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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 1천 권의 조선 - 타인의 시선으로 기록한 조선, 그 너머의 이야기
김인숙 지음 / 은행나무 / 2022년 6월
평점 :

우리나라를 다른 나라에 널리 알린 역할을 맡은 책이라고 한다면 <하멜표류기>가 떠오릅니다. 제가 알고 있는 것은 딱 요기까지. 이런 책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책이 어떤 연유로, 어떤 과정을 거쳐 쓰였는지까지는 생각해보려고 한 적도 없었어요. 하멜이 조선에 '억류'되었던 기간은 자그마치 13년에 이릅니다. 맞아요, 자발적으로 남은 것이 아닌 '억류'. 물론 탈출 시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억류 3년 차에 시도한 탈출 시도는 실패로 끝나고, 그 결과 하멜과 함께 억류되어 있던 항해사와 포수는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 후 10년이 지나서야 일본 나가사키로 드디어 탈출에 성공, 하지만 곧바로 네덜란드로 돌아가지 못하고 13개월을 더 억류당한 후에야 돌아가게 돼요. 여기에는 또 다른 해석이 있는데요, 그건 책을 통해 확인하시고요, <하멜표류기>가 나오기 전까지 조선은 '누군가에게' 들은 이야기 속 나라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하멜의 글로 인해 생생히 실재하는 나라가 된 거죠.
좀 다른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옛날 우리나라를 알리는 책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병인양요에 대해 공부한 뒤부터였어요. 당시 강화도에 있던 외규장각에 있던 의궤를 프랑스가 약탈해 갔고, 그 의궤를 반환받기 위해 노력한 박병선 박사의 존재를 뒤늦게 알았을 때의 감동이란 말로 표현하기 힘든 것이었습니다. 박사님이 의궤를 발견한 곳은 베르사유 국립도서관 별관의 창고. 조선의 소중한 기록물이 어떤 나라에서는 하찮은 종이 취급을 받는 것을 보고 얼마나 억장이 무너지셨을까요. 가치도 제대로 몰랐던 그들이 우리 것임에도 돌려주지 않으려고 억지를 부리는 것에 대해 분노도 느꼈을 겁니다. 의궤를 우리나라로 돌려보내기 위해 노력하던 박사님은, 프랑스 국립 도서관으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동료들도 그녀를 스파이 취급하며 멸시하죠. 하지만 절대 굴복하지 않았던 박사님의 노력이 있었기에 2011년 4월 297권의 의궤가 돌아오게 됩니다.
의궤의 반환과 박병선 박사님의 활약에 대해 알게 된 후로, 그렇다면 조선은 다른 나라에 어떤 모습으로 비춰졌을지 궁금해졌어요. 아무 힘 없는 작은 나라의 기록이었기에 의궤는 그렇게 창고에 파묻혀 있었던 걸까요. 그들은 과연 우리의 무엇을 보았는지 알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김인숙 작가님의 [1만 1천 권의 조선]이 출간된다는 것을 알고 무척 기쁘고 설레었습니다. 과연 어떤 책들이, 어떤 사람들이 우리 조선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을지 너무너무 궁금했어요.
[1만 1천 권의 조선]에는 앞서 소개해드린 <하멜표류기>를 비롯, 제목 그대로 다양한 책들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조선의 역사와 지리를 비롯해 조선 전반에 대해 서술했던 마르티노 마르티니의 <타르타르의 전쟁>,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키스의 <오래된 조선>, 크뢰벨의 <나는 어떻게 조선 황실에 오게 되었나>, 오페르트의 <금단의 나라 조선 탐험기> 등 제목만으로도 우리나라에 대해 높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다만, 한 가지 참고해야 할 것은 이 책들이 모두 정확한 사실만을 기록한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마케위치는 <한국인은 백인이다>에서 한국인이 고대 그리스인의 후손이고 따라서 백인이라는 어이없는 주장을 하기도 하고, 1578년 조선 해역을 지나다 폭풍우를 만났으나 조선 상륙을 시도하는 대신 폭풍우와 싸우기로 결심한 이탈리아 신부 프레네스티노는 조선인은 '야만인'으로 규정하기도 했어요. 저자조차 '이상한' 책들이라며 소개하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님이 소개한 책들이 귀중한 이유는 당시 역사 속에서 우리가 차지한 위상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일 겁니다.
쥐베르의 <조선 원정기> 편에서는 '병인양요' 당시의 상황이 소개되어 있기도 합니다. 쥐베르는 프랑스 군인이었는데 로즈 제독이 이끄는 프랑스 함대의 사관이었던 거죠. 제도사로서 '기술적인 도면 및 제도를 제작'하고, '차트와 작업도'를 남겼던 그의 '그림 같은 글'로 인해 강화 침공 순간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가 그린 조선 무사의 모습도 함께요.
작가님에 따르면 우리나라를 소개한 서양외서를 이야기할 때, 그 시작은 쿠랑이라고 합니다. 그의 <한국서지>는 책에 관한 책이예요. 책에 관한 이야기, 책의 역사, 책의 언어, 책의 숨결. 간단히 말하면 서지학책인 것이죠. 그가 서지로 작성한 조선 책이 자그마치 3,821종에 이른다고 하니 얼마나 발품을 팔았을지 짐작이 가시나요. 무엇이 그의 등을 떠밀었을지, 그의 열정의 근원은 무엇인지 잘 모르겠지만 한국학 학자로서 활동한 그에게 존경심이 싹틉니다.
작가님이 마지막에 소개한 <함녕전 시첩>에 대한 내용은 읽기만 해도 울분이 솟아오릅니다. 더불어 평소에는 자각하지 못하고 살았던 '애국심'도요. [1만 1천 권의 조선]에 실린 책들은 역사적, 사료적으로도 중요한 문화재겠지만 지금은 어디서도 만나볼 수 없는 책들이 많아 더 귀하게 여겨집니다. 책으로나마 이렇게 접하게 되어 무척 가슴 벅찬 시간이었어요. 역사와 책에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꼭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 강추강추!!
** <은행나무>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