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유혜자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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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파트리크 쥐스킨드

사람의 심리를 외계물체, 범죄자, 귀신을 동원하지 않고도 스릴러 장르처럼

흥미진진하게 표현할 수 있는 작가다.

<비둘기>를 읽고 그런 생각을 했다.

 주인공 조나단

그는 은행경비 일을 한다.

성실하게 산 덕에 공동 주택의 자기 집도 마련 한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사실 우리도

거울 속, 자기 모습에 실망하면 이 세상을 살아가기 힘들지 않는가?

 그런 자부심이 흔들리지 않는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조나단에게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그의 집 앞 복도를 유유자적 걸어 다니는 비둘기.

한 번도 침해받지 않은 그의 확고한 영역 속에 뛰어든 비둘기.

비둘기가 조나단의 하루 일상을 흔들었다.

 <비둘기>는 비둘기에 쫓겨 집을 떠나 호텔로 거처를 옮긴

조나단의 하루 동안 이야기다.

 작가들의 특징이겠지만

쥐스킨드의 관찰력은 대단하다.

마치 조나단을 실제로 보며 글로 옮긴 것처럼

심리변화에 따른 조나단의 행동을

사실감 있게 흥미진진하게 써 내려간다.

그 생동감 있는 이야기 속에

나도 조나단이 되어버렸다.

 

 

 장기에서 외통수에 걸린 것처럼 출구가 보이지 않았지만

비둘기에 몰려 집을 떠난 조나단의 두려웠던 하루의 가출은

새날과 함께

갑자기 내린 소낙비로 끝이 난다.

나도 내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가벼워진 마음으로 책을 덮었다.

그 두려웠던 마음은 어디로 갔을까?

웃음이 난다.

**

 우리도 그런 경험이 있지 않은가?

속담에도 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어느 날 찾아온 불안이

를 조각내기 시작한다.

점점 커져가는 두려움.

그동안 열심히 쌓아온 자부심은 어디로 갔는지

두려움으로 산산조각 나는 마음,

 

 거울 속 는 더 이상 멋있는 가 아니다.

허둥대는 초라한 만 남아있다.

쥐스킨트는 비둘기의 조나단을 통해

그런 모습을 잘 그렸다. 

 그렇다. 어떤 문제가 닥쳤을 때

그것은 마음이 몰고 가는 심리에 불과하다.

마음에서 벗어나는 것은

그 문제를 그냥 두고 밖으로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자연 속으로 들어간다.

소낙비든, 새소리든, 바람이든, 푸른 나무든, 때론 지나가는 사람이든

새롭게 만난 세상의 것들은

더 이상 작은 로 분열시키지 않는다.

분열된 작은 마음을 떠나

지금 이 순간의 세상을 인식할 때

우주와 합체된, 더 이상 두려움이 없는 로 거듭나는 것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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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다 우울한 밤에
나카무라 후미노리 지음, 양윤옥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고아라서 다행이야 원장님을 만날 수 있었잖아.”

책 속의 구절이다.

이 책이 남긴 여운이기도 하고...

모든 동물은 양육이 중요하다.

생명을 유지해야 하니까.

그러나 본능에 해당하는 먹이 사냥 중심으로 만 양육하는 동물과는 다르게

인간은 다양한 감정과 지능이 있기에 그 양육 방식은 더욱 중요하다.

이미 가지고 온 유전자는 어떻게 할 수 없을지라도 양육과정에서 얼마든지 다르게 자라기 때문이다.

양육은 부모가 담당을 하고

아이들은 부모의 울타리 속에서 불완전한 세상에서 불안과 공포를 모르고 성장한다.

그렇다. 아이의 우주는 부모다.

우리는 모두 부모를 가지고 그 우주에 태어난다.

나도 그렇게 태어났고 다행히도 부모에게 버림받지도 타박 받지도 않고 자랐다.

그러나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모든게  다 우울한 밤에>

주인공 는 태어나자마자 그 우주에서 쫓겨나 고아원에서 자란다.

그래도 운이 좋은 남자라 좋은 고아원 원장덕에 잘 컸다.

그렇지만 버림을 받았다는 그 자체로 우울한 남자다.

그 우울함은

세상에 대해 분노로 표출되고

그 때문에 직업인 교도관 생활이 위태위태하다.

그럼에도 범죄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은 이유는

원장이 주인공 에게 보여준 세상이 그를 떠받치고 있기 때문이다.

자살과 범죄는 이 세상에 지는 것이라고!”

원장이 자살하려는 꼬마를 잡으며 한 말이다.

그리고 인간이란 존재를 이렇게 알려준다.

너는 아메바 같은 거였어, 알기 쉽게 말하자면 ...”

이건 엄청난 기적이야. 아메바와 너를 이어주는 수십억년 세월의 끈, 그 사이에는 무수한 생물과 인간이 있어 어딘가에서 그 끈이 끊겼다면, 뭔가 일이 터져서 그 연속이 끊겼다면, 지금의 너는 없어.....”

현재라는 건 어떤 과거도 다 이겨버리는 거야. 그 아메바와 너를 잇는 무수한 생물의 연속은, 그 수십억년의 끈이라는 엄청난 기적의 연속은, 알겠냐. 모조리 바로 지금의 너를 위해 있었단 말이야.”

또 그는

너는 아무 것도 모르지

베토벤도 모르고 바흐도 몰라, 셰익스피어를 읽은 적도 없고, 카프카나 아베 고보가 얼마나 천재였는지도 알지 못해, 빌 에반스의 피아노도

너는 아무것도 알지 못해, 이 세상에 얼마나 멋진 것들이 많은지. 내가 방금 말한 건 전부 다 보도록 해라

주인공 를 키운 원장의 양육 태도는

가 버림받은 것에 대한 반항으로 세상에 대해 나쁜 사람이 되고 싶은 것과 잘 살아서 세상에 지지 않으려고 하는 두 갈래 길의 방황을 끝내고 안착하도록 만든다.

**

그러나 부모가 있다고 다 행운은 아니다.

주인공 의 친구 마시타는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다 결국 자살을 한다.

<모든 게 다 우울한 밤에>

인간의 문제를 가족의 문제로만 보지 않고

이 사회에 속한 모든 인간들의 문제로 본다.

주인공 와 미시타를 통해

아이는 좋은 부모를 만나야 하겠지만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아이를 키워내는 사회 속 구성원이 좋아야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하고 싶어 한다.

아이를 잘 키워낼 수 있는 양육자가 훌륭한 사회 말이다.

훌륭한 사회 속에 속한 주인공

원장에게 받았듯 그 받은 것을 실천한다 

 두 사람을 살해한 고아이자 사형수인 18세의 야마이

야마이는 주인공과는 다른 양육 속에 살았다.

처음 태어날 때부터 얻어터지는, 그래서 얻어터지는 것을 피하면

또 다른 폭력이 그를 기다린다.

결국 약자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나쁘다는 인식도 못한 채 범죄의 길로 가게 되는 그런 삶

사람들의 질타와 비난을 받은 야마이는 사형을 선고받고 그대로 죽기를 기다린다.

그런 야마이에게 가 원장을 통해 얻은 따뜻한 인정을 건네다.

 “분명 네 말이 맞아. 네가 살아 있으면 괴로워할 사람이 있어. 네가 죽는다고 해도 원래대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유족들이 내기 죽기를 원한다면, 최소한 그 사람들을 더 이상 불행하게 만들 필요는 없겠지. 너는 죽는 게 마땅할 거야, 그래도, 그래도 너는 이 세상에 태어났잖아? 너는 이어져 있어. 너희 부모 따위는 아무려나 상관없어. 나도 아버지 어머니가 없어. 겨우 한세대 이전 사람에게 버림을 받았다고, 그렇다고 그런 것에 신경 쓸 필요는 없어

**

저자는

인간의 문제를 깊은 통찰로 따뜻한 시선을 가지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불행한 조건에 속해 있는 인간의 심연을 파헤쳐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그의 책에는 쓸 만한 말로 가득 차 있었다.

나카무라 후미노리’.

<쓰리>라는 작품에서도 볼 수 있었던

그리고 이 책 속에서도 느낀,

세상의 그늘 쪽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후미노리가 보여주는 따뜻한 사랑에 존경을 보낸다.

후미노리 덕에

우울함을 걷어내고 밝은 햇살을 만끽하는 오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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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로열 - 제149회 나오키상 수상작
사쿠라기 시노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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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텔 로열>2013년 제149회 나오키 상 수상작 이다.

소설 속의 7개의 이야기는 주인공이 각각 다른 단편 소설이지만 책 제목대로 러브호텔인 로열 호텔에서 일어나는 인간들의 이야기다.

저자인 사쿠라기 시노<순수의 영역>이란 소설을 통해 만났다.

순수의 영역도 그랬지만 시노는

자신이 살고 있는 홋카이도를 배경으로 소설을 쓰고

배경묘사와 주인공들의 감정묘사가 세밀하다.

인간 마음 속 우리 자신도  못 느끼고 있는 부분을 꺼낸다.

 

 

 

 이번 소설도 예외는 아니다.

주인공들의 사실적인 감정묘사로 금방 주인공의 감정이 나에게 이입 되었다.

호텔로열의 주인공들은 행복하지 않다.

그렇다고 불행 때문에 결코 어찌되지도 않는다.

어쩜 행, 불행이란 말은 글로 정리하다보니 나온 말이지

원래 우리 인생에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채소가게에 가면 채소 주세요.”라 하지 않고

가지, 혹은 무, 배추, 상추 주세요. 이렇게 주문하듯

우리의 일상에서도 커피가 맛있어 좋다. 혹은 날씨가 맑아 기분이 좋다.

발이 밟혀 기분이 나쁘다.

로 표현하지 일상이 쭉 행, 불행 상태는 아니지 않는가?

그렇다.

우리의 일상도 글로 표현하면 행복이다, 아니다, 란 말로 표현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냥 하루 일상만 있지!

어째든

호텔 로열의 이야기는 우리의 삶을 소설로 읽어보는 것 같다.

저자도 인생을 꿰뚫고 있으니

힘이 많이 들든 덜 들든 결국 살아내는 우리 모습을 그렸다.

**

 소설 읽기가 끝났다.

이입된 감정 때문인지, 황량한 습원에 낡은 건물로 남은 폐업한

호텔로열이 눈에 선하다

 나무꼭대기에 홀로 앉은 까마귀처럼,

 고독하지만  쓸쓸하진 않은 

그러면서 인생이지  하는 마음을 만들었다.

이게 사쿠라노 시기의 글의 힘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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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않다면 석양이 이토록 아름다울 리 없다
마루야마 겐지 지음, 이영희 옮김 / 바다출판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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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루야마 겐지의 글을 읽으면 늘 들뜬다.

그의 글이 나를 선동하기 때문이다.

읽는 내내 고무되어 무엇인가 해야 하지 않나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동안 나의 들뜸은 소설의 주인공이 나에게 투영된 것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의 수필집을 읽으면서 또 들뜬다.

가슴이 벅차올라 가만히 있을 수 없다.

70세를 바라보는 노 작가의 글은 달관의 경지에 있고, 그것은 나의 가슴을 뜨겁게 달군다.

그렇다고 이 책이 데모를 부추기는 사상서란 말은 아니다.

그리고 나도 선동을 당할 말한 나이도 아니다. 

이 책은 정원을 가꾸는 정원 집사의 사계절 이야기다.

그럼에도 이런 마음을 들게 하는 것은 그의 글 솜씨 탓이기도 하겠지만

사계절의 정원에서 피고 지는 꽃과 나무를 통해 말하는 인생의 깨달음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차가운 겨울을 뚫고 찾아온 생명.

이 생명이 움트고, 꽃을 피울 때 그는 꽃의 화려함에 찬사를 보낸다.

그리고 꽃이 져버리는 슬픔 때문에 그는 절망에 가득 차 한탄 늘어 놓는다.

용맹한 자로 인식되던 마루야마 겐지의 절망의 이야기를 읽고 있자니

정말 즐겁다.

 그러나 나의 즐거움은 잠깐 이고

그는 곧 꽃을 보내고 푸른 잎의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의미를 찾아내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표현 한다. 

P80-81

풀잎도 나뭇잎도 한계까지 짙푸르러지고 도톰해지면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 준다. 그리고 종국에는 행복의 부스러기마저 소멸시켜 버린 듯 한 표정의 나를 향해 계몽적인 말을 던져 준다.

끝없는 변화가 당연한 이 세계에서 꽃의 계절만을 돌아봐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쾌락과 고통이 나뉘기 어려운 이 생애를 뚫고 나가야 하는 존재이므로, 결코 한때의 더 나은 상태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고 충고 한다. 늘 현재에 밖에 존재하지 않는 자신을 파악하고, 그때그때 자신을 다스리자고, 또 그리하며 살아가도록 된 숙명이고 끝을 맺는다.”

 최근에 읽은 수필집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 등에서 추상 같은 호령으로 나를 일깨웠다.

위에 언급한 책들 보다 먼저 쓴 이 책에서는 한없이 자연에 승복하는 자연의 일부로서의 인간 모습을 느낀다.

마루야마 겐지의 글을 읽으며 자연의 힘을 다시 한 번 인식한다.

어느 누구의 지배 받지 않을 것 같은 마루야마 겐지가 나무와 꽃의 집사로 헌신하고 있다니...

**

 우리네 인생도 죽음을 가진 유한한 생명체이기에 늙어간다.

그의 말 대로 자연의 사계에서 꽃의 계절만 집착해서는 안 되겠지

그리고 나이 들어가는 나에게

그의 말을 빌려서 말한다.

그렇지 않다면 석양이 이토록 아름다울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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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들 - 루이스 웨인의 웃기고 슬프고 이상한
크리스 비틀스 지음, 최민우 옮김 / 저공비행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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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이스 웨인의 고양이들>은 고양이에 대한 관심으로 샀다.

그가 그린 재미있는 고양이 그림은 흔히 볼 수 있는 친근한 고양이 그림이었다.

그 친근함의 근원을 찾아보니 <미키마우스> <톰과 제리> <펠리스 더 캣> 같은 동물을 의인화한 에니메이션과 캐릭터들이 루이스 웨인의 손끝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었다.

 

 ‘루이스 웨인1860년에 태어나 1939년에 죽었다.

루이스 웨인이 살던 시대는 쥐들이 많아 집집마다 고양이를 키우던 시대라 

고양이와 인간이 더욱 친밀하던 시대였다.

그 친밀함을 반영하듯 그의 고양이 그림은 인기가 높았다.

천재적 그림 솜씨로 의인화 된 고양이를 그렸기 때문이다.

 그가 고양이를 그리게 된 동기는

유방암에 걸린 아내를 위로해 주기 위해 집에 키우던 고양이 그림을 그려 주었고

부인이 그림을 잡지사에 보내기를 권유해 결과로

그는 고양이 작가로 이름을 알렸다.

일차 대전이 일어나기 전까지 그의 그림에 대한 수요는 가히 폭발적 이었다.

그의 그림이 실리지 않은 곳이 없었다.

신문과 잡지 책의 삽화 그리고 엽서 등으로

그러다 보니 너무 흔해진 그림과 이재에 밝지 못한 루이스 웨인은

일차 대전의 발발로 수요가 급감하면서 인기도 떨어지고 돈도 떨어졌다.

생활고로 작품 활동도 힘들어진 그는 결국 정신분열로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한다.

 그리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 사라졌다.

1983년 거의 잊혀 진 루이스 웨인을 영국의 예술계의 유명한 딜러이자 일러스트 및 만화 전문가인 크리스 비틀스가 재조명 했다.

크리스 비틀스는 1983년부터 매년 루이스 웨인 전시회를 열고 있다.

그리고 루이스 웨인의 작품과 루이스 웨인이 쓴 신문 사설, 그리고 그에 대한 평가를 모아 이 책을 만들었다.

**

 지극히 아름다운 세계는 신의 세계이다.

모든 예술가들은 이 세계를 넘보며

끊임없이 자신을 신의 경지의 예술로 밀어 붙인다.

루이스 웨인을 포함하여 고흐, 슈만, 헤밍웨이, 차이코프스키, 랭보 등의 예술가의 생애를 보면, 그들의 뛰어난 예술성은 그들의 인생을 힘들게 하는 천형이란 생각이 든다.

너무나 감각적이고 뛰어난 천재적 예술성은 오히려 뇌가 감당하기 힘들어

광기마저 보인다.

그 광기는 그들의 예술세계를 더욱 빛나게 하지만 때로는 파멸로 몰고간다.

예술가들이 만들어 낸 최상의 경지의 예술 작품들 덕분에 우리는 다양하게 즐긴다.

책을 읽고 음악을 들으며 그림을 본다

예술이 가져다주는 인생의 휠링 시간.

잠깐 예술가들이 없는 세상을 상상해 보았다.

세상은 금방 무채색이 되고  

무기력하다.

 이 세상에는  예술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이 순간 혼신의 힘을 다하여 안테나를 드높여 신의 뜻을 받아

천형을 기꺼이 해내는 예술가들에게 찬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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