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주는 따뜻한 위로
최경란 지음 / 오렌지연필 / 2020년 2월
평점 :
절판


에세이 종류를 그리 즐겨 읽지 않는 편이다. 누군가의 개인적인 기록을 굳이 시간 내서 들어야 하는 이유가 뭐 있을까. 어떤 에세이는 평생을 간직해도 모자랄만큼 가치 있기도 했으나, 그런 작품을 만난다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와도 같았다. 그래서 [나에게 주는 따뜻한 위로], 이 책을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부정적이었다. 내 마음 나도 모를 때가 허다한데 작가가 나에게 어떤 위로를 줄 수 있을까, 시답지않은 소리나 늘어놓고 있으면 중간에 읽기 싫어질텐데 어쩌나. 그런데 다행히 생각보다 책이 좋다. 50일 챌린지로 이어가며 하루에 몇 편씩 만난 소소한 이야기들. 유명한 문구와 작가의 단상이 적절히 녹아있어 차 한잔 마시면서 즐기기에 더없이 좋은 책이었다.

 

순서대로 읽어나가지 않았다. 학창시절, 어떤 일을 앞에 두고 운명을 점치는 것처럼, 눈을 감고 잡히는대로 책을 펼쳤다. 그렇게 뽑힌 50개의 문장들. 기념할만한 첫 문장은 프롤로그에서 만났다. '염원이 거듭될수록 그 길은 더 넓고 확고해진다'. 이 문장에 밑줄을 그어놓은 것을 보면 이 때의 나는 아마도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을 것 같은데, 그게 뭐였을까. 아마도 늘 바라왔던 것, 가족들의 건강과 행복, 옆지기의 고민이 조금은 더 옅어지는 것 등이었을 것이다. 어느새 나에게 전부가 되어버린 사람들을 향한 걱정과 기도로 나의 하루는 채워진다.

 

일기일회. 一期一會. 이치고이치에. 인생에서 단 한 번만 만날 수 있는 기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문구 중 하나인 이 말을 두 번째로 꼽았었다. 아스라한 과거의 추억을 소환하는 이 말의 의미를, 시간이 흘러 나이를 먹을수록 더 깊게 느껴가고 있다. '방법을 찾거나 만들 것이다'나 '시작하기에 적당한 시간' '연습이 최선'처럼 용기를 불어넣어주는 말도 있고, '중요한 일일수록 말을 아끼자'처럼 읽자마자 옆지기를 생각나게 하는 문구에 '알려줘야지!'하며 재차 강조해놓은 부분도 있다. '전자책의 페이지 안으로 어떻게 야생화를 끼워서 말릴까요? 로 종이책의 감성을 일깨워주는 문구에서는 '그래, 역시 종이책이 최고야!'라고 내심 뿌듯했고, 내리는 비를 계절에 따라 분류한 어떤 문장에서는 풍류마저 느껴졌다. 유명 작가들의 보석같은 문장들이 상황과 계절, 날씨에 따라 총망라되어 있는 듯한 기분.

 

50일 챌린지는 끝났지만 나는 여전히 눈을 감고 페이지를 펼친다. 오늘은 어떤 문장이 나를 맞이해줄까-하는 기분 좋은 기대감에 그 작은 순간이 찬란하게 다가온다. 그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기대할 수 있는 무언가를 발견했다는 것. 제목 그대로 위로받을 때도 있었고 예상치 못한 문구에 이런 저런 생각으로 마음이 복잡해질 때도 있지만 어느 새 내가 아끼는 책 중 하나가 되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타고난 개성이 있다. 개인의 취향, 느낌, 판단에 따라 각자 다른 길을 택한다. 그러나 그들이 가고자 하는 길의 종착역은 같다. 그 길에 우열이 있을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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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미스터리 걸작선 02 : 모래시계 외 코너스톤 착한 고전 시리즈 4
로버트 바 외 지음, 이정아 옮김, 박광규 / 코너스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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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쟁한 작가들의 미스터리 단편 모음집이라니, 겨울밤에 어울리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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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미스터리 걸작선 01 : 살인자 외 코너스톤 착한 고전 시리즈 3
어니스트 헤밍웨이 외 지음, 신예용 옮김, 박광규 기획.해설 / 코너스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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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쟁한 작가들의 미스터리 단편 모음집이라니, 겨울밤에 어울리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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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엘리트를 위한 서양미술사 - 미술의 눈으로 세상을 읽는다
기무라 다이지 지음, 황소연 옮김 / 소소의책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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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작품 속에 숨겨진 풍부한 이야기! 비즈니스적 측면에서 어떻게 들러줄지 궁금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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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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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그린 그림을 보여주며 수줍게 '친구가 되어달라'고 말했던 한 남자가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리에가 그, 다니구치 다이스케를 만난 것은 둘째 아들 료를 뇌종양으로 떠나보내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남편과의 갈등을 극복하지 못한 채 이혼 후 고향으로 돌아온 다음이었다. 마치 아이를 보살피러 가는 것처럼 갑자기 세상을 떠난 친정아버지가 운영하던 문구점을 엄마와 함께 유지해가던 무렵. 타지에서 온 다이스케와 인연을 맺고 부부로 살아온 3년 9개월,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큰아들 유토는 누구보다 다이스케를 좋아했고 두 사람 사이에 딸 하나도 생겼다. 그렇게 평온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작업현장에서 갑자기 사망해버린 것이다. 슬퍼할 시간도 충분히 갖지 못한 리에를 덮친 것은 남편이 사실은 다니구치 다이스케가 아니었다는 것. 그렇다면 이 남자는 대체 누구였다는 말인가. 그녀는 결국 전 남편과 이혼할 때 일을 맡아주었던 변호사 기도 아키라에게 남편의 일을 이야기하고, 기도는 한 남자의 자취를 좇아 그의 행적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1998년 스물한 살, 문예지 <신초>에 첫 장편소설 [일식]을 발표하며 문단에 이름을 올린 작가 히라노 게이치로. [한 남자]는 그의 등단 20주년을 기념하는 작품이자 그가 항상 이야기하고자 했던 주제 '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정면으로 맞서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듯 하다. 제70회 요미우리 문학상을 수상한 이 이야기는 이름을 바꾸고 진짜 자신을 감춘 채 세상을 살아야 했던 남자와, 그런 남자의 뒤를 좇는 재일 3세 기도 아키라의 정체성에 관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이름이란 무엇인가, 이름을 바꾸면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는가, 나를 형성하는 것은 유전인가 아니면 환경인가 등 철학적인 소재가 녹아있는 주제로 깊은 문학적 성찰을 내보인다.

 

'한 남자'라는 제목은 다니구치 다이스케의 이름으로 살아온 죽은 남자와 기도 아키라 모두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여진다. 재일 3세로 이제는 귀화했음에도 불구하고 늘 출신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환경. 일본인처럼 살아왔음에도 자신을 바라보는 세상의 눈은 물론 아내와 처가 식구들의 인식, 아들의 입장까지 고려할 수밖에 없는 그는 결국 아내에게 느끼는 정서적 거리감으로 가정생활까지 위태로운 처지다. 간토 대지진 당시 일어났던 조선인 학살에 대한 트라우마, 사회에 만연한 멸시와 조롱 등은 항상 기도의 등 뒤에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작가는 '다른 사람으로의 변신'이라는 다니구치 다이스케의 경우와 나르키소스 신화 등을 적절히 융합시켜 '존재'에 관해 묻는다.

 

한 사람을 규정짓는 것은 무엇인가. 이름, 출신, 환경. 작가는 이 질문에 '사랑'이라는 대답을 내놓았다. 타인으로부터의 애정, 자기 자신에 대한 인정. 외부적인 요인이야 어떻든 결국 한 사람을 사람답게,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무엇으로 결정지을 수 있는 것. 미스터리 소설이라 생각하고 가볍게 여기고 덤볐다가 인간의 존재에 대해 묻는 근원적인 질문에 다소 당황했지만, 어쩐지 이래야 그답다는 생각이 들었던 작품이었다.

** <현대문학>으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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