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슐라르가 이 책 불어판을 위해 쓴 서문이 있다.
이런 문장들이 나온다.
"이 책의 모든 페이지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든 그에 빛과 찬란함을 보태는 화가의 시선, 현대 화가의 시선과 만난다. 그의 눈은 전설이 품은 어둠의 가장 깊은 곳을 투시한다. 지난 시대들 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시대를 보는 우리 시대의 눈이 여기 있다. 생명의 여명기, 인간이 태어나면 가장 강인한 나무처럼 자라던 시대, 인간이면 바로 초인이기도 했던 시대. 이 시대 사람들을 그가 우리를 위해 발견하고 보여준다. (...) 샤갈의 그림 속에서, 성경은 초상화집이 된다. 이 책에, 인류 역사에서 가장 위대했던 한 가족의 초상화가 담겨 있다.
형식의 창조자이며 천재인 화가에게, 천국의 (Paradise) 일러스트레이션을 하는 작업이란 어떤 특권일 것인가! 그러나, 볼 줄 알며 보는 걸 사랑하는 눈을 가진 이에게, 모두가 천국이다. 샤갈은 세계를 사랑한다. 세계를 볼 줄 알기 때문이다. 아니 그보다 더, 세계를 그릴 줄 알기 때문이다. 천국이란 아름다운 색깔들을 갖는 세계다. 새로운 색을 발견한다는 것, 화가에게 이것은 천국의 기쁨이다.
그 기쁨과 함께 그는 그가 보지 못하는 것을 응시한다. 그는 창조한다. 모든 화가에게 그의 천국이 있다. (....)"
불어판 표지로는 이런 게 있는 거 같다.
바슐라르가 쓴 이 서문, 거부감도 들고 잘 이해되지 않는 문장들이었는데
종교, 기독교에 대한 태도가 조금 바뀌는 것만으로도 갑자기 이해되기 시작하고
심오하고 진실하다는 ㅎㅎㅎㅎㅎ 감탄이 일기 시작한다.
아니 이렇게까지 말씀하실 일인가요, 부정직하게? 부정직한 거 아닌가요. 신과 성경과
천국을 이렇게 말한다는 건. (....) 이런 쪽이었다가
읽고 생각하고, 침묵할 줄도 알게 되는 쪽으로.
샤갈의 그림들에 바슐라르가 경탄하며 쓴 논평들이, 전엔 잘 이해되지 않던 말들이
이제 이해되기 시작했다는 것만으로도 (종교에 대해 다르게 생각하게끔 자극한)
슬로터다이크에게 감사할 일이다.
종교에 대해 조금이라도 열린 태도가 해방시키는 정신의 면모들도 있는데, 선, 면, 색의 체험도
그에 속할 것이다.........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위의 책 이미지가 다르게 보인다.
물론 세속주의가 수행하는 해방도 있을 것인데, 종류가 다르겠으니
세속주의가 해주는 해방도 추구하고, 종교에 열린 태도가 가능하게 하는 해방도 추구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