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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가 돌아왔다
C. J. 튜더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6월
평점 :
도박 빚에 허덕이며 목숨까지 위협당하는 조 손은 교사 자리가 있다는 소식에 고향
안힐로 숨어든다. 그에게는 비극적인 기억이 존재하는 고향. 이곳에서 그는 교통사고로 아버지와 동생 애니를 잃었고 자신 또한 다리에 상처를
입었다. 하지만 조는 알고 있었다. 애니가 죽기 훨씬 전에 이미 애니를 잃었다는 것을. 애니는 더 이상 애니가 아니었다는 것을. 그가 고향에
돌아온 이유는 도박 빚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에게 익명으로 보내진 한 통의 메일. ‘나는 네 여동생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 그 사태가
다시 벌어지고 있어.’ 그가 안힐로 오기 전에 마을에서는 한 엄마가 자신의 아들을 살해하고 자신 또한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졌었다. 아들의 침대
위에는 ‘내 아들이 아니야’라는 문구를 남긴 채. 안힐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조가 겪은 일의 진실은 과연 무엇인가.
<선데이 타임스> 베스트셀러로 선정되었고, 영국 범죄작가협회에서
시상하는 스틸 대거상과 전영도서상 최종 후보였으며 40개국으로 수출된 작가의 전작 [초크맨]. [애니가 돌아왔다]에 관심과 기대가 쏠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두 작품은 비슷한 플롯을 가지고 있다. 학교 선생님인 주인공, 네 명의 어린 시절의 친구, 불길한 사건들로 인해 더럽혀지는 어린
시절의 추억, 고향을 떠났다가 문득 다시 찾아와 잔잔했던 수면에 파문을 일으키는 한 사람, 그로써 파헤쳐지는 과거의 음울한 비밀. [애니가
돌아왔다]와 [초크맨]에 차이가 있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초자현적인 현상을 소재로 삼았다는 것이다. 무언가가 바로 뒤에 서서 미소 짓고 있을 것
같은 느낌, 닫혀진 변기 뚜껑을 보고 흠칫흠칫 반응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기분. 그 어둡고 공기가 꽉 막힌 것 같은 분위기는 책을 읽는 내내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아서 꿈에서까지 괴롭힐 정도였다.
작품이 주는 공포의 원인 중 하나는 우리나라의 ‘한’의 정서를 따르지 않는다는 데
있다. 자신에게 위해를 가한 사람에게 원한을 품고 그에게 복수하기 위해 귀신으로 나타나는 우리의 공포 이야기에 반해, 작품 속 불길한
‘무언가’의 의식이 향하는 대상은 무차별적이다.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공포스러운 것이다. 죄가 없는 사람에게조차. 그리고 익숙하고 안정적이었던
존재가 이제는 더 이상 그렇지 않다는 것,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니라는 그 섬뜩함과 이질감은 작품 전반을 떠돌며 숨을 턱 막히게 하는 데
일조한다. 게다가 결말 부분에 휘몰아치는 진실과 반전이라니.
또 한가지 매력적인 점은 작가가 그려내는 십대 특유의 성향과 분위기에 있다.
집단이 어느 한 개인을 공격하고 괴롭히는 모습, 무리에 끼기 위해 자신보다 약한 누군가를 배척할 수밖에 없는 현실들이 굉장히 생생해서 마치
작가가 그런 실재를 겪었던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실제로 탄광촌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석탄산업과 지역 공동체와 광부들의 죽음을 목격하면서
과연 죽음을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는데 작품이 탄탄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탄생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문장들 또한 굉장히 철학적이어서 섬뜩한 미스터리 소설이 아닌 인생에 관해 논하는 작품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그녀가 소재로 삼은 초자연적인 현상은 '유령'이라는 존재로 국한되지는 않을 것 같은데 결말 부분에서 그 부분을 아예 배제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나로서는 조금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한 가지였다고 할까.
이제 단 두 작품. 이 작품들로 C.J. 튜더는 전 세계 스릴러 독자들에게 잊을
수 없는 이름으로 각인되었다. 번역가의 컴퓨터에는 작가의 세 번째 작품 원고가 저장되어 있다는데 조만간 이 작품도 만나볼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미스터리보다 스릴러 쪽에 가깝다는데 내년 여름에는 읽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