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성당 (10주년 기념 리커버 특별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9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10월
평점 :
품절


 

네이버 독서카페 #리딩투데이 에서 함께 읽는 도서로 선정된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0주년 특별판 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은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이다. 과연 이 작품을 만날 수 있을까, 책이 손에 들어오기까지 불안, 초조했었는데, 그 이유는 인터넷서점에서 구하기가 매우 힘이 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여기저기 품절. 함께 읽을 수 있을까 무척 걱정했었기 때문인지 책을 읽을 때의 기쁨이 배가 되었던 것 같다. 1983년 그의 대표작이라고 평가받는 <대성당>으로 전미도서상과 퓰리처상 후보에 올랐다.

 

총 열 두 편의 이야기가 실린 이 작품집은 그 메시지 파악의 유무와는 별도로 술술 잘 읽힌다. 문장 하나하나가 정갈하고 군더더기 없는 느낌. 깔끔하고 명확한 묘사로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장면들이 마치 영화처럼 눈 앞에서 흘러가는 듯 하다. 그 어떤 미사여구 없이, 상황을 있는 그대로 내보이면서, 나는 썼다, 당신들은 읽어라-와 같은 무심함도 엿보인다. 개인적으로 단편소설을 잘 쓰는 작가를 더 높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는데, 짧은 분량 안에 전달하고자 하는 것을 얼마나 풍부하고 효율적으로 담아내는가는 그 작가의 역량과 관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 레이먼드 카버가 얼마나 대단한 작가인지는 모르겠으나. 그것이 나의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이상하게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다. 한 작품이 끝나면 그 다음 작품을, 또 한 작품이 끝나면 그 다음 이야기가 읽고 싶어져 페이지를 쉴 새 없이 넘기게 만들었다.

 

<대성당>을 읽기 전에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노트르담 드 꼽추>같은 작품을 연상했다. 아내와 연락을 주고받던 맹인을 만나고, 맹인과 대성당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전혀 생각지도 못한 경험을 하게 되는 남자의 이야기. 맹인이 보는 방식을 배우게 된 남자의 이야기는 조금 어렵게 다가오기도 하지만, 글로는 다 전달하지 못할 느낌으로 독자에게 독특한 감상을 전달한다. 마치 남자가 '이거 진짜 대단하군요' 라고 말하는 의미를, 작품을 읽고 나면 알게 된다고 할까.

 

처음으로 등장해서인지 다소 음산하고 기괴하게 강렬한 이미지를 남긴 <깃털들>과 더불어 나의 마음 속에 깊이 자리한 작품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이었다. 생일을 맞은 한 아이가 다른 아이와 함께 걸어서 등교하고 있다. 그리고 갑자기 일어난 뺑소니 사고. 아이는 사고 당시에는 멀쩡한 것처럼 보였지만 다시 집으로 돌아가 엄마에게 사고에 관해 이야기하다 쓰러져 혼수상태에 빠진다. 슬픔과 절망에 빠진 부모. 의사는 아이가 곧 깨어날 거라며 그들을 안심시키지만 결국 아이는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생일 전에 미리 빵집에 케이크를 예약해둔 엄마는 그 일을 까맣게 잊어버렸는데, 아이의 부모가 번갈아가며 집에 들렀을 때 이상한 전화가 걸려온다. '당신 스코티 말이오. 당신을 위해 내가 그애를 준비해놓았소'. 흡사 스릴러의 한 장면처럼 엄청난 긴장감을 유지한 채 진행되는 이야기. 아이가 숨을 거둔 후 그제서야 생일 케이크를 떠올린 엄마는 이상한 전화를 건 사람의 정체가 빵집 주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남편과 빵집으로 달려간다. 그에게 사고에 대해 이야기하고, 이상한 전화에 대해 사과를 받고, 빵집 주인이 권하는 빵을 먹으며 아침이 될 때까지 이야기를 나누는 세 사람.

 

아이들을 낳은 뒤로 아이가 등장하는 작품에는 유독 관심이 간다. 어쩔 수 없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에서도 상상조차 하기 싫은 설정에 숨이 턱 막혔다. 순식간에 아이는 세상에서 사라지고 갑자기 아이를 잃은 부부는 절망과 슬픔, 분노와 두려움을 빵집 주인에게 쏟아붓기 위해 찾아갔다. 그 곳에서 만난, 생각지도 못한 위로. 그 위로 앞에 부부는 무너지고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시간들 속에서 다시 아침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 이 한 작품으로 나는 그냥 엄지 척! 표제작이기도 한 <대성당>도 물론 좋았고, 여러 상에 노미네이트 된 만큼 경이롭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정말 심금을 울린 작품은 이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디 그냥 읽어보시기를 권한다. 그의 문장과 상황에 몸을 맡겨보시기를.

 

작가가 던지는 다양한 메시지를 전부 알아내지는 못하겠다. 못 알아챈 것도 있고, 글로 표현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가슴 벅차게 다가오는 작품도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세계문학을 읽게 되어 다행이라는 것. 그리고 나에게 레이먼드 카버는 <대성당>보다는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의 작가로 기억될 것 같다는 것. 진주를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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