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에서는 유독 '여성성'이라는 말이 많이 등장한다. 자신의 결정에 그다지 찬성하지 않는 메리언에게 '너는 여성성을 거부하고 있어'라고 말하는 에인슬리나, 메리언이 렌을 피터에게 소개하는 자리에서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나가 말 그대로 '뛰어다니는' 메리언을 비난하는 피터나 그녀에게 모두 '여성성'을 강조한다. 대체 뭐가 여성적인 것이고, 뭐가 여성적이지 않은 것인가. 여자니까 이래야 하고 남자니까 저래야 한다는 고정관념. 그런 사고방식이 한 사람이 온전한 인격으로 성장하는 데 얼마나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예민하게 생각하는 현대의 나로서는 굉장히 거부하고 싶은 단어다. 요즘은 교과서에 등장하는 왜곡된 성 역할만으로도 비난을 면치 못하는 시대 아니던가.
주위의 '여성성'을 피해 달아나는 듯 했던 메리언은, 피터로부터 청혼을 받고 갑자기 '여성적인' 사람으로 변화하려 한다. 결혼은 언제 했으면 좋겠냐는 물음에, 중요한 결정은 당신한테 맡기겠다니! 두 사람이 결혼하는 날짜를 왜 한 사람이 결정해야 하나. 그것도 왜 굳이 남자인 피터에게 '중요한 결정'을. 이 문장에서부터 그 시대의 결혼이란, 여자가 남자보다 '덜' 중요한 사람으로 변모해가는 과정을 나타내는 것인가, 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것이다.
메리언의 친구인 클래라가 결혼과 육아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인물이라면, 설문조사를 하다 우연히 만난 덩컨은 초현실적인 인물이다. 그는 결혼 뿐만 아니라 현실의 모든 것에서 동떨어져있다. 만날 때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하고 메리언을 사랑하거나 결혼할 생각도 없으면서 (혼전순결이 입에 오르내리던 시절에, 그러나 메리언은 이미 피터와 잠자리를 하고 있는 했지만) 너무도 태연하게 잠자리를 제안한다. 클래라나 에인슬리, 피터가 메리언을 현실에 붙잡아놓는 사람들이라면, 덩컨은 그 어떤 관계로도 명명되지 않은 채 자유롭게 만나고 자유롭게 행동하는 것이 당연한 사람이다. 결혼과 결혼이 아닌 선택지에서 고민하는 메리언을 자유롭게 풀어주는, 한편으로는 그녀의 복잡한 내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한 존재-라고 생각했다.
결혼에 그리 열정적이지 않고, 그저 흘러가는 물에 편승하는 것처럼 따라가던 메리언이 이상증세를 보인 것은 피터가 청혼하고, 그녀가 승낙하고, '결혼'이 구체적인 형태를 띠기 시작하면서부터. 처음에는 고기를, 다음에는 채소도, 마지막에는 아무것도. 먹는다는 행위는 생존과 직결되어 있다. 생존을 거부하는 듯한 그 증세는, 결국 온전한 자신으로 서있지 않다는 것을, 메리언의 무의식이 알아차렸기 때문 아니었을까. '먹을 수 있는' 여자는 후에 메리언이 다시 음식을 먹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면서, 동시에 자신이 원하는 바가 무엇이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지 주체적으로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나타내기도 한다.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알 것 같은데, 나에게는 그 과정이 복잡하고 어렵게 느껴져 또 한번! '텍스트를 해석하는 능력'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이런 고민을 여자들만 하나? 삶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자신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은지에 대한 생각을 남자들은 하지 않았던 건가. 이런 이야기들이 그저 한 인간의 고뇌가 아니라 '페미니즘 문학'이라 명명되어야 하는 현실이 다소 아리송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