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사과 사과 사과 사과 사과
안자이 미즈마루 지음, 이하나 옮김 / 창비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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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제목에 '사과'라는 단어가 무려 여섯 번이나 들어가는 안자이 미즈마루의 그림책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와의 작업으로 인해 알게 된 작가인데요, 그 작가의 책이라는 것만 알고 뒤늦게 인지한 제목. 사과 사과 사과 사과 사과 사과. 읽다보니 어쩐지 계속 따라하게 되어서 강한 중독성을 가진 제목의 그림책입니다. 아침에도 사과를 먹고 주스도 사과주스를 더 좋아하는 첫째 곰돌군이 보면 좋아할 것 같아 골랐는데 사실 첫 반응은 시큰둥했어요. 그도 그럴 것이, 사과의 여행기라는 것을 처음에는 저도 인지하지 못했거든요.

어느 날 사과가 대구루루 떨어집니다. 굴러가면서 개구리도 만나고, 그네를 타기도 하고, 구멍에 빠지기도 해요. 구멍에 빠졌을 때는 두더지의 도움을 받기도 합니다. 그러다 결국 사과가 도착한 곳은 다른 종류의 과일들이 모여 함께하는 곳이었어요. 처음에는 같이 읽다가 '이게 뭐지?'하며 고개를 갸우뚱했다가, 다시 처음부터 읽어보면서 책을 통해 노는 방법을 터득합니다.

사과 사과 사과 사과 사과 사과-하며 속삭여도 봤다가, 사과! 하면서 소리도 우렁차게 질러보았다가, 페이지마다 그려져 있는 사과의 표정도 어떻게 다른지 살펴도 보고, 다른 과일들을 만났을 때 사과가 어떤 감정을 느꼈을지도 이야기해봅니다. 다른 과일들의 종류와 색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요. 매우 짧은 분량이고, 첫째 곰돌군이 읽기에는 글밥이 매우 적어 과연 어떻게 받아들일까 했는데 생각보다 재미있게 읽었어요. 잠자리에 들면서 '내일 아침에는 사과를 먹을 거야'라며 눈을 감는 모습이란! 아직 10개월인 둘째 곰돌군은 책을 먹기만 해서 아직 반응을 살펴보지 못했는데 한 번 마음먹고 앉혀서 귓가에 사과를 속삭여봐야겠습니다.

으아. 하도 사과를 외쳤더니 제 귓가에 사과 사과 사과 사과 사과 사과가 끊이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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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러의 심리육아 - 미움받을 용기의 저자가 아이들을 키우면서 경험하고 배운 것들
기시미 이치로 지음, 김현정 옮김 / 스타북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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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 받을 용기]와 [마흔에게]로 잘 알려진 기시미 이치로. 그는 서양 고대 철학을 전공했고, 플라톤 철학을 공부하면서 아들러 심리학을 연구했습니다. 아들러는 인간의 행동과 발달을 결정하는 것은 인간존재에 보편적인 열등감·무력감과 이를 보상 또는 극복하려는 권력에의 의지, 즉 열등감에 대한 보상욕구라고 생각했어요. 나폴레옹은 키가 작았기 때문에 위대해졌고, 색약(色弱)은 간혹 대(大)화가를 만들어 낸다는 '열등콤플렉스'라는 용어를 고안해 내기도 했다고 전해집니다. 예전에 상담심리학을 공부하기도 했지만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그래서인지 앞서 언급한 두 권의 책과는 달리 이번 책은 조금 어렵게 다가오는 느낌입니다.

술술 읽힐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읽는 속도가 그리 빠르지 않은 책이었습니다. 왜 그런가 생각해보니 일반 육아서라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울고 웃을 수 있거나 공감할 수 있는 에피소드로 채워져있었겠지만, 이 책에는 자신이 육아를 하면서 '아이들과의 관계를 통해 겪은 일이 아닌 것은 단 하나도 쓰지 않았다'는 문구로 떠올릴 수 있는 그런 친근함과는 달리, 한 번에 바로 이해할 수 있는 그런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만은 아니라는 점 때문입니다. 이렇게 길게 쓰고보니 역시 무슨 말인지 제 자신도 잘 모르겠으나, 한 마디로 말씀드리자면 그렇게 쉬운 내용은 아니었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럼에도 모든 신경을 끌어모아 집중해서 읽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이번 책에서는 유독 혼내기와 비판하기가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아이와의 관계를 어떻게 만드는지에 대해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제가 요즘 고민하는 주제 중 하나거든요.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자꾸만 아이를 혼내게 돼요. 이것이 아이를 위해 혼내는 것인지, 나의 감정을 단순히 아이에게 쏟아내기 위한 것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여기던 차에 이 책을 읽게 된 겁니다. '아이는 어른을 곤란하게 함으로써 주목을 받으려고 한다'는 이론은 저와 첫째 곰돌군에게는 맞지 않는 말이라 여겨지지만, 혼낸다는 것의 개요, 혼나는 아이가 어떻게 되어갈 것인지에 대한 예측 등을 통해 앞으로 어떻게 해나가야 할 것인지 조금 그려볼 수 있었어요. 아이에게 울지 말고 말해달라고 부탁하는 것처럼, 어른인 우리도 감정적으로 화를 내어 아이를 대할 필요가 없다는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저자는 아이와의 대등한 관계 맺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우리가 아이를 혼내게 되는 이유는, 아이를 동등한 인격체로 보지 않고 열등한 존재로 바라보기 때문이라고 해요. 자기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존재에게 난폭한 말투를 사용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까지 합니다. 우리의 전통적인 육아에서는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죠. 상담심리학을 공부할 때부터 어렴풋하게나마 저도 아들러 이론을 지지해왔고 저자의 생각에 동의하는 바가 많아 받아들이기 어렵지 않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는 수용되기 어려운 이론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책에서는 부모가 문제로 판단하는 행동을 아이가 할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과연 전통적인 육아와 교육적 사고방식이 아이를 돕는 데 유효한지, 어떻게 아이를 대할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아이와 좋은 관계를 맺는 데 있어서 상호존경, 상호 신뢰, 협력 작업, 목표 일치를 내세우는데요, 이 부분은 책을 통해 꼭 한 번 확인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쉽지 않은 책읽기였지만, 다른 육아서들에 비해 보다 저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저자가 제시한 상황에서 나라면 어떻게 이야기했을까를 생각해보니 부끄러워지기도 했고요. 오늘도 양치질을 하며 아이를 혼냈는데, 아이가 '화내지 마' 하며 우는 모습을 보니 너무 미안했습니다. 제가 변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면서 우리 아이를 이대로 키울 수는 없다는 생각에 더 열심히 책을 읽었던 것 같아요. 육아에 정답은 없다고 하고 상황에 따라 우리 부모님들이 대응하는 방법에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겠지만, 그래도 이 책을 통해 아이의 입장과 생각을 고려해보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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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바보가 그렸어, 아이를 잘 키운다는 것
김진형.이현주.신동원 지음 / 로지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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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우는 것에 있어 힘들다는 것은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 일에 국한되는 것만은 아니다. 물론 나는 여전히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 이 기본적인 과정에 고됨을 느낀다. 간단하게 여겨질만한 일들이 어째서 힘드냐고 묻는다면, 그냥 난 힘들다! 뭘 먹여야 하는지 매일 고민해야 하고, 어떻게 하면 이제 혼자서도 옷을 잘 입게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느라 머리가 복잡하고, 여전히 새벽에 한 두 번 잠을 깨 엄마를 찾는 아이가 혹시나 아픈 것은 아닌지, 너무 더워서 잠을 잘 못자는 것은 아닌지 살피느라 나의 통잠을 포기해야 하는 것도 저질체력이라 헉헉댄다. 그래도 이런 것은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는 것이고 마음을 괴롭게 하는 것은 아니기에 나은 편이다.

요즘 첫째 곰돌군은 말을 '매우' 잘한다. 엄청. 매우. 아주. 어느 때는 이러다 내가 말싸움에 지겠구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논리적이기까지 하다. 게다가 고집이 어마어마하게 세져서 조금이라도 심정이 상하면 눈꼬리가 홱 올라가면서 '싫어, 안해, 엄마 미워, 저리가' 등의 말을 서슴없이 한다. 자아와 정체성이 발달하면서 보이는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여겨지지만, 엄마의 입장에서는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다. 둘째 곰돌군으로부터 장난감도 지켜야하지, 양보하라고 하니 양보는 해야하겠는데 자기 거라 쉽게 내주고 싶지는 않지, 엄마아빠의 관심도 많이 받고 싶지. 첫째 곰돌군의 마음도 아마 나보다 더 많이 복잡하고 어려운 과정을 거치고 있을 것이라 짐작된다. 그래서 올바른 훈육이 필요할 것 같은데, 이 훈육이, 정말 쉽지 않다. 결국 이런 저런 책을 보면서 도움을 얻을 수밖에 없다.

[딸바보가 그렸어] 책은 예전부터 즐겨 읽고 있다. 물론 난 딸이 아니라 아들 둘을 키우고 있지만 자식을 키우는 입장으로서 공감되는 점이 많다. 가슴이 찡해져서 눈물이 고일 때도 있고, 같은 고민을 한다는 점을 발견하고 반가울 때도 있다. 이번 [딸바보가 그렸어, 아이를 잘 키운다는 것] 은 전작보다 더 기대하고 있었는데, 아이를 키우면서 부모들이 가장 많이 하는 고민이 그려져 있고 그 질문들에 아이 마음 전문가 신동원 교수가 솔루션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곰돌군이 요즘 유독 형아의 물건들을 만지려고 해서인지 그와 관련된 문제들이 눈에 띄었는데 <혼내도 그때분>은 정말 인상깊게 다가왔다. 둘째가 첫째 그림에 낙서를 하거나, 유치원에서 만들어온 장난감을 망가뜨리는 바람에 우는 첫째와 그로 인해 혼나서 또 울게 되는 둘째. 앞으로 나에게도 다가올 일이라 생각하며 읽으니 피부에 와닿는 느낌이랄까. 혼날 만한 환경을 바꿔주고 , 싸우면 같이 놀 수 없다는 걸 교육하고, 첫째 아이의 감정에 공감하고 둘째와 분리해주고, 평소에 둘 사이가 돈독해지도록 도와주라는 등 현실적인 솔루션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다.

첫째를 이기는 둘째, 안돼의 올바른 사용방법, 나쁜 언어 습관의 개선방법, 물건을 정리하는 방법, 친구와 어울리는 방법까지 지금 내가 읽기에 딱 좋은 내용들로만 채워져 있어 앞으로 문제상황이 생길 때마다 수시로 펼쳐볼 것 같다. 오늘 아침에도 둘째 곰돌군 이유식 먹이는데 첫째 곰돌군이 자기도 밥을 떠먹여달라고 한다. 평소 같으면 '네가 한 번 먹어봐. 이제 혼자 먹어야지' 했겠지만, 사랑받고 관심받는 아이려니 생각하고 먹여주었다. 시간이 지나면 밥이야 혼자 먹겠지. 결국 길게 봐야 하는 일이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조급해하지 말고 마음에 여유를 가지고. 늘 다짐하지만 잘 안 되는 일 중 하나. 그래도 이 책 읽으면서 공감하고 공감받아 약간은 마음이 가벼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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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가 돌아왔다
C. J. 튜더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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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 빚에 허덕이며 목숨까지 위협당하는 조 손은 교사 자리가 있다는 소식에 고향 안힐로 숨어든다. 그에게는 비극적인 기억이 존재하는 고향. 이곳에서 그는 교통사고로 아버지와 동생 애니를 잃었고 자신 또한 다리에 상처를 입었다. 하지만 조는 알고 있었다. 애니가 죽기 훨씬 전에 이미 애니를 잃었다는 것을. 애니는 더 이상 애니가 아니었다는 것을. 그가 고향에 돌아온 이유는 도박 빚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에게 익명으로 보내진 한 통의 메일. ‘나는 네 여동생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 그 사태가 다시 벌어지고 있어.’ 그가 안힐로 오기 전에 마을에서는 한 엄마가 자신의 아들을 살해하고 자신 또한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졌었다. 아들의 침대 위에는 ‘내 아들이 아니야’라는 문구를 남긴 채. 안힐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조가 겪은 일의 진실은 과연 무엇인가.

 

<선데이 타임스> 베스트셀러로 선정되었고, 영국 범죄작가협회에서 시상하는 스틸 대거상과 전영도서상 최종 후보였으며 40개국으로 수출된 작가의 전작 [초크맨]. [애니가 돌아왔다]에 관심과 기대가 쏠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두 작품은 비슷한 플롯을 가지고 있다. 학교 선생님인 주인공, 네 명의 어린 시절의 친구, 불길한 사건들로 인해 더럽혀지는 어린 시절의 추억, 고향을 떠났다가 문득 다시 찾아와 잔잔했던 수면에 파문을 일으키는 한 사람, 그로써 파헤쳐지는 과거의 음울한 비밀. [애니가 돌아왔다]와 [초크맨]에 차이가 있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초자현적인 현상을 소재로 삼았다는 것이다. 무언가가 바로 뒤에 서서 미소 짓고 있을 것 같은 느낌, 닫혀진 변기 뚜껑을 보고 흠칫흠칫 반응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기분. 그 어둡고 공기가 꽉 막힌 것 같은 분위기는 책을 읽는 내내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아서 꿈에서까지 괴롭힐 정도였다.

 

작품이 주는 공포의 원인 중 하나는 우리나라의 ‘한’의 정서를 따르지 않는다는 데 있다. 자신에게 위해를 가한 사람에게 원한을 품고 그에게 복수하기 위해 귀신으로 나타나는 우리의 공포 이야기에 반해, 작품 속 불길한 ‘무언가’의 의식이 향하는 대상은 무차별적이다.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공포스러운 것이다. 죄가 없는 사람에게조차. 그리고 익숙하고 안정적이었던 존재가 이제는 더 이상 그렇지 않다는 것,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니라는 그 섬뜩함과 이질감은 작품 전반을 떠돌며 숨을 턱 막히게 하는 데 일조한다. 게다가 결말 부분에 휘몰아치는 진실과 반전이라니.

 

 

또 한가지 매력적인 점은 작가가 그려내는 십대 특유의 성향과 분위기에 있다. 집단이 어느 한 개인을 공격하고 괴롭히는 모습, 무리에 끼기 위해 자신보다 약한 누군가를 배척할 수밖에 없는 현실들이 굉장히 생생해서 마치 작가가 그런 실재를 겪었던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실제로 탄광촌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석탄산업과 지역 공동체와 광부들의 죽음을 목격하면서 과연 죽음을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는데 작품이 탄탄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탄생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문장들 또한 굉장히 철학적이어서 섬뜩한 미스터리 소설이 아닌 인생에 관해 논하는 작품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그녀가 소재로 삼은 초자연적인 현상은 '유령'이라는 존재로 국한되지는 않을 것 같은데 결말 부분에서 그 부분을 아예 배제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나로서는 조금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한 가지였다고 할까.

 

이제 단 두 작품. 이 작품들로 C.J. 튜더는 전 세계 스릴러 독자들에게 잊을 수 없는 이름으로 각인되었다. 번역가의 컴퓨터에는 작가의 세 번째 작품 원고가 저장되어 있다는데 조만간 이 작품도 만나볼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미스터리보다 스릴러 쪽에 가깝다는데 내년 여름에는 읽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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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쓸모 - 자유롭고 떳떳한 삶을 위한 22가지 통찰
최태성 지음 / 다산초당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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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좋아하고 공부하는 걸 즐기지만 '역사를 왜 알아야 해? 역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게 뭐야?'라는 질문에는 답하기가 쉽지 않다. 이유없이 나는 그냥 역사가 좋았으니까. 종이에 기록된 일들이지만 먼 옛날에도 사람들이 살았고, 그들의 삶이 지금 우리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아가는 과정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태어났을 때부터 탑재되어 있었던 것 같은 향수와 어떤 그리움이 느껴져 역사라는 단어만 생각해도 마음이 애달팠다. 하지만 이런 나의 감정을 '역사의 쓸모'에 대해 묻는 사람들에게 설명하는 것 또한 쉽지 않다. 근현대사 속 일본의 만행에 대해 이야기할 때 느끼는 울분은 한국인이라면 당연한 것이지만 그것이 역사의 '쓸모'는 아니므로. 밥벌이에 치이고 삶의 이러 저러한 풍랑에 휩쓸려 사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문구는, 가끔은 배부른 자의 이상향처럼 느껴질 때도 있는 것이다.  

늘 고민해왔던 역사의 '쓸모'에 대해 저자 최태성 선생님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어떤 사람은 역사가 단순히 사실의 기록이라고 말하지만, 저는 오히려 그것은 착각이고 역사는 사람을 만나는 인문학이라고 강조합니다. 역사는 나보다 앞서 살았던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나는 어떻게 살 것인지를 고민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존재예요. 역사를 공부했음에도 살아가는 데 어떠한 영감도 받지 못했다면 역사를 제대로 공부했다고 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는 역사를 공부할 때의 감정만 잊지 않으면 된다고 했다. 일제강점기 우리나라를 일본에 넘긴 을사오적을 공부할 때의 분노, 그 기분을 잊지 않고 기억해두었다가 사회에 나가서 선택을 하거나 책임을 져야 할 때 떠올리라고. 그 마음이 역사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일깨워 줄 것이라고. 당장의 상황을 모면하려다가 삶을 망가뜨리는 사람들의 경우를 생각하고, 그런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역사에 남을 부끄러운 선택을 하지 않도록 하는 데 역사의 '쓸모'가 있음을 이야기한다. 저자 자신이 중요한 선택을 앞두고 독립운동가 이회영 선생의 일생을 다룬 다큐 프로그램의 말미에 나오는 문구에 영향을 받았다는 부분은 무척 감동적이었다.

 

저자는 '삶이라는 문제에 역사보다 완벽한 해설서는 없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총 4개의 주제로 나누어 역사의 쓸모를 이야기한다. <쓸데없어 보이는 것의 쓸모, 역사가 내게 가르쳐준 것들, 한 번의 인생 어떻게 쓸 것인가, 인생의 답을 찾으려는 사람들에게>라는 주제 속에서 역사 속 인물들이 각각의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했는지 들려주고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 묻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궤적 속에서 다산 정약용의 이야기가 유독 인상적이었다. 정조가 키운 다재다능한 학자였던 정약용은 정조의 죽음과 함께 몰락의 길을 걷게 되는데, 그는 유배지에서도 나라와 운명을 탓하며 인생을 허비하기보다 18년 동안 무려 500권의 책을 집필한다. 그는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복숭아뼈에 세 번 구멍이 날 정도로 글 쓰는 일에 매진한 이유를 밝히고 있다. 관직에 나갈 수 없는 폐족일지라도 선비의 기상을 유지할 것, 폐족에서 벗어나 청족이 되려면 독서를 중요시 할 것 등에 대해 일침을 가한다. 지금 자신의 생각을 남기지 않는다면 후세 사람들이 자신을 죄인으로만 기억할 것을, 지금은 비록 죄인의 입장이나 자신이 글쓰기를 계속하는 한 역사는 자신을 '죄인 정약용'으로만 기억하지 않을 것임을 믿었던 사람. 지금의 이 고난이 끝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조급한 마음을 버릴 수 있게 해주는 훌륭한 일화다.

진실로 너희들에게 바라노니, 항상 심기를 화평하게 가져 중요한 자리에 있는 사람들과 다름없이 하라. 하늘의 이치는 돌고 도는 것이라서, 한번 쓰러졌다 하여 결코 일어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역사는 그저 문서 속의 무언가가 아니다. 우리 삶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잡고 있어 우리의 삶의 방향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안내자의 역할을 한다. 과거에 일어났던 어떤 일은 현재에도 똑같이 일어나 지금의 우리에게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묻기도 한다. 당장은 눈으로 확인할 수 없어도 우리 삶 하나하나가 소중한 역사가 된다. 우리가 행한 말과 행동이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고 그 영향이 어디까지 뻗칠 것인가는 미지수이나 설령 이름있게 알려지지는 못해도 '아무개'로서 살아온 시간들은 소중하게 기억될 것이다. 누군가의 기억에 영원히 남는다 하니 두렵지 아니한가. 그러니 과거의 거울을 통해 지금의 우리는 '잘' 선택하고, 의미있게 이 삶을 살아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 역사의 '쓸모'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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