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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탄 - 도쿄, 불타오르다
오승호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3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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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온 질문, 도덕은 무엇인가]
검은 이끼가 자란 듯한 밤톨 머리, 그 아래로 펼쳐진 번들거리는 넓은 이마, 굵은 눈썹과 다박수염이 눈에 띄는 이중 턱, 통통하게 살집이 잡힌 볼. 이것이 술에 취해 주류 판매점 자판기를 발로 차고 그걸 말리러 온 직원을 때려 경찰서에 앉아있는 스즈키 다고사쿠에 대한 묘사입니다. 결코 뛰어나다고는 할 수 없는 외모지만 그저 어딜 가든 볼 수 있는 중년의 평범한 외양의 그가 취조를 맡은 도도로키 이사오에게 내뱉은 벼락과도 같은 말. '제 촉대로라면 지금부터 총 3회, 이 다음에는 한 시간 후에 폭발이 일어날 겁니다'
-라고 쓰고 어떻게든 작품을 정리해보려 했는데 정리가 잘 안됩니다. 저는 그저 책을 읽는 내내 이 스즈키 다고사쿠에게 놀아나고 말았어요. 그가 펼치는 논리에 인간적으로 이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뭐 어때?'라는 생각이 든 것도 사실입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어딘가에서 폭탄이 터져 누군가가 죽거나 다친다면 그 사실 자체를 분명 안타까워하고 공포스럽게 느끼겠지만, 일단 나와 내 가족이 안전하다는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겁니다. 당신에게 있어 피해를 입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누구이고, 피해를 당해도 '아, 그렇군!'하고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스즈키 다고사쿠는 정말 끈질기게 우리에게 질문합니다. 당신이 동료라 여기는 그 테두리 안에 들어가 있는 사람은 누구인지, 사실 별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면 폭탄이 터져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그가 풀어내는 이야기 속에서 스즈키 다고사쿠라는 존재에 대해 어설프게 추측해보자면, 아마도 그는 그리 큰 존재감을 자랑하는 사람은 아니었을 겁니다. 존재감이라고 할만한 것도 없이 무시당하고 업신여김 당하고, 그 어떤 무리에도 끼지 못한 그런 사람으로 보여요. 그의 출생이나 성장과정에 대해 자세히 묘사된 것은 아니지만 부모님에게조차 사랑받거나 인정받지 못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런 계획을, 그렇게 깊고 어두운 욕망을 품을 수는 없었을 테니까요. 이렇게 살 바에야, 차라리 나 스스로를 죽이고 싶을 정도로 증오하는 존재로 만들겠다! 사람들이 나에 대해 갖는 욕망이 무엇이든 방식과 색깔은 상관없이 자신을 원하게 만들겠다는 그 욕망.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뿌리깊은 그 욕망 앞에서 저는 그에게 연민을 느낍니다.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여러 명이 아니라 오직 단 한명. 그 단 한명조차 스즈키에게는 없었다는 이야기니까요.
작가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것 같은 이 작품을 읽으며 전 작가님의 작품 중 처음으로 접한 [도덕의 시간]을 마주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도덕이란 무엇인가. 시작부터 우리 앞에 들이밀었던 그 질문이, 사실은 지금까지 죽 이어져 왔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하얀 충동]에서도, [스완]에서도, [라이언 블루] 에서도 작가님은 묻고 있었던 거죠. 범죄를 판가름하는 것은 '규칙'인지, '도덕'인지를 말이에요. 그 질문의 최고 난이도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이 [폭탄]이었습니다. 스즈키 다고사쿠의 '폭발한다고 해서 딱히 문제될 건 없지 않나요?'라는 질문 앞에 전 정말로 폭탄을 맞은 것처럼 머리가 멍-해짐과 동시에 제 마음 속을 간파당한 것 같아 당황스러웠어요.
하지만 그럼에도,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여전히, 저는 작가님이 상처와 고통을 딛고 일어서는 인간이라는 존재를 응원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시카와 다쿠보쿠의 단카인
세상 모든 이들의 마음속에
한 명씩은 죄수가 있고
신음하는 서글픔
을 통해 전하고 싶었던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마음 속 죄수를 풀어놓지는 않는다는 것 아닐까요.
2023 '이 미스터리가 대단해!' 1위, 2023 '미스터리가 읽고 싶어' 1위, 2023 '서점대상' 4위, 제167회 나오키상 후보작이라는 찬사가 붙은 [폭탄]. 찬사가 아깝지 않을 정도로 정말 굉장한 작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도 계속 '삶을 짓밟는 부조리함에 대한 분노, 저항, 아슬아슬한 도덕성, 현실 사회를 기반으로 한 이야기와 대담한 트릭. 이 모든 것을 집어삼킨 채 앞으로도 이야기를 써나가' 주시기를 바라요. 부디 오래오래 만나고 싶으니 건강하십셔!!
** 출판사 <블루홀식스>로부터 지원받은 도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