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궁 - 수수께끼의 궁
최정미 지음 / 끌레마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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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중후반까지는 별이 세 개 반 정도였는데 후반부를 읽고 반 개 더 채우기로 했습니다. 후반부가 크게 임팩트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을 산란하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고 할까요. 그 느낌을 무시하고 별 세 개 반으로 끝마치기에는 아쉬운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품은 ‘수수께끼의 궁’이라는 타이틀을 내세웠고 살인사건을 통해 미스터리한 느낌을 강조했지만 저는 사건보다는 ‘사람’이 눈에 들어왔어요. 예전부터 사극을 볼 때면 왜 저렇게 권력을 갖지 못해 안달일까 의아하게 생각했었습니다. 못 가지면 가지고 싶은 것, 갖게 되어도 불안한 것이 권력이니까요. 만인지상의 자리에 있다 해도 신하들의 견제에 힘들어해야 하고 심지어 친족 간에 살육도 불사해야 하는 왕, 여인들의 암투, 궁에 들어가면 평생을 왕의 여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궁녀, 평범하고 소박한 행복은 꿈꿀 수 없는 내관들. 궁궐 안에서는 행복하고 평안한 얼굴을 하고 있는 사람이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드라마이기 때문일까요. 하지만 권력을 두고 다투는 한 그 누구도 행복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때는 병자호란이 끝나고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이 청에 볼모로 잡혀가 있고 인조의 셋째아들인 인평대군만이 청에서 돌아와 궁에 기거하고 있는 시기. 궁녀와 정을 통했다는 이유로 나무에 목이 매달린 별감 진현은 까무룩 정신을 잃었다 인조의 총애를 받는 조소용의 부름을 받고 그녀와 대면합니다. 그녀는 자신의 아들인 숭선군이 독살미수를 당했다며 그 범인을 밝혀내라 윽박지르고 그렇지 않으면 왕에게 궁녀와 내통했다는 것을 알리고 없애버리겠다고 협박합니다. 그 즈음 궐에서는 연유를 알 수 없는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제주도에 유폐되었던 광해군이 세상을 떠났다는 기별마저 당도하면서 궁은 한층 흉흉한 분위기에 잠식당하죠. 숭선군 독살미수 사건과 살인사건이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 진현은 대담한 배포와 누구보다 뛰어난 통찰력으로 사건의 배후를 알아냅니다.

광해군을 소재로 한 영화가 개봉된 뒤 그는 현재에 되살아나 책과 드라마의 중요소재가 되었습니다. 더불어 그의 행적을 다시 좇으며 새로운 해석을 내놓는 학자들도 있다고 들었어요. 이 작품 또한 광해군이 펼쳤던 정책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독특하게도 그가 유폐된 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진현은 모든 사건들이 그를 그리워하고 다시 왕으로 추대하기 위한 집단의 음모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진실은 전혀 엉뚱한 곳에서 모습을 드러냈어요. 자세히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저는 그 응축된 감정이 굉장히 무섭게 느껴졌습니다. 하나의 목표를 위해 자신은 물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인생까지 결정해버릴 수 있다는 사실이요. 제가 범인이었다면 저는 결코 그런 선택은 하지 않을 겁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와 같은 원한을 가지고 평생을 보내길 원하지 않을 것 같아요. 그 보다는 내가 가진 원한 따윈 잊어버리고 소박하고 평범하게 살아가길 원할 거에요.

어찌 생각하면 상상 가능한 내용일 수도 있습니다. 앞뒤를 잘 맞춰보면 누가 범인인지 알 수도 있을 거에요. 저는 그 상상 가능할 수도 있는 후반부가 처음에는 ‘흐응’, 시간이 지날수록 애달프게 다가왔습니다. 저에게는 자꾸 곱씹게 되는 엔딩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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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필요한 베스트 영문법 68
김대운 지음 / 토마토(TOMATO)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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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법 다시 시작하기!!]

대학을 졸업하고 지금 직장을 얻게 되면서 내가 영어공부를 하게 될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은 다른 언어만으로도 충분하다고, 괜히 영어까지 하게 되면 그 영향으로 지금 공부하는 언어에 지장이 생길 거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지난 겨울 유럽을 여행하면서 말 못하는 답답함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그 동안은 말이 통하는 나라만 집중적으로 여행해서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불편함을 못 느꼈었는데 영어가 되지 않으니 수건 하나 더 필요하다는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것이 무척 답답하고 한심했다. 그것이 계기였던 것 같다. 영어공부의 필요성을 제대로 느낀 것은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이었다. 더불어 영어를 못하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기회의 양도 줄어든다는 것을 깨닫고 나자 더 이상 미뤄두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영어공부의 기본은 아무래도 단어와 기본문법인 것 같다. 고등학교 때 어떻게 영어공부를 했었는지 기억을 더듬어보니 매일매일 일정한 분량의 단어를 외우고 문법 패턴을 익히고 꾸준히 독해문제를 풀었었다. 그 때 했던 공부 방법이 지금의 나에게 도움이 될 지도 알 수 없고, 어떻게 공부의 방향을 잡아야 할지 망설이던 차에 기본부터 다져나가자고 생각했다. 고등학교 수준이든, 중학교 수준이든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기본이라고. [꼭 필요한 베스트 영문법 68]은 그런 점에서 마음이 끌렸던 책이다. 문법도 시작하자면 한 없이 많고 시간은 한정되어 있으니 우선 중요하고 일반적으로 많이 쓰이는 것들을 알고 싶었다.

이 책은 여느 문법 책보다 작고 얇지만 알차다. 글씨가 작다는 단점은 있으나 오랜만에 듣게 되는 품사의 정의부터 문장의 형식도 쉽고 간단하게 알려준다. 품사를 따라가며 문장의 구조와 꼭 알아야 하는 것들을 설명해주는 방식을 취하고 있어 좋았지만, 아무래도 문법이다보니 영어를 처음 접하려는 사람들에게는 조금 재미없다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로 되는 것은 없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처럼 보여도 무언가는 대가를 치러야 하고, 어떤 일에서든 장단점은 분명 존재하기 마련이다. 영어공부도 그렇다. 아무리 책이 잘 나오고 설명이 쉽게 되어 있어도 외워줘야 할 것은 외워주고, 익혀야 할 것은 익혀야 한다. 공부에는 왕도가 없다는 말이 새삼 다시 생각난다. 이 책으로 영문법의 기본을 다질 수 있도록 열심히 펼쳐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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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테 피나코테크 마로니에북스 세계미술관 기행 11
실비아 보르게시 지음, 하지은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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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로니에북스에서 한동안 출간이 뜸했던 <세계 미술관 기행>의 열 한 번째 작품이 드디어 나왔다. 독일 뮌헨에 위치한 알테 피나코테크(처음에는 사람 이름인 줄 알았습니다;;). 처음 이 시리즈가 출간되었을 무렵의 나는, 지금도 그렇지만 여행과 미술에 깊이 빠져 있어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무척 행복했다. 상트페테르브루크에 있는 [에르미타슈 박물관] 이후 소식이 없길래 이제 더 이상 출간되지 않나보다 생각하던 차에 나온 [알테 피나코테크]는 그래서 더욱 반갑다.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것은 알브레히트 뒤러의 <모피를 입은 자화상>이다. 독일 최초의 정면자화상인 이 작품은 뒤러의 화가로서의 위엄에 자부심을 가진 듯, 그 모습이 예수와 동일시되어 있다. 처음 표지를 봤을 때는 누군가의 자화상이 아니라 예수를 그린 작품 중 하나로 착각할만하다.

1988년 4월 한 남자가 알테 피나코테크에 침입해 작품에 염산을 뿌린 이후, 사람들은 이 곳에 존재하는 작품들을 방탄유리 아래로 감상하게 되었다. 방탄유리에서 20센티미터 이내로 접근할 경우 경보가 울리며 입구가 자동으로 차단된다고 하니 어쩐지 씁쓸한 기분이지만, 예기치 못한 사고로 소중한 유산이 망가지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앞서 발간되었던 미술관 기행시리즈처럼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의 기본 토대도 성서이다. 예수의 십자가형이라든지, 예수를 끌어안고 있는 모습이라든지, 예전에는 성서의 내용을 그림으로 그린 것에 진부함을 느끼곤 했는데 화가들이 저마다 다른 의미를 부여하여 만든 작품에서 특징을 들여다보는 일이 꽤 재미있다. 특히 이번에는 <마리아의 탄생>이라는 작품이 인상깊다. 예수의 탄생에 대해 그린 작품들은 많이 봤지만 마리아의 탄생에 대해 그린 작품은 나에게 처음이었다. 화가가 ‘마리아의 생애의 대가’라는, 15세기 후반 쾰른에서 활발히 활동했던 화가 중 한 명이라고 소개된 부분도 재미있다.

1월, 오스트리아를 찾았을 때 가장 좋았던 부분은 벨베데르 궁전에 있는 클림트의 <키스>를 만났다는 점이었다. 어느 정도 호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현지 가이드의 설명이 더 피부에 다가왔고, 그 그림에 깊은 애정을 가지게 되었다. 아직도 깊은 감동으로 가슴에 남아있다. 내가 <세계 미술관 기행>에 끌리는 것도 여행과 그림이 하나가 되어 녹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가장 좋아하는 두 가지를 함께 할 수 있는 행운. 언젠가 이 시리즈의 발자국을 따라가는 여행을 꼭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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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메시스 - 복수의 여신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4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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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서 출간된 다른 작품들을 읽었던 분들에게는 스포가 아니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에게는 스포가 될 수 있는 내용이 있습니다.

 

요 네스뵈의 <해리 홀레 시리즈>는 [스노우맨]과 [레오파드], [레드 브레스트]에 이번에 출간된 [네메시스]와 [박쥐]까지 국내에 총 5권이 출간되었다. 본래 작품의 진행과는 약간 순서를 달리해서 출간되었기 때문에 인물들의 등장이 다소 들쭉날쭉하고 주인공 해리의 연애전선에도 흐림과 맑음이 반복되지만 <해리 홀레 시리즈>는 매 작품, 늘 새로움과 깊이를 더해간다. 시리즈의 처음으로 접했던 [스노우맨]에도 분명 존재했을 해리 홀레의 사색적인 분위기와 작가의 철학적 사고는, 어째서인지 [스노우맨]보다 앞서 발표한 [레드 브레스트]와 [네메시스]에 더 깊게 녹아있는 것 같다. [스노우맨]과 [레오파드]에서는 끝없는 어둠의 기운만을 내뿜고 있던 해리가, [레드 브레스트]와 [네메시스]에서는 조금 다른 면모를 보이고 있는 것은 분명 그를 둘러싼 등장인물들의 영향이지 않을까. 

 

은행에 복면을 쓴 강도가 침입했다. 그는 은행에 들어왔을 때를 제외하고는 전혀 자신의 목소리를 사용하지 않은 채 한 명의 여직원-스티네 그레테-을 인질로 잡고 그녀를 통해 말을 전달하며 돈을 요구한다. 점장이 25초 내에 가방에 돈을 넣지 못하면 스티네는 죽는다. 긴박한 상황에서 점장은 강도의 가방에 돈을 집어넣지만 예정됐던 25초를 넘겨 결국 스티네는 강도의 총에 맞아 사망한다. 그리고 연이어 벌어지는 은행 강도 사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팀이 구성되지만 해리는 새로 들어온 베아테 뢴과 따로 팀을 꾸려 독자적으로 조사하기 시작한다.  

 

한편 [레드 브레스트]에서 연인 사이로 발전한 라켈과 그녀의 아들 올레그가 양육권 문제로 러시아로 가 있는 사이, 해리는 예전 여자친구였던 안나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라켈이 러시아에 가 있는 동안 다른 여자를 만나는 것이 꺼림칙하긴 했지만, 결국 정해진 식사약속. 그런데 어쩐 일인지 눈을 뜬 해리의 기억 속에는 간밤의 기억이 없다. 안나가 입었던 까만 드레스의 잔상만 남아있을 뿐. 몇 번이나 전화를 걸어보지만 그녀는 연락이 되지 않고, 안나는 그녀의 집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총이 손에 쥐어져있어 단순 자살로 사건은 매듭지어지지만 해리는 뭔가 석연치 않은 점을 느끼고 그녀가 살해당했다는 생각에 홀로 움직인다. 그리고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엘렌 사건. 해리는 어서 이 모든 사건들을 해결하고 그녀의 일로 되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다.  

 

[네메시스]는 굉장히 체계적이고 섬세한 작품이다. 작품 곳곳에 메시지를 암시하는 문장들이 적혀 있고, 작가가 독자와 함께 움직이고 싶어한다는 느낌이 든다. 작가가 자신이 창조한 세계에서 전지전능한 신처럼 홀로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에게 단서와 암시를 제공하면서 이 사건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는지, 동기가 무엇인지를 같이 생각해보자고 손을 내밀고 있는 영상이 떠오른다고 할까. 하지만 그런 복선과 암시들에도 마지막까지 범인을 예측하기란 힘들었다. 계속 머리를 굴려봤지만 오히려 그런 복선과 암시에 섣불리 다가가지 못하고, 마치 그것이 함정인 양 망설이게 된다. 그러나 결국 이 작품을 아우르는 하나의 단어는 ‘복수’이다. 이제 이 책을 읽게 될 사람들은 이 한 단어만 기억하시길. 그래도 문제를 풀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레드 브레스트]에서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릴 수밖에 없었던 한 개인의 잔혹사가 펼쳐졌다면 [네메시스]에도 역시 슬픈 가족사가 존재한다.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서 더 잔인하게 펼쳐질 수밖에 없는 복수극. 생각해본다. 만약 그런 일이 핏줄로 얽힌 가족이 아니라 생판 남인 사람과의 사이에서 벌어진 일이었다면 그리 잔인할 수 있었는지를. 어쩌면 가족이기 때문에 향했던 믿음과 신뢰는 그것이 깨질 때 더 처참해질 수밖에 없었던 걸까. 그렇다해도 그들이 선택한 길은 너무 아프고 슬프다. 그렇기 때문에 그 처절한 길을 포기한 그 누군가의 또 다른 선택과 대비되어 결국 복수라는 것은 그 복수의 대상뿐만 아니라 자신까지 파멸로 몰아간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앞에서도 언급했듯 이 작품에서 해리 홀레는 [스노우맨]이나 [레오파드] 와는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비록 [레드 브레스트]에서 파트너였던 엘렌이 살해당하기는 했지만 그의 옆에는 그를 보스처럼 떠받들고 존경하는 잭 할보르센이 있으며 해리의 괴짜 성질에 고개를 흔들기는 하지만 그를 좋아하는 비아르네 묄레르 경정이 존재한다. 독특한 재능을 갖추고 있어 해리의 사건 해결에 뛰어난 능력을 보이는 데다 이제 잭 할보르센과 사랑에 빠질 베아테 뢴도 있다. 그리고 사랑하는 연인 라켈과 올레그도. 하지만 그들의 존재가 이리 가슴 아프게 다가오는 것은 이미 [스노우맨]을 통해 할보르센과 묄레르 경정이 죽거나 실종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끼는 사람들의 죽음과 실종, 라켈과의 관계 변화 등으로 해리가 품고 있는 어둠은 더 짙어져 갈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비록 엘렌이 죽기는 했지만 지금 해리가 서 있는 곳은 따뜻하다. 어쩌면 [네메시스]에서 보여주고 있는 해리의 모습이 전 작품을 통틀어 가장 인간적이고 행복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아팠다. 부디 실종으로 처리된 묄레르 경정이라도 [레오파드] 이후 작품에서 등장해주기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매 작품, 분위기와 재미가 남다르다. 질리지 않고 계속 기다리게 된다. ‘더’ 요구하게 된다. 한 작품 한 작품 읽을 때마다 기쁘면서도 아쉽다. 이번 요 네스뵈 작가의 방한을 기념하여 특별히 출간된 [박쥐]와 [네메시스]. 일년에 한 권 꼴로 나오던 작품들이 연달아 두 권 출간되는 것을 보면 작가의 방한에 출판사와 독자들이 얼마나 기대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그의 작품을 한 번에 두 권 손에 쥘 수 있다는 것을 행운으로 여기며, 앞으로도 결코 해리 홀레의 세계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은 이 마음을 부디 작가가 저버리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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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퀴어 주겠어! 세트 - 전3권 블랙 라벨 클럽 8
박희영 지음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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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작품의 리뷰만 보고 오해하시는 분들이 있을 듯 하여 미리 밝혀두지만 나는 로맨스 소설을 좋아한다. 남녀가 서로에게 끌리는 설레임 가득한 장면, 둘 앞에 닥친 위기를 극적으로 뛰어넘어 해피엔딩을 맞이하는 로맨스 소설은, 그 작품 수도 많고 종류도 다양해서 이미 <로맨스 소설의 법칙>같은 것에 익숙해진 독자들에게 새롭게 어필하기 위해서는 부단한 아이디어 연구가 필요한 장르이다. 게다가 진부한 장면을 진부하지 않게 표현하려면 글솜씨는 물론 장면을 구성하는 기술도 필요하니 작가에게 정말 고급 능력을 요하는 분야가 아닐까. 그래서 등장인물의 깊은 심리묘사는 약하고, 사건 위주의 전개만 보인 [할퀴어 주겠어]에 느낀 실망은 그 어느 때보다 컸던 것 같다. 평소 책에 대한 평가가 박하지 않은 나로서는 드물게 매긴 평점이다.   

 

[할퀴어 주겠어]는 신기하게도 주인공이 사고를 당해 고양이로 변신을 하게 되면서 얻게 되는 사랑이야기다. 오빠 친구 진혁에게 첫눈에 반한 청아는 진혁이 다닌다는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고등학교 내내 공부에만 빠져 지내다 마침내 진혁과 같은 학교에 입학하기에 이른다. 다이어트도 하고 예뻐져서 진혁과의 만남을 말 그대로 코앞에 둔 청아는 우연한 사고로 다른 세상에 떨어진다. 고양이의 외모로. 그 곳에서 만나게 된 황제의 동생이자 대공작인 류안. 겉모습만 고양이로 변했을 뿐 말도 생각도 인간 청아의 것 그대로인 그녀는, 처음에는 차갑고 냉정한 남자로 여겼던 류안과 티격태격하기도 하고 의지도 하면서 결국 그를 사랑하게 된다.  

 

블랙 라벨 클럽에서 출간된 로맨스 소설에는 흥미로운 소재들이 많아 나도 그 동안 재미있게 읽은 작품들이 많다. 하지만 이번에는 어쩌면 [할퀴어 주겠어]의 감각과 나의 감각이 맞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여고생들은 열광하며 읽을 수도 있겠지만 이미 나는 청아와 류안같은 로맨스 라인에 꺅꺅 할만큼은 어리지 않다는 것. 청아와 류안 사이의 로맨스 기류는 다소 지루했고, 서로에게 빠져드는 아련함도 부족했던 듯 하다. 그리고 이것은 비단 [할퀴어 주겠어]의 작가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인터넷에서 연재될 때의 글의 느낌과 책으로 출간되었을 때의 느낌은 다를 수밖에 없다. 인터넷에서 연재할 때는 그때마다 핵심이 되는 사건이 일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한회씩 읽는 독자들도 큰 불만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연재된 내용이 그대로 책으로 출간되었을 때, 작품은 그저 사건의 나열에 지나지 않는다는 느낌을 자아낼 수밖에 없다. 창의력도 부족하고 글솜씨도 부족해서 작가들을 비평할 자격이 과연 나에게 있느냐고 묻는다면 나도 할 말은 없지만, 사건들의 연관성과 자신이 창조해낸 인물에 대한 깊은 탐구없이, 내면을 파고드는 깊은 공감을 끌어내는 능력 없이 로맨스 소설은 완성될 수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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