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알라딘도서팀님의 "여름맞이 추리소설 10문 10답 이벤트!"
1. 가장 최근에 완독한 추리(장르)소설은?
조세핀 티의 '진리는 시간의 딸'입니다. 개인적으로 역사를 좋아하는데 역사 속 숨겨진 진실을 차분히 근거를 제시하며, 인간의 심리와 동기적인 면을 꿰뚫어 보면서, 설득력 있게 밝혀내는 과정이 참으로 인상적이었습니다. 어떤 점에선 웬만한 역사서보다도 더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을 정도입니다.
2. 당신이 살해당했다고 가정했을 때, 사건해결을 맡아줬으면 하는 탐정은? 반대로 절대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탐정이 있다면?
무엇보다도 응징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어떤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범인을 꼭 잡아냄은 물론 자신의 손으로 법의 심판까지 내리는 마이크 해머 탐정에게 꼭 의뢰하고 싶습니다. 반대로 절대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탐정은 형사 변호사 페리 메이슨입니다. 이 사람은 살인 피고인으로 고소된 용의자를 풀어주기 위해서라면 법에 어긋나는 행위도 서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범인이 이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되면 사건이 미궁으로 빠져 버리는 건 시간문제라고 생각합니다.
3. "휴가길, 이 책 한권 들고 가면 후회없다!" 널리 추천하고픈 추리(장르)소설은?
사실 모든 책이 다 그렇지만 개인차를 무시할 순 없다고 봅니다. 저라면 이미 읽은 책이지만 S. S. 반다인의 '그린 살인사건'을 들고 가고 싶습니다. 써늘한 겨울철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점도 더위엔 도움이 될 테고 장엄한 대성당를 보는 듯한 본격 미스터리의 정점을 다시 한 번 차분히 확인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4. 지금 당장 책 살 돈이 10만원 생긴다면, 가장 먼저 장바구니에 담을 추리(장르)소설은?
워낙에 고전적인 본격추리소설 걸작들을 좋아하기 때문에 요즘 계속해서 출간되고 있는 존 딕슨 카의 작품들이나 S. S. 반다인의 작품들을 우선적으로 담을 것 같습니다. 또한 일본 사회파 소설의 거장인 마쓰모토 세이쵸의 단편걸작들을 미야베 미유키가 편집하고 해설한 의미 있는 작품집도 구입하고 싶네요. 거기에 예전 황금기 고전들을 제대로 재현해 낸 일본 신본격파 작가들인 시마다 소지 또는 아야츠지 유키토, 아리스가와 아리스, 노리즈키 린타로 등의 작품을 하나하나 구입해서 읽고 싶습니다.
5. 지금까지 읽은 추리(장르)소설 중 가장 충격적인-예상외의 결말을 보여준 작품은?(단, 스포일러는 금지!)
요즘엔 작가들이 워낙 영리해져서 상상을 초월하는 반전을 통해 놀라운 결말을 보여주는 건 일도 아니게 되었지만, 그래도 저로선 아직까지도 애거서 크리스티 작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의 충격적인 결말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최근에 본 작품 중에선 브라이언 프린맨틀의 '사라진 남자'가 전혀 생각지 못한 뜻밖의 결말을 통해 대단히 유쾌하고 기분 좋은 반전을 보여준 작품으로 기억에 남습니다.
6. 우리 나라에 더 소개되었으면 하는 추리(장르)소설 작가가 있다면?
서양 쪽으론 의외로 다른 거장들에 비해 대단히 많이 소외되고 있는 거장들인 엘러리 퀸과 코넬 울리치, 존 딕슨 카가 우선적으로 더 많이 소개되어야 한다고 봅니다.그리고 우수한 작품들이 정말 많은데도 불구하고 국내에선 이상하게 인기가 없는 P. D. 제임스와 조르주 심농의 메그레 경감 시리즈도 더 많이 소개되어야 합니다. 작가가 아닌 "작품"으로는 가스통 르루의 "검은 옷 부인의 향수(Le Parfume de la Dame en Noir)"가 반드시 번역되었으면 합니다. '노란 방의 비밀'의 속편 격인 이 작품을 정말 보고 싶은데도 아직까지도 소개되지 않고 있다는 건 정말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일본 작가로는 일본 추리소설의 아버지라 할 에도가와 람포를 우선 거론하고 싶네요. 단편들은 모두 번역되어 소개됐지만, 장편들은 한 두 작품을 제외하면 전혀 소개되질 않고 있어서 답답합니다. 또한 요코미조 세이시와 거의 같은 시기에 활약하며 전후 일본 미스터리를 부흥시켰던 다카기 아키미츠도 많이 아쉽습니다. 특히 '문신 살인사건' 한 작품만 번역된 천재 탐정 가미즈 교스케(神津恭介) 시리즈를 목 놓아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 현실은 서글프기까지 합니다. 긴다이치 고스케(金田一耕助)의 유일한 라이벌이라고 생각되는 이 명탐정의 눈부신 활약을 단지 한 작품으로 보고 그치고 만다는 건 추리소설계의 손실도 이만한 손실이 없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요즘 많이 소개되고 있는 여류작가들인 미야베 미유키나 다카무라 가오루, 기리노 나츠오보다 개인적으로 백배는 더 낫다고 생각하는 나츠키 시즈코(夏樹靜子)의 작품들도 많이 소개됐으면 좋겠습니다. 꽤 오래된 작가인데도 불구하고 어떤 작품을 읽어 봐도 일정 수준 이상의 훌륭한 작품성을 지닌 진정한 대작가입니다. 이런 작가를 무시한 채 방치하고 있다는 건 뭐랄까 우리 출판계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 같아 씁쓸하기까지 합니다.
7. 올해 상반기 출간된 추리(장르)소설 중 최고작을 꼽는다면?
올해에도 정말 좋은 소설들이 많이 출간되었지만, 개인적으론 도로시 세이어즈의 '증인이 너무 많다'를 꼽고 싶습니다. 주로 일본 미스터리 위주로 현대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와중에 이런 고전적인 걸작이 꿋꿋하게 소개됐다는 사실은 기적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역시나 피터 윔지 경의 재기 넘치는 활약은 여전하며, 황금기 미스터리의 진수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일편으로 미스터리 팬이라면 읽어볼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8. '셜록 홈즈'와 '아르센 뤼팽' 역 배우를 내맘대로 캐스팅해본다면?
이 질문 정말 어렵네요. 전 되도록이면 영상을 통해 책으로 얻은 기존의 이미지가 깨지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 중의 하나긴 합니다만, 굳이 꼽아 본다면 셜록 홈즈는 영국 배우인 티모시 달튼이 했으면 좋겠고, 뤼팽은 몽테크리스토 백작도 했었던 리차드 챔벌레인 정도가 어떨까 싶네요. 물론 현재 나이는 고려하지 않았고 전성기 때 이미지만 생각했습니다. 아마도 제 마음에 딱 들어맞는 적역은 찾기가 힘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9. 지금까지 읽은 추리(장르)소설 중 가장 '괴작'이라고 생각하는 작품은? '
'타원형 거울'과 함께 일본 주재 시에 일본어로 쓴 추리소설이라 하여 정말 기대가 컸던 김내성의 '탐정 소설가의 살인'이야말로 그 정체를 도대체 뭐라고 설명해야 하는 걸까요? 다른 작가 작품의 스포일러를 함부로 누설하질 않나, 그 처참한(?) 결말 하며, 도대체 이전의 김내성이 보여준 영특함과 재기발랄함(?)은 찾을래야 찾아볼 수가 없더군요. 이 작품은 '안티 미스터리(?)'의 선구작인 걸까요? 진정한 괴작은 이런 것이라는 걸 보여 준 대표적 케이스라고 생각합니다. ^^
10. 생사에 관계없이, 실제로 가장 만나보고 싶은 추리(장르)소설 작가가 있다면.
사실 막상 직접 만나게 되면 오히려 말문이 막혀 버릴 것 같기는 합니다만, 개인적으론 미야베 미유키를 만나서 도대체 '화차'의 결말을 왜 그런 식으로 끝냈는지 물어보고 싶습니다. 전 분명 더 많은 걸 기대했기 때문에 순간 정말 어이가 없었거든요. 능력이 모자라 도저히 쓸 수 없어서 그랬던 건지 아니면 독자를 우롱하기 위해 그랬는지 정말 궁금하기 때문에 작가를 붙잡고 상세한 설명을 꼭 들어보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