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MIDNIGHT 세트 - 전10권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세트
프란츠 카프카 외 지음, 김예령 외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8월
평점 :
품절



 

 

[인간 실격]을 읽는 것이 이번이 몇 번째더라. 아마도 네, 다섯번째는 되는 것 같다. <열린책들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세트를 시작할 때부터 거의 마지막에 읽어야겠다고 마음 먹은 책이 두 권 있는데, 그 중 한 권이 바로 [인간 실격]이다. 여러 번 읽기도 했지만, 어쩌면 그래서 더 이른 시기에 읽고 치웠을(?) 수도 있었지만, '내 이번에야말로 이 작품을 제대로 한 번 이해해보리라!'는 오기 같은 것이 발동했기 때문이다. 그의 다른 작품집인 [만년]을 읽고나서 '어쩌면 기질적으로 맞지 않는 독자와 작가 사이'라는 게 있는 것이 아닐까 고민했을 정도로,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을 이해하기란 나에게 쉽지 않은 일이다.

 

그 동안 나는 주인공 요조를 선천적으로 인간적인 결함을 가진 인물로 보았었다. 인간이 영위하는 삶이라는 것에 대해 전혀 모르겠다고 고백하는 것조차 귀하게 자란 도련님의 배부른 소리로 들렸던 적도 있다. 사람들 속에서 늘 벌벌 떠는 내면을 감추기 위해 광대 짓을 시작하고, 아버지가 원하는 선물을 자신이 말하지 않아 '복수' 당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요조. 그런 그의 사고가 일반적이라고 하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지 않은가. 어쩌면 그는 사회라는 것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혹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위선에 너무나 민감하고 순수한 인물일지도 모른다는, 내면적인 부분에서만 요조를 분석해왔었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읽는데,

 


그 무렵 나는 이미 하녀와 하인들로부터 애처로운 일을 배웠고, 당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어린아이에게 하는 그런 짓거리는, 인간이 행할 수 있는 범죄 중에서 가장 추악하고 저급하며 잔혹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p 23

 

라는 문장이 눈에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이 문장은 요조의 고백이 시작된 후 몇 페이지 지나지 않은 부분에 적혀 있다. 자신의 내면을 철저히 숨긴 채 광대짓을 시작한 요조가, 그러나 자신의 본성은 그런 장난질과는 거의 정반대라고 서술한 부분 뒤에. 아마도 추측하건대 당시 요조는, 어쩌면 다자이 오사무는 집안 하인들로부터 아동 성폭력을 당했던 것이 아닐까. 소설 속에서 '그 무렵'은 학교에 들어가 '장난꾸러기'라는 이미지를 얻게 된 때이지만, 기억이란 은연 중 사람을 미혹시키기도 하고, 어린 아이가 과연 어느 시기부터 기억이라는 것을 하게 되는가를 생각해보면 꽤 오래 전부터 그런 일을 당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의 기행이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자신을 무(無)이자 바람이자 허공이라고 생각한 요조. 자신의 존재에 대해 누가 이리 깊은 허무를 느낄 수 있을까. 어쩌면 몹쓸 짓을 당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니, 그가 여성들과 맺어왔던 관계들조차 납득이 되는 듯 하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추측.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고, 정말 작가가 그런 일을 당했는지, 그 일로 영향을 받았는지 나는 알 수 없다. 그저 몇 번을 읽었음에도 그냥 지나쳤던 문장을 발견하고 흥분한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작가는 그저 인간이 느끼는 허무에 대해 그리고 싶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어쩌면, 어쩌면, 어쩌면. 음, 이번 독서도 여전히 미궁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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