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초난난 - 비밀을 간직한 연인의 속삭임
오가와 이토 지음, 권영주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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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과 함께 속닥속닥 깊어가는 연정]

 

작은 목소리로 즐겁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모습이나 남녀가 정답게 속삭이는 모습을 뜻하는 '초초난난'. 처음에는 낯선 단어여서 무슨 의미인지 궁금했던 단더를 제목으로 하는 오가와 이토의 [초초난난] 이 개정판으로 돌아왔습니다. [츠바키 문구점], [달팽이 식당], [라이온의 간식] 등으로 상처를 딛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따스하게 펼쳐보이는 작가의 작품을 어쩐지 꾸준하게 읽게 되었는데요, 아마도 특유의 분위기가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옛 도쿄의 정취가 남아있는 야나카에서 작은 앤티크 기모노 가게인 '히메마쓰야'를 운영하는 시오리. 봄을 앞둔 어느 겨울 한 남자가 시오리의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옵니다. 신년 다회에 입을 기모노를 찾고 있던 그는, 봄에 첫 강풍이 부는 어느 날 태어났다는 하루이치로. 어쩐지 마음에 스며드는 그를 보며 새로운 시작을 예감하지만, 하루이치로의 왼손 약지에는 반지가 끼워져 있었어요. 그와의 관계를 욕심내지 않겠다고, 그가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지만 하루이치로가 다정하게 대해줄수록 시오리의 마음은 점점 더 커져갑니다. 봄의 꽃구경으로 시작해 여름의 불꽃놀이를 지나 선선한 가을바람을 뒤로 하고 다시 맞이한 차가운 겨울. 사계절을 한바퀴 돌아온 두 사람은, 과연 지금 어디에 서 있을까요.

 

시오리와 하루이치로의 연정은 뜨겁고 열정적으로 진행되지 않습니다. 두 사람은 그저 맛있는 것이 있으면 서로를 생각하고, 함께 식사를 하고, 산책을 하고, 대화를 나눌 뿐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의 마음이 얼마나 깊고 따스한지 충분히 느낄 수 있었어요. 시오리는 성장 배경과 지나간 사랑 때문에 상처를 받은 인물이에요. 하루이치로 또한 업무 때문에 번아웃을 겪은 데다 비행기 납치라는 엄청난 사건까지 경험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의지할 곳이 필요했던 걸까요. 감정이 소비되어 지치게 하는 그런 관계가 아닌, 곁에서 맛있는 것을 먹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그런 사람이요.

그의 가정에 대한 설명은 등장하지 않지만, 말씀드리기 조심스러운 것이 어쨌든 시오리와의 관계는 불륜이니까요. 그런데도 이들을 응원하고 싶어지는 것은, 어쩐지 그들의 모습이 슬퍼보였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시오리의 감정이 너무나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어 종이가 물에 젖어가듯 저 또한 그녀의 감정에 젖어들어가는 기분이었어요.

 

두 사람의 이야기도 이야기지만, 무엇보다 이 소설의 백미는 도쿄 시타마치의 이런저런 풍경과 사계절이 묘사된 부분 아닐까 싶어요. 야나카 일대의 정경과 사계절의 변화, 기모노를 비롯해 일본 고유의 문화가 묘사된 부분을 읽다보면 제가 소설 속 한 부분에 들어가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지금까지 '음식이 주는 위로'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해온만큼 다양한 음식들이 두 사람의 사이를 채우고 있어요.

 

'끝을 알면서도 시작된 사랑'이었지만 사계절을 돌아온 그들의 사랑이 지난 1년과는 같지 않을 거라는 생각입니다. 맛있는 음식과 소소한 행복으로 서로의 매일을 보듬어왔던 시간들. 앞으로 맞이하게 될 시간에서는 하루이치로가 무언가 결단을 내려주길 바라는 마음이 더 크지만, 지금은 그저 '하루이치로가 좋다'는 감정을 오롯이 받아들이고 있는 시오리의 마음을 함께 음미해보고 싶을 뿐입니다. 읽는 내내 '나도 시오리같은 여성이 되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로 무척 매력적인 캐릭터였습니다.

 

** 출판사 <알에이치코리아>로부터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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