못했던 이유도 일부 있었던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올해 기사단장 죽이기 이후 6년 만에 신작 장편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한편으로는 반가운 마음이 들었고 구매를 망설이지는 않았지만, 막상 읽으려고 마음을 먹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이 사실이다. 이전에 그의 신작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여느때와 달리 소설을 읽기 전에 신작에 대한 배경지식을 찾아보고, 다른 독자들의 리뷰와 평가에 대해서도 찾아보면서 소설을 읽기 전에 유난히 뜸을 들였다. 내가 그의 신작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읽기 시작한 것은 이 소설은 30대의 하루키가 중편으로 발표했던 것으로, 43년이 지난 202370대의 하루키가 장편으로 재탄생시킨 것이라는 말을 듣고 나서였다. 30대의 하루키와 70대의 하루키가 완성해낸 신작. 더군다나 "이 작품에는 무언가 나에게 매우 중요한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고, 처음부터 그렇게 느껴왔다. 다만 당시의 나는 유감스럽게도 아직 그 무언가를 충분히 써낼 만큼의 필력을 갖추지 못했다""나에게 이 작품은 줄곧 목에 걸린 생선 가시처럼 신경쓰이는 존재였으므로 이 작품을 완성한 지금 솔직히 마음이 무척 편안해졌다"고 하루키 자신이 직접 작가 후기에 남긴 것을 보고, 그의 오랜 팬으로서 소설을 집어들 수 밖에 없었다.

 

 

그냥 원하면 돼. 하지만 무언가를 진심으로 원한다는 건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야. 시간이 걸릴지도 몰라. 그사이 많은 것을 버려야 할지도 몰라. 너에게 소중한 것을. 그래도 포기하지 마.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려도.” - p.15

 

 

하루키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책, 클래식과 재즈, 맥주, 위스키, 파스타 등 자신만의 확고한 취향과 질서로 쌓아올린 세계가 존재하고, 이성과 자유로운 연애를 하면서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중년의 남자는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에도 여전하다. 그는 일상을 살아가면서도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넘나들며 모험을 하며 성장을 한다. 하루키의 소설에 익숙하게 등장하는 클리셰는 여전하지만, 익숙한 클리셰의 변주를 통해 하루키는 절망과 상실, 사랑과 희망, 현실과 이상에 대해 말한다. 소설의 화자인 ''17살의 남고생이다. 화자는 여고생 ''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어느 날 ''''에게 "현실의 나는 그림자일 뿐이고, 진짜 나는 견고한 높은 벽에 둘러쌓인 도시에 있다"고 말한다. 이런 수수께끼 같은 말을 남기고 남기고 소녀는 갑자기 사라지고, 이후 주인공은 상실의 아픔을 품고 살아간다.

 

 

소년은 자신의 '그림자'를 버리고 도시로 사랑 꿈을 향해 떠나지만 도시 속에서의 삶도 그를 만족시키지 못한다. 이유를 알수 없이 부유하는 삶을 살고 있는 그에게 벽 바깥에 떼어 놓고 온 '그림자'가 그를 흔든다. 그림자는 도시의 삶이 오히려 허상이고, 벽 바깥에 존재하는 현실의 삶이 진실이라고 속삭인다. 현실과 비현실, 점점 더 모호해지는 진실과 거짓의 경계 속에서 우리는 어느 세계를 믿고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가야 하는가? 소녀를 찾아 벽으로 둘러쌓인 도시와 현실을 오가며 고뇌하던 소년은 어느덧 중년이 되어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하루키는 감각을 자극하는 상상력으로 현실과 비현실 사이에서 사람들이 마음속에 품고 사는 비밀에 대한 생각과 의문을 자유롭게 펼쳐낸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은 같은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각자 다른 상황 속에서 다른 선택을 내리며 살아가고 있는 인간의 삶에 관한 소설이다.

 

 

삶은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이다. 안정된 상태라고 느끼는 순간기다렸다는 듯 미지의 것이 느닷없이 닥친다이렇게 질서가 무너진 혼돈 속에서 우리 삶은 현실부정과 절망,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잠식되어 간다삶은 질서와 혼돈으로 점철되어 있다안정된 질서 속에 갑자기 혼돈이 찾아오기도 하는 반면, 모든 것을 상실한 듯한 절망적 순간에 새로운 질서가 나타나기도 한다삶의 길을 걸어간다는 것은 질서와 혼돈의 경계 위에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삶에서 인생의 의미가 빛을 잃어가고절망과 두려움이 고개를 드는 순간과 마주칠 때 우리는 무엇에 의지하며 세상을 살아가야 할까? 사람은 누구나 각자의 '진실'이 다르고본능적으로 자신을 정당화하고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것그렇기 때문에 건강한 관계를 위해서는 '경계'가 필요하다우리 앞에 놓인 수많은 경계들, 그리고 그 수많은 경계에도 불구하고 맺어지는 수많은 관계들...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역사와 존재이유를 가진 하나의 섬이다섬은 연결과 단절의 이중성을 가진 특별한 공간이다수면 위 드러난 부분을 기준으로 보면 섬은 단절된 공간이지만 드러나지 않은 수면 밑으로 섬과 섬들은 연결되어 있다.

 

 

우리를 만드는 것은 경험이 아니라 그 경험에 반응하는 태도이다우리는 수많은 경험을 하면서 삶을 살아간다. "동일한 사건을 두고서도 사람들은 서로 다른 언어적신체적심리적 반응을 보인다이것은 그 사건을 대하는 개인의 믿음즉 공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사건(Accident)을 경험하면서 개인은 자신만의 공식(Belief)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Consequence)를 창출해낸다는 'A-B-C 법칙'처럼  마치 세월의 풍화 속에서 동식물이 퇴적암석화의 과정을 거쳐 화석이 되듯이 우리가 겪은 경험은 사건의 잔상과 흔적진실의 파편 속에서 원형만이 살아남아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구성한다우리가 보고듣고느낀 것들이 축적되고 숙성되어 각자의 독자적인 ''의 방식이 되고개인의 고유한 방식은 일상의 다양한 만남과 대화를 거치며 수정되고 발전되어 간다과거 경험을 토대로 현재의 일상을 탐구하는 모든 개인은 모더니스트 (Modernist)인 동시에 자기 자신의 역사가 (His own Historian)라고 할 수 있다.

 

 

"한 세계와 또다른 세계의 경계를 초월할 수 있는, 구체적인 고통을 수반하는 각인. 나는 아마도 그것을 내 존재의 일부로 간직한 채 앞으로의 인생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 p.667 -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을 읽으며 저마다 개별적 삶을 살면서도 타인과 또 세계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한 시대를 이루고, 그것이 되풀이되고 순환되는 과정을 거쳐 역사를 구성하는 인간의 삶에 대해 생각했다. 우리는 동시대를 같이 호흡하면서도 온전히 현재를 살아내지 못하고 누군가는 과거의 한때에 머무르고, 또 누군가는 과거의 기억을 넘어 미래를 응시한다. 동시대를 같이 호흡하면서도 온전히 현재를 살아내지 못하고 누군가는 과거의 한때에 머무르고또 누군가는 과거의 기억을 넘어 미래를 향하는 것은 인간은 물리적 시간인 ‘크로노스 (Kronos)' 보다 주관적이고 심리적 시간인 ‘카이로스 (Kairos)'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과거의 기억은 현재의 우리를 구성하는 것인 동시에 미래를 꿈꾸고 호흡하게 하는 두번째 심장이다우리는 상실과 결핍, 몰이해라는 인간의 한계와 그러거나 말거나 상관없이 무심하게 흘러가는 세계 속에서 저마다의 속도와 방향으로 한 조각의 진실과 삶의 의미를 구하려 애쓰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건 아주 오래전에 죽어버린 시간의 단편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도 얼마 안되는 그 따스한 추억은 낡은 빛처럼 내 마음속을 지금도 여전히 방황하고 있다. 그리고 죽음이 나를 사로잡아서 다시금 무의 도가니에 던져 넣을 때까지의 짧은 한때를 나는 그 빛과 함께 걸아갈 것이다." - 1973년의 핀볼, p. 198 -

 

 

소설 속에서 '그림자'란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그림자는 고단한 일상에서 미처 신경쓰지 못하고 지나친 내면의 목소리삶의 본질을 상징하는 것 아닐까내가 내린 나름의 답이다우리는 살아가면서 타인과 또 세계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한 시대와 삶을 이룬다그것이 되풀이되고 순환되면서 빛이 되고그림자를 만든다그림자는 시시각각 변하는 환경 속에서 불완전한 형태와 빛깔을 띠지만 나와 완전히 분리할 수 없는필연적으로 나를 구성하는 일부분이다. 소설에서 주인공인 ''는 삶을 탐구하는 여정 속에서 길 위에 길게 드리워진 자신의 옅은 그림자를 본다. 그 옅은 그림자는 삶이 지속될수록 꼬리를 끌며 그를 따라오며 점점 짙어졌었다그건 그동안 애써 외면했던 자신의 내면이었다사랑과 꿈을 향했던 여정은 결국 자신의 내면에 침잠하는 여정이었다. 긴 방황을 거친 후에 비로서 그림자를 재발견한 것처럼 앞으로의 삶은 행복의 빛을 향해서 나아갈 수 있길 바란다그의 그림자는 빛을 따라 묵묵히 그의 삶을 지지해줄 테니 말이다.

 

 

모든 건 스쳐 지나간다. 누구도 그걸 붙잡을 수는 없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p. 143 -

 

 

그리하여 우리는 조류를 거스르는 배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떠밀려 가면서도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So we beat on, boats against the current, borne back ceaselessly into the past.)”라는 소설사에서 가장 유명한 엔딩을 남겼던 피츠 제럴드의 말처럼 이제 막 데뷔작을 내고 작가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하는 젊은 시절의 하루키는 영원한 것은 없고, 모든 건 스쳐 지나간다는 것, 그 흐름은 누구도 붙잡거나 돌이킬 수 없으며, 순종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 후 하루키는 수많은 저작을 남기고, 소설과 에세이를 통해 삶에 대한 수많은 아포리즘을 남겼다. 적어도 나에게는. 하지만, 이제 70대의 거장이 된 그의 수많은 말 속에서도 현 시점의 나에게 가장 깊게 다가오는 것은 30대의 그가 남긴 말이라는게 참 아이러니하다. 그와 함께 했던 날들의 소중함과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와 앞으로 함께 할 날들이 많이 남지 않았음을 느끼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가는 세상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밀려나지 말고 저마다의 속도와 방향으로 조금씩이라도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그의 말에 다시 한번 위로와 용기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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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피닷 2024-01-01 08: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잭와일드 2024-01-01 09:15   좋아요 0 | URL
루피닷님 2024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jeny0409 2024-08-04 2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 봤습니다 ^^ 하루키언으로서 뿌듯하네요~
 
부르고뉴 와인
백은주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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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브르고뉴 와인에 대한 정보를 집대성한 유일무이한 최고의 도서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부르고뉴 와인이라는 놀랍고 신비로운 세계로 들어가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친절한 입문서이자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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