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들판을 걷다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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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이다안정된 상태라고 느끼는 순간기다렸다는 듯 미지의 것이 느닷없이 닥친다이렇게 질서가 무너진 혼돈 속에서 우리 삶은 현실부정과 절망,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잠식되어 간다삶은 질서와 혼돈으로 점철되어 있다안정된 질서 속에 갑자기 혼돈이 찾아오기도 하는 반면, 모든 것을 상실한 듯 한 절망적 순간에 새로운 질서가 나타나기도 한다삶의 길을 걸어간다는 것은 질서와 혼돈의 경계 위에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삶의 불확실성 속에서 인생의 의미가 빛을 잃어가고절망과 두려움이 고개를 드는 순간 우리는 무엇에 의지하며 세상을 살아가야 할까?

 

찰리 채플린은 삶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을 남겼다이는 일견 행복으로 충만해 보이는 삶도 면밀히 들여다보면 두려움과 고통삶에 대한 ‘비의(悲意)’가 내포되어 있다는 삶의 내밀한 속성을 잘 포착해낸 체험적 진리라고 생각한다소설가 제임스 설터도 "나뭇잎을 들어 올려 햇빛에 비추어 보면 잎맥이 보이는데다른 건 다 버리고 그 잎맥 같은 글을 쓰고 싶다."는 말을 했다이는 저마다의 방향으로 복잡하게 얽혀있는 잎맥처럼 삶은 다면적이고 정답을 찾기 힘든 것이지만삶에 대한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멀리서 숲을 조망하기 보다는 숲 안으로 깊숙이 침잠하여 나뭇잎의 형태와 주위환경에 따라 흔들리는 그 미세한 변화들에 주목해야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클레어 키건의 <푸른 들판을 걷다>를 읽었다. 그녀는 "한 세대를 대표하는 작가"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자국 아일랜드와 해외 평단에서 오래전부터 거장으로 인정 받아왔다. 국내에서도 <맡겨진 소녀>로 처음 독자들에게 선보인 후 <이처럼 사소한 것들><푸른 들판을 걷다>까지 3개의 작품이 불과 1년만에 차례로 소개되었고, 국내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 중 한명이 되었다. <맡겨진 소녀>를 읽으며 '한없는 사랑과 세심한 배려라 할지라도 그것을 미처 경험해보지 못한 이들에게는 아프게 다가올 수 있다는 것. 하지만, 결국 그 진심이 담긴 호의가 마음을 움직이고, 삶을 비추고, 온기를 불어넣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에 대한 리뷰는 평론가 베리 피어스의 말로 대신하고자 한다. 그의 말이 그 어떤 평가나 카피문구 보다 강력하기 때문에...

 

"십여 년 만에 드디어 나온 클레어 키건의 신작이 114쪽에 불과한 데 실망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안심하길... 키건은 단어 하나 낭비하지 않는 작가니까..."

 

<푸른 들판을 걷다>는 국내에 세 번째로 소개되는 클레어 키건의 작품이자 처음으로 선보이는 소설집이다. 직전에 소개된 그녀의 작품들을 읽으며 '단어 하나도 낭비하지 않는 작가', '단편 소설의 여왕'이라는 클레어 키건을 대표하는 수식어에 깊이 공감했고, 출간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소설집에 대한 기대를 하고 있었다. <푸른 들판을 걷다>는 저마다의 삶에서 상실과 결핍을 보유한 인물들에 대한 7편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는 가족의 묵인 하에 아버지에게 성적학대를 받다가 용기를 내어 가족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소녀 ('작별 선물'), 종교와 세속적인 삶 사이에서 고뇌하는 사제 ('푸른 들판을 걷다')가 등장한다. 또한, 연인을 떠나보내고 뒤늦은 후회와 번민 속에서 살아가는 남자 ('검은말')와 가정 보다 땅에 집착하는 남편과 사랑이 결핍된 결혼생활을 이어가는 아내 ('삼림 관리인의 딸'), 운명에의 순응과 도전 사이에서 고뇌하는 젊은이 ('물가 가까이')가 있다. 연인에 대한 책임을 애써 회피하며 이기적인 태도를 보이는 남자 ('굴복')가 있는 반면, 연인과 아이를 잃고 방황하다가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는 여자 ('퀴큰 나무 숲의 밤')도 있다.

 

클레어 키건의 작품들은 쉽게 읽히진 않는다. 그 안에는 삶과 죽음이 있고삶의 의미를 위협하며 넘실대는 사랑과 집착, 탐욕, 상처들이 은유적으로 표현되어 있다클레어 키건은 소설 속에서 벌어지는 상황마다 필수불가결한 만큼의 적확한 단어를 사용하여 분위기를 선명한 이미지로 전달하지만 복잡미묘한 삶에 대한 구체적인 해석은 독자의 몫으로 돌리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경계가 불분명하지만 색채가 선명한 수채화'라는 <맡겨진 소녀>에 대한 허진 번역자의 평가는 이 작품에서도 유효하다. 하지만 다양한 감정들로 점철된 7편의 이야기들을 곱씹어 보면 작품에 내재되어 있는 아포리즘이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낸다그 감정의 용광로 속을 비집고 드러나는 삶의 체험적 진리를 엿보는 건 마치 만화경 속으로 다채로운 빛깔의 싸이키델릭한 이미지들을 보는 것과 같다우리가 삶에 대해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시작 (출생)이 있고 (죽음)이 있다는 것우리가 삶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과 공포가 상존하고 있다.

 

다른 사람이 무엇을 겪고 있는지 아는 사람이 있을까?“ (p. 211, '퀴큰 나무 숲의 밤')

이제 그는 한 여자를 알았고, 그러자 여자를 절대 이해하지 못하리라는 깨달음이 더욱 확실해졌다.“(p. 237, '퀴큰 나무 숲의 밤')

 

살아가면서 개개인이 켜켜이 쌓아올린 저마다의 사연들은 상실과 결핍의 기억을 머금은 채 조용히 빛난다어쩌면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역사와 존재이유, 상처와 결핍을 가진 하나의 섬이 아닐까섬은 연결과 단절의 이중성을 가진 특별한 공간이다수면 위 드러난 부분을 기준으로 보면 섬은 단절된 공간이지만 드러나지 않은 수면 밑으로 섬과 섬들은 연결되어 있다서로의 고유한 존재 방식상실과 결핍의 기억들은 우리 각자를 섬으로 만들지만 우리는 삶의 흔적아픔을 매개로 서로를 이해하고 위로한다. 이런 의미에서 삶이란 저마다 쌓아둔 사연들로 섬들이 나누는 대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서로가 단절된 채 살아가는 것 같아 보이지만 우리는 함께 더불어 살아가며 서로의 존재를 느끼고 온기를 나누는 존재들이니 말이다.

 

그녀 인생의 너무나 많은 부분이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p. 126, '삼림 관리인의 딸')

 

'상실' '결핍'의 경험은 그들의 삶의 온도를 변화시킨다이러한 온도 변화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공간 감각을 둔화시킨다눈앞에서 아름답게 펄럭이는 '현재'가 좋았던 과거 같기도 다가올 미래 같기도 하지만 어찌 됐든 현재의 내 것 같지는 않은 기분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남겨진 이들은 결코 없던 일이 될 수 없고잊을 수도 없는 일들을 품에 안은채 고통속에서 삶을 견뎌내야 한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상실과 결핍을 대면하게 될 때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들은 저마다 다르게 나타난다인간이란 저마다의 상황 속에서 그만의 역사와 고유한 존재 방식, 중력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다그렇기 때문에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이해'이다

 

삶은 변화무쌍하고 다면적인 것이며, 진실에 한 걸음 다가가기 위해서는 숲 안으로 침잠하여 그 미세한 감정의 떨림들을 느끼고 경험해봐야 한다. 하지만, 타인의 상황과 감정을 이해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이해는 마음이 구겨져 있는 사람 특유의 과시와 무시이기심과 거부를 넘어서야 하고, 이해의 얼굴을 한 위선을 극복해야만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은 타인과 삶의 온도를 맞춰가는 일이며상대적 성숙의 시간을 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하지만 그러한 과정을 거치며 우리는 삶의 고통을 무조건적으로 거부하거나 부정하지 않고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위로의 경험을 얻는다그것은 오직 사람에게서만 경험하고 얻을 수 있는 특별한 것이다밝은 곳에서는 어두운 곳이 잘 보이지 않지만인간은 서로 간에 존재하는 적당한 어둠 속에서 희미한 빛과 온기로 서로를 알아보는 존재이다.

 

"첫 곡은 느린 왈츠, 평생 이 춤을 출 수 있을까요? (Could I have this dancd for rest of my life?)이다. 신랑이 신부를 플로어로 이끌다가 드레스 자락이 신부의 구두 뒤꿈치에 걸린다." (p. 50, '푸른 들판을 걷다')

 

<맡겨진 소녀>를 읽고 내가 남긴 리뷰의 제목은 '삶이란 내리는 빗속에서 춤을 추는 것'이었다. 산다는 것은 폭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내리는 빗속에서 춤을 추는 일에 가깝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정말 그렇지 않을까? 삶이란 두려움에 짓눌리지 않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해내면서, 이러한 과정을 통해 쌓여진 사소하고 다정한 것들이 모여 지리멸렬한 생을 흘러가게 하는 위대한 힘이 생성되는 것 아닐까? 키건의 <푸른 들판을 걷다>에도 춤에 대한 묘사가 자주 등장한다. 소설을 읽고 나서 나는 삶은 '춤을 추는 것'이라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되었다.

 

"잘하는 게 많았는데 춤도 그중 하나였어요. 동전만 한 자리에서 춤을 춰도 스텝 하나 틀리지 않았죠." (p. 126, '삼림 관리인의 딸')

 

삶은 ''이다. ''은 때로는 동적으로, 때로는 정적으로 인생이라는 긴 세월 동안 끊임없이 재연된다. ''의 형태와 종류도 다양하다. 때로는 홀로 추는 '독무', 때로는 연인 또는 동료와 함께 추는 '이인무', , 다수가 함께 만들어가는 '군무' 등으로 다양한 형태로 삶에 표출된다. ''은 일정시간 동안 혼자서 추는 '독무'일수는 있어도 절대로 공연이 끝날때 까지 홀로 출 수 없는 춤이다. 또한 어느 일방의 리드만으로 지속될 수 없다선율에 맞추어 함께 추는 춤은 아름다운 장면만으로 구성되지도 않는다때론 춤을 추는 과정에서 상대의 발을 밟기도 하고때로는 박자를 놓쳐서 상대가 손을 떨게 만들기도 한다하지만 이러한 과정을 거쳐 삶의 주어는 ‘에서 ‘우리로 변한다삶은 타인과 함께 추는 춤이다. 외로운 섬들이 서로가 가진 사연으로 대화를 하고, 의미 있는 몸짓을 나누는 것. 삶은 그런 것이라 생각한다.

 

"그녀는 인간 혼자서는 스스로를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사랑을 나누는 행위 너머에 진짜 앎이 있다고 믿었다." (p. 61, '푸른 들판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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