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속의 엄마를 떠나보내다 고블 씬 북 시리즈
남유하 지음 / 고블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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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야가 사는 마을에는 특별한 장례 의식이 있습니다. 세상을 떠난 사람을 관에 넣고 차례차례 물을 부어 얼음관으로 만드는 것. 그렇게 만들어진 얼음관은 가족이 계속 살아가는 집 앞에 세워집니다. 카야와 마을 사람들이 사는 곳은 겨울이 끝나지 않는 얼음왕국, 겨울이 가고 겨울이 오는 마을. 이제는 생김새마저 닮아가는 사람들 속에서 카야의 엄마는 특별한 존재였습니다. 14년 전, 관광 차 찾은 마을에서 아빠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카야를 낳은 엄마. 다른 이들은 알지 못하는 봄의 존재를 이미 체험한 엄마는, 이제는 카야가 봄이고 태양이라며 아낌없는 사랑을 주었어요. 그런 엄마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카야와 아빠는 슬픔 속에서도 어떻게든 살아가고자 합니다. 

 

그런 카야에게 닥친 시련. 마을에 영향력을 끼치는 스미스 씨가 엄마의 얼음관을 원해요. 자신의 정원에 진열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만으로 엄마를 빼앗길 위기에 처한 카야. 소녀는 완강히 저항하지만 딸에게 보다 안락한 생활을 누리게 해주고 싶었던 아빠는 이를 악물고 엄마의 얼음관을 스미스 씨에게 넘깁니다. 그 이후 스미스 씨 집을 찾아 엄마의 얼음관을 보고 오는 것이 일상이 된 카야. 스미스 씨는 카야에게 편안하게 집으로 들어와 보고 가라며 맛있는 간식도 주고, 따뜻한 방도 제공하죠. 어딘가 의뭉스러워보이는 스미스 씨. 그리고 그 누구도 생각할 수 없었던 소름끼칠 정도로 잔혹한 음모!!

 

저는 겨울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추운 것도 싫어하고 정체된 공기나 분위기 같은 것도 딱히 즐기지 않아요. 어쩐지 모든 것이 깊은 잠에 들어 깨어나기만을 열망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런데 겨울이 가고 또 겨울이 오는 마을이라니요!! 생각만으로도 한기가 뼛속을 파고드는 듯한 느낌에 호흡마저 가빠옵니다. 하지만 그보다 저를 더 힘들게 했던 건 역시 카야가 처한 상황이었어요. 사랑하는 엄마를 잃은 것도 슬플텐데, 얼음관 속에 잠든 엄마를 매일 봐야 한다는 고통은 상상도 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카야의 마을 풍습이라고 해도 이제는 이 세상에 없는 사랑하는 사람의 잠든 모습을 매일 봐야 한다면, 저는 도저히 견디지 못할 것 같아요. 게다가!! 뻔뻔하고 탐욕스러운 스미스 씨가 엄마의 관을 탈취해가다니, 혈압이 올라 뒷목 잡을 일 아닙니까!!

 


 

스미스 씨의 흉악한 음모에서 카야를 지켜 준 알마. 그리고 알마의 의지가 불러온 결단. 엄마는 빛이 되어 앞으로도 카야를 지켜주겠죠. 환청이라고 해도 카야의 귓가에 들리는 엄마의 목소리에, 울컥 마음이 요동치고 말았습니다. 

 

카야, 사랑해. 엄마는 햇살, 바람, 그리고 새의 노랫소리 속에서 언제나 너와 함께할 거야.

p123

 

슬프고도 아름다운 SF 소설. 안데르센의 <눈의 여왕>이 떠올랐던 동화같기도 한 환상 이야기입니다. 출판사 들녘에서 출격한 고블 시리즈. 새로운 장르 문학 브랜드로 앞으로의 행보가 궁금해집니다. 


** 네이버 독서카페 '리뷰어스클럽'을 통해 <고블> 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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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소장품 - 슈테판 츠바이크의 대표 소설집 츠바이크 선집 (이화북스) 2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정상원 옮김 / 이화북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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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테판 츠바이크를 알게 된 작품은 [연민]. 읽은 지 너무나 오래 되어서 무슨 내용인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무척 섬세하게 심리를 묘사한 작품이었다는 인상만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으어엄청난 사건을 그리는 것은 아니지만 일상의 어느 한 부분을 날카롭게 포착하여 묘사하는 실력은, 이번에 읽은 [보이지 않는 소장품]을 통해 가히 최고라고 해도 좋을 정도였어요!! 총 여섯 편의 이야기가 실린 작품집, 무척 즐겁게 읽었습니다!!

 

맨 처음 실린 <아찔한 비밀>은 요양차 여행을 온 모자와, 그 엄마를 유혹하기 위해 애쓰는 어떤 남작의 이야기입니다. 초반의 설정과 제목만 보고 '이것은 남녀 사이의 긴장감을 그린 것인가!'라고 생각했으나, 사실 이 작품은 엄마와 남작 사이에 흐르는 성적 긴장감보다도, 그녀의 아들인 에드거와 남녀의 대치에서 묘미를 찾을 수 있었답니다. 항상 어린 아이 취급을 받던 에드거는 남작이 자신을 '친구'라는 말로 인정하며 접근해오자 그만 그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말아요. 물론 남작은 에드거의 엄마를 유혹하기 위해 먼저 아이에게 다가간 것이지만, 아이는 그런 사실은 까맣게 모른 채 성인 남자에게 친구로 인정받았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며 기뻐하죠. 하지만 그것도 잠시. 여자를 유혹하는 데 성공한 남자와, 이제 한 번 바람을 피워보겠다고 결심한 여자에게 아이는 거추장스러운 존재가 되어버립니다. 두 남녀 사이에 어떤 비밀이 있길래 자꾸만 자신을 무시하고 따돌리는가. 그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한 마리 늑대처럼 둘 사이를 끊임없이 파고드는 에드거. 와, 이 과정에서 느껴지는 긴장감에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였습니다. 

 

<불안>은 또 어떻고요!! 불륜 현장을 애인의 전 여자친구에게 들켜버린 어떤 부인이 등장합니다. 그 때까지의 평화로웠던 일상이 위협받고 애인의 전 여자친구에게 돈을 갈취당하는 이 부인의 생활은 지옥이 따로 없을 정도입니다. 점점 목을 죄어오는 압박과 두려움으로 극단적인 선택 직전까지 가는 부인. 그런 부인을 만류한 것은 바로바로!! 전 이 작품을 읽고 난 후 기 드 모파상의 단편인 <목걸이>가 생각났어요. 결말 부분의 놀라운 반전에 정말 깜짝 놀랐는데요, 아무래도 스포가 될 것 같아 자세히 말씀드리지 못하는 게 안타깝습니다. 다만, 부인이 일상에서 느끼는 공포가 정말 현실적으로 그려져 있다는 것만은 말씀드릴 수 있어요. 

 

표제작인 <보이지 않는 소장품>은 제목만으로 어떤 기이한 분위기의 미스터리라고 생각했다가 뜻하지 않은 감동을 맛보게 된 작품이예요. 전쟁으로 인해 독일에서 인플레이션이 한창이던 시절, 베를린에서 손꼽히는 고(古) 미술품 상점의 주인은 경기 침체 속에서 옛날 고객들이 소유한 미술품을 다시 확보할 수 있을까 싶어 한 노인을 찾아갑니다. 그런데 이 노인은 전쟁을 겪으면서 눈이 보이지 않게 되었어요. 그런 그가 자랑스럽게 내보이는 수십점의 동판화들. 하지만 거기에는, 두둥!!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궁금하시죠? 데헷!

 

한 여인이 어떤 작가에게 평생 바친 사랑의 기록인 <모르는 여인의 편지>와 떨치지 못한 과거의 기억으로 고통받은 여인의 추억인 <어느 여인의 24시간> 등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맞아 격렬하게 요동치는 인간의 섬세한 심리 묘사에 반전과 감동까지 맛볼 수 있었던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작품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빨려들어가 책을 읽는 내내 소름이 돋았어요. 국내에 번역된 그의 작품들이 많지 않아 그 동안 무척 아쉬웠는데, 이번 작품집을 통해 그 갈증이 해소되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두 번째 선집도 출간될 예정이라고 하니, 너무 기뻐요!! 프랑스에서는 셰익스피어와 애거서 크리스티 다음으로 많이 읽히는 외국 작가랍니다. 이 기회에 슈테판 츠바이크의 매력에 흠뻑 빠져보시면 어떨까요. 강추강추!!


** 네이버 독서카페 '책과 콩나무'를 통해 <이화북스>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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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 이전의 샹그릴라
나기라 유 지음, 김선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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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미래를 전부 리셋해준다면 소혹성이든 뭐든 떨어지면 좋겠다. 출구 없는 미래를 통째로 쾅 하고 단번에 전부 날려주면 좋겠다. 그렇게 이따금 울화통이 터지는 건 나뿐일까?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은 빛나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까? 세상 어딘가에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은 없을까?

p46

 

평범한 세상 속에서 바랐던 지구 멸망. 누구라도 좋으니 이 세계를 확 무너뜨려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는지. 내가 운 좋은 생활을 해왔던 것인지도 모르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온 세상이 망해버렸으면 좋겠다고 바랐던 적은 없는 것 같다. 하물며 아이들을 낳고 키우는 지금은 더욱. 이 아이들의 다음 아이들까지는 몰라도 부디 나의 아이들이 살아있는 동안만큼은 무탈한 세상이기를, 기후 변화로 인한 천재지변 따위도 최대한 늦게 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 뿐이다. 그런데 나름 소박한 행복 속에 살고 있는 지금, 소행성과의 충돌로 한달 후 지구가 멸망한다는 말을 듣는다면 나는 제일 처음 무엇을 생각할까.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바라고 싶은 일은 무엇이려나. 

 

[멸망 이전의 샹그릴라] 에서는 지구 멸망을 한 달 앞둔 시점에서 네 명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줄곧 괴롭힘을 당해온 탓에 좋아하는 여자아이 앞에 용기내어 나서보지 못했지만 마지막 한 달을 남겨놓고 성장하는 유키, 폭력의 굴레 속에서 빛도 희망도 없는 삶을 살았으나 우연히 알게 된 아이의 존재로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진 신지, 아이를 지키기 위해 좋아하는 남자까지 버리고 악착같이 살아야 했던 시즈카, 그리고  꿈꾸었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가수가 되어야 했던 미치코. 여전히 지구가 멸망하고 자신들은 모두 죽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는 힘겹지만 그래도 남은 시간을 살아내야했기에 매 순간 선택의 기로에 서야 했던 사람들.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는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앞으로 한 달이면 죽는 이 마당에, 세상에 태어난 기쁨을 곱씹고 있다. 이런 막바지에, 어째서 내게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p202

 

지구 멸망에 관한 뉴스를 들은 뒤 각자 자신에게 벌어진 일을 두고 네 명의 등장인물들은 생각한다. 왜 하필 지금인 거냐고, 마지막을 앞에 두고서야 이런 일이 벌어진 거냐고. 그토록 원할 때는 주지 않았던 행복을, 신은 심술을 부리는 것처럼 끝이 보일 때에야 선심쓰듯 내려주셨다. 너무나 안타깝고 아쉬운 일인 것은 틀림없지만, 그러나 마지막이었기에 가능했고 손에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멸망'이라는 키워드가 아니었다면 어쩌면 평생 손에 넣지 못했을 가능성, 진실, 그리고 행복. 늘 꿈꾸었던 것들을 모르고 오래 사는 편이 나았을까, 아니면 짧더라도 강렬한 행복 속에 죽는 게 나을까. 어쩌면 우리의 삶은 마지막까지도 아이러니로 가득 차 있을지도 모르겠다. 

 

'멸망'이라는 소재로 짐작할 수 있는 과도한 슬픔의 감정은, 이 작품에서 찾아볼 수 없다. 만약 눈물을 흘리게 하는 이야기였다면 오히려 경망스럽게 느껴졌을지도. 그저 무겁고 묵묵하게, 가슴을 짓눌러올 뿐이다. 그 안에서 순수하게 올라오는 희망이 있다. 부디 지구 멸망이라는 것이 무언가의 착각이었기를, 이들이 멸망의 기운을 가슴에 품고 소중하게 찾아낸 것들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기를. 

 

그런 바람을 내 것으로 만들면서 생각해본다. 멸망이 오기 전에 소중한 것을 소중하게 여겨보자고.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행복하게 보내는 데에 쓰자고. 마지막까지 희망을 꿈꾸며 노래했던 미치코처럼. 이 책의 제목이 어째서 '멸망 이전의 샹그릴라'인지 이제는 알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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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 이전의 샹그릴라
나기라 유 지음, 김선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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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맞은 만큼 누군가를 때려도 우리가 맛본 고통은 상쇄되지 않는다. 그것을 젊었을 때 이해했다면 조금 더 다른 삶을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을 이해하려면 어느 정도 인생 경험이 필요해서, 이해했을 때에는 지나간 실수를 되돌아보는 처지일 때가 흔하다. 그러니 하다못해 더는 나빠지지 않도록 뒤늦게나마 막아보려고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부조리해도 우리에게는 그것이 성장이다.
p254

멸망을 앞에 두고서야 희망을 맛보고, 자신이 그리던 더 좋은 모습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사람들. '멸망'이라는 키워드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일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이것이 잘못된 뉴스였기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이미 그들은 소설 속 인물이 아니라 나, 혹은 내 주변의 누군가의 모습을 하고 있었기에.

마지막까지 희망을 노래하는 미치코와 소중한 사람들을 꼭 껴안는 그들을 보며 어쩔 수 없이 생각해보게 된다. 멸망이 다가오기 전에 나는 무엇을 깨달을 수 있을지, 멸망이 오기 전에 지켜야 할 소중한 것은 무엇일지. 경망스러운 눈물이 아니라 묵직한 슬픔으로 가슴을 짓눌렀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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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 이전의 샹그릴라
나기라 유 지음, 김선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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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서 처음으로, 나는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앞으로 한 달이면 죽는 이 마당에, 세상에 태어난 기쁨을 곱씹고 있다. 이런 막바지에, 어째서 내게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p202

세상의 멸망이 한 달 남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찾아볼 생각을 했던 과거의 여자. 그리고 예상하지 못했던 아들. 아무 희망 없이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낸 사람에게 '가족'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멸망을 앞두었기 때문에 얻게 된 행복이 부디 계속되기만을 바라는 마음이 커져 간다. 이 멸망이라는 것이, 사실은 잘못된 뉴스였다고 밝혀지지는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 이 작품의 결말이 어찌 될지 궁금해서 참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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