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원 탐방기 이 책에
"그들은 진정 오늘이 그들 삶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고 있었다" 이런 대목이 있다.
많이 와닿던 말. "오늘만 사는 것처럼" 식으로 변용, 변조하지 말고 수시로 기억한다면 좋지 않을까 한다.
바슐라르의 방식과는 다르지만 이것도 "가난에 매혹되기"와 연결될 것이다. 인간 조건으로서의 가난. 가장 나종 지니인 것. 생각하기.
동네에 조금 소문난 반찬가게가 있어서 반찬을 지금까지 세 번 샀는데
처음 두 번은 아저씨만 있을 때였고 세번째 갔을 때 아줌마들이 계셨다.
그러니까 내가 이미 왔던 적이 있다는 걸 아줌마들이 아마 모르셨을 것인데, 이때 반찬 사서 나가는 나를 붙잡고 상추 가득 눌러 담긴 검정 봉지를 손에 쥐어주심.
아. 이 상추를 먹기 위해 돼지고기를 주문해야 했고
어제는 상추 한 대접과 돼지불고기 한 그릇을 놓고 저녁을 먹고 나서
혼절했었다. 상추 = 수면제.
연희동 사러가마트에서 산다면 만천원어치 정도 되는 양이다.
오늘 저녁도 상추 한대접과 돼지불고기 한 그릇으로 해결했는데
앞으로 두 번의 끼니를 이렇게 먹어야 사라질 양. 사러가마트는 유기농을 주로 파는 곳이라 특히 채소가 꽤 비싼 편이긴 했다. 그런데 반찬가게도 연희동과 지금 동네 사이에 차이가 크다. 나는 나물 종류 주로 사는데 (취나물 고사리 이런 거), 연희동에서 나물을 반찬가게에서 사면 고통스럽게 나누어 먹었다. 보통 식당에서 반찬으로 나오는 정도 양이 3천원 근처. 3천원 근처인 반찬 네 개를 사면 만원 같은 할인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그게 다 극소량이라 아주 빨리 사라졌었다. 지금 동네 반찬가게는 훨씬 저렴하다! 모듬 나물 이런 것도 있는데 5천원! 돈이 하나도 아깝지 않다!
은행 지점이 집 바로 근처에는 없고 버스로 6 정거장 정도 거리에 있길래
버스 타고 가보았는데 갔다가 오는 길에는 경로 일부를 걸었다. 가면서 본 가게 들러 봐야겠어서.
연희동과 비교하면 무엇이든 더 싸고 무엇이든 더 많이 포장되어 있음에 뭐랄까 아 역시, 나름 부촌이라는 연희동과 지금 나의 동네 사이에 적지 않은 차이가 있기는 하다...
그런데 이 동네 (동네를 밝히지는 못하겠지만) 지형이나 분위기가
뭐 음침하다거나 전혀 그렇지 않다. 그 반대라면 반대. 한국에서, 어디든 명당 아님? ;;;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함.
너무 좋은데? ;;;; 어디든 좋은가? ;;;; 같은. 아무튼 밝고 넓고 살기 좋은 동네.
게다가 넓은 공원이 지척에 있다는 건 얼마나 좋은지. 요즘 넓은 공원이 지척에 없는 동네가 서울에 있냐? 반문이 있을 것이기도 하다. 90년대, 00년대 초와는 다르게 서울 어딜 가든 근처에 공원이 있는 거 같긴 하다. 그런데 이건, 적어도 연희동은 아니었다. 연희동도 "walkability"에서 상위에 들 동네긴 하지만 부잣집 마당 정도 크기 체육 공원이 연달아 여러 곳에 있지 넓고 시설 좋은 공원이 동네의 중심이 되는 동네는 아니었.
하튼 이사 후의 행복엔 공원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