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로열 - 제149회 나오키상 수상작
사쿠라기 시노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호텔 로열>2013년 제149회 나오키 상 수상작 이다.

소설 속의 7개의 이야기는 주인공이 각각 다른 단편 소설이지만 책 제목대로 러브호텔인 로열 호텔에서 일어나는 인간들의 이야기다.

저자인 사쿠라기 시노<순수의 영역>이란 소설을 통해 만났다.

순수의 영역도 그랬지만 시노는

자신이 살고 있는 홋카이도를 배경으로 소설을 쓰고

배경묘사와 주인공들의 감정묘사가 세밀하다.

인간 마음 속 우리 자신도  못 느끼고 있는 부분을 꺼낸다.

 

 

 

 이번 소설도 예외는 아니다.

주인공들의 사실적인 감정묘사로 금방 주인공의 감정이 나에게 이입 되었다.

호텔로열의 주인공들은 행복하지 않다.

그렇다고 불행 때문에 결코 어찌되지도 않는다.

어쩜 행, 불행이란 말은 글로 정리하다보니 나온 말이지

원래 우리 인생에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채소가게에 가면 채소 주세요.”라 하지 않고

가지, 혹은 무, 배추, 상추 주세요. 이렇게 주문하듯

우리의 일상에서도 커피가 맛있어 좋다. 혹은 날씨가 맑아 기분이 좋다.

발이 밟혀 기분이 나쁘다.

로 표현하지 일상이 쭉 행, 불행 상태는 아니지 않는가?

그렇다.

우리의 일상도 글로 표현하면 행복이다, 아니다, 란 말로 표현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냥 하루 일상만 있지!

어째든

호텔 로열의 이야기는 우리의 삶을 소설로 읽어보는 것 같다.

저자도 인생을 꿰뚫고 있으니

힘이 많이 들든 덜 들든 결국 살아내는 우리 모습을 그렸다.

**

 소설 읽기가 끝났다.

이입된 감정 때문인지, 황량한 습원에 낡은 건물로 남은 폐업한

호텔로열이 눈에 선하다

 나무꼭대기에 홀로 앉은 까마귀처럼,

 고독하지만  쓸쓸하진 않은 

그러면서 인생이지  하는 마음을 만들었다.

이게 사쿠라노 시기의 글의 힘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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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않다면 석양이 이토록 아름다울 리 없다
마루야마 겐지 지음, 이영희 옮김 / 바다출판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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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마루야마 겐지의 글을 읽으면 늘 들뜬다.

그의 글이 나를 선동하기 때문이다.

읽는 내내 고무되어 무엇인가 해야 하지 않나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동안 나의 들뜸은 소설의 주인공이 나에게 투영된 것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의 수필집을 읽으면서 또 들뜬다.

가슴이 벅차올라 가만히 있을 수 없다.

70세를 바라보는 노 작가의 글은 달관의 경지에 있고, 그것은 나의 가슴을 뜨겁게 달군다.

그렇다고 이 책이 데모를 부추기는 사상서란 말은 아니다.

그리고 나도 선동을 당할 말한 나이도 아니다. 

이 책은 정원을 가꾸는 정원 집사의 사계절 이야기다.

그럼에도 이런 마음을 들게 하는 것은 그의 글 솜씨 탓이기도 하겠지만

사계절의 정원에서 피고 지는 꽃과 나무를 통해 말하는 인생의 깨달음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차가운 겨울을 뚫고 찾아온 생명.

이 생명이 움트고, 꽃을 피울 때 그는 꽃의 화려함에 찬사를 보낸다.

그리고 꽃이 져버리는 슬픔 때문에 그는 절망에 가득 차 한탄 늘어 놓는다.

용맹한 자로 인식되던 마루야마 겐지의 절망의 이야기를 읽고 있자니

정말 즐겁다.

 그러나 나의 즐거움은 잠깐 이고

그는 곧 꽃을 보내고 푸른 잎의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의미를 찾아내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표현 한다. 

P80-81

풀잎도 나뭇잎도 한계까지 짙푸르러지고 도톰해지면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 준다. 그리고 종국에는 행복의 부스러기마저 소멸시켜 버린 듯 한 표정의 나를 향해 계몽적인 말을 던져 준다.

끝없는 변화가 당연한 이 세계에서 꽃의 계절만을 돌아봐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쾌락과 고통이 나뉘기 어려운 이 생애를 뚫고 나가야 하는 존재이므로, 결코 한때의 더 나은 상태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고 충고 한다. 늘 현재에 밖에 존재하지 않는 자신을 파악하고, 그때그때 자신을 다스리자고, 또 그리하며 살아가도록 된 숙명이고 끝을 맺는다.”

 최근에 읽은 수필집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 등에서 추상 같은 호령으로 나를 일깨웠다.

위에 언급한 책들 보다 먼저 쓴 이 책에서는 한없이 자연에 승복하는 자연의 일부로서의 인간 모습을 느낀다.

마루야마 겐지의 글을 읽으며 자연의 힘을 다시 한 번 인식한다.

어느 누구의 지배 받지 않을 것 같은 마루야마 겐지가 나무와 꽃의 집사로 헌신하고 있다니...

**

 우리네 인생도 죽음을 가진 유한한 생명체이기에 늙어간다.

그의 말 대로 자연의 사계에서 꽃의 계절만 집착해서는 안 되겠지

그리고 나이 들어가는 나에게

그의 말을 빌려서 말한다.

그렇지 않다면 석양이 이토록 아름다울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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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들 - 루이스 웨인의 웃기고 슬프고 이상한
크리스 비틀스 지음, 최민우 옮김 / 저공비행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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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이스 웨인의 고양이들>은 고양이에 대한 관심으로 샀다.

그가 그린 재미있는 고양이 그림은 흔히 볼 수 있는 친근한 고양이 그림이었다.

그 친근함의 근원을 찾아보니 <미키마우스> <톰과 제리> <펠리스 더 캣> 같은 동물을 의인화한 에니메이션과 캐릭터들이 루이스 웨인의 손끝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었다.

 

 ‘루이스 웨인1860년에 태어나 1939년에 죽었다.

루이스 웨인이 살던 시대는 쥐들이 많아 집집마다 고양이를 키우던 시대라 

고양이와 인간이 더욱 친밀하던 시대였다.

그 친밀함을 반영하듯 그의 고양이 그림은 인기가 높았다.

천재적 그림 솜씨로 의인화 된 고양이를 그렸기 때문이다.

 그가 고양이를 그리게 된 동기는

유방암에 걸린 아내를 위로해 주기 위해 집에 키우던 고양이 그림을 그려 주었고

부인이 그림을 잡지사에 보내기를 권유해 결과로

그는 고양이 작가로 이름을 알렸다.

일차 대전이 일어나기 전까지 그의 그림에 대한 수요는 가히 폭발적 이었다.

그의 그림이 실리지 않은 곳이 없었다.

신문과 잡지 책의 삽화 그리고 엽서 등으로

그러다 보니 너무 흔해진 그림과 이재에 밝지 못한 루이스 웨인은

일차 대전의 발발로 수요가 급감하면서 인기도 떨어지고 돈도 떨어졌다.

생활고로 작품 활동도 힘들어진 그는 결국 정신분열로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한다.

 그리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 사라졌다.

1983년 거의 잊혀 진 루이스 웨인을 영국의 예술계의 유명한 딜러이자 일러스트 및 만화 전문가인 크리스 비틀스가 재조명 했다.

크리스 비틀스는 1983년부터 매년 루이스 웨인 전시회를 열고 있다.

그리고 루이스 웨인의 작품과 루이스 웨인이 쓴 신문 사설, 그리고 그에 대한 평가를 모아 이 책을 만들었다.

**

 지극히 아름다운 세계는 신의 세계이다.

모든 예술가들은 이 세계를 넘보며

끊임없이 자신을 신의 경지의 예술로 밀어 붙인다.

루이스 웨인을 포함하여 고흐, 슈만, 헤밍웨이, 차이코프스키, 랭보 등의 예술가의 생애를 보면, 그들의 뛰어난 예술성은 그들의 인생을 힘들게 하는 천형이란 생각이 든다.

너무나 감각적이고 뛰어난 천재적 예술성은 오히려 뇌가 감당하기 힘들어

광기마저 보인다.

그 광기는 그들의 예술세계를 더욱 빛나게 하지만 때로는 파멸로 몰고간다.

예술가들이 만들어 낸 최상의 경지의 예술 작품들 덕분에 우리는 다양하게 즐긴다.

책을 읽고 음악을 들으며 그림을 본다

예술이 가져다주는 인생의 휠링 시간.

잠깐 예술가들이 없는 세상을 상상해 보았다.

세상은 금방 무채색이 되고  

무기력하다.

 이 세상에는  예술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이 순간 혼신의 힘을 다하여 안테나를 드높여 신의 뜻을 받아

천형을 기꺼이 해내는 예술가들에게 찬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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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싶어지면 전화해
이용덕 지음, 양윤옥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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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매우 독특한 소설이었다.
섬세한 심리묘사를 통해 보여주는 인간관계도 그랬고,
180도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는 세계관도 그랬다.
작가는,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남녀 주인공을 통해, 희망에 대한 우리의 일반적 생각을 통렬히 비웃고, 오래전부터 인간사회에 존재해왔던 계급 관계, 의존적 관계를 가차 없이 파헤친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인간 사회 속엔 계급이 있다.
그 옛날엔 귀족과 평민이란 확실한 구분법으로, 지금은 보이지 않는 사회조직과 경제 구조가 계급을 엄연히 나누고 있으니 인간 사회에 본래 평등이란 존재하지 않는 지도 모르겠다.

작가는,
인간관계 속에 만들어진 갑의 ‘갑질’을 세밀하게 늘어놓고 거기에 대한 ‘을’의 반격을 보여준다.
이 세상의 갑들은 희망과 행복을 구체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저 언덕 넘어 행복의 파랑새가 있다’고 막연히 이야기 한다. 종교에서의 천국과 같이....그리고 행복의 조건으로 추천한 것이 그저 착하게 순응하는 긍정적 삶.
을의 시선에서 보면 긍정적 삶이란 갑들이 자신들이 가진 것들을 관심을 가지지 않도록 하는 악의를 지녔다.
우리의 주인공 ‘을’은 물론 긍정적인 삶에 반발한다. 악의에 가득 차 반발로 선택한 것이 죽음.

여자 주인공 ‘하쓰미’를 통해 이런 긍정적인 삶은 여지없이 비틀린다.
하쓰미가 좋아하는 책은 ‘살인’, ‘지옥’, ‘엽기’, ‘괴물’, ‘학살’, 에 관련된 것이며 ‘호러물, 포르노 영화’에 관심이 있다. 그녀는 ‘악의’에 가득 찬 것에 늘 끌린다. 그러나 그녀가 가진 악의는 평소엔 보이지 않다가 상대가 공격할 때 반격으로 드러난다.
그런 그녀에게 순수한 마음의 소유자 ‘도쿠야마’가 나타난다. 하쓰미는 도쿠야마가 접해 보지 못한
세상을 보여준다. 악의로 가득 찬 세상을.
**
‘악의’의 사전적 의미는 ‘남을 해치려 하거나 미워하는 악한 마음’이며,
‘선의’의 사전적 의미는 ‘남에게 도움을 주고자 하거나 좋은 목적을 가진 착한 마음’이다.
의미는 그러하지만, 착한 마음이라 해서 타인에게 전부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듯, 악의 또한 타인에게 꼭 나쁘게 작용하는 것도 아니다.
동냥그릇을 들고 온 사람에게 착한 마음으로 계속 도와주어 자립심을 잃게 할 수도 있고, 악의로 동냥그릇을 깨버려 분기탱천한 거지의 자립심을 유발할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하쓰미의 ‘악의’에 가득찬 세상 비틀기는 도쿠야마 그리고 도쿠야마와 같은 평범한 우리같은 사람들에게 유쾌한 대리만족과 카타르시스를
준다.

도쿠야마는 하쓰미 덕분에 인간관계 속 ‘을’에서 벗어나 어디에도 끌려 다니지 않는 인간으로 자립하는 동시에 하쓰미가 추구하는 세계로 끌려간다.
하쓰미에게 이 세상은 악의로 가득 차 있다. 이런 세상을 벗어나는 것은 ‘죽음’이며 죽음의 동반자로 도쿠야마를 선택한다.
**
<죽고 싶어지면 전화해>는 관계를 맺어가는 과정에 나타나는 인간들의 다양한 마음의 양상을 흥미롭게 보여 준다.
그리고 세상이 악의로 가득 차 있는 것 처럼 느끼게 했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찾아낸 것은 하쓰미의 선택보다는 살아서 세상이 보여주는 악의를 두눈 뜨고 쳐다 볼 용기를 가지는 것.
그리고 상대의 행위나 말 속에서 선의나 악의를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 중요한 것은 어떤 관계 속에서도 끌려 다니지 않는 자신을 만드는 것.

작가, 이 욘도쿠는 재일 한국인 3세이다.
일본이란 사회를 살아가는 재일 한국인.
이 소설 속에 작가가 느끼는 일본 사회의 불합리에 대한 그의 깊은 고뇌를 엿볼 수 있다.
이 또한 계급의 벽에서 온 건지도 모르겠다.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일본에서 살았고, 그 또한 먹고 입고 누리는 모든 것이 일본에서 온 것이지만 일본에서 그는 영원히 재일 한국인, 결코 일본인은 아닌 것이다.
도쿠야마의 청혼에 대한 하쓰미의 거절 이유는 ‘재일 한국인’.
이 또한 신분인가? 아니 계급의 차이 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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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공허한 십자가 (보급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자음과모음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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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중지


 <공허한 십자가> 역시 게이고 답다. 

강물이 흘러가듯 넘실넘실 잘 흘러간다.

유려한 글 솜씨다.

다수의 그의 책을 읽어서 인지

이제 그의 글의 방식이 있다고 느껴진다.

 

 

 

 

 그의 소설의 주제는 (내가 읽은 것 중심)

찬반 논란을 가져다 줄 내용으로

전개 방식은 감정묘사가 절제된 사건 위주의 전개.

그리고 마지막엔 반전이 준비되어 있다.

 이번 소설의 주제는 사형제도이다.

사형을 주장하는 피해자 가족과 사건을 일으킨 범죄자와 그 가족의 사정을 보여준다.

사형제도에 대한 결론은 작가가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판단을 독자에게 맡겼다.

 

 

  그의 두뇌 속엔 소설을 쓰는 형식이 들어 있는 것 같다.

말하자면 추리 소설을 쓰기에 최적화된 프로그램과 같은 것을 가지고 있지 않나 하는 것!

그것이 다작을 가능케 하는 천재성인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독자의 욕심인지 몰라도

책을 읽으면서 나의 감정 선을 툭 건드리는 문장을 기다렸다.

그러나 결코 그 순간은 오지 않았다.

책 내용에서

살인 사건으로 딸을 잃은 엄마가 사형을 주장하는 측으로 나오는데

사건위주의 전개로 엄마의 슬픔에 공감이 일어나지 않았다.

 혹 다른 독자는 그렇게 말할지 모르겠다.

그러면 추리소설을 읽지 말고 다른 장르의 소설을 읽어 라고...

그렇지만

히가시노 게이고 정도의 대가라면

추리도 보여주고 공감될 수 있는 감정도 만들어 주고.

가능하지 않을까?

하하 순전히 나 혼자의 감상이다. 딴 사람들은 받았을지 모르니

 그래도 그가 우리에게 주는 선물은

사형폐지론 또는 사형 집행론의 논문보다는 사형제도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이야기로 만들어 일반 독자에게 쉽게 사회 문제에 대한 생각거리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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