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핫뮤직(HOT MUSIC) 1998년 11월호 핫뮤직(HOT MUSIC) 97
핫뮤직 편집부 / 컨텐츠코리아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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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에는 영화의 환상에 빠져 비극적 삶을 살게 되는 주인공 임병석이 등장한다. 영화를 보면서 허구와 현실을 혼동하며 환상 속에서만 살아가는 주인공의 삶이 안타까웠지만, 수없이 많은 영화들을 섭렵하여 삶에 영화가 체화된 주인공의 영화에 대한 열정은 인상 깊었던 기억이 있다. 주인공과 내가 동일한 이름을 공유한다는 것도 이 영화에 관심을 갖고 기억을 하게 된 중요한 이유였다. 그래서일까? 10회 전 국민 잡지읽기 공모전 참여를 생각할 때 이 영화가 떠올랐다. 만약 이 영화처럼 지금까지의 내 삶을 성장영화로 표현한다면 핵심 콘텐츠와 키워드는 무엇이 될까?

 


내가 내린 결론은 음악이었다. 임병석이 헐리우드 키드였다면, 나는 락키드였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나의 10대부터 20대까지를 함께한 추억의 잡지 핫뮤직 (199011월 창간, 20085월 폐간)이 떠올랐다. 10대 시절 나의 틴 스피릿(teen spirit)은 락음악에 있었고, 나는 항상 이에 대한 정보를 갈구했다. 당시에는 음악을 듣기 위해서는 음반을 구매해야 했기 때문에 용돈이 빠듯한 청소년이었던 나는 음반 구매의 실패 확률을 낮춰야만 했다. 오랜 기간 용돈을 모으고 아르바이트를 한 끝에 마침내 음반을 구매하여 플레이하였을 때 내 취향이 아니거나 너무 난해한 음악임을 뒤늦게 깨달았을 때의 낭패감과 상실감은 당시 내가 감당하기 힘든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막 음악이라는 세계를 탐구해가는 내게 핫뮤직은 지도였고 네비게이션이었다. 인터넷이 발달되기 이전이었던 시기에 음악전문잡지는 내가 좋아하는 음악에 대한 최신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였고 동시에 좋은 음악을 선별하고 음악관을 확립하는데 지침이 되는 바이블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90년대 당시에는 다양한 음악전문잡지들이 존재했다. 지금 생각하면 다소 촌스러운 지구촌영상음악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던 잡지 'GMV'는 팝음악 전반에 대해 다루었고, 월드팝스도 이와 유사한 성향을 띤 잡지였다. '서브 (Sub)'는 최신 음악 트렌드를 기민하게 반영하고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와 가치에 대해 재조명한 잡지였다. 그 중에서 내가 핫뮤직을 유난히 좋아하고 애착을 가졌던 이유는 락음악을 전면으로 다뤘다는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18년이라는 세월 동안 지속된 국내 최장수 대중음악 전문잡지였다는 점이다. 단순히 독자의 관점에서 생각해봐도 18년 동안 음악, 그 중에서도 락음악이란 매니아적 취향을 다룬 핫뮤직은 숱한 위기를 겪었을 것이다. 조성진 평론가가 편집장 복귀에 대한 소감으로 온라인의 홍수 속에서도 활자문화를 고집스럽게 지켜야 할 누군가는 꼭 있어야 하며, 음악 쪽에서는 바로 '핫뮤직'이 그 누구의 대열에 포함될 자격이 있다고 밝혔던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비장함이 느껴진다.

 


핫뮤직에 실린 해외 뮤지션의 인터뷰, 음반 및 공연에 대한 리뷰, 신보 발매 소식 등은 락음악에 관한 정보를 갈급했던 내게 가뭄의 단비와 같았다. 또 핫뮤직에는 흥미로운 기획기사가 많았다. 평론가와 음악산업 종사자를 위한 사관학교라는 별칭에 걸맞게 핫뮤직은 명그룹들의 데뷔 순간을 조명하거나, 북유럽 신화와 그를 다룬 밴드와 가사들을 다룬 기사, 한국 록의 계보와 명반들을 열거하는 기사 등 다양한 기획기사를 다뤘다. 핫뮤직의 기사를 읽으며 음반 구매 리스트의 우선순위를 작성하고, 리뷰에 언급되었던 음악을 듣고 싶다는 열망 속에서 라디오 프로그램 전영혁의 음악세계를 들으며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던 학창시절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핫뮤직의 장점은 부록에도 있었다. 핫뮤직은 부록으로 종종 여러 뮤지션의 노래를 특정 분류에 따라 모은 컴필레이션 음반이나 테이프를 주었다. 이는 당시에는 음악을 다루는 매체였던 만큼 직접 들어보고 평가 후 구매하라는 배려 차원으로 생각했지만 이제와 생각해보면 시대의 변화에 맞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중에서도 2002년 월드컵의 열기가 끝나갈 무렵 Roger waters 라이브 앨범 중 ‘Shine on you crazy Diamond’1번 트랙으로 수록된 핫뮤직의 컴플레이션 앨범을 들으며 감동 받았던 것이 유난히 기억에 남는다.

 


핫뮤직은 락음악을 매개로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결집시킨 플랫폼의 역할도 수행하였다. 핫뮤직에 실린 클럽의 광고만 보고 홍대를 찾아가 우여곡절 끝에 밴드를 결성하게 된 크라잉넛은 이제 데뷔 20년이 넘는 인디씬의 전설이 되었다. 광고 이외에도 진정으로 음악을 사랑하고, 뜻을 모아 음악의 한길을 걸을 멤버를 찾는다는 그룹사운드 멤버 모집글이나 악기나 레코딩에 대한 정보에 이르기까지 핫뮤직은 음악을 좋아하는 아마추어부터 프로 뮤지션까지 다양한 수요자층을 만족시킬 수 있는 정보의 바다였으며 음악 생태계의 보고였다. 고등학교시절 핫뮤직을 매개로 음반을 교환하면서 인연을 맺게 된 대구 사는 목수 형님, 밴드 정보 공유로 시작하여 기타 구매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함께한 부산에 사는 펜팔 친구, 이들은 아직까지 락에 대한 열정을 간직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이렇게 고등학교 시절 그리고 대학에 진학할 때까지 핫뮤직은 내 삶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프레시맨 시절 대학 밴드 동아리의 오디션을 기다리면서도 나는 핫뮤직을 읽었다. 사실 음악은 시대의 변화에 가장 민감한 예술 중 하나이다. 음악이 다루는 주제는 사랑, 정치, 평화 등 시대에 민감한 영역들이고 음악은 가사뿐만이 아니라 목소리와 연주가 결합된 음악언어로서 청자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종합예술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음악은 다루는 주제와 가사, 그것을 표현하는 사운드가 총체적으로 트렌드를 민감하게 반영해야하는 예술이다. 음악을 다루는 매체가 시대와 그에 따른 음악의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래서일까? 한때 월발행부수 15,000부에 달했던 핫뮤직의 몰락은 너무나 급작스럽게 다가왔다. 인터넷의 등장으로 대표되는 시대와 기술의 급격한 변화 속에는 음악 자체의 변화도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인터넷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인터넷에서 정보는 빛과 같은 속도로 유통되었고 음악 방면에도 '논객'으로 불리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났다. 최신 정보의 제공자이자 분석과 평가로서 새로운 의미를 제시하였던 '평론가' 집단의 권위도 핫뮤직을 비롯한 음악전문잡지들의 위상도 서서히 빛을 잃어갔다. 핫뮤직은 더 이상 내게 음악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유일한 창구가 아니었고, 대학에 진학한 나도 락음악 이외의 관심사가 차츰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핫뮤직은 나의 기억 속에서 멀어져 갔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한 뒤 나는 핫뮤직이 폐간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충격 속에서 관련 소식을 찾아보았다. 폐간되기 직전인 20081월 핫뮤직의 대표이사가 독자들에게 남긴 글이 있었다. 몇 차례의 결간으로 불안해하는 독자들에게 그는 인쇄매체의 불황과 음악시장의 급격한 퇴조로 인해 경영상의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밝히며, 아무리 매체가 다변화되고 인터넷을 통한 정보의 흐름이 빨라지더라도 정돈되고 보존성 있는 인쇄매체의 존립기반까지 와해시킬 수는 없고 오히려 전문 인쇄매체의 정보가 타 매체의 정보 흐름을 리드하게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는 말을 남겼다. 하지만 이 말을 남기고 4개월뒤 핫뮤직은 폐간되었다.

 


핫뮤직이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 음반은 '소유''소비'의 양면성을 가진 매체였다. 앨범 커버, 가사집, 평론가의 리뷰, 음원이 담긴 CD로 이루어진 음반은 그 자체가 유기적으로 구성된 아티스트의 창작물이었다. 하지만 인터넷이 활성화되면서 음반은 빠르게 다운로드 시장에 자리를 내줬고, 다운로드시장도 모바일 시대의 개막과 함께 스트리밍으로 대체되었다. 음악의 디지털 데이터화로 음반이 갖고 있었던 목적 가운데 '소유'가 사라지고 '소비'만 남은 것이다. 스트리밍은 공유의 편의를 위해 볼륨과 음질 등을 규격화한 콘텐츠를 제공한다. 이는 창작자의 의도가 왜곡시킬 뿐만 아니라 작품 자체의 질을 손상시킨다는 치명적인 단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대중들은 음반을 찾지 않는다. 음악은 '소유'가 아닌 스트리밍으로 대표되는 데이터의 '소비'로 전환되었다. 가끔 그때 음악전문잡지에 대한 대중들의 애정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생각을 해본다. 그때의 열정은 지금 세대에게도 유효한 것일까? 경험을 소비하며 순간을 탐닉하는 세대에게 음악잡지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음악을 다룬 텍스트가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까? 음악이 완결된 예술작품으로서, 콘텐츠로서 지니고 있는 본질적인 힘 때문에 음악을 다룬 텍스트는 힘을 잃을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

 


브릿팝 (90년대 영국에서 발생한 얼터너티브록의 장르)의 아이콘으로 추앙 받았던 밴드 블러(Blur)의 기타리스트 그레이엄 콕슨은 자신의 5번째 솔로앨범의 제목을 다음과 같이 명명했다.

 


행복은 잡지 안에 있다.”(Happiness in Magazines.)

 


그랬다. 그 시절 내가 매달 출간되는 핫뮤직을 기다렸던 건 잡지를 통해 텍스트로서 구현된 소리를 눈으로 읽어내기 위해서였다. 아니 그 소리는 시각뿐만이 아니라 내 오감을 자극하는 소리였다. 표지와 사진들이 전달해주는 시각적 이미지, 다양하게 표현되는 종이의 질감과 잉크의 냄새, 책장을 넘길 때 손가락 끝에 느껴지는 감촉, 사각거리는 소리는 총체적으로 잡지가 다루고 있는 음악의 의미를 부연해주는 것들이었다. 내 취향이 온전히 고려되어 있는 한권의 잡지는 나의 영웅이 가장 화려하게 빛나던 시절, 빛나는 미소와 함께 내게 다가왔다. 그레이엄 콕슨의 말대로 이곳에 행복이 없다면 대체 어디에 행복이 있단 말인가? 잡지는 오감만족의 예술이며, 이는 지금 시대에도 유효하다.

 


또한 앨범 커버와 가사집, 음원이 담긴 CD 등이 유기적으로 구성된 음반처럼 체계적으로 구성된 잡지의 편집은 잡지가 가진 큰 장점 중 하나이다. ‘스마트해지는 느낌을 팔겠다는 철학으로 종이 잡지를 만드는 이코노미스트지는 2006년 일주일에 100만부에서 2015160만부로 발행부수가 크게 증가하였다. 온라인상 정보의 홍수 속에 빠져 있던 독자들은 체계적으로 구성된 정보들을 흡수하면서 스마트해졌다는 느낌을 받는 것이다. 인터넷이나 웹진을 볼 때는 자신이 좋아하고 관심이 있는 기사만 클릭하지만 잡지를 통해서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이야기, 이미지, 아이디어를 만날 수 있다. 필요에 따른 지식검색은 지식의 확장에는 유용하지만 연관된 새로운 주제를 만날 가능성은 희박하기 때문이다. 특정 독자층 및 취향을 고려하여 발행되는 잡지는 이 부분에서 강점을 갖는다. 오늘날과 같은 정보 과잉의 시대에도 독자의 취향에 따라 진화하는 큐레이션이 가능한 것이다.



락키드 출신답게 내 젊은 시절의 한 챕터를 장식하고 있는 핫뮤직에 바치는 헌사도 락으로 마무리를 해야겠다. 이언 헌터의 노래 'Old records never die'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등장한다.

 


" 가끔, 인생에도 끝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죠.

하지만 음악은 어디에나 있어요. 결코 사라지지 않는 명반처럼 말이죠."

(Sometimes you realize That there is an end to life.

But music's something in the air. Old records never die.)

 



작년에 핫뮤직이 온라인과 웹을 통해 부활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시대와 기술의 변화는 많은 것들을 바꿔 놓았다. 하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는 명반처럼 우리의 가슴을 울리는 것들이 있다. 그 시절 내가 눈으로 음악을 듣고, 행복을 읽어냈던 것처럼 순간의 경험을 소비하는 디지털 시대에서도 잡지가 우리에게 건네는 이야기는 아직 건재하다. 워크맨과 카세트테이프로 음악을 듣는 히어로가 등장하고 대중은 이제 다시 LP판을 찾는다. 누군가가 종이책 시대는 끝났다고 했지만, 이북은 아직 종이책 시장을 넘보지 못한다. 잡지는 단순히 과거의 향수나 감성에 의존하는 일회성 마케팅이 아닌 새로운 가치를 통해 시대에 적응해나가야 한다. 중요한 것은 잡지가 아날로그와 전통매체라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어떻게 독자에게 새로운 경험과 가치를 줄 것인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이 전문 인쇄매체의 정보가 타 매체의 정보흐름을 리드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온라인과 웹뿐만 아니라 지면을 통한 핫뮤직의 부활을 기다리며, 다시 한번 눈을 통해 소리를 듣는 즐거움과 행복을 느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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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11-27 23: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핫뮤직이 이북으로도 있군요~!! 저도 핫뮤직 너무 좋아해서 매달 사모았었는데 반갑네요 ㅜㅜ 지금은 다 잃어버려서 너무 슬프더라구요 (부모님이 이사하면서 다 버렸더라구요 ㅜㅜ)

저도 GMV나 서브 보다는 핫뮤직이 더 좋더라구요. 핫뮤직에서 극찬하면 열심히 돈모아서 씨디를 사러 간 기억이 생생하네요 ㅋ 부활했으면 좋겠습니다~!!

잭와일드 2021-11-27 23:28   좋아요 2 | URL
네 저도 음악잡지 중에서 핫뮤직이 유난히 기억에 남네요. 핫뮤직 리뷰를 보고 전영혁의 음악세계도 듣고 리스트 만들어서 고민고민하다가 돈모아서 CD사고 ㅎㅎ

mini74 2021-11-27 23: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ㅎㅎ 다들 비슷한 추억들을 갖고 있나봐요. 저는 영화지만요. 잡지 열심히 보고 고심해서 용돈 모아 영화 테이프 사고 했던 기억이 나요 언니들이 무료편승해서 아주 기분나빴던 ㅎㅎㅎ글 넘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

잭와일드 2021-11-28 08:48   좋아요 2 | URL
네 가끔씩 그때가 그리워지네요 ㅎㅎ

persona 2021-11-28 00:4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와 오랜만에 보네요. 서브는 모르고 있었지만 GMV랑 핫뮤직은 기억나요. 누군가 레드재플린 음악 녹음한 거랑 함께 핫뮤직을 줬던 기억이 나네요. ㅎㅎㅎ 없어지고 참 아쉬웠어요.

잭와일드 2021-11-28 08:49   좋아요 3 | URL
공테이프에 나만의 셋리스트를 만들어서 선물도 많이 했죠. 라디오 기다렸다가 녹음도 하고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