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살에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 스탠퍼드 대학교 최고의 인생 설계 강의, 10주년 전면 개정증보판
티나 실리그 지음, 이수경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만일 당신에게 5달러와 두 시간을 주고 그것을 활용해 돈을 벌어오라고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창의력이 지극히 떨어지는 나로서는 이런 종류의 질문들이 당황스럽기만 하다. 대학 다닐 때 이런 질문을 듣고 프로젝트를 실행하라고 했다면 누구보다 망연자실했을 게 틀림없다. 이 질문은 저자가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스탠퍼드 대학교 디 스쿨에서 강의를 하며 학생들에게 내 준 과제로, 그녀는 열네 개 팀에게 종자돈 5달러가 들어 있는 봉투를 나눠주고는 아이더를 짜는 데는 얼마든지 시간을 들여도 좋으나 봉투를 연 순간부터는 두 시간 내에 최대한의 수익을 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각 팀에게 일요일 저녁까지 과제를 완수하고 발표 자료를 만들어 제출한 뒤, 월요일 오후에 3분간 프레젠테이션을 하도록 시킨다. 으아. 글자를 읽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벌렁, 머리속이 복잡해져온다. 나라면 과연 어떻게 했을까. 주입식 교육의 산물인지, 아마도 나는 이 과제를 '대충' 넘기려 했을 것 같다.

 

그런데 저자가 주문한 프로젝트를, 물론 나처럼 단순하게 생각하고 어영부영 실행한 학생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과제를 진지하게 파고들어 전통적이고 흔한 사고방식에 의문을 제기하며 다양한 가능성을 찾아냈고, 최대한의 가치를 창출해냈다. 게다가 두 시간 동안 상당히 많은 돈을 번 팀들은 5달러를 단 한 푼도 사용하지 않았다고 하니, 놀라울 수밖에. 그 중 가장 높은 수익을 올린 팀은 650달러의 수익을 올렸다고 한다. 잠재된 창의력을 발휘할 기회를 제공하고,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최대한 활용한 학생들. 학교 안과 밖의 생활에는 크게 차이가 있다. 어떤 일에는, 대부분은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다. 공교육 안에서 교육받고 훈련받았던 일들이 단 한 가지로 무너지는 일도 빈번히 발생한다. 정해진 답을 찾는 연습만 해왔던 나같은 사람은 사회에 나가는 순간 당황하기 마련이다. 세상을 완전히 새로운 각도로 바라보는 것. 결코 쉽지 않지만 특히 이 시대에는 필요한 일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서 기회를 찾아내고, 우선순위를 균형있게 조절하고, 실패에서 배우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날마다 마주칠 장애물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새로운 렌즈를 갖게 하는 것. 그것이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목표였다.

 

전 세계 15개국 번역, 한국에서만 50만 독자가 선택한 베스트셀러 [스무살에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이 출간 10주년을 맞아 전면 개정증보판으로 돌아왔다. 이는 창의적 인재들을 발굴해내는 것으로 유명한 스탠퍼드 대학의 명강의 ‘기업가정신과 혁신’을 바탕으로 정리한 책으로 출간 당시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독자들의 열정과 도전 정신을 다시금 불러일으키며 ‘잃어버린 스무살 되찾기’ 열풍을 일으켰다. 인생의 첫 번째 스텝에 들어설 20대, 그리고 인생을 재설계하고픈 30~40대 독자들에게 희망과 감동을 선사하는 책으로 여전히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이번 개정증보판에서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교육과정으로 주목받는 스탠퍼드 대학 ‘디 스쿨(d.school)’에서 글로벌 인재들을 가르쳐온 그녀의 지난 10년이 오롯이 담겨 있다. 무려 10년 동안 스탠퍼드에서 명강의의 자리를 굳건히 지켜온 ‘기업가정신과 혁신’ 강의를 바탕으로 스탠퍼드 강의실에서 만난 색다른 아이디어를 담아냈을 뿐 아니라 일론 머스크, 스티브 잡스, 래리 페이지 등 세계적인 혁신가들로부터 얻은 인사이트를 예시로 초판에선 볼 수 없었던 인생 설계의 요령과 새로운 아이디를 추가했다.

 

자기계발 관련 책을 잘 읽지 않는 나로서는 접근하기 어려울 책이라 생각했는데,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중간중간 삽입된 소제목들만 읽어도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달리 보면 해결되는 것들', '기발한 최악의 아이디어', '과감히 규칙을 깨라', '허락을 기다리거나 스스로 결정하거나', '복권에 당첨되려면 우선 복권을 사라', 직업 선택 전에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등. 혹시라도 책의 매력을 미리 접하고 싶다면 훌렁훌렁 넘기면서 작은 제목들부터 읽고 마음에 드는 부분부터 읽어내려가도 좋겠다.

 

제목에는 '스무 살'이라는 단어가 들어있지만, 사실 나이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스무 살이 아니라, 시간이 흘러 지금의 나이가 되었기 때문에 알게 되는 것들도 있고, 지금 알게 되어 그 가치가 더 소중해지는 것들이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혹시 지금 슬럼프에 빠져 있거나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에게 신선한 시각을 제공하기 위해, 아니면 기분전환이라도 할 겸 읽어보기를 권한다. 혹시 누가 알겠는가. 이 책에서 자신이 앞으로 걸어가야 할 방향을 발견하게 될 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작은 사랑 이야기 웅진 모두의 그림책 27
티아 나비 지음, 카디 쿠레마 그림, 홍연미 옮김 / 웅진주니어 / 2020년 1월
평점 :
절판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장갑'을 소재로 이 책은 어떻게 풀어냈을까요.

왼쪽 장갑에게 들려온 툭 하고 떨어지는 소리.

소리가 너무 작아 주인인 트리누는 듣지 못하고, 장갑은 주머니 밖으로 고개를 빼꼼 내밉니다.

떨어진 것은 자신의 단짝, 오른쪽 장갑.

 

한짝만 남은 장갑이 어떻게 되는지 잘 알고 있는 왼쪽 장갑은 겁이 덜컥 났죠.

쓰레기장에 뒹굴어 까마귀와 갈매기들이 콕콕 쪼아댈 거고,

운이 좋아 새가 둥지로 물어간다 해도 얼마 지나지 않아 축축해지고 썩게 될 거에요.

 

트리누 때문에 힘들지 않은 적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트리누는 그동안 장갑들을 아끼고 사랑해주었답니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몸을 비틀어 힘껏 바닥으로 떨어진 왼쪽 장갑.

바들바들 떨면서 누워 있었지만 트리누는 알아채지 못하고 그 자리를 떠났어요.

 

그 때, 몇 발짝 걸어가던 트리누가 걸음을 멈추고 홱 돌아섭니다.

왼쪽 장갑을 주우러 온 트리누는 오른쪽 장갑도 없어졌다는 것을 알아채고

오던 길로 되돌아가 왼쪽 장갑과 오른쪽 장갑을 다시 만나게 해 주었답니다.

그림책의 분위기는 다소 어두운 편이지만

전해지는 이야기는 무척 따뜻해요.

 

자신의 소중한 단짝을 찾기 위해 용기를 낸 왼쪽 장갑.

그렇게 떨어진 장갑을 주워 아끼는 트리누의 모습은 가슴 한 쪽에 따스한 온기를 전달해줍니다.

 

이렇게 작은, 장갑이라는 소재로 요런 이야기를 지어낼 수 있다니

놀라울 뿐이에요.

 

요즘은 아이와 그림책을 보면서

그림에 집중하도록 노력하고 있는데요,

그림책의 세계가 얼마나 무궁무진한 지.

 

올해는 좋은 그림책을 더 많이 만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해러스먼트 게임
이노우에 유미코 지음, 김해용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내 '하라'문제는 아키쓰에게!]

도쿄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 소도시, 도야마 항에서 가까운 마루오 슈퍼 도야마 추오점에서 점장을 맡고 있는 아키쓰 와타루. 과거에는 도쿄 본사의 중추였던 점포개발부에서 요직을 맡고 있었지만 7년 전 어떤 사건을 계기로 본사에서 나왔다. 그 후로 아키타, 도야마 등 북쪽의 작은 지점에서 활기차게 살아가고 있는 그에게, 어느 날 갑자기 본사의 컴플라이언스실 실장으로의 인사이동 명령이 떨어진다. 사내 문제와 해러스먼트를 주로 다루는 컴플라이언스실이라니, 왜 갑자기 나에게?! 라는 의문을 가득 안고 도쿄로 향하는 아키쓰. 전임 실장이 갑자기 쓰러진 후 홀로 업무를 처리하던 다카무라 마코토와 함께 회사 내에 일어나는 온갖 해러스먼트를 해결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런 아키쓰애게는 꼭 들어야만 하는 답이 있다. 자신의 부하 직원이었던 와키타가 어째서 자신을 파워하라(같은 직장에서 직무상의 지위나 인간관계의 우위성을 배경으로 적정한 업무를 초과해 정신적, 신체적으로 고통을 주는 행위)로 밀고한 것인지. 그 이유에 대한 답을, 이번에는 꼭 듣고 싶다.

작품 안에서 제시되는 해러스먼트의 종류는 다양하기도 하다. 세쿠하라(성희롱)와 파워하라는 물론, 해러스먼트로 고소하겠다고 위협하는 하라하라, 일종의 오지랖으로 일어나는 참견 해러스먼트, 리스하라(법률 규칙에 의거해 악의적으로 상대방을 구속하는 괴롭힘), 파타하라(부성 침해. 육아를 위한 휴가, 노동시간 단축 등을 신청하는 남성을 짓궂은 언행으로 괴롭히는 것), 젠더하라 등. 일상생활에 이렇게도 많은 해러스먼트가 있었나 놀라울 정도로 수많은 '하라'가 등장하는 데다, 이건 해서 안 되고, 저것도 해서는 안되는 이런 저런 기준들이 제시되어 있어 요즘 세상 살아가기 참 힘들다는 생각이 저절로 드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요즘에는 학교에서도 교사가 학생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거나 등을 툭툭 치는 것도 오해의 소지가 있으니 조심하라고 한다더라. 물론 조심하는 것이 맞겠지만 세상이 점점 각박해지는 것 같아 씁쓸해지기도 한다.

주인공인 아키쓰를 보면 [한자와 나오키] 속 한자와 부장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출세에 딱히 관심도 없고, 그저 주어진 일에 맡은 바 책임을 다하면서 묵묵히 임무를 완수해내는 사람. 모르는 사람이 보면 불성실해보이는 것 같기도 하지만 모든 행동을 계산하는 노련한 면과 기발한 아이디어도 갖추고 있다. 비록 해러스먼트와 관련된 지식은 부족하나 오랜 세월 쌓아온 연륜과 인간관계를 바라보는 냉철한 시각으로 사내 문제를 해결해가는 모습은 듬직하다. 그런 그의 곁을 지켜주는 뚝심있는 아내 에이코와 토끼(?)같은 딸 나쓰미. 그리고 정의롭고 열정적인 마코토. 이 두 사람의 조합을 다른 이야기로 또 만나보고 싶다. 속편이 나와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술관에 간 물리학자 - 명화에서 찾은 물리학의 발견 미술관에 간 지식인
서민아 지음 / 어바웃어북 / 202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와, 물리.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내가 '물리'라는 단어가 들어간 책을 읽게 될 줄이야. 만약 이 책 제목에 '미술관'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지 않았다면, 이 책이 <미지인> 시리즈가 아니었다면, 내가 이 책을 이리 열심히 들고 읽을 일은 없었을 것이다. 짐작하셨듯이 나는 물리포기자. 수학, 물리. 생각만해도 꿈속에서조차 다시 공부하고 싶지 않은 과목들이었는데 요즘에는 내가 자처해서 수학과 물리학의 문턱을 기웃기웃하는 중이다. 살아가는 데 있어 '절대!' 는 없음을 실감하는 요즘이라고 할까. <미술관에 간~> 시리즈는 지금까지 인문학자, 수학자, 화학자(두 권), 의학자의 총 다섯 권이 출간되었는데, 이번에는 물리학자라니! 과연 물리와 명화가 어떻게 어울릴 지 호기심이 생기지 아니할쏘냐!

 

시작부터 심오하다. 브뢰헬의 <베들레헴의 인구조사>를 태양의 흑점을 이용해 설명한다. 베들레헴은 눈이 온 적이 없을텐데 브뢰헬은 흰 눈으로 뒤덮인 크리스마스 이브를 그리고 있다. 플랑드르의 겨울 풍경 위에 성서 이야기를 풀어놓았는데, 당시 플랑드르를 지배하고 있던 합스부르크 왕 펠리페 2세가 사람들에게 부당하게 세금을 걷자 이를 비판하기 위해 성서를 각색했다는 의견도 있다. 어둠이 내려앉은 앙상한 겨울나무, 스산한 분위기, 두터운 눈에 파묻힌 마을. 기상학자와 대기, 천문 과학자들은 이 그림이 '소빙하기 시대'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평가한다. 소빙하기는 태양 흑점이 감소하고 화산이 자주 분출해 발생했다고 보여지는데, 책에서는 이 태양 흑점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화산 폭발로 인해 어둡고 뿌옇게 보이는 겨울 하늘. 그 하늘이 브뢰헬의 그림에서도 잘 표현되어 있는 것이다. 마무리는 소빙하기에 대한 염려와 자연의 순환에 맞추어 즐겁게 살아가려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내가 좋아하는 작가 요하네스 베르메르 그림에 관해 설명된 부분도 있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로 유명한 화가인 베르메르의 작품 중에는 <델프트 풍경>이라는 그림도 있는데, 여기에서는 카메라 옵스큐라에 대해 알려준다. 엥?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생소한 단어. 어려운 설명들이 이어지지만, 어두운 상자의 한쪽에 난 구멍을 통해 변화하는 빛을 이용해 그림을 그리는 방식이라고 할까. 이것을 활용해 대상물의 3차원 이미지를 2차원 평면에 투영한 다음, 종이에 그대로 따라 그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눈으로 보고 그린 것보다 실제에 가깝게 정확한 비율로 사물을 그릴 수 있고, 빠르게 스케치를 완성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외에도 여러 화가와 작품이 소개될 때마다 다양한 물리학 지식이 뒤를 따른다. 그 물리학 지식이 교과서에 실려 있었다면 난 아마도 멍을 때리며 하얀 것은 종이고, 까만 것은 글자요 했겠지만, 역시 좋아하는 그림들과 함께 읽다보니 자연히 눈에 힘을 주게 된다.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들도 이런 방식을 사용하면 얼마나 좋을까. 미술과 과학의 융합. 이것이 바로 steam 교육이다! 다음에 미술관에 가는 학자는 누가 될지, 또 어떤 그림들이 소개될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대성당 (10주년 기념 리커버 특별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9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10월
평점 :
품절


 

네이버 독서카페 #리딩투데이 에서 함께 읽는 도서로 선정된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0주년 특별판 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은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이다. 과연 이 작품을 만날 수 있을까, 책이 손에 들어오기까지 불안, 초조했었는데, 그 이유는 인터넷서점에서 구하기가 매우 힘이 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여기저기 품절. 함께 읽을 수 있을까 무척 걱정했었기 때문인지 책을 읽을 때의 기쁨이 배가 되었던 것 같다. 1983년 그의 대표작이라고 평가받는 <대성당>으로 전미도서상과 퓰리처상 후보에 올랐다.

 

총 열 두 편의 이야기가 실린 이 작품집은 그 메시지 파악의 유무와는 별도로 술술 잘 읽힌다. 문장 하나하나가 정갈하고 군더더기 없는 느낌. 깔끔하고 명확한 묘사로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장면들이 마치 영화처럼 눈 앞에서 흘러가는 듯 하다. 그 어떤 미사여구 없이, 상황을 있는 그대로 내보이면서, 나는 썼다, 당신들은 읽어라-와 같은 무심함도 엿보인다. 개인적으로 단편소설을 잘 쓰는 작가를 더 높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는데, 짧은 분량 안에 전달하고자 하는 것을 얼마나 풍부하고 효율적으로 담아내는가는 그 작가의 역량과 관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 레이먼드 카버가 얼마나 대단한 작가인지는 모르겠으나. 그것이 나의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이상하게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다. 한 작품이 끝나면 그 다음 작품을, 또 한 작품이 끝나면 그 다음 이야기가 읽고 싶어져 페이지를 쉴 새 없이 넘기게 만들었다.

 

<대성당>을 읽기 전에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노트르담 드 꼽추>같은 작품을 연상했다. 아내와 연락을 주고받던 맹인을 만나고, 맹인과 대성당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전혀 생각지도 못한 경험을 하게 되는 남자의 이야기. 맹인이 보는 방식을 배우게 된 남자의 이야기는 조금 어렵게 다가오기도 하지만, 글로는 다 전달하지 못할 느낌으로 독자에게 독특한 감상을 전달한다. 마치 남자가 '이거 진짜 대단하군요' 라고 말하는 의미를, 작품을 읽고 나면 알게 된다고 할까.

 

처음으로 등장해서인지 다소 음산하고 기괴하게 강렬한 이미지를 남긴 <깃털들>과 더불어 나의 마음 속에 깊이 자리한 작품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이었다. 생일을 맞은 한 아이가 다른 아이와 함께 걸어서 등교하고 있다. 그리고 갑자기 일어난 뺑소니 사고. 아이는 사고 당시에는 멀쩡한 것처럼 보였지만 다시 집으로 돌아가 엄마에게 사고에 관해 이야기하다 쓰러져 혼수상태에 빠진다. 슬픔과 절망에 빠진 부모. 의사는 아이가 곧 깨어날 거라며 그들을 안심시키지만 결국 아이는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생일 전에 미리 빵집에 케이크를 예약해둔 엄마는 그 일을 까맣게 잊어버렸는데, 아이의 부모가 번갈아가며 집에 들렀을 때 이상한 전화가 걸려온다. '당신 스코티 말이오. 당신을 위해 내가 그애를 준비해놓았소'. 흡사 스릴러의 한 장면처럼 엄청난 긴장감을 유지한 채 진행되는 이야기. 아이가 숨을 거둔 후 그제서야 생일 케이크를 떠올린 엄마는 이상한 전화를 건 사람의 정체가 빵집 주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남편과 빵집으로 달려간다. 그에게 사고에 대해 이야기하고, 이상한 전화에 대해 사과를 받고, 빵집 주인이 권하는 빵을 먹으며 아침이 될 때까지 이야기를 나누는 세 사람.

 

아이들을 낳은 뒤로 아이가 등장하는 작품에는 유독 관심이 간다. 어쩔 수 없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에서도 상상조차 하기 싫은 설정에 숨이 턱 막혔다. 순식간에 아이는 세상에서 사라지고 갑자기 아이를 잃은 부부는 절망과 슬픔, 분노와 두려움을 빵집 주인에게 쏟아붓기 위해 찾아갔다. 그 곳에서 만난, 생각지도 못한 위로. 그 위로 앞에 부부는 무너지고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시간들 속에서 다시 아침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 이 한 작품으로 나는 그냥 엄지 척! 표제작이기도 한 <대성당>도 물론 좋았고, 여러 상에 노미네이트 된 만큼 경이롭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정말 심금을 울린 작품은 이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디 그냥 읽어보시기를 권한다. 그의 문장과 상황에 몸을 맡겨보시기를.

 

작가가 던지는 다양한 메시지를 전부 알아내지는 못하겠다. 못 알아챈 것도 있고, 글로 표현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가슴 벅차게 다가오는 작품도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세계문학을 읽게 되어 다행이라는 것. 그리고 나에게 레이먼드 카버는 <대성당>보다는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의 작가로 기억될 것 같다는 것. 진주를 발견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