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와 잠수복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진아 옮김 / 북로드 / 202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3월, 복직하고 5일 정도 지났을 때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도 당연한 것이 제 직장이 코로나 소굴이라고 불릴 정도로 확진자가 정말 많았거든요. 지금까지 느껴본 적 없던 이상야릇한 요통과 미식거림으로 시작된 코로나는 결국 온 가족을 휩쓸고 지나간 다음에야 끝을 맺었습니다. 저와 옆지기 둘만 있었다면 담담하게 받아들였을 일도 아이들이 있다보니 아무래도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어요.

 

그러다가 한 달쯤 지났을까요. 동생의 부인, 즉 올케가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퇴근한 옆지기가 슬쩍 물어보더라고요. 올케의 격리기간이 끝났냐고. 아침에 아이들 등원시킬 때와 방금 퇴근할 때 엘레베이터에서 마주쳤다는 겁니다. 저는 아니라고, 아직 안 끝났다고 했더니 심지어 엘리베이터에 다른 사람도 타고 있었다고 말해 줍니다. 스스로가 생각하기에 제 자신도 그렇게 엄청난 도덕적인 사람은 아니에요. 하지만 가능하면 타인에게 피해는 주지 말고 살자는 주의인데요, 옆지기의 그 말을 듣자마자 눈에서 불꽃이 일어나더라고요. 차마 올케에게 직접 말할 수는 없어서 저녁을 먹고 동생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격리 기간 아직 안 끝났는데 왜 돌아다니냐고 물었더니, 올케가 재택을 해야 해서 조카를 어린이집에 등원시켜야 해서 외출했다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제 상식으로는 엄마가 확진이면 아이도 확진될 가능성이 높으니 아이도 등원 안 하는게 맞는 것 같은데, 동생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올케가 일해야 하는데 그럼 어쩌냐고 오히려 되묻더라고요. 아이를 재우고 새벽에 일을 하던가, 급한 일이면 티비라도 틀어주고 업무를 봐야 하는 게 아니냐고 했더니 그런 식으로 말할 거면 전화를 끊으랍니다. 그래서 제가 한 마디 했어요. 부끄러운 짓 하지 말고 살라고요. 그 이후로 동생은 저에게 그 말을 한 것에 대해 사과하라며 냉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제가 심했던 걸까요. 지금까지도 머릿속이 시끄럽고 그 상황을 복기하면서 저의 행동을 복기하고 있는데, 제가 사과를 해야 하는 걸까요.

 

오쿠다 히데오의 [코로나와 잠수복] 작품집에 실린 표제작을 읽고 나니 그 때의 일이 다시 떠오르면서 씁쓸해져요. 허구의 인물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지도 모르지만, 자기 식구들은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바이러스가 전염될까 봐 잠수복을 입고 생활하는 등장인물과 현실 속 일부 사람들이 너무 대비되어서요. 물론 소설 속 인물은 확진 판정을 받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어쩐 일인지 바이러스를 감지하는 능력을 갖게 된 아들에 의해 자신의 몸 속에 바이러스가 있다고 짐작할 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소 웃음거리가 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은 채 잠수복을 입는 주인공을 보니 코로나 시대에 우리가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던 것 같아요.

 

오랜만에 만나는 오쿠다 히데오의 작품입니다. 표제작인 <코로나와 잠수복>을 비롯해 일상의 어느 한 지점을 유머러스하면서도 따뜻하게 묘사해 낸 이야기들이 대부분입니다. 예전에는 작가의 작품이 그저 재기발랄하다고만 생각했었는데, 이번 작품집에서는 읽는 사람의 마음을 묘하게 따뜻하게 적셔주는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어요. 아내의 외도를 알고 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작업을 하겠다는 핑계로 바닷가의 집을 빌린 작가가 유령 아이의 존재를 감지하는 장면조차도 전혀 무섭지 않고 귀엽고 감동적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파이트 클럽>은 또 어떻고요!! 마지막 반전에는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눈가가 시큰해집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세계를 휩쓸고 지나가면서 코로나로 인한 우울감, '코로나 블루'가 생겨났다고 하죠. 저도 복직 전에는 아이들을 등원 시키지 않고 가정보육 하면서 힘든 적도 많았어요. 짜증도 늘었고요. 여전히 끝이 보이지 않는 긴 터널을 통과하고 있지만 재미있는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낄 수 있다면 터널의 끝이 보일 때까지 기운 내서 걸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입니다. 작품집에 실린 등장인물들이 각자가 처한 부조리하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 고난을 헤쳐나갈 길을 찾은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길을 찾게 되길 바랍니다. 그 처음이 오쿠다 히데오의 [코로나와 잠수복]이 된다면, 그것도 참 좋을 것 같아요!

 

** 출판사 <북로드>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