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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류 인구
엘리자베스 문 지음, 강선재 옮김 / 푸른숲 / 2021년 10월
평점 :

SF 과학소설 [잔류 인구]를 읽으면서 내내 떠올랐던 의문은 '인간이 만들어낸 기술을 인간과는 다른 지적 생명체와 나누는 것이 어째서 문제가 되는 것인가'였다. 콜로니에 홀로 남아 비로소 자유로운 삶을 만끽하고 있는 오필리아. 난생 처음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며 살게 된 그녀에게, 다른 지적 생명체의 존재를 눈치 챈 정부의 조사기관은 묻는다. 그들에게 모든 것을 다 보여주었느냐고, 힐난의 기색을 담아서. 다른 존재들이 처음 맞닥뜨렸을 때 생기는 경계심은 당연한 것이다. 서로에 대해 알지 못하므로. 하지만 작품속 사람들은 그들을 자생종이라 부르며 처음부터 그들을 미개한 종족이라 규정짓고 시작한다. 단 한 사람, 오필리아를 제외하고. 때문에 인간들의 기술이 그들에게 알려지는 것을 참을 수 없어 하는 것이다. 그들이 새로운 무언가를 배워 인간들보다 더 뛰어난 존재로 거듭나는 것은 절대 안 되는 일이기 때문에. 애초에 그런 사람들의 머리속에는 화합이라는 단어가 빠져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자생종과 오필리아는 그리 다를 바 없는 존재다. 오필리아는 나이를 많이 먹었고, 그래서 할머니이고, 당연히 판단능력이나 사고력이 떨어질 것이라 생각했고, 무언가를 많이 배운 자신들보다 덜 배웠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어리석은 짓을 저지른 것이라 생각한다. 그들은 눈 앞에 보이는 모습, 오필리아가 평범한 노인이라는 그 하나에만 집중한다. 오필리아가 어떤 경험을 했고, 어떤 시간들을 보내면서 무엇을 익혔는지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할머니 한 명이 일을 다 망쳐놓았다고, 법을 지키지 않은 채 멋대로 콜로니에 혼자 남아 자생종들에게 쓸 데 없는 일을 가르쳤다고 생각할 뿐. 하지만 그들은 모르고 있다. 연륜이라는 것이 얼마나 훌륭하고 대단한 것인지. 그들이 어디에서 어떤 전문 지식을 배웠든 상관없이, 오필리아가 몸으로 터득해온 것보다 자신들의 것이 더 쓸모없다는 것을 말이다.
오필리아가 콜로니에 홀로 남아 이 집 저 집을 돌아다니며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내내 즐거웠다. 입고 싶은 옷을 입고, 자고 싶은 곳에서 잠들고,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행동하는 것에서 나 또한 그녀와 동일시되어 자유로움을 맛본다. 그런 그녀에게 찾아온 또 다른 생명체. 콜로니에서 40년을 살았음에도 한 번도 듣도보도 못한 그들을 처음 만났을 때 오필리아가 느낀 것은 두려움, 그리고 '에라'하는 마음이었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할머니였기 때문에 내보일 수 있었던 배포와 도움의 손길. 그렇게 그들의 공존은 시작되었고,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시간들은 지면을 통해 따뜻하게 흘러나온다. 마치 영화 <아바타>를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고 할까. 그런 오필리아에게 그들은 특별한 지위를 부여하며 자신들의 미래를 맡기기까지 한다.

같은 인간들끼리도 화합을 도모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결국 문제는 서로 다른 개체, 서로 다른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단 한 가지 고려되어야 하는 것은, 오직 마음. 상대를 얼마나 인정하고, 받아들이려 하고, 함께 살아가는 것을 모색하는 것. 인생의 마지막 자락에서도 이렇게 따뜻한 소통을 할 수 있다니. 아니,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더욱 관심과 이해, 돌봄의 필요성에 대해 오필리아만큼 잘 알 수 있는 사람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문득 생각해본다. 오필리아처럼 될 수 있다면 늙어가는 것도 즐거운 일이겠다고. 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지금, 사회적 약자이자 무가치한 인간이라 평가받았던 존재가 빛을 발하는 모습이 현실에서도 구현될 지 누가 알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더욱 작품을 통해 얻는 유쾌함이 크다. 따뜻하고 아름다운 작품. 이런 이야기가 SF라면 나는 앞으로 SF를 사랑하겠다.
** 네이버 독서카페 '리뷰어스 클럽'을 통해 <푸른숲>으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