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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의 아이
시게마쓰 기요시 지음, 권일영 옮김 / 크로스로드 / 2021년 10월
평점 :
절판

하루히코는 벼랑 끝에 서 있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시작된 괴롭힘. 잔인한 손길은, 자신 뿐만 아니라 이혼하고 홀로 아들을 키우는 엄마 가나에게까지 뻗어나간다. 여기가 바로 지옥이라고 느낀 순간 하루히코에게 다른 선택이 있었을 리 없다. 엄마를 슬프게 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것밖에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을 때, 그 남자, 시미즈가 나타난다. 낳아준 아버지는 아니지만 엄마와 결혼하고 자신의 아버지가 되겠다고 결심한 사람. 그런 일이 가능하다고? 정말? 당신과 내가 진짜 아버지와 아들 사이가 될 수 있다고?
자신의 반 친구들이 먹을 채소 수프에 발키리라는 독극물을 넣어 수많은 아이들을 죽거나 다치게 만든 아이, '우에다 유타로'. 범행 전에 '목요일의 아이'는 모두 죽을 거라며 예고 편지를 보냈다고 해서 <목요일의 아이> 사건으로 불리는 잔혹 범죄가 일어난 후 7년. 사건이 일어났던 동네 아사히가오카로 이사한 시미즈와 가나에, 하루히코에게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자신의 세계는 이제야말로 끝났다고 생각하는 하루히코 앞에 누군가가 나타난다.
집단 괴롭힘, 가정 내 폭력, 소년 범죄, 사회적 광기 등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사회적 메시지에 주목할 수도 있지만, 나는 이것을 가족소설로 읽었다. 마흔이 넘어 결혼하면서 얻게 된 아들 하루히코. 비록 생물학적인 아버지는 아닐지라도 그를 지켜주겠다고 다짐하는 시미즈는 각오를 다지지만, 그는 갈수록 하루히코가 두렵다. 얼굴에서 떠나지 않는 미소, 막힘없는 대화. 겉에서 보면 아무 문제 없는 부자의 모습이지만, 당연히, 그들 사이에는 행성에서 다른 행성에 이르는 정도의 거리가 있다. 이 두려움은, 이 거리감은, 십대인 자녀를 둔 가정이라면 모두 느끼는 그런 종류의 것인가.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지만 시미즈에게는 기반이 없다. 하루히코와 십 몇 년을 함께 해왔다는 과거가.
하루히코와의 굳건한 추억 없이 분투하는 시미즈의 모습은, 그렇지만 모든 부모의 초상이기도 하다. 한발만 내딛으면 추락할 아들. 그 아들을 앞에 두고 제발 돌아오라며 울부짖을 우리는 하나같이 나약하다. 소설이기에 어떤 거창한 말이나 감동적인 행동으로 하루히코를 구하는 장면이 등장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작가는 그런 기대를 간단히 무시하고 나약한 부모의 모습을 들이민다. 영웅이 아닌 아버지의 모습이라니, 나는 그래서 좋았다. 현실에 영웅인 부모는 없다. 우리는 그저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아이를 지키려고 발버둥치는 존재들일 뿐이다.
무엇이 아이들을 구원할 수 있을지, 책을 읽는 내내 슬픔으로 마음이 묵직했다. 현실에서 부모인 우리가 손에 쥘 수 있는 무기는 무엇인가. 우리가 가진 것은 다만, 진심. 너를 구하겠다는, 네가 돌아올 날을 위해 여기서 계속 기다리겠다는 마음. 애처롭고 보잘 것 없어 보일지라도 그것만이 우리의 무기다. 그러니 부디, 그대로 영원히 떠나지 말고 한 번만 더 손을 내밀어주기를.
목요일의 아이는 멀리 떠난다. 그러나 아이는 언젠가 집으로 돌아온다.
p429
평소 따뜻한 작품만을 접해왔던 시게마쓰 기요시였기에 미스터리 작품은 어떨지 궁금했는데, 역시 이번 작품도 내가 간직해왔던 이미지의 이야기인 것 같다. 비록 앞날을 긍정할 수만은 없는 질문들에 여전히 마음은 어지럽지만, 그래도 그가 작품 끝에 이야기하고자 한 메시지대로 희망의 줄을 잡아본다.
**출판사 <크로스로드>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