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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 2
미겔 데 세르반테스 사아베드라 지음, 안영옥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1월
평점 :

드디어 [돈키호테]를 완독!! 1권 781페이지, 2권은 이야기만 888페이지에 이르는 대장정이 마침내 끝났다. 사실 1권을 읽고 나서는 2권은 조금 쉬었다 읽을까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1권에 이어 2권을 바로 읽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혼자였다면 끝까지 읽어내는 일이 무척 힘들지 않았을까. 내가 언제 또 이리 중간리뷰를 써가며 꼼꼼하게 읽어보겠나. 스스로가 대견해 미리 쓰담쓰담부터 해두고 싶다.
1권에서 수레에 갇혀 고향으로 돌아온 돈키호테와 그 뒤를 따르는 산초. 지금은 누워있는 돈키호테이지만 편력 기사의 길을 다시 갈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쉬고 있는 돈키호테에게 산초가 찾아와 그들의 이야기가 <기발한 이달고 돈키호테 데 라만차>라는 이름으로 이미 책이 되어 나돌고 있다는 것, 그 책의 저자가 '시데 아메데 베렝헬리'라는 것(산초는 베렝헤나-라고 했지만)을 알려준다. 산초에게 그 말을 해준 것은 학사 삼손 카라스코. 산초는 재빨리 카라스코를 데려오고, 그의 등장을 계기로 작가는 독자들이 1권에서 궁금해했을 법한 이야기들을 풀어내며 구성을 더욱 촘촘히 다진다. 마침내 자리를 털고 길을 떠날 결심을 굳힌 돈키호테.
그들은 먼저 돈키호테의 '사랑스런' 귀부인 둘시네아의 축복과 허락을 받기 위해 엘 토보소로 향한다. 둘시네아를 만난 적이 없음에도, 돈키호테의 메모를 입으로 전했고 그 아름다운 외모를 직접 보았다며 거짓말을 한 산초는 그야말로 좌불안석. 머리를 굴린 끝에 돈키호테는 엘 토보소 옆에 있는 숲 속에 대기하게 하고 산초 자신이 홀로 둘시네아를 찾아 돈키호테의 말을 전하고 오겠다 설득한다. 또 한번 머리를 굴린 산초는 돈키호테를 싫어하는 마법사가 그를 해코지하고 골탕 먹이기 위해 둘시네아의 모습을 바꾸어 버렸다고 말하기로 결심한다. 마침 그들 앞에 나타난 어떤 아낙네. 그 아낙네를 둘시네아라 철썩같이 믿는 돈키호테. 웃음이 나는 한편 산초의 거짓말을 아무 의심없이 믿는 그를 보니 씁쓸함이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죽음의 궁정'의 수레를 만나 고초를 당하기도 하고, 돈키호테를 집에 돌아가게 하기 위해 <숲의 기사>로 변신한 삼손 카라스코와 대결을 벌이기도 하며, 길에서 만난 사자를 향해 덤벼들기도 하고, 어떤 연인들의 독특한 결혼식에 참석도 했다가, 몬테시노스의 동굴도 구경한 돈키호테와 산초. 1권에서는 가는 곳마다 두들겨맞거나 새로운 이야기들이 가미되어 주인공들의 모험 뿐만 아니라 다른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도 풍성하게 즐길 수 있었던 반면, 2권에서의 이야기 대부분은 어떤 '공작 부부'와 연관되어 진행된다. 앞서 언급한 책을 통해 이미 돈키호테와 산초에 대해 알고 있던 공작 부부는 그를 '기사'로서 한치의 모자람 없이 대접해야 한다며 하인들까지 단속하고, 돈키호테와 산초를 위해(?) 온갖 장난을 계획한다.
작품 전반의 매력이라고 한다면 역시 돈키호테와 산초가 나누는 만담식의 대화가 아닐까. 그나마 돈키호테는 1권에 비해 조금 더 현명해진 모습을 보여준다. 그가 만나는 사람에게 전하는 말을 듣다보면 세상에 이렇게나 지혜로운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통찰력 있는 이야기들이다. 그러니 책 속에서 자주 등장하는, 멀쩡해보이는 것 같은데 약간 미친 것 같기도 하다는 돈키호테의 상태가 제대로 표현되어 있는 것이다.
가문을 따진다는 건 무척 혼란스러운 일이라는 것, 그리고 가문의 주인들이 덕과 부와 관대함으로 집안을 빛낼 때만 그 가문이 위대하고 저명해 보인다는 것이야. 부를 소유한 자는 그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하게 되는 게 아니라, 그 부를 쓸 때 행복해지는 거란다. 그렇다고 함부로 쓰는 것이 아니라 잘 쓸 줄을 알아야 하는 거야. 가난한 기사가 기사라는 것을 나타내는 방법이란, 덕밖에 다른 길이 없단다......그리고 덕의 길은 아주 좁으며, 악의 길은 넓을 뿐 아니라 앞이 훤히 트인 것도 알고 있지.
돈키호테의 말에서는 철학적 사고의 깊이를 느낀다면, 산초가 입을 열 때는 입가에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속담의 아버지라는 묘사답게 무슨 말을 할 때마다 속담을 섞어서 말하고, 언제 어디서나 쉬지 않고 말하는 산초. 처음 읽을 때만 해도 그런 산초의 말이 너무 길다고 생각했는데, 1권을 읽고 2권을 읽어갈수록 이번에는 산초가 무슨 말을 할까 기대하며 다음 장을 살펴보게 되었다. 그런 산초도 공작 부부의 계획에 의해 어떤 '섬' 하나를 통치할 기회를 갖게 되는데, 여기에서 보여주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 속 포셔식 판결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렇게 계속될 것만 같던 돈키호테와 산초의 모험은 뜻밖의 일로 끝이 나고, 결국 돈키호테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다. 삼손 카라스코와의 대결에서 진 돈키호테는 그의 요구에 의해 1년 동안은 모험을 떠나지 못하게 되었고, 그로 인한 우울증과 무기력증으로 병을 얻어 삶의 마지막을 맞이하게 되었다. 다시는 모험을 떠날 수 없다는 사실이 돈키호테를 좌절시킨 것인가. 그는 죽기 전에 '돈키호테 데 라만차'가 아닌 '알론소 키하노’로 돌아간다. 게다가 조카딸과 혼인할 남자로는 편력 기사와는 연이 없는 인물이어야 한다는 유언까지 남긴 돈키호테. 자신의 모험이 인정받지 못했다는 괴로움이, 그를 이상세계에서 현실로 데려와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주변에서 보기에는 미친 것처럼 보여도 그 사람이 행복하다면 굳이 제정신으로 돌아오기를 바라지 않아도 괜찮은 게 아닐까. 그 끝이 죽음이라면 더욱. 그런 돈키호테의 마지막을 함께 하며 눈물을 흘리는 산초의 모습에 마음이 뭉클해졌다.
[돈키호테]는 '인류의 성서'이자 '소설의 원형'이라 칭송받는다. 지구 상에서 성서 다음으로 많은 언어로 번역되고 아직까지도 이 작품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작품 해설에는 '이성만으로는 인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세상을 바로 세울 수가 없기에, 광기를 통하여 이를 구원하고 했다'는 부분이 나오는데, 나는 그냥 단순히 '돈키호테와 산초의 모험'으로 이 여정을 기억하고 싶다. 다소 엉뚱하고 우스꽝스럽기도 하지만 자신이 믿고 있는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오직 앞을 바라보며 돌진한 기사. 그리고 그런 그의 곁에서 투덜거릴망정 끝까지 자리를 지킨 산초. 언제 또 재독할 수 있을지 기약할 수는 없지만, 책장에 나란히 놓여진 책을 바라보면서 이 두 사람을 기억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