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 홈즈 에센셜 에디션 2 - 셜록 홈즈 130주년 기념 BBC 드라마 [셜록] 특별판 셜록 홈즈 에센셜 에디션 2
아서 코난 도일 지음, 마크 게티스 외 엮음, 바른번역 옮김, 박광규 감수 / 코너스톤 / 2017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총 11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는 [셜록 홈즈 에센셜 에디션 2] 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은 아무래도 <바스커빌가의 사냥개> 가 아닐까 싶다. 오랜 옛날부터 바스커빌가에 전해 내려오는 전설같은 이야기, 욕망에 사로잡혀 죄를 저지른 휴고 바스커빌로 인해 가문의 남자들이 지옥의 개에게 쫓기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펼쳐지는 살인사건을 다룬다. 찰스 바스커빌이 무언가에 쫓기다 충격을 받은 상태로 사망하자 그 상속인으로 가문을 잇게 된 헨리 바스커빌. 바스커빌 가문이 있는 황야에는 절대 오지 말라는 경고 문구가 도착하고, 헨리가 묵는 호텔에서 그의 신발이 없어지는 등 기묘한 사건이 연달아 벌어지는 상황에서, 홈즈는 자신은 마무리할 일이 있다면서 왓슨과 헨리를 먼저 황야로 보낸다. 그런데 여기에 잔인한 사형수가 탈옥했다는 이야기와, 지옥의 개처럼 보이는 형상을 보았다는 목격담, 기묘한 울음소리가 더해져 공포감은 극에 달한다. 누가 헨리의 목숨을 노리는 것인가, 찰스는 정말 지옥의 개에게 쫓겼던 것인가, 이 모든 일은 초자연적인 현상인가. 그러나 역시. 홈즈가 모든 것을 밝혀낸다!!

 

<마지막 문제>에서는 홈즈의 죽음이라는 충격적인 소식이 등장한다. 첫 단락에서부터 비애에 젖은 왓슨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영국에서 일어나는 범죄의 대부분을 조종하는 모리아티 교수. 그의 존재를 알아차린 홈즈와 모리아티 교수의 대결은 극에 달하고, 결국 두 사람은 폭포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어린 시절 읽을 때도 '안돼!!' 를 외치며 무척 마음 아파했던 기억이 나는데, 이번에도 역시 '으악!!'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도 역시 반전이 있으니, 기대하시라! 독자들의 아픈 마음, 충분히 보상하고도 남을 정도이니.

 

2편에서는 홈즈의 형 마이크로프트도 등장한다. 역시 홈즈의 형답게 비상한 머리와 추리력을 자랑한다. 그래도 홈즈와는 달리 건실하게 정부 기관에서 일하는 고위 공무원인 줄 알았더니, 음마! 마이크로프트가 사실상 영국 정부라니, 암요, 누구 형아인데요! 홈즈가 일상 생활에서 이런 저런 사건을 해결한다면, 마이크로프트는 정부의 모든 일에 관여하면서 조정하는 역할을 한다니, 형제는 대단했다!!

 

사실 어렸을 때는 셜록 홈즈만 눈에 보이고 왓슨은 그냥 조수같은 존재로만 여겼다. 하지만 지금 작품들을 찬찬히 다시 읽어보니, 홈즈 없는 왓슨, 왓슨 없는 홈즈는 전혀 상상이 되지 않는다. 홈즈의 사건을 기록하는 역할 뿐만 아니라, 사건을 해결하고 단서를 기반으로 추리해나가는 데 영감을 제공하는 왓슨. 아마 이 두 사람이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에 등장하는 브로맨스의 원조 아닐까. 문득 왓슨의 아내 메리는 이들 사이를 질투하지는 않았을지, 헛된(?) 상상을 해본다. 사실상 메리가 등장하는 비중이 크지 않다. 아니, 엄청 작다.

 

현대적인 스릴러만 읽다가 고전적인 탐정 소설을 읽고 있으려니 겨울의 정취가 더 깊어지는 듯 하다. 어딘가 따뜻한 난롯가에 앉아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고 있는 듯한 기분. 영원한 탐정과 그의 친구, 다시 만나 정말 반가웠어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셜록 홈즈 에센셜 에디션 1 - 셜록 홈즈 130주년 기념 BBC 드라마 [셜록] 특별판 셜록 홈즈 에센셜 에디션 1
아서 코난 도일 지음, 마크 게티스 외 엮음, 바른번역 옮김, 박광규 감수 / 코너스톤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잘생김을 연기하는 배우'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주연을 맡았던 드라마 <셜록>. 아주 어렸을 때 읽은 셜록 홈즈가 저런 고기능 소시오패스였던가 내 눈을 의심하게 만들면서도, 매력적인 캐릭터로 재창조된 홈즈 앞에서 나또한 흐물흐물 맥을 못췄다. 그때부터 더 열기를 띠었던 설록 홈즈 사건 해결기. [셜록 홈즈 에센셜 에디션]은 베네딕트 컴버배치를 표지에 내세운, 드라마 <셜록>의 작가 마크 게티스와 스티븐 모팻이 선정한 원작 셜록 홈즈의 매력적인 모험담이다. 착각하지 말아야 할 점은 드라마를 책으로 옮긴 게 아니라는 것!

 

셜록과 왓슨, 그들의 운명적인 만남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런던 대학에서 학위를 받았지만 군의관으로 전쟁에 참여한 왓슨은 치명적인 부상과 장티푸스로 생사를 헤매다 귀환한다. 한동안 방탕한 생활을 보내다가 하숙집을 구해야 하는 형편에 처한 그에게, 마침 같이 지낼 사람을 찾는 홈즈를 만난다. '해부학 지식이 깊고 화학자로서도 일류급이지만, 체계적인 의학수업을 받은 적은 없고 일관성 없이 색다른 연구만을 골라하는데, 교수들도 놀랄만큼 폭넓은 지식을 갖추고 있는' 홈즈. 철학이나 문학에는 영 관심을 두지 않지만, 범죄학 분야에 박식하고 사건 현장에 남긴 발자국이나 작은 단서 하나도 놓치지 않을만큼 통찰력이 뛰어난 홈즈. 그들이 함께 살게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홈즈와 왓슨이 처음으로 같이 맡을 사건 의뢰가 들어온다. 이름하여 그 유명한 <주홍색 연구>!!

 

한 남자가 로리스턴 가든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사체의 얼굴에는 죽기 직전 맛보았던 두려움과 공포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고, 범죄 현장에는 독일어로 복수를 의미하는 RACHE 라는 글자가 피로 쓰여져 있었다. 단서 하나, 상황 설명 하나로 이미 모든 것을 알아채는 홈즈. 심지어 범인을 그의 방안에 불러들여 직접 붙잡기까지 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밝혀진 진상. 뒤틀린 시체, 모르몬교도, 그리고 20년에 걸쳐 행해진 복수극. 첫 이야기부터 독자들의 시선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을 매력이 넘친다. 왜 제목이 <주홍색 연구>인가 궁금했는데 이야기 속에 '빛깔 없는 삶의 실타래 속으로 주홍색 살인의 실이 엉켜 있어'라고 홈즈가 읊조리는 대목이 등장한다.

 

[셜록 홈즈 에센셜 에디션 1] 에는 총 여덟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주홍색 연구>를 비롯하여 <네 사람의 서명>, <보헤미아 스캔들>, <빨간 머리 연맹>, <신랑의 정체>, <입술이 뒤틀린 남자>, <푸른 석류석>, <얼룩 끈>. 모두 셜록 홈즈의 예리한 관찰력과 판단력, 통찰력이 돋보이지만 이 중 <신랑의 정체>를 읽고 한동안 마음이 쓰렸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 인간은 과연 어디까지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던 작품으로, 짧지만 강렬하다. <얼룩 끈>은 예전에 읽었을 때도 섬뜩했지만 지금도 여전히 좋은 기분은 아니다. 어디선가 얼룩 끈이 스르르 나타날 것만 같은 으스스함. 셜록 홈즈 이야기에는 생각보다 인과응보를 떠올리게 만드는 요소가 꽤 있다.

 

왓슨은 <네 사람의 서명>에서 사건을 의뢰하기 위해 찾아온 메리 모스턴 양과 사랑에 빠지고 가정을 꾸렸다. 그런 왓슨을 보면서 홈즈는 '사랑은 감정적이야. 감정적인 건 모두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냉철한 이성에 방해가 되지. 나는 판단력을 흐리지 않기 위해 절대 결혼 같은 건 안 할거야' 라고 맹세한다. 탐정으로서는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지만, 그가 누군가를 만나 사랑하고 남편이 되고 아버지가 된다는 건, 미안하지만 상상하기 힘들다. 늘 복잡한 사건 없나 찾아 헤매고, 사건이 없으면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코카인까지 주입하는 홈즈가??!! 절레절레. 하지만 홈즈에게는 왓슨이 있다. 결혼했지만 부인은 뒷전으로 밀어놓고 홈즈가 부르면 언제나, 어디든 함께 갈 준비가 되어 있는 소울메이트.

 

한 번 붙잡으면 앉은 자리에서 다 읽을 수밖에 없는 콤비의 사건 해결기. 2권에도 흥미로운 작품들이 가득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스터리 서점의 크리스마스 이야기
에드 맥베인.로런스 블록 외 지음, 오토 펜즐러 엮음, 이리나 옮김 / 북스피어 / 2016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거의 20년에 달하는 세월동안 매년 크리스마스를 즈음하여 미국에 거주하는 훌륭한 추리소설 작가들에게 독창적인 이야기를 써달라고 주문한 뒤, 소책자로 제작해서 고객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나눠주었던 오토 펜즐러. 작가들이 따라야 할 기준은 세 가지였는데, 이야기가 크리스마스 시즌을 배경으로 할 것, 미스터리를 포함할 것, 적어도 몇몇 장면은 '미스터리 서점'에서 일어날 것이었다. 평소에 별 관심이 없던 독자들도 크리스마스 시즌만 되면 이 소책자를 손에 넣겠다는 일념으로 책을 주문하기에 이르렀다니, 얼마나 인기가 많았는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듯 하다. 수집 가치도 커져서 17편의 이야기가 모두 담긴 이 [미스터리 서점의 크리스마스 이야기]보다 책자 하나하나가 더 비싸게 팔렸다고 하는데, 책을 모으는 재미가 어떤지 알고 있는 나로서는 독자들의 그 마음, 백번은 이해가 된다.

 

 

[세상의 모든 책 미스터리]를 시작으로 오토 펜즐러가 편집한 특별한 미스터리를 만나게 된 것은 이번이 두 번째. <크리스마스 미스터리 시리즈> 중 그 포문을 연 첫 작품집인 [미스터리 서점의 크리스마스 이야기]에서는 짧지만 강렬한, 애잔하면서도 뭉클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다. <87분서 시리즈>로 유명한 에드 맥베인의 작품은 물론, 생각지도 못하게 [채텀 스쿨 어페어] 로 에드거 상을 수상한 토머스 H. 쿡의 작품까지 음미할 수 있었던 크리스마스 이야기 맛집.

 

 

이 작품에 실린 이야기들의 주인공은 유명하거나 유명하지 않거나를 떠나 어떤 작가들의 '원고', 혹은 '책'이다. 가치를 모르는 이들에게는 한낱 종이쪼가리로만 보이는 원고나 책들을 위해 누군가는 킬러를 고용하고, 그게 여의치 않으면 스스로 나서서 범죄를 일으키고, 잃어버린 그것들을 찾아달라 탐정을 고용하거나 온갖 난리법석을 떤다.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쓰여서인지 산타클로스도 유독 많이 등장하는데, 아이들의 꿈과 동심을 지켜주는 존재로서가 아니라 대개는 잔인하게 살해당하는 쪽이라. 대부분 편집자인 오토 펜즐러가 주인공으로 그는 도둑을 숨겨주기도 하고, 가난한 서점 주인이었으나 갑자기 엄청난 행운을 맞이하는 사람으로 등장하기도 하는 등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워낙 짧은 이야기들이라 살인사건이 일어나도 중간과정을 음미하는 맛이 깊지 않아 다소 아쉬운 부분도 있지만, 크리스마스 시즌에 만끽하기에는 안성맞춤의 이야기들이라고 할까. 그 중 토머스 H. 쿡의 <크리스마스가 남긴 교훈>에 등장하는 한 문구가 유독 인상적이었다.

내겐 브루노 클렘의 책이 스카치와 같습니다. 그런 거 있잖습니까. 힘든 하루를 끝내고 집에 돌아왔을 때 아내가 기다리고 있다가 내미는 스카치 한 잔.

p254

나는 아내가 없고, 지금은 육아휴직 중에 코로나로 인해 집콕 생활 중이라 어디 나가서 힘든 하루를 보내고 올 일도 없지만, 저 '스카치'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 것 같아서 미소가 지어졌다.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위안을 얻을 수 있는 어떤 작은 것. 그것이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당연히 '책'이 되는 것이다.

 

마침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시간에, 그리고 크리스마스 이브에 읽을 수 있어 더욱 그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었다. 크리스마스에 살인사건이라니, 미스터리를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경악할 수도 있지만, 크리스마스이고 겨울이기에 더 깊게 느낄 수 있는 그런 감동과 책이 있게 마련이다. 다음으로 읽을 예정인 책은 [화이트 크리스마스 미스터리], 그리고 [우아한 크리스마스의 죽이는 이야기]. 아마도 한동안 나만의 크리스마스는 계속 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먹을 수 있는 여자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이은선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목을 보고 약간 선정적인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했더랬다. 강렬한 색감에, '페미니즘 문학의 문을 연 바로 그 소설'이라는 문구에, 속된 말로 잠자리를 가질 수 있는 여자라는 생각이 머리속을 파고든 까닭이다. 그저 순수하게 '먹는다'는 행위를 염두에 두었다면 좋았을 것을, 이제 순진하게 생각할 나이는 지났나 싶어 약간 씁쓸. 하지만 누구라도 오해할만 하지 않나! 마성의 마여사라면, 이런 제목을 떡하니 올려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설문지를 작성하고, 작성한 설문지로 누군가에게 질문을 던지는 회사에 다니는 메리언은 '평범한' 여자다. 남편 없이 아이를 낳고 싶다면서 대상을 물색하는 에인슬리와 어느 새 세 번째 아이를 임신한 클래라 사이에서, 만나고 있는 피터와 은연 중에 결혼을 바라고 있을지도 모르는 여성. 이 시대의 남자들은 결혼을 원하는 여자를 무슨 꽃뱀처럼 취급하기 때문에, 메리언은 피터를 압박하지 않도록 조심하고 있다. 회사에 다니는 무리들과도 결혼을 갈망하는 분위기에 휩쓸려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자주 하기는 하지만, 어쩐지 결혼이 인생의 목적인 듯 행동하지는 않는 메리언에게 피터가 청혼을 했다. 문제는 그 다음. 여기저기서 '여성성'을 강조하는 소리를 듣던 메리언이 갑자기 음식을 먹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고기를, 다음에는 야채도, 그리고 아무것도.

당신은 왜 요리를 할 줄 몰라?

p91

[먹을 수 있는 여자]는 1965년 탈고되어 1969년 마침내 세상빛을 보게 된다. 당시는 여성운동이라는 것이 확연하게 드러나지 않았고, 1960년대 초반까지 캐나다의 젊은 여성들은 '미래가 없는 직장생활을 계속할 것인가, 결혼을 탈출구로 삼을 것인가'의 고민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자신만의 확고한 경력 없이 결혼을 하고 가정주부가 되어 남편을 내조하는 것이 하나의 법칙처럼 통용되던 시절. 요리는 당연히 여성의 몫이었고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하려는 희망을 가지고 있는 여자들을, 어쩌면 남자들은 비난의 눈초리로 쳐다보았을지도 모른다. 에인슬리의 아기의 아빠로 당첨된 렌은 '치근대는 여자가 있으면 조심해야 한다, 그들의 목적은 결혼이다, 잘 꼬드겨서 만나고 발목 잡히기 전에 빠져나와야 한다'로 시작해서 '여자를 교육시키면 꼭 문제가 생긴다'는 발언으로 여성비하의 정점을 찍는 인물로 등장한다.

에인슬리는 가만히 있었는데 당신은 왜 그랬어? 당신은 뭐가 문제인가 하면......당신에게 주어진 여성성을 거부하고 있다는 거야.

당신 결정에 따를게. 중요한 결정은 당신한테 맡기고 싶어.

p113, p127

이 작품에서는 유독 '여성성'이라는 말이 많이 등장한다. 자신의 결정에 그다지 찬성하지 않는 메리언에게 '너는 여성성을 거부하고 있어'라고 말하는 에인슬리나, 메리언이 렌을 피터에게 소개하는 자리에서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나가 말 그대로 '뛰어다니는' 메리언을 비난하는 피터나 그녀에게 모두 '여성성'을 강조한다. 대체 뭐가 여성적인 것이고, 뭐가 여성적이지 않은 것인가. 여자니까 이래야 하고 남자니까 저래야 한다는 고정관념. 그런 사고방식이 한 사람이 온전한 인격으로 성장하는 데 얼마나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예민하게 생각하는 현대의 나로서는 굉장히 거부하고 싶은 단어다. 요즘은 교과서에 등장하는 왜곡된 성 역할만으로도 비난을 면치 못하는 시대 아니던가.

 

주위의 '여성성'을 피해 달아나는 듯 했던 메리언은, 피터로부터 청혼을 받고 갑자기 '여성적인' 사람으로 변화하려 한다. 결혼은 언제 했으면 좋겠냐는 물음에, 중요한 결정은 당신한테 맡기겠다니! 두 사람이 결혼하는 날짜를 왜 한 사람이 결정해야 하나. 그것도 왜 굳이 남자인 피터에게 '중요한 결정'을. 이 문장에서부터 그 시대의 결혼이란, 여자가 남자보다 '덜' 중요한 사람으로 변모해가는 과정을 나타내는 것인가, 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것이다.

 

메리언의 친구인 클래라가 결혼과 육아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인물이라면, 설문조사를 하다 우연히 만난 덩컨은 초현실적인 인물이다. 그는 결혼 뿐만 아니라 현실의 모든 것에서 동떨어져있다. 만날 때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하고 메리언을 사랑하거나 결혼할 생각도 없으면서 (혼전순결이 입에 오르내리던 시절에, 그러나 메리언은 이미 피터와 잠자리를 하고 있는 했지만) 너무도 태연하게 잠자리를 제안한다. 클래라나 에인슬리, 피터가 메리언을 현실에 붙잡아놓는 사람들이라면, 덩컨은 그 어떤 관계로도 명명되지 않은 채 자유롭게 만나고 자유롭게 행동하는 것이 당연한 사람이다. 결혼과 결혼이 아닌 선택지에서 고민하는 메리언을 자유롭게 풀어주는, 한편으로는 그녀의 복잡한 내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한 존재-라고 생각했다.

 

결혼에 그리 열정적이지 않고, 그저 흘러가는 물에 편승하는 것처럼 따라가던 메리언이 이상증세를 보인 것은 피터가 청혼하고, 그녀가 승낙하고, '결혼'이 구체적인 형태를 띠기 시작하면서부터. 처음에는 고기를, 다음에는 채소도, 마지막에는 아무것도. 먹는다는 행위는 생존과 직결되어 있다. 생존을 거부하는 듯한 그 증세는, 결국 온전한 자신으로 서있지 않다는 것을, 메리언의 무의식이 알아차렸기 때문 아니었을까. '먹을 수 있는' 여자는 후에 메리언이 다시 음식을 먹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면서, 동시에 자신이 원하는 바가 무엇이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지 주체적으로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나타내기도 한다.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알 것 같은데, 나에게는 그 과정이 복잡하고 어렵게 느껴져 또 한번! '텍스트를 해석하는 능력'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이런 고민을 여자들만 하나? 삶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자신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은지에 대한 생각을 남자들은 하지 않았던 건가. 이런 이야기들이 그저 한 인간의 고뇌가 아니라 '페미니즘 문학'이라 명명되어야 하는 현실이 다소 아리송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1~2 세트 - 140주년 고급 벨벳 양장본 최신 원전 완역판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이가영 옮김, 최행규 해설 / 코너스톤 / 202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최신 원전 완역본으로 만나볼 수 있는 기회! 멋진 표지는 소장가치 10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