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NOON 세트 - 전10권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세트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외 지음, 황현산 외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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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열린책들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세트>, 총 20권. 대망의 마지막권은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입니다. 20권 중 처음 읽을 책을 고를 때는 살짝 고민했었지만 마지막으로 읽을 책은 이 시리즈를 시작할 때 이미 정해두었어요. 어쩐지 그래야 할 것 같은 기분??!! 여성이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자신만의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라는 주제는, 같은 여성으로서 피해갈 수 없는 질문처럼 여겨지기도 했고요. 굳이 '여성'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싶지는 않지만, 책이 책이니만큼 이번에는 이 단어도 쓰일 수박에 없겠네요.

 

버지니아 울프는 1928년 10월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두 여성 칼리지인 뉴넘 칼리지와 거턴 칼리지에서 두 차례의 강연을 했습니다. 강연의 내용을 글의 형태로 옮긴 첫 번째 시도는 <여성과 소설>이라는 에세이였고, 이것을 여섯 장으로 구성해 보다 긴 [자기만의 방]을 탄생시킵니다. 남성이 지배하는 문학이라는 영역에서, 창작자로서의 여성은 왜 늘 주변화되고 있는가-라는 주제에, 울프는 문학을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여성이든 남성이든 똑같지만 불리한 사회적 조건 때문에 여성은 늘 방해를 받는다고 이야기하죠. 여기에서 탄생한 그 유명한 문장이 '여성이 소설이나 시를 쓰려면 1년에 5백 파운드와 문을 잠글 수 있는 방 한 칸이 필요하다'입니다. 경제적인 자유, 현실적으로 사람들과 분리될 수 있는 방. 이것은 숙모로부터 유산을 상속받은 그녀 자신의 감상이 고스란히 들어있는, 살아있는 문장이라고 할까요.

 


숙모가 세상을 떠났고, 내가 10실링권을 바꿀 때마다 그 악영향이 조금씩 벗겨지고 두려움과 비통이 없어집니다. 잔돈을 지갑에 넣으면서, 그 시절의 비통함을 기억하니 고정 수입이 가져오는 성격 변화가 놀랍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세상의 어떤 권력도 내 5백 파운드를 빼앗지 못합니다. 의식주가 영원히 내 것입니다. 따라서 노력과 노동만 중단되는 게 아니라 증오와 비통도 그치지요.


p 53

 

여성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관련된 내용은 초반부터 명백히 드러나 있습니다. 칼리지 연구원과 동행하거나 소개장을 구비해야만 도서관에 입장할 수 있고, 성당조차도 세례 증서나 참사회장의 소개장이 없으면 마음 편히 들어갈 수 없는 현실. 자기만의 방 한 칸은 커녕, 육아와 가사노동에 치여 글 한 줄도 쓰기 어려운 여성의 입장에서, 울프가 소개한 제인 오스틴이 이룩한 업적은 실로 놀라워보입니다. 작가가 이야기한 돈과 자기만의 방은 글을 쓰는 모든 이에게 필요한 것이지만, 책을 읽다보면 유독 여성에게 더욱 필요한 요소처럼 여겨져요.

 

여기에서 흥미로운 것은 '작가는 만들어진다'고 주장한 울프의 생각이에요. 그녀는 16세기 대문호 셰익스피어에게 재능 있는 여동생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가정하면서, 아마 실제로 그러했다면 비극적인 파멸을 맞이했을 것이라 단언합니다. 천재는 만들어지는 것이라고요. '여성들은 아이 방에서 나오기 무섭게 노동이 시작되었고, 부모에 의해 억지로 일을 해야 했으니까'요. 사회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보이지 않는 폭력, 여성에게 익명을 요구하는 순결 의식. 왜 여성에게 그리 잔인했던 것일까요. 울프의 말처럼, 정말 우리의 세상에는 '남성이 우월해야 하는 뿌리 깊은 욕망'이 살아있는 것일까요.

 

어쩔 수 없이, 저는 또 실비아 플라스가 떠오릅니다. 그녀가 살아있었던 1950년대에도 만연했던 여성에 대한 억압. 여성으로서 자신의 꿈을 실현하는 것은 정말 꿈에서나 가능하고, 오직 남편과 아이를 위해 봉사해야했던 그녀가 억눌렀을 글에 대한 욕망. 그녀에게도 경제적인 자유와 현실적인 방이 있었다면 그토록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하지 않아도 되었겠죠.

 

 

시리즈의 다른 작품들은 읽고 나서 개운한 기분이 들었는데, 어째 [자기만의 방]은 완독 후에도 여전히 뭔가 찜찜합니다. 여성 소설가들의 활약이 돋보이는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사회와 현실은 조금은 관대해졌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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