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마지막 강의 - 하버드는 졸업생에게 마지막으로 무엇을 가르칠까?
제임스 라이언 지음, 노지양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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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식이나 종업식 때 가장 고민되는 것은 마지막으로 아이들에게 무슨 말을 해줄 것인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너무 유치하지도, 너무 신파적이지도, 그렇다고 너무 어른인 척 하지도 않으면서 마음속에 전달될만한 이야기를 찾는 것은 참 어렵고도 부끄러운 숙제 같은 것이었어요. 내내 고민하다가도 막상 그 날이 되면 변변한 이야기 하나 들려주지 못한 채, 감상에 젖어 결국 혼자 눈물을 보이거나, 어색한 마지막 인사를 남긴 채 작별인사를 하기 일쑤였던 것 같아요. 가슴 속에 남는 인상적인 이야기, 그 단 하나의 말을 찾는다는 것이 왜 그렇게도 어려웠는지. 어쩌면 저는 들려줄만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아이들의 수준에 어울리지 않는다며 그들을 살짝 무시했거나, 민망하고 쑥스러운 그 순간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제 가슴 속 이야기를 모른 척 하지 않았는지, 돌이켜 생각해보곤 합니다. 그래서 이 [하버드 마지막 강의]라는 책에 더 손이 갔는지도 모르겠어요. 일류 대학에서도 최고라 일컬어지는 그 하버드에서는 졸업생에게 마지막으로 무엇을 가르칠지, 저도 그 가르침 한 수 받아보고 싶었습니다.

 

강의라고 하면 으레 지식이나 학문에 관한 사항을 떠올리기 마련이죠. 하지만 졸업 축사이니만큼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인생에 대한 질문입니다. 자신의 인생뿐만 아니라 타인의 인생까지도 배려하고 생각해볼 수 있는 질문들이라고 할까요. 저자인 제임스 라이언은 제11대 하버드 교육대학원 학장으로 2016년 하버드 교육대학원 졸업 축사의 주제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들을 선정했다고 합니다. 이 축사 동영상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결국 이 책까지 집필하게 된 거죠. 그가 선정한 다섯 개의 질문은 <잠깐만요, 뭐라고요? -Wait, What?>, <나는 궁금한데요?-I Wonder...?>, <우리가 적어도 ···할 수 있지 않을까?-Couldn’t We at Least...?>, <내가 어떻게 도울까요?-How Can I Help?>,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What Truly Matters?> 그리고 보너스 질문 <그럼에도 당신은 삶에서 원하는 것을 얻었는가?- And Did You Get What You Wanted From This Life, Even So?>입니다. 각각의 질문을 선정한 이유인 듯, 챕터의 가장 앞부분에는 <모든 이해와 소통의 근원에 있는 질문>, <나와 세상을 알게 하고 통찰로 이끄는 질문>, <우리 삶을 한 발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질문>, <배려와 경청으로 좋은 관계를 만드는 질문>, <내가 원하는 삶의 핵심으로 나를 이끄는 질문>, <“라고 답할 때까지 끊임없이 질문하라>는 문구들이 쓰여 있습니다.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이 인상적인 이유는 단순히 이론에만 그치지 않고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쓰여 있기 때문이에요. 자신의 입양과 친모찾기 같은, 우리나라에서는 다소 민감하게 여겨질 수 있는 주제도 덤덤하고 온화하게 풀어냈고, 각 챕터마다 자신이 선정한 질문들이 자신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실례를 들어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혀 어렵지 않고 정말 이야기를 듣는 것 같은 느낌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죠. 그가 제시한 질문의 바탕에 깔려있는 타인에 대한 태도는 겸손과 온화, 배려였습니다. 우리는 누군가와 의견 대립이 생기면 이기려는 본능이 생기죠. 때로는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알면서도 전혀 인정하지 않고 끝까지 관철시키려고 할 때도 있어요. 하지만 그럴 때 저자가 제시한 다섯 가지 질문과 그 바탕에 깔려 있는 태도를 생각한다면, 우리가 그토록 바랐던 경청의 자세, 배려심 넘치는 사람, 그리고 가장 중요한, 자신의 인생에 충실한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다만, 여기 있는 이야기를 고등학교 졸업하는 아이들에게 들려주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듭니다. 그 아이들에게 어떻게 전달할지, 그 가교를 마련하는 것은 저의 몫이겠지요. 저자가 들려준 감동적인 이야기, 다섯 가지 질문+보너스 질문을 어떻게 하면 더 쉽게 잘 들려줄 수 있을지 한 번 고민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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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랜드
신정순 지음 / 비채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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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순, 낯선 이름의 작가입니다. 게다가 아메리칸드림에 관련된 소설집이라니 살짝 읽기가 망설여졌어요. 뭔가 어두운 내용일 거라는 짐작에 한 번 읽기 시작하면 우울한 기분이 들지 않을까, 그런 예감이 들었거든요. 하지만 그건 저의 기우였다는 걸, 책을 읽기 시작하자마자 깨달았습니다. 한 번 펼쳐 읽기 시작하자 멈출 수가 없었거든요. 타국에서, 드림랜드라는 곳에서 각자의 꿈을 이루기 위해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 진솔하고 서정적인 이야기에 끌려들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리뷰를 쓰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습니다. 왜 그랬을까 곰곰 생각해보니, 저는 그들의 생활을 경험해본 적이 없잖아요. 쉽게 말할 수 없는 그 삶을 저같은 문 밖의 사람이 언급해도 되는 걸까, 망설였던 것 같습니다.

 

총 다섯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어요. 영주권을 위해 남편 대신 가정폭력의 혐의를 쓰고 감옥에 다녀온 여자, 남자에게 배신당하고 홀로 아이를 키우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났지만 지금 그 사람의 죽음 앞에 서 있는 여자, 늘 쌍둥이 오빠와 비교당하며 살아온 탓에 지긋지긋한 한국을 떠나고 싶었고 결국 결혼으로 미국에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했으며 엄마의 임종을 지키기 위해 잠시 귀국한 여자, 그 누구보다 출중했지만 문둥병이라는 굴레에 갇혀 몸을 숨겨야 했던, 이제는 세상 밖으로 나가고자 하는 남자, 배신한 아내의 죽음의 자리에 열달 만에 찾아간 남자. 이렇게 이야기하면 이 사람들의 삶이 무척 단순한 것처럼 여겨지지만 그건 저의 표현 부족 탓일 거에요. 작품 속 사람들의 인생은 결코 단순하지도 자로 잰 듯 정확하지도, 간단하지도 않거든요. 리뷰로는 나타낼 수 없는 정서가 작품 안에 녹아있다고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저에게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선택>, 위에서 늘 쌍둥이 오빠와 비교당하며 살아왔고, 엄마의 폭언과 차별 속에서 새로운 환경을 바랐던, 싫지만 한국을 떠나고 싶어 억지로 선택한 결혼은 아니었으나 어느 정도 결정에 영향은 끼쳤던, 그렇데 떠나 살다가 엄마의 임종을 듣고 귀국한 한 여자의 이야기였습니다. 그 여자, 혜진은 병약하던 오빠와 비교당하며 뱃속에서부터 오빠 앞길을 막았다는 폭언을 들으며 자라왔습니다. 아무리 공부를 열심히 해도, 엄마 생일에 정성껏 선물을 골라도 돌아오는 것은 기대와는 다른, 엄마의 무시와 언어 폭력이었죠. 성인이 되고 난 다음에도 마음 둘 곳 없던 그녀는 한 남자를 만납니다. 미국 시카고에서 세탁소를 운영한다는 진실되어 보이는 남자, 석훈. 그와 결혼한 혜진은 미국에서의 녹록치 않은 생활 속에서도 열심히 일했고 미국으로 갓 이민 온 사람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교사 일까지 맡았으며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어요. 그런 와중에 들려온 엄마의 임종과 그녀 앞에 닥친 선택.

 

특별히 이 작품이 남았던 이유는 혜진의 선택도, 그녀의 오빠와 새언니의 만행도 모두 인상적이었지만 혜진의 남편 석훈 때문이었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형과의 재산분쟁이 싫어 홀연히 미국으로 떠나고, 그 후 자신의 삶을 제대로 일궈온 남자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혜진과의 첫만남의 자리에서도 허풍이나 가식없이 진실된 모습을 보이는 사람, 한 여자가 품에 안겨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사람. 허구의 세상이었지만 저도 또 하나의 혜진이 되어 석훈에게서 위로받는 듯한, 인간적인 애정을 느꼈습니다.

 

우연히 읽게 된 어떤 작품이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 명작이 되는 경험을 해보신 적 있을 거예요. 저에게는 이 작품이 그 중 하나에 속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작가적인 기교나 구성의 우수함, 문장의 수려함 등은 저는 잘 모르지만 석훈처럼 진솔한 삶의 이야기들, 그래서 읽는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작품이라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신정순이라는 작가의 이름을 앞으로도 기억하게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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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동딸
안나 스노에크스트라 지음, 서지희 옮김 / 북펌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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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를 눈치채실 수도 있습니다]

제목만 슬쩍 보고 고전소설의 향기가 난다고 생각했는데 현대를 배경으로 한 스릴러 소설입니다. 왠지 외동딸이라는 제목에서 대저택에 사는 귀한 집 아가씨가 떠올랐었거든요. 귀한 집 아가씨와는 어울리지 않는 주인공은 가출한 채 마트에서 물건을 훔치다가 경비원에게 붙잡히는데요,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얼마 전 TV에서 본, 자신과 외모가 흡사한 10년 전에 사라진 레베카 윈터라는 소녀를 떠올리고, 자신이 바로 그 레베카 윈터라며 거짓진술을 합니다. 10년 전에 납치당했다는 폭탄선언을 한 뒤 임기응변으로 윈터 가족의 집에서 생활하게 되지만 그녀가 감추고 있는 비밀을 캐내려는 수사관 안도폴리스의 눈은 날카롭죠. 이대로 계속 자신의 거짓 삶을 즐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그녀의 휴대폰으로 이 집에서 나가라는 문자가 한 통 도착하고, 누군가 자신을 따라다닌다는 느낌마저 받습니다.

 

이야기는 10년 전 레베카의 시선과 10년 후 주인공의 시선이 교차되며 진행됩니다. 10년 전 레베카는 평범한 소녀였어요. 패스트푸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좋아하는 남자가 있고, 친구 리지와 시시덕거리며 때때로 일탈을 즐기던. 하지만 그녀는 가끔씩 자신을 응시하는 시선을 느낍니다. 자신의 방 안에서 기괴한 형체의 검은 그림자를 발견하기도 하고, 어느 날 잠에서 깨보니 피로 범벅이 된 자신을 보기도 해요. 불가사의하고도 공포스러운 상황 속에서 어느 날 문득, 그녀는 진실을 깨닫게 되고 결국 연기처럼 사라져버리고 맙니다.

 

대체 레베카는 어떻게 된 것인지 그 여정을 따라가보면 작품은 속도감 있게 읽힙니다. 주변 사람들 모두가 의심의 대상이 되고, 주인공이 과연 거짓 삶을 계속 할 수 있게 될지 궁금해지죠. 진행이 빠른 편임에도 범인이 궁금해서 뒷장으로 바로 넘어가고 싶은 마음이 한가득이었는데요, 범인의 정체는 정말 대반전이었습니다. 동시에 무척 소름끼치도록 무서웠어요. 범인의 정체는 그렇다 하더라도 그 정체를 알면서도 감싸주는 존재란. 부모의 올바른 역할이 과연 무엇인지, 부모의 역할과는 별개로 선천적인 사이코패스는 정말 제어할 수 없는 것인지 의문이 생겼습니다.

 

범인의 정체는 대반전이기도 했지만, 제가 느끼기에는 갑작스럽게, 그리고 조금 억지스럽게 밝혀진듯한 느낌도 있습니다. 실제로 끔찍한 여러 가지 일이 있었음에도, 어떻게 그 기억이 그렇게 완벽하게 차단될 수 있었을까요. 아무리 사랑하는 가족이라고 해도 그 낌새를 느꼈다면 처음부터 무척 두려웠을 것 같은데요. 심지어 죽음의 위협까지 당한 마당에 분명 계속 사랑할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한다는 결말도 살짝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전반적으로 이야기는 재미있는 편입니다. 뭔가 이상한 점을 날카롭게 포착할 수 있는 독자라면 어쩌면 범인도 쉽게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 이번 작품에서는 좀 어렵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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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 - 죽음을 질투한 사람들
제인 하퍼 지음, 남명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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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루크 해들러와 그의 아내, 아들 빌리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20년만에 고향을 찾은 에런 포크. 루크 해들러는 농장의 경영난으로 아내와 아들을 살해한 후 자살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과거 친구 엘리 디컨의 자살 배후에 에런이 있었던 것 아닌가하는 의심으로 아버지와 도망치듯 마을을 떠나야했던 에런은, 이번에도 마을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으며 곧 마을을 떠날 예정이었어요. 하지만 루크의 부모인 제리와 바브의 요청으로 루크의 죽음에 혹시 숨겨져 있을지도 모를 내막을 찾아내기 위해 며칠 더 마을에 머무르기로 결정합니다. 마을 경찰인 라코와 의기투합하여 사건을 파헤쳐나가는 와중에도 엘리의 죽음과 그를 향한 의심은 여전히 에런의 뒤를 쫓아다니며 괴롭히고, 마침내는 물리적인 폭력의 형태로 그를 위협하죠. 과거 루크와 공모했던, 거짓 알리바이는 에런의 가슴 속에서 루크의 이번 사건이 엘리의 죽음과 연관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갖게 하고, 마을 안에 숨겨져 있던 작은 비밀들이 하나씩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저도 과거의 사건과 이번 사건이 뭔가 연관이 있을 것 같아 가슴 두근거리며 읽었습니다. 에런은 확실히 범인이 아닌 것 같은데 그럼 루크가 범인인가, 그래서 에런에게 거짓 알리바이를 제안한 건가, 그런데 정말 루크가 범인일까, 또 다른 사람이 얽혀 있는 것은 아닐까, 아무리 그래도 루크가 아내와 아들까지 죽이고 자살했을까, 이 사건에 범인이 따로 있을까, 있다면 누구인가. 수수께끼가 너무나 크고 거대해서 어디서부터 짐작을 해야 할 지 엄두도 나지 않았어요. 사건의 실타래는 과거의 사람들의 시점과 조금씩 교차되며 풀어지는데 저는 사실 조금 지루했어요. 이 작품은 속도감있게 죽죽 나가기보다는 기분 나쁜 더위가 조금씩 다가오는 것 같은 느낌의 소설이에요. 팔을 벌린, 무시무시한 습도가 머리 위를 덮쳐오는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진실을 향해 가는 마라톤같은 작품입니다.

 

이 사건들에서 가장 마음이 아팠던 건 루크의 아들 빌리의 죽음이었어요. 어린 아이가, 엄마가 죽는 것을 보고 자신에게도 곧 죽음이 다가올 거라는 걸 알고 얼마나 두려웠을까요. 빨래바구니 뒤에 숨어서 숨죽이며 바지에 소변을 적시고 있었을 아이를 생각하면 눈물이 멈춰지지가 않았습니다. 그 어떤 이유로도 아이들의 죽음은 허용되서는 안될 일입니다. 열여섯이었던 엘리 디컨의 죽음 역시. 그녀도 그저 10대 소녀였으니까요.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할 수도 없이 얼마나 그녀는 외로웠을까요.

 

진실을 풀어나가는 과정과 결말도 궁금한 소설이었지만, 여러 사람의 심리, 상황에 따라 사람들의 마음이 얼마나 자주 바뀔 수 있는지, 인간 본성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그런 작품이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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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이 되면 그녀는
가와무라 겐키 지음, 이영미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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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 있습니다]

한 편의 서정적인 일본영화를 보고난 듯한, 아련한 기분에 잠겨 한동안 헤어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이러지는 않았었는데요. 그저 연애소설이려니, 가볍게 읽을 수 있는 그런 이야기려니 했는데 읽는 동안 영상들이 머릿속을 휙휙 지나가고, 가슴으로 작은 물결이 일렁이는 것 같아요.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지 모르겠는 이 마음을,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고 오랜만에 느끼는 이 감정이 반가우면서도 역시 아련하고 서정적인 것들은 후유증이 커-라고 생각하며 다시금 책장을 넘겨보고 있습니다.

 

볼리비아의 우유니 소금사막을 배경으로 한 표지조차 한 편의 영화 포스터처럼 보입니다. 이 소금호수에는 비가 내리면 물이 얕게 고여서 거울처럼 변해, 그 거울에 하늘이 반사되면 온 세상이 하늘로 변한다는 아주 멋진 곳이라고 해요. 이 도시를 배경으로 이요다 하루는 9년 전 헤어진 남자친구 후지시로 슌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그들이 함께하고 사랑했던 그 4월을 떠올리며 그녀는 슌에게 어떤 말을 전하고 싶었던 걸까요. 하루와 헤어지고 난 후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과연 좋아할만한 것을 찾을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한 채 살아왔고, 그럼에도 어찌어찌해서 곁에는 3년을 함께 한 야요이가 있습니다. 하루에게 편지를 받은 것은 그녀와 결혼을 준비하던 시점이었어요. 드문드문 배달되는 하루의 편지를 통해 과거를 회상하는 슌은 그녀와 사랑했던 찬란한 순간들을 떠올리고 현재의 자신과 마주서게 됩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약혼녀 야요이와 헤어지고 하루와 다시 이어지는, 뻔한 러브스토리인 줄 알았어요. 그들 사이에 어떤 사연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9년이라는 시간은 무슨 일이 있었든 용서와 화해가 가능한 시간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이어지지 않는 인연도 있다는 걸, 그리고 그런 인연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잠시 잊고 있었네요. 이 작품은 연애소설이기도 하지만 여러 사람들의 성장을 다룬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9년 전 하루와의 이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어요-는 슌, 이대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면서도 결혼을 준비하는 야요이,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운명의 상대는 무엇인지 알고 싶어하면서 괴로워하는 야요이의 동생 준, 환자와의 인연으로 남자를 사랑할 수 없게 된 나나 등 사랑을 갈구하면서도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등장하죠. 그 안에서 오직, 하루 혼자만이 초연한 모습을 보입니다. 편지와 슌의 추억 속에서만 등장하는 하루는 죽음을 앞두고 있었으니까요. 죽음을 앞두고 신변을 정리하면서 그녀는 그와 사랑했을 당시의 순수하고 솔직했던 모습을 만나고 싶었다고 고백해요. 그리고 지금 그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람에게 사랑받고 있기를 빌어주죠.

 

사랑은 무엇일까요. 운명의 상대는, 결혼은 또 무엇이죠. 결혼도 했고, 아기곰도 있지만 저도 여전히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다투고 화해하고 삶을 공유하면서 지금 현재에 만족하고 노력할 뿐이에요. 하지만 저는 가능하다면 하루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하루는 슌에게 자신이 찍은 사진을 남겼어요. 사랑이라는 세계에 있던 한 남자를 찍은 사진을. 그 사진을 통해 그는 비로소 현실에서 한 발짝 더 내딛고 또 다른 사랑의 세계를 향해 달리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사랑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이 책이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어떨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겁네요. 반짝이는 햇살이 있고, 옅은 색감의 사진들이 있고, 자신이 언제 웃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 한 남자를 찍은 사진이 있을 거에요. 그녀가 생의 마지막 순간 그를 향해 적어내려간 고백들도 있겠죠.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의 작가 가와무라 겐키의 연애소설은 이렇구나, 느끼면서 역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추천은 틀리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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