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자신이 그린 그림을 보여주며 수줍게 '친구가 되어달라'고 말했던 한 남자가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리에가 그, 다니구치 다이스케를 만난 것은 둘째 아들 료를 뇌종양으로 떠나보내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남편과의 갈등을 극복하지 못한 채 이혼 후 고향으로 돌아온 다음이었다. 마치 아이를 보살피러 가는 것처럼 갑자기 세상을 떠난 친정아버지가 운영하던 문구점을 엄마와 함께 유지해가던 무렵. 타지에서 온 다이스케와 인연을 맺고 부부로 살아온 3년 9개월,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큰아들 유토는 누구보다 다이스케를 좋아했고 두 사람 사이에 딸 하나도 생겼다. 그렇게 평온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작업현장에서 갑자기 사망해버린 것이다. 슬퍼할 시간도 충분히 갖지 못한 리에를 덮친 것은 남편이 사실은 다니구치 다이스케가 아니었다는 것. 그렇다면 이 남자는 대체 누구였다는 말인가. 그녀는 결국 전 남편과 이혼할 때 일을 맡아주었던 변호사 기도 아키라에게 남편의 일을 이야기하고, 기도는 한 남자의 자취를 좇아 그의 행적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1998년 스물한 살, 문예지 <신초>에 첫 장편소설 [일식]을 발표하며 문단에 이름을 올린 작가 히라노 게이치로. [한 남자]는 그의 등단 20주년을 기념하는 작품이자 그가 항상 이야기하고자 했던 주제 '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정면으로 맞서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듯 하다. 제70회 요미우리 문학상을 수상한 이 이야기는 이름을 바꾸고 진짜 자신을 감춘 채 세상을 살아야 했던 남자와, 그런 남자의 뒤를 좇는 재일 3세 기도 아키라의 정체성에 관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이름이란 무엇인가, 이름을 바꾸면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는가, 나를 형성하는 것은 유전인가 아니면 환경인가 등 철학적인 소재가 녹아있는 주제로 깊은 문학적 성찰을 내보인다.

 

'한 남자'라는 제목은 다니구치 다이스케의 이름으로 살아온 죽은 남자와 기도 아키라 모두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여진다. 재일 3세로 이제는 귀화했음에도 불구하고 늘 출신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환경. 일본인처럼 살아왔음에도 자신을 바라보는 세상의 눈은 물론 아내와 처가 식구들의 인식, 아들의 입장까지 고려할 수밖에 없는 그는 결국 아내에게 느끼는 정서적 거리감으로 가정생활까지 위태로운 처지다. 간토 대지진 당시 일어났던 조선인 학살에 대한 트라우마, 사회에 만연한 멸시와 조롱 등은 항상 기도의 등 뒤에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작가는 '다른 사람으로의 변신'이라는 다니구치 다이스케의 경우와 나르키소스 신화 등을 적절히 융합시켜 '존재'에 관해 묻는다.

 

한 사람을 규정짓는 것은 무엇인가. 이름, 출신, 환경. 작가는 이 질문에 '사랑'이라는 대답을 내놓았다. 타인으로부터의 애정, 자기 자신에 대한 인정. 외부적인 요인이야 어떻든 결국 한 사람을 사람답게,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무엇으로 결정지을 수 있는 것. 미스터리 소설이라 생각하고 가볍게 여기고 덤볐다가 인간의 존재에 대해 묻는 근원적인 질문에 다소 당황했지만, 어쩐지 이래야 그답다는 생각이 들었던 작품이었다.

** <현대문학>으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