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득한 오늘
조정희 지음 / BG북갤러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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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는 불가사의한 일이 많다.
과학이 발달하고 달나라도 다녀왔지만
우리는 아는 것 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다.
그런데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 사실이라고 말하면서, 보면서도 느끼지 못하고,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마음(의식)을 동원해 그럴 것이라고 단정한다. 그건 또 무슨 요지경일까.
 
 마음과 행동의 바탕은 뇌의 작용이라 한다. 그러니 사실 사람은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뇌로 세상을 본다고 할 수 있다. 카메라 렌즈가 인간의 눈의 역할을 한다고 하지만 렌즈에 찍힌
것은 물체의 겉모습 그대로이지만 인간의 눈으로 본 기억은 다르다.
뇌의 인식으로 세상을 본다는 뜻이다.
 
요리사의 칼은 음식을 만들고 강도의 칼은 사람을 다치게 한다.
인간의 마음의 칼은 어떤 작용을 할까.
<아득한 오늘>은 인간 마음(의식)에 관한 이야기이다.
작가 ‘조정희’는 통찰된 눈으로 등장인물, 누구편도 들지 않고 객관적이고 담담하게 그들의 마음을 그렸다.
 
**
 
속리산 산골 속의 집.
그곳은 시공간을 초월하는 곳이다.
그 곳에 ‘여계영과 ’민선혜‘가 살았다.
둘은 사랑하는 사이다.
그들은 늘 상대를 바라본다.

 “선혜는 계영의 손이 그녀의 손을 잡으면 계영을 바라본다. 눈을 맞추고 웃는 표정으로 그의 얼굴을 본다. 거의 반드시라고 해야 할 정도로. 기침이 자지러져도, 계영의 손이 그녀의 손을
잡는 순간 얼굴을 들어 바라보는 시늉이라도 했다.”
 
 사랑에 대한 정의는 많고도 많다. 어쩌면 사람 수만큼 많은 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의 사랑에 대한 정의는 ‘배려하는 마음’이다.  내 사랑을 상대가 알아주길 바라는 것이
아닌, 상대가 필요한 것을 주고, 상대의 마음을 다치지 않게 하는 것.
계영과 선혜의 사랑이 그렇다.
그들에게는 배경과 가진 조건이 중요하지 않다.
그들은 서로에게 얼마나 필요한 존재로 살아가는가가 중요하다.
그들의 사랑은 상대를 먼저 본다.
그래서 그들의 사랑은 아름답고 따스하다.
그러나 사랑이 무엇인지 아는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길지 않았다.
 
“여훈”은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PD다.
계영과 선혜와의 인연은 그들의 삶을 다큐로 만들면서 시작된다.
그들을 촬영하면서 그들의 사랑방식에 점점 이끌리고
그들의 아름답고 안타까운 사랑 때문에 그들을 기억하고
선혜가 죽고 난 뒤에는 홀로 남은 계영이 여훈의 몸 속에 각인된다.
그래서 틈틈이 계영의 종적을 찾았으나 그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20년이 흐른 후 여훈이 노인들의 삶의 다큐를 찍기 위해 찾아간 곳.
뜻밖에도 그곳은 계영이 살던 집이 있던 곳이었다.  계영의 작은 집은 사라지고 새롭게 건축된 집
에 구순의 노부부가 살고 있다.
“낙원”과 “달래”
여훈은 그들을 보는 순간 계영과 선혜가 떠오른다.
낙원과 달래는 계영의 큰아버지, 큰어머니다. 그들은 사랑해서 결혼을 했지만, 결혼생활이 길어
지는 만큼 감정의 골도 깊어졌다. 각자 다른 곳을 바라보는 그들은 ‘배려’없는 ‘이기적 욕망’만 상대
에게 투사했고 충족되지 못한 욕망은 들끓는 질투와 분노로 남아 있었다.
그런 와중에 그들은 일찍 부모를 잃은 계영을 키웠다.
 
 의무로만 생각했기에 낙원과 달래는 온전한 사랑을 주지 못했고, 성인이 되어 독립한 계영을
찾지 않는다.
은퇴 후 인생을 반추하던 낙원은 그가 버렸던 고향과 계영을 떠올리고 고향집을 찾는다. 그런데 그 방문에서, 그들은 너무나 엉뚱한 결심을 한다. 철저히 도시인이었던 부부가 그곳에서 여생을 보내기로 결심하는 것이다.
그들은 다시 찾은 고향에서 어떤 기운을 받은 것일까?
반대편을 바라보며 감정의 골을 키웠던 그들이 20여년 특별한 공간, 그곳에 살면서, 서로를 보기 시작하고 아름다운 노부부로 재탄생을 한다.
그리고,
여훈은 그들의 다큐를 찍는 내내 계영과 선혜가 겹친다.
<낙원과 달래는 계영과 선혜일까?>
여훈의 의심은 커진다.
**
작가는.
 자기 자신만이 너무 소중해 상대를 보지 못하고 불행하게 살고 있는 부부들에게 알려주고 싶어하는 것 같다.
불행하게 소비하는 시간이,
사랑하는 시간을 짧게 부여 받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부러운 시간인지.
 
불법에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완전하다고 한다.
생명 안에 일체 모든 것이 하나도 빠짐없이 본래부터 갖추어져 있다고 한다.
병에 대한 치료방법도 자신이 가지고 있고
문제가 발생하면 그 해결의 방법도 알고 있고
모든 인간관계를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는 마음을 갖추어 있다는 것이다.
 
<아득한 오늘>은
이렇게 완전한 인간이, 세상을 바라보는 우주관을 알려준다.
자신을 갉아먹는 이기심과 질투의 눈으로 세상을 보지 말라.
의식을 넓히고 높여라.
세상의 수많은 위대한 사람들이 보여주는 사랑의 모습. 그 사랑의 의식이 우주에 떠다니고
있으니, 언제든지 끌어와서 사랑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그리고 그 메시지는 이기심 너머에 있는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에도 노크를 해주었다.
 
작가의 간결한 문장은 마치 정제된 시를 읽는 듯 했고,
자연에 대한 묘사는 자연 다큐를 보는 듯 생생하고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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