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정 없는 검사 표정 없는 검사 시리즈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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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관으로 부임한 첫날부터 '자네같은 사무관은 필요없다'는 말을 듣게 된 소료 미하루. 오사카 지검의 검찰 사무관 채용 시험에 합격한 후 연수를 마치고 검사 보좌 일을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눈앞에 앉은 이 후와 슌타로 검사와는 막 인사를 나눈 참이었는데, 얼굴 본 지 얼마나 됐다고 이런 면박이라니! 검찰 사무관이 된 데에 나름대로 자부심을 가진 미하루였기에 자신의 어떤 점이 사무관으로서 부적절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모든 감정이 얼굴에 드러나는 미하루는 자신의 부관으로 어울리지 않는다는 일격을 날린다. 과연 그는 철가면이라도 쓴 듯, 얼굴에 '표정'이라고 할만한 것이 드러나지 않은 오사카 지검의 에이스 검사 후와인 것이다. 일단 열심히 배우고 익히겠다는 그녀에게 3개월의 인턴 기간을 허락한 후와. 어쩐지 그들의 앞날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 같은 예감은 뒤로 하고, 그런 후와와 미하루에게 사건 하나가 들어온다.

 

공원 나무 아래에서 목 졸린 시신으로 발견된 어린 여자아이. 피의자는 무직의 32세 야기사와 다카히토로 그는 8년 전에 하교 중인 초등학생 여자아이를 납치해 집에 감금한 전과가 있었다. 그 때는 상해나 살해는 없었지만 집에서 발견된 잡지와 DVD를 통해 그의 성적 취향이 그 때 이후로 전혀 변하지 않았음이 밝혀진 데다, 사건 당일 알리바이가 전혀 없어 완전히 범인으로 몰린 상태. 그런 그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뭔가 석연치 않은 점을 느낀 후와. 관할인 다이쇼 경찰서를 찾아가 확인한 결과, 보이지 않는 수사 자료가 있음을 알아차린다. 이후 그가 보인 행보는 오사카 경찰청과 경찰 조직 전부를 뒤흔들어놓는데, 마치 숨겨져 있는 지뢰를 터뜨리는 것 같은 엄청난 충격과 혼란 속에서도 그는 꼿꼿이 홀로 서 있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어떤 상황에서도 1밀리미터의 표정 변화 없이 상사는 물론 주변의 압력에 굴하지 않는 후와의 별명은 '표정 없는 검사'다. 표정이 없다는 것은 직접적인 묘사는 물론 마치 기계가 이야기하는 듯한 딱딱한 어투에서도 드러나는데, 그래서인지 얼굴상이 그려지지 않아 '얼굴 없는' 검사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보라! 책 표지에서도 얼굴 부분 색이 시커멓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기는 하되, 마치 혼자만 보이지 않는 벽 안에 들어가 있는 듯 자신의 신념을 절대 굽히지 않고 폭탄이 터지는 전쟁터 한가운데에 묵묵히 서 있는 남자 되시겠다. 타인의 평가와 위협 따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검사 한 명은 독립적인 사법체계로 할 일만 제대로 하면 된다는 이 검사에게도 과거의 아픔이 있었으니, 그 아픔이 얼마나 크고 깊었으면 이렇게 기계처럼 변해버렸나 싶어 안타까움마저 느껴진다.

 

그런 후와와 대척점에 서 있는 것은 미하루. 모든 표정이 얼굴에 드러나는 데다 후와는 풋내난다고 비웃는 정의를 부르짖는, 순수하고 열정적인 사무관이다. 후와와의 대화에서 어김없이 기가 눌리고 져버리고마는 미하루지만, 그녀가 가진 '신념'이 후와를 어떻게 변화시킬지, 과연 변화는 시킬 수 있을지도 기대되는 포인트. 게다가 작가의 시리즈 중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 미코시바 레이지와의 한 판 대결도 예고되어 있다고 하니 그야말로 이 후와 검사 시리즈에 두근두근하지 않을 수 있을까!

 

같은 법률 조직 '식구'니까 잘못을 눈감아줄 수도 있지 않느냐는 집단의 요구에 순순히 응하지 않고 피보다 진한 신념으로 맞서는 후와. 국민에 대한 봉사는 안중에도 없고 비리를 저지르거나 일신을 지키기에 급급한 사람들을 비판하기 위한 소설을 쓰는 것은 대중 소설가의 책무라고 설파한 작가의 희망대로 이상을 추구하는 멋진 캐릭터가 나타났다. 속편의 제목은 [표정 없는 검사의 분투] 인데 여기에서도 후와 검사가 걸어가는 길이 녹록하지 않음을 미리 예고하는 것 같다. 그럼에도 꾸준히 표정 없이 자신의 신념을 관철시키기 위해 꼿꼿이 서 있을 후와의 늠름하고 믿음직한 모습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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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하는 습관 : 승률을 높이는 15가지 도구들 - 경기장 밖에서도 통하는 NBA 슈퍼스타들의 성공 원칙
앨런 스테인 주니어.존 스턴펠드 지음, 엄성수 옮김 / 갤리온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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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인 앨런은 15년 동안 성과 코치로서 코비 브라이언트, 스테판 커리, 케빈 듀란트 등 전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NBA 슈퍼스타들과 호흡을 맞춰왔다. 현재는 스타벅스와 코카콜라,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의 코칭 전문가로서 조직력을 향상시키고, 효과적인 리더십을 창출하며, 팀의 결속력을 높이는 방법을 가르친다. 수 년동안의 경험을 통한 그의 코칭 중 승리하는 마음가짐과 성공 습관은 개인의 능력과 팀의 생산성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검증된 전략들이며, 경기장 밖에서는 물론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통하는 승리의 기술로 정평이 나 있다. 그가 코트 안에서 제시한 승리의 비결들은 경기장 밖으로도 직결된다.

 

그가 제시하는 원칙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승리하는 개인의 원칙, 승리하는 리더의 원칙, 승리하는 조직의 원칙. 개인적 차원에서는 기본기를 강조한다. 기본기 없이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고 주장하며 자기인식, 열정, 훈련, 수용력, 자신감을 중요 요소로 꼽는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인가를 정확히 알고, 내적 욕구를 폭발시켜야 하며, 성공하는 습관을 만드는 훈련을 하고, 뼈아픈 조언도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하고, 자신의 성공을 믿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승리하는 리더가 갖춰야 할 요소로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비전을 보는 능력을 갖출 것, 성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팀원의 섬김을 받는 리더가 아니라 팀원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며, 사람이 따르는 특별한 인격을 갖춰야 하고, 인정의 힘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조직 차원에서는 믿음, 이타심, 역할 명료성, 커뮤니케이션, 화합 부분에서의 역할을 강조한다.

 

자기계발 분야 서적들을 그리 좋아하지 않아 즐겨 읽는 편은 아니지만 이 책은 예상 외로 쉽게 읽힌다. 다양한 사람들의 실례가 실려 있어 현실감있게 다가오는이 책은 선수들의 경기장 밖 모습까지 생생하게 지켜본 저자만이 쓸 수 있는 이야기라는 호평을 받으며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일과 삶 어디에나 적용 가능한 인생의 기술이라는 찬사와 함께 2019년 아마존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다.

 

결국 ‘승리하는 인생’은 삶을 바꾸겠다는 결심과 꾸준한 습관을 실천하는 열정에 달려있다는 이야기. 현재의 삶을 바꿔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읽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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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문화사전 - 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 잘난 척 인문학
민병덕 지음 / 노마드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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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세우면서 고려의 충신들에게 자신과 함께 새로운 국가에서 일하자고 권한 이성계. 하지만 하늘 아래 두 임금을 섬길 수는 없다며 스스로 산속으로 들어가 버린 이들이 있었다. 그러자 이성계는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고려의 충신들을 죽이기에 이르렀고, 그들의 아내들은 남편과 나라를 빼앗아간 이성계를 원망하고 미워했다. 그 중 한 부인이 가래떡을 썰다가 이성계의 생각에 그만 썰고 있던 떡을 이성계의 목이라 생각하고 떡 한 가운데를 꽉 잡았는데, 이것이 바로 떡 한가운데가 옴팍 들어간 모양의 조랭이떡이 탄생한 배경이다.

 

'신체발부 수지부모 불감훼상 효지시야'라는 말이 있다. 효경 <천자편>에 나오는 이 말은 몸에 지닌 모든 것, 곧 피부와 머리카락까지도 부모에게 받은 것이므로 훼손하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라는 뜻이다. 우리 조상들은 이 말을 철저히 믿고 지켜왔는데 1895년 을미개혁의 하나로 단발령이 실시되었을 때도 '목은 잘라도 머리는 자를 수 없다'며 저항을 할 정도였으며, 이 단발령 반대 운동이 의병운동으로 확대되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부모를 위해서는 자신의 몸에 손상을 가해도 괜찮았는데 부모의 생명이 위태로울 때는 살을 베어드린다거나 자신의 손가락에 상처를 내어 피를 마시게 하는 것이 이에 해당된다. 그렇다면 손톱이나 발톱은 어떻게 했을까? 효를 행한다 하여 고지식하게 신체의 모든 부위를 보전만 한 것은 아니었고 일상생활을 하는 데 불편했으므로 잘라도 되었다고 한다.하지만 그렇다고 자른 손발톱을 함부로 버리지는 않았으며 아무 때나 깎지 못하게 했고 손톱 쪼가리는 불에 태웠다고 전해진다.

 

다양한 이야기로 만나왔던 <알아두면 잘난 척 하기 딱 좋은> 시리즈. 이번 이야기는 우리 역사와 문화에 관련된 이야기로 그 흥미와 호기심을 더하고 있다. 의식주와 풍속, 종교와 예술과 교육, 제도와 법률, 경제생활, 정치와 군사와 외교, 궁중생활 등 여러 분야의 내용들이 총망라되어 있는 사전같은 책으로 읽다보면 옛날 생활상들이 눈 앞에 떠오르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예전에도 있을 건 다 있었고, 사람 사는 모습은 다 똑같은 지라 익숙한 모습들도 있으면 정겨우면서 낯선 모습들도 발견할 수 있었다. 책을 펼치는 순간부터 느낄 수 있는 꽉 찬 충만함. 교과서에서는 접하기 힘든 옛사람들의 생활사가 모두 담겨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로 자세한 정보들로 재미와 지식 모두 잡을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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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눈
딘 쿤츠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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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로 아들 대니를 잃은 티나 에번스. 대니의 상태가 너무 처참해서 보기를 권하지 않는다는 장의사의 말에 그녀는 시신조차 확인하지 못하고 아들을 땅에 묻었다. 한동안 깊은 슬픔과 절망에 빠져 지냈지만, 결국 일에 몰두하여 현재는 라스베이거스의 스트립(라스베이거스의 유명 호텔이 대부분 모여 있는 큰길)에서도 가장 크고 호려한 호텔에서 천만 달러 쇼의 안무가로 성공을 눈 앞에 두고 있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시작된 기이한 현상. 집 안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고 아들의 방에 놓여있는 이젤 칠판에 '죽지 않았어'라는 문구가 쓰인 것을 발견한다. 때때로 찾아오는 냉기와 그럴 때면 반복되는 '죽지 않았어'라는 메시지. 그리고 대니가 어딘가에 갇혀 있고 자신이 아들을 구하러 가지만 무언가에 의해 위협당하는 내용의 악몽들. 처음에는 아직 아들을 잃은 슬픔을 극복하지 못한 자신의 나약함 때문이라 자책하며 대니의 무덤을 발굴해보리라 결심하지만, 그 일을 계기로 생명에 위협을 당한 후 아들의 사고와 관련해 숨겨진 비밀이 있다는 것, 그리고 대니는 아직 살아있는 것이 틀림없다고 확신하며 어딘가에서 자신을 기다릴 아들을 구하기 위해 나선다.

 

40년 전 '코로나19'를 예견한 소설이라며 화제의 중심에 서 있는 딘 쿤츠의 [어둠의 눈]이 단독 한국어판으로 출간되었다. 오드 토머스를 주인공으로 한 [살인예언자]와 [위스퍼링 룸] 등 여러 작품으로 이미 작가의 이야기들을 접한 적이 있지만 현재 팬데믹이 된 '코로나19'를 예견했다니! 과연 어떤 내용이 펼쳐질 지 읽기 전부터 기대했던 작품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이 어마무시 등장하고, 그런 재난 상황을 헤쳐나가는 내용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책을 읽기 전에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좀비물 같은 느낌의 이야기일 거라 상상했는데, [어둠의 눈]에서 바이러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생각보다 작다고 할까. 바이러스와 관련된 내용, 사건의 전말은 작품을 한 1/10 정도 남겨둔 상태에서 드러나니 처음부터 엄청난 재난상황에 대한 소설이라 생각하고 읽기 시작하면 조금 김이 샐지도 모르겠다.

 

40년 전 소설이라 그런지 작품의 설정이 조금 유치하고 진부하기도 하다. 방탕한 남편과 이혼하고 아들까지 사고로 잃은 주인공, 성공이 보장된 쇼케이스에서 만난 유능하고 매력적인 변호사 엘리엇, 생명의 위협, 과거 정부 기관에서 일했던 엘리엇의 도움으로 위기상황을 극복하고 함께 대니를 구출하러 떠나는 커플, 어김없이 발생(?)되는 사랑. 게다가 예상하지 못했던 초자연적인 현상의 등장으로 약간 산만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집중해서 읽게 되는 까닭은, 역시 나 또한 엄마여서인지 그 어떤 말도 안 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단지 아들이 살아있다는 느낌 하나만 가지고도 아들을 구하러 떠나는 티나의 마음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티나였다 해도, 자그마한 징조 하나만 있어도 지체없이 대니를 구하러 떠났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티나가 정말 아무 재주 없이, 그저 고난을 피하지 않고 정면에서 맞닥뜨려 돌파하려는 강인한 여성으로 그려지고 그런 그녀에게 난데없이 빠져드는 엘리엇의 모습에는 닭살이 돋고 말았지만, 뭐 아무렴 어떠랴. 자기들이 좋다는데.

 

밝혀진 진실 앞에서는 정말 치를 떨 수밖에 없다. 스포가 되므로 자세히 말은 못하겠지만 어떻게 그런 일을 벌일 수 있는지, 내가 평범한 사람이라 그런 것인지 정말 이해할 수가 없다. 열두 번 죽었다 깨어나면 이해하게 될까. 그런데 그런 일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것 자체가,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것보다 더 심각한 일 아닐까. 이쯤에서 현실 속 '코로나19'와 관련된 진실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애초에 이 바이러스는 어떻게 생겨난 것인가, 그 배후에 정말 모종의 음모가 도사리고 있는 것인가. 상상만으로도 오싹하다.

 

약간 유치하고 촌스러운(?) 설정이었지만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기분으로 속도감있고 재미있게 읽었다. 부디 현실은 소설보다 덜 잔인하고 덜 비극적이기를. 어서 빨리 이 사태가 종식되어 한때는 지루하다고까지 생각했던 평범하고 소중한 생활을 다시 영위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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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창 - 제주4.3 만화로 보는 민주화운동
김홍모 지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기획 / 창비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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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 출판사에서 출간된 <만화로 보는 민주화운동> 시리즈 중 [빗창]은 제주 4.3에 대해, 그 중에서도 해녀들의 활동에 대해 다룬다. 1920년에 설립된 제주도해녀어업조합은 20년대 중반 일본인 제주도사가 조합장을 겸직하면서 관제조합이 되어버렸고, 조합은 소수의 일본인 상인이나 조선인 중간상인과 결탁해 시가보다 저렴한 지정가격으로 해녀들이 채취한 해산물을 판매했다. 1930년대에 접어들면서 관제조합의 횡포가 극에 달하자 해녀들은 마을 단위의 해녀회를 조직해 단결하기 시작했고, 그들의 항일운동은 1931년 6월부터 1932년 1월까지 지속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 230여회에 달하는 집회와 시위에 해녀들을 포함해 연간 1만 7천여명이 참여했고, 해녀들은 해조류를 캘 때 사용하는 빗창을 들고 시위에 나섰다고 한다. 해녀조합의 횡포에 저항했던 생존권 투쟁에서 시작되어 일제의 식민지 수탈 정책에 저항한 항일운동으로 발전한 싸움들.

 

항일운동에 참여했던 해녀들이 제주4.3에서 적극적으로 행동했다는 구체적인 기록이나 사례는 찾기 어렵지만, 그들 역시 다른 제주 사람들과 함께 미군정과 경찰, 서북청년회의 부당한 탄압에 저항했으리라는 개연성은 생각해볼 수 있겠다. [빗창]은 그런 역사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해녀시위와 제주 4.3을 연결해 그려낸 것으로 우리 역사상 가장 비극적이고 악랄한 사건에 대해 더 이상 눈 돌리지 않고 정확히 바라보기를 촉구하는 작품이다.

 

해녀 야학을 만들고 가르치던 선생님들과 함께 해녀시위를 준비한 그녀들. 그 중심에 련화가 있다. 비록 독립운동을 향한 자신의 각오가 어느 정도인지 자신조차 알지 못하지만 '여자'라는 성별에 갇히지 않고 용감무쌍하게 시위의 선봉에 섰다. 일본의 패망 소식을 접하고 해방된 조선의 새로운 상을 그렸지만, 친일파 경찰이 미군정 경찰로 둔갑하여 탄압을 주도한다. 미군정의 비호 아래 여전히 권력을 휘두르고 부정부패를 일삼았던 친일파들. 해방이 되었지만 바라던 세상은 아니었다. 그리하여 1947년 3월 1일 외세를 물리치고 조국의 자주통일과 민주국가를 쟁취하자는 기치 아래 행진이 시작된다. 이 행진에서는 좌우익 할 것 없이 모두 모여 완전한 자주독립과 통일, 민주주의와 평등을 부르짖지만, 미군정 경찰의 발포로 수많은 사람이 숨지고 중상을 입었다. 이로 인해 1947년 3월 10일 제주도청 직원 140여명이 파업을 시작, 이후에는 제주 전역 166개 기관 단체, 4만명이 넘는 사람들에 의한 민관 총파업이 이루어졌다. 총파업으로 체포된 제주도민은 수백명에 달했고, 이들은 좌익분자들로 분류되어 신임도지사 유해진과 서븍청년회에 의해 소탕 대상이 되어버린다.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서북청년회의 만행. 미군정의 비호를 받으며 경찰과 행정기관에서 일하며 '좌익 척결'이라는 이름 아래 테러를 일삼았다. 주인공 련화의 친구 아들 또한 동맹 휴업의 배후로 낙인 찍혀 고문받다 처참한 죽음을 맞이한다. 이런 게 해방된 세상이냐고 울부짖는 사람들. 이후 미군정은 남한만의 단독선거인 5.10 선거 강행을 결정하고 이에 제주도민은 분단에 반대해 들고 일어난다. 결국 입산하며 투쟁을 준비하고, 1948년 4월 3일 도내 12개 지서와 서북청년회 숙소를 습격하며 도민에게 유격대 호소문을 보내기에 이른다. 미군정은 유격대와 9연대의 협상을 깨기 위해 오라리 마을에 방화 살인을 자행하고, 이 장면을 찍어 공산주의자들의 만행으로 조작했다. 그럼에도 이남에서 유일하게 단독선거를 무효화하는 사람들.

 

그러나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치러진 5.10 선거에서 이승만이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1948년 8월 15일 이남만의 단독정부인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선포된다. 한국군에 대한 지휘 권한은 여전히 미군에게 있었고, 일본군 나카무라 사다오 상사였던 송요찬 소령이 토벌사령관으로 임명되어 제주로 내려온 뒤 1948년 10월 17일 초토화 작전 개시를 알리는 포고령을 발표했다. 이에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무장대와 토벌대 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주민들이 희생당하는 모습이, 이 [빗창]에 생생하게 드러나 있다.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에서 2003년 발간된 '제주 4.3사건 진상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그 희생자 수는 2만 5천에서 3만으로 추정한다. 그러나 실제로 신고된 희생자 수는 14,028명에 불과하며 그 인원의 80퍼센트 이상은 토벌대에 의해 희생되었다. 어린이, 노인, 여성을 가리지 않고 무자비한 작전이 이루어졌음을 짐작하게 한다.

 

너무나 당연하게, 나는 [빗창]을 읽은 후 생생하게 살아나는 잔인함과 비극에 밤잠을 이룰 수 없었다. 해방된 나라에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을 평범한 사람들에게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가슴을 칠 수밖에 없다. 특히 친일파 고문 경찰이 미군정 경찰로 둔갑하여 도민들 탄압에 앞장서는 부분에서는 정말 분통이 터졌다. 얼마 전 현기영 작가의 [순이 삼촌]과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를 같이 읽어서인지 그 비극성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여기에 적힌 내용 대부분은 [빗창]의 줄거리와 작품 해설을 인용한 것인데, 한 번쯤은 이런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 동안 제주 4.3에 대해 들어보기는 했지만 그 비극성을 짐작만 했었고, 그 아픔에 대해 눈 돌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에서나마 [빗창]을 비롯한 여러 작품들을 통해 우리 역사의 아프고 부끄러운 부분을 마주보게 되어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우리에게는 무엇보다 명확하게 알고 진실을 후세에 전하여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는 일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마지막에 살아남은 그 아이의 핏빛 서린 눈이 앞으로도 계속 우리를 지켜보겠다고,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만 같다.

 

시리즈로 계획된 <만화로 보는 민주화운동> 은 어느 것 하나 빠트릴 것 없이 우리가 알아야 할 현대사의 중요 사건을 다룬다. 어렵게만 여겨지고 잘 몰라 혼란스러웠던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통해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 우리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물려줘야 할 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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