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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서점의 크리스마스 이야기
에드 맥베인.로런스 블록 외 지음, 오토 펜즐러 엮음, 이리나 옮김 / 북스피어 / 2016년 12월
평점 :

거의 20년에 달하는 세월동안 매년 크리스마스를 즈음하여 미국에 거주하는 훌륭한 추리소설 작가들에게 독창적인 이야기를 써달라고 주문한 뒤, 소책자로 제작해서 고객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나눠주었던 오토 펜즐러. 작가들이 따라야 할 기준은 세 가지였는데, 이야기가 크리스마스 시즌을 배경으로 할 것, 미스터리를 포함할 것, 적어도 몇몇 장면은 '미스터리 서점'에서 일어날 것이었다. 평소에 별 관심이 없던 독자들도 크리스마스 시즌만 되면 이 소책자를 손에 넣겠다는 일념으로 책을 주문하기에 이르렀다니, 얼마나 인기가 많았는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듯 하다. 수집 가치도 커져서 17편의 이야기가 모두 담긴 이 [미스터리 서점의 크리스마스 이야기]보다 책자 하나하나가 더 비싸게 팔렸다고 하는데, 책을 모으는 재미가 어떤지 알고 있는 나로서는 독자들의 그 마음, 백번은 이해가 된다.
[세상의 모든 책 미스터리]를 시작으로 오토 펜즐러가 편집한 특별한 미스터리를 만나게 된 것은 이번이 두 번째. <크리스마스 미스터리 시리즈> 중 그 포문을 연 첫 작품집인 [미스터리 서점의 크리스마스 이야기]에서는 짧지만 강렬한, 애잔하면서도 뭉클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다. <87분서 시리즈>로 유명한 에드 맥베인의 작품은 물론, 생각지도 못하게 [채텀 스쿨 어페어] 로 에드거 상을 수상한 토머스 H. 쿡의 작품까지 음미할 수 있었던 크리스마스 이야기 맛집.
이 작품에 실린 이야기들의 주인공은 유명하거나 유명하지 않거나를 떠나 어떤 작가들의 '원고', 혹은 '책'이다. 가치를 모르는 이들에게는 한낱 종이쪼가리로만 보이는 원고나 책들을 위해 누군가는 킬러를 고용하고, 그게 여의치 않으면 스스로 나서서 범죄를 일으키고, 잃어버린 그것들을 찾아달라 탐정을 고용하거나 온갖 난리법석을 떤다.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쓰여서인지 산타클로스도 유독 많이 등장하는데, 아이들의 꿈과 동심을 지켜주는 존재로서가 아니라 대개는 잔인하게 살해당하는 쪽이라. 대부분 편집자인 오토 펜즐러가 주인공으로 그는 도둑을 숨겨주기도 하고, 가난한 서점 주인이었으나 갑자기 엄청난 행운을 맞이하는 사람으로 등장하기도 하는 등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워낙 짧은 이야기들이라 살인사건이 일어나도 중간과정을 음미하는 맛이 깊지 않아 다소 아쉬운 부분도 있지만, 크리스마스 시즌에 만끽하기에는 안성맞춤의 이야기들이라고 할까. 그 중 토머스 H. 쿡의 <크리스마스가 남긴 교훈>에 등장하는 한 문구가 유독 인상적이었다.
내겐 브루노 클렘의 책이 스카치와 같습니다. 그런 거 있잖습니까. 힘든 하루를 끝내고 집에 돌아왔을 때 아내가 기다리고 있다가 내미는 스카치 한 잔.
나는 아내가 없고, 지금은 육아휴직 중에 코로나로 인해 집콕 생활 중이라 어디 나가서 힘든 하루를 보내고 올 일도 없지만, 저 '스카치'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 것 같아서 미소가 지어졌다.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위안을 얻을 수 있는 어떤 작은 것. 그것이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당연히 '책'이 되는 것이다.
마침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시간에, 그리고 크리스마스 이브에 읽을 수 있어 더욱 그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었다. 크리스마스에 살인사건이라니, 미스터리를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경악할 수도 있지만, 크리스마스이고 겨울이기에 더 깊게 느낄 수 있는 그런 감동과 책이 있게 마련이다. 다음으로 읽을 예정인 책은 [화이트 크리스마스 미스터리], 그리고 [우아한 크리스마스의 죽이는 이야기]. 아마도 한동안 나만의 크리스마스는 계속 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