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모제 불어 책들이 3권 있다. 

총 4권인 이 유명한 책, 불어 학습서의 고전은 3권까지는 각 단원이 "문법 + 독해 텍스트 (+이것저것 연습)"로 구성되고 마지막 4권은 불어로 쓴 위대한 저자들의 앤솔로지. 4권까지는 필요하지 않고 1-3권만 있으면 되겠다 해서 오래 전 마련해 둠. 


50년대에 나온 책이다. 나오고 나서 긴 세월 전세계 알리앙스 프랑세즈에서 기본 교과서로 썼다는 거 같다. 어느덧 고전이 되기는 했지만 나쁜 의미에서 (고전이 됨으로써 아무도 읽지, 쓰지 않는) 그렇게 된 거 아니냐 했는데, library genesis에 4권 모두가 pdf 업로드 되어 있는 걸 보면 그렇지 않은 거 같다. 아마존에도 등록이 되어 있고 심지어 별점 5점 리뷰들도 있다. 


캐나다에 사는 언론인 뱅상 씨네 가족이 

뱅상 씨가 파리 특파원이 되면서 파리에 오고, 파리에서 서점을 운영하는 르그랑 씨 가족과 가까이 지내는 한편 프랑스의 문화와 역사, 알아가는 내용으로 짜여 있다. 1권의 초기 단원에서는 "르그랑 씨는 뱅상 씨보다 키가 크다" (비교급), "저것은 뱅상 씨의 집이다" (지시대명사), 같은 식. 당연히 이 서사가 조금씩 복잡해지고 정교해지는데 별생각 없이 따라가기만 하다가 어느 지점부터 감탄이 일기 시작한다. 교과서의 교과서 같은 책이로구나! 도대체 어떻게 이런 문장들을 썼을까. 얼마나 불어와 프랑스를 사랑하면 이럴 수 있었을까. (....) 진짜 이런 감탄이 인다. 


자기 나라의 언어와 문화, 역사를 잘 알고 사랑한다. 

이게 주입과 강요로 되는 일이냐. 아니냐. 이 경우의 사랑이란 무엇이냐.ㅎㅎㅎㅎ 이걸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가스통 모제는 프랑스가 생산한 (좋은 의미에서) 프랑스적 정신인 사람. 프랑스인들 특유의 감수성이라고 영어권 저자들이 아주 자주 거론하는 "joie de vivre" 이게 있다. 프랑스인들에게는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는 없는) 그게 있다는 얘기 많이 들었지만 언제나 회의적이었는데, 모제가 쓴 이 책 보면서 납득되었다. 세계 어딜 가든 "삶의 즐거움" 아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특히 프랑스에서 프랑스적으로 실현되는 그것이 있기도 할 것임에 대해. 


아도르노는 "프랑스 환멸 소설"에 깊이 감탄하기도 했다. "joie de vivre" 이것과 프랑스 방식의 "disillusionment" 이것이 얼마나 뗄 수 없는 것인가 싶어지기도 한다. 


암튼 모제 불어. 불어 공부 관심 있는 분들에게 저라면 추천합니다. library genesis에 4권 모두가 pdf로 있다는 건 또 얼마나 좋은 일인지 모릅. 레미 드 구르몽의 "시몬" 연작 시도 이 책에서 보고 오오 7-80년대 한국에서 유행했던 바로 그 시! 영어보다는 불어가 더 기본 외국어 같았던 그 시절! 그 시절을 아는 노인같은 (노인이 되는 중인)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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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1-08-20 09: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les deux mondes 교재 시절의 알리앙스를 다녔더랬어요. 회현동 강의 듣고 그 옆 골목에 옹기종기 있던 작은 중국집에서 짜장면 사먹은 기억이 납니다. 아직 경복궁 옆 하얀 건물에 문화원 있던 시절이고요. 옛날이죠. 네.

며칠전 향수병? 인지 소피 마르소 영화 찾아 봤다니까요?! ㅎㅎㅎㅎ 딱 고때 대학생 l’etudiante 였습니다. 모제 불어 4권을 좀 보고싶군요. ^^

몰리 2021-08-20 09:50   좋아요 1 | URL
모제 불어 4권 엄청 좋아요!
와 이거 엄청 좋다 : 정말 이런 느낌. 프랑스에는 잘 쓴 저자들이 이렇게도 많았네. ㅎㅎㅎㅎ 선정된 글들마다 모제가 붙여 둔 해설도 있는데 해설과 같이 보고 나면 프랑스 19-20세기 정신의 풍경? 무려 그런 것을 잘 보고 난 느낌 들 거 같아요. 5백 페이지가 넘는 꽤나 방대한 양!

지금 청년 ㅎㅎㅎ 학습자들에게 모제 불어 책은 거의 1차대전 이전 느낌일 듯. 그런데 중장년이라면 향수 자극되어요! 아..... 이런 교과서가 있었고 이것이 우리의 7-80년대에 슬쩍 들여보낸 그 무엇무엇들이... 같은 느낌, 잃어버린 시절 알아보는 느낌.

2021-08-20 12: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얄라알라 2021-08-20 12: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건 싫엇건 나름 불어 공부 도합 4년 이상했는데, ˝모제˝ 불어라 하실 때 ˝모제˝를 불어로 쓰는 건가? 스펠링이 뭔가? 하는 어리석은 궁금증이 듭니다.
불어는 공부하실 때, 듣기 말하기는 어떤 방식이 좋은지 여쭤봐도 좋을까요? 눈으로만 공부했더니 쏟은 시간 아깝게 언어가 체화되지 않더라고요.....

몰리 2021-08-20 12:31   좋아요 1 | URL
저자 이름이 모제인데 (Gaston Mauger), 이걸 다들 그냥 ˝모제 불어˝라고 부르더라고요. 지금은 거의 안 쓰는 거 같은데 그럼에도 전설로 남아 어디서든 ˝모제 불어˝로 말해만 통하는 거 같아요. 저는 듣기 말하기는 아직 시작도 못했어요. 오직 문법과 읽기만. ㅎㅎㅎㅎㅎ 그런데 책을 여럿 곁에 두고 문법과 어휘 진도 나가는 틈틈이 책으로 실제 진척을 지속적으로 확인하면 어느 정도의 체화는 일어나지 않나 합니다! 사실 저는 영어도 이렇게 공부한 (옛날 사람! 뭐든 글로 배운) 쪽인데, 아니 외국어는 그렇게 공부하는 게 맞지 같은 편견도 ㅎㅎㅎㅎ 있는 듯.

얄라알라 2021-08-20 12: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Mauger, 접수했습니다. 몰리님 친절하신 안내, 감사드립니다용^^ 저는 눈으로만 공부했는데, 당시에 큰 소리로 불어를 말하며 공부하던 친구는 불어동시통역사가 되었어요^^ 몰리님께서는 영어 그냥 네이티브처럼 하실듯요^^

몰리 2021-08-20 13:41   좋아요 1 | URL
영어 네이티브. 어휴 그럴 리가요. ㅜㅜ 그런데 모제 불어 책은 당장 인터넷에서 pdf 받을 수 있으니 그것도 너무 좋고, 제 경험으로는 정말 제대로 문법을 진행시켜줍니다. 한 가족의 프랑스 체류기 속에 불어 문법 전부를 체계적으로 담는 게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닐 거 같은데, 그 어려운 걸 하고 있는 책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