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어지면 전화해
이용덕 지음, 양윤옥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8월
평점 :
품절


매우 독특한 소설이었다.
섬세한 심리묘사를 통해 보여주는 인간관계도 그랬고,
180도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는 세계관도 그랬다.
작가는,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남녀 주인공을 통해, 희망에 대한 우리의 일반적 생각을 통렬히 비웃고, 오래전부터 인간사회에 존재해왔던 계급 관계, 의존적 관계를 가차 없이 파헤친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인간 사회 속엔 계급이 있다.
그 옛날엔 귀족과 평민이란 확실한 구분법으로, 지금은 보이지 않는 사회조직과 경제 구조가 계급을 엄연히 나누고 있으니 인간 사회에 본래 평등이란 존재하지 않는 지도 모르겠다.

작가는,
인간관계 속에 만들어진 갑의 ‘갑질’을 세밀하게 늘어놓고 거기에 대한 ‘을’의 반격을 보여준다.
이 세상의 갑들은 희망과 행복을 구체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저 언덕 넘어 행복의 파랑새가 있다’고 막연히 이야기 한다. 종교에서의 천국과 같이....그리고 행복의 조건으로 추천한 것이 그저 착하게 순응하는 긍정적 삶.
을의 시선에서 보면 긍정적 삶이란 갑들이 자신들이 가진 것들을 관심을 가지지 않도록 하는 악의를 지녔다.
우리의 주인공 ‘을’은 물론 긍정적인 삶에 반발한다. 악의에 가득 차 반발로 선택한 것이 죽음.

여자 주인공 ‘하쓰미’를 통해 이런 긍정적인 삶은 여지없이 비틀린다.
하쓰미가 좋아하는 책은 ‘살인’, ‘지옥’, ‘엽기’, ‘괴물’, ‘학살’, 에 관련된 것이며 ‘호러물, 포르노 영화’에 관심이 있다. 그녀는 ‘악의’에 가득 찬 것에 늘 끌린다. 그러나 그녀가 가진 악의는 평소엔 보이지 않다가 상대가 공격할 때 반격으로 드러난다.
그런 그녀에게 순수한 마음의 소유자 ‘도쿠야마’가 나타난다. 하쓰미는 도쿠야마가 접해 보지 못한
세상을 보여준다. 악의로 가득 찬 세상을.
**
‘악의’의 사전적 의미는 ‘남을 해치려 하거나 미워하는 악한 마음’이며,
‘선의’의 사전적 의미는 ‘남에게 도움을 주고자 하거나 좋은 목적을 가진 착한 마음’이다.
의미는 그러하지만, 착한 마음이라 해서 타인에게 전부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듯, 악의 또한 타인에게 꼭 나쁘게 작용하는 것도 아니다.
동냥그릇을 들고 온 사람에게 착한 마음으로 계속 도와주어 자립심을 잃게 할 수도 있고, 악의로 동냥그릇을 깨버려 분기탱천한 거지의 자립심을 유발할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하쓰미의 ‘악의’에 가득찬 세상 비틀기는 도쿠야마 그리고 도쿠야마와 같은 평범한 우리같은 사람들에게 유쾌한 대리만족과 카타르시스를
준다.

도쿠야마는 하쓰미 덕분에 인간관계 속 ‘을’에서 벗어나 어디에도 끌려 다니지 않는 인간으로 자립하는 동시에 하쓰미가 추구하는 세계로 끌려간다.
하쓰미에게 이 세상은 악의로 가득 차 있다. 이런 세상을 벗어나는 것은 ‘죽음’이며 죽음의 동반자로 도쿠야마를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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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싶어지면 전화해>는 관계를 맺어가는 과정에 나타나는 인간들의 다양한 마음의 양상을 흥미롭게 보여 준다.
그리고 세상이 악의로 가득 차 있는 것 처럼 느끼게 했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찾아낸 것은 하쓰미의 선택보다는 살아서 세상이 보여주는 악의를 두눈 뜨고 쳐다 볼 용기를 가지는 것.
그리고 상대의 행위나 말 속에서 선의나 악의를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 중요한 것은 어떤 관계 속에서도 끌려 다니지 않는 자신을 만드는 것.

작가, 이 욘도쿠는 재일 한국인 3세이다.
일본이란 사회를 살아가는 재일 한국인.
이 소설 속에 작가가 느끼는 일본 사회의 불합리에 대한 그의 깊은 고뇌를 엿볼 수 있다.
이 또한 계급의 벽에서 온 건지도 모르겠다.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일본에서 살았고, 그 또한 먹고 입고 누리는 모든 것이 일본에서 온 것이지만 일본에서 그는 영원히 재일 한국인, 결코 일본인은 아닌 것이다.
도쿠야마의 청혼에 대한 하쓰미의 거절 이유는 ‘재일 한국인’.
이 또한 신분인가? 아니 계급의 차이 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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