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왼쪽 너의 오른쪽 수상한 서재 4
하승민 지음 / 황금가지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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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는 명확했다. 엄마의 죽음. 그 날 그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면 지아가 혜수를 만나는 일 또한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재채기 한 번에 엄마가 목숨을 잃었다는 죄책감, 잔혹한 살육의 현장을 눈으로 목격해버린 충격, 따뜻함을 기대할 수 없었던 아버지의 품. 그 모든 것이 어우러져 혜수를 만들어냈다. 지아는 살고 싶었으니까. 살아야 했으니까. 최소한 사건이 벌어진 후 아버지라도 살뜰히 지아를 보살폈다면 혜수는 세상에 나오지 않았을까. 모를 일이다. 이미 혜수를 만나버렸으므로.


 

정신을 차리고보니 어떤 여자의 시체가 눈 앞에 놓여 있다. 모르는 여자다. 지아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것은 치매병동에서 같은 간병인으로 일하는 유정의 손바닥을 연필로 뚫었다는 것. 그 여자의 남편이 와서 자신을 폭행했다는 것. 스트레스가 끓어오를 때면 으레 그렇듯 혜수가 오길 기다렸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아 자해를 했다는 것. 대체 눈 앞의 이 여자는 누구일까. 혜수는 이제 살인까지 저지르고 그 뒷수습을 자신에게 맡기고 사라져버린 걸까. 허둥지둥 시체를 산에 묻고 기억을 더듬어 집을 찾아간 지아 앞에 기억하는 것보다 19년이나 지나버린 세상이 펼쳐져 있다.

 

 

항국도시 묵진을 배경으로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가는 과정이자 복수극, 한편으로는 한 인간이 성장해나가는 것을 묵묵히 응원하는 작품이다. 모든 수수께끼의 해답은 과거의 그 날로 집결된다. 우리 국민이 슬픔과 눈물 없이는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비극. 그 날 수많은 사람이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그보다 더 많은 수의 사람 목숨을 살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 날의 일로 정신적으로 고통을 겪는 가해자들도 많다고 하지만, 어디 희생자들과 유가족들, 그 날의 일을 지켜본 사람들만 하겠는가. 더 충격적인 것은 가해자들이 반성은 커녕 그 날의 일을 스스로에게 합리화시키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살려달라고 외치던 사람들 얼굴이 보여. 도망가던 사람들 뒷모습이 보여. 그 사람들 비명이 들려. 가끔 날 찾아와. 살려놓으라고, 구멍이 뻥 뚫린 배를 까뒤집고 말한다고. 꺼지라고 해주지. 너처럼 미치는 대신에, 몇 번이고 죽여주겠다고 다짐을 해. 그래야 살아.

p 579

 

 

읽으면서 이런 결말이 아닐까-생각한대로의 진실이 거기 있었지만, 한 단계 더 나아간 진실에는 명치를 강타당한 듯 고통스러웠다. 온갖 문제를 저지르고 다니던 혜수였지만, 혜수는 결국 지아였다. 감정을 느끼고 과거를 회상하면 괴로운 지아 대신 모든 감정을 지운 채 오직 살아남기 위해 발악하던 혜수이자 지아. 그런 그녀에게 단 하나 남은 온기였던 존재. 이제 더 이상 세상으로 나오기를 거부하는 듯한 혜수를 보면서 가슴이 아프다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로 힘들었다.

 

 

탄탄한 구조와 섬세한 내면 묘사, 반전의 묘미까지 고루 갖춘 하승민 작가의 [나의 왼쪽 너의 오른쪽]. 함께 할 수 없지만 어쩌면 삶을 지탱하게 해 준 버팀목이었을지도 모를 존재. 이 작품을 끝까지 다 읽고나면 이 제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비로소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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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토 에코 특별판 박스 세트 - 전2권 - 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하는 방법 +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움베르토 에코 지음, 박종대.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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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토 에코의 에세이도 그렇고, 얼마 전 읽은 <사무사책방 시리즈>의 도정일 작가님의 책들을 보면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항상 관찰하고, 그 나아가는 방향이 올바른지 따져보는 것은 전세계 지성인들의 의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이 책에 실린 자신의 거의 모든 칼럼은 '유동 사회'라는 사회적 현상에 대한 성찰로 이해될 것이라 요약했다. 유동 사회, 또는 유동 근대는 지그문트 바우만이 처음 사용한 개념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의 등장, 국가의 위기, 이데올로기의 위기, 가치 공동체의 위기, 무분별한 개인주의로 인해 법에 대한 믿음을 잃었고 소비주의, 욕망이 충족되지 않는 상황 등을 일컫는 말로 보인다. 이 유동사회에 대처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그 첫번째 발걸음으로 제시한 대안이 상당부분 도정일 작가님과 들어맞는다.


우리가 유동 사회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그런 사회를 이해하고 극복하려면 새로운 수단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면 된다.


p 16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아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것. 그리하여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은 작가가 이래서는 안 된다, 뭣이 중요한디?!-에 대한 지표를 제시하는 글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작가의 주관적인 견해일 뿐이고 세상에는 사람 수만큼의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므로 작가의 글에 반박하는 이들도 존재하겠지만, 나의 경우에는 이미 도정일 작가님의 책을 인상깊게 읽은 터라 어쩐지 그를 연상시키는 에코의 글에도 동조하게 되었다고 할까. 이 두 명의 지성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어떻게 하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가-하는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에코의 통렬한 비판이 향하는 대상 중 하나는 '휴대폰'이다. 그 휴대폰을 사용하는 '사람'이라고 할까. 끊임없이 휴대폰만 들여다보는 사람은 어릴 때 벌써 없애버려야 했다-며 다소 광기어린(?) 분노를 표출하는 그는, 휴대폰으로 인해 보급되어 떠도는 인터넷 상의 짧은 글도 비판의 도마 위에 올려두었다. 심지어 트위터에서 표출되는 의견을 하찮다고 표현하면서 '입 뚫린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마디씩 한다'며 신랄하게 비판한다. 그 미움이 어찌나 강한지 <인터넷 세상>이라는 소주제로 여러 편의 글을 실었을 정도.

 

작가는 역사에 대한 무지를 비판하고, ZOOM 시대에 학교와 교사의 역할에 대해 피력하며, 평범한 사람들이 의무를 다하는 사회를 지향한다.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에 대해 고찰하고, 이 시대가 아무리 디지털로 변한다 한들 아날로그의 아름다움을 예찬하고, 잘못을 저지른 상대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은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평소 내가 생각한 것을 글로 정리한다면 이런 형식으로 완성되려나. 물론 작가님에게는 훨씬 못미치겠지만 말이다.

 

통렬한 비판에 몸이 움츠러들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네, 맞습니다, 맞아요' 수긍하면서 읽었다. 이런 촌철살인의 글을 쓸 수 있는 작가님이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게 안타깝다. 이번에 <움베르토 에코 특별판 박스 세트>로 만난 이 책 외에 한 권의 책이 더 남아 있어서 다행이다. 심지어 제목도 더 노골적이다.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를 낸다니. 어떤 비판과 조롱을 가장한 인간에 대한 애정을 맛볼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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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부패에서 구하소서
쯔진천 지음, 박소정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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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히가시노 게이고'라 불린다는 쯔진천 작가를 처음 알게 해 준 작품은 역시 [동트기 힘든 긴 밤]. 중국소설을 잘 읽지 않고 별로 선호하는 편도 아니지만 이 작품을 읽은 뒤 쯔진천 작가의 책은 챙겨보게 되었다. [동트기 힘든 긴 밤]을 비롯해 지금까지 읽은 총 세권의 그의 작품은 모두 암울하고 안타까운 내용들이었는데, 이번에 읽은 [다만 부패에서 구하소서]는 유쾌하기 그지없다! 작정하고 썼는지 '강도단이 부패 공무원 추적 수사에 끼어들다'라는 컨셉도 그렇고, 심각한 상황인데도 영 심각함을 느끼지 못하겠는 대사들에 계속 피식피식 웃음이 나왔다. 다른 작품에서라면 심각하게 흘러갈 수 있는 사태인데도 위기감이나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하필 경찰이 부상당하는 부위도 엉덩이. 엉덩이를 무시할 건 아니지만, 생각해보라! 엉덩이에 붕대를 감고 있는 그 모습을!

 

 

보석점 같은 건물보다는 사람을 털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2인조 강도 팡차오와 류즈. 사람 중에서도 강도를 당해도 절대 신고 못할 부패 공무원을 고르기로 결심한다. 그런 그들이 끼어든 사건은 장이앙이 수사하고 있는 예젠 살인사건. 본래 저우웨이둥의 행동대장이라 알려진 저우룽을 조사하기 위해 싼장커우 부국장으로 보내졌지만 예전 부국장이었던 루정의 실종 등 이런저런 복잡한 사정에 얽히게 된다. 으엄청 예리한 수사감각을 가진 것 같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영 못나지도 않은 듯한 장이앙과 경찰동료들의 사건해결기!

 

 

이 작품에도 반전이 존재하는데 독자를 충격으로 몰아가는 반전이 아니라 엉뚱한 반전이라고 할까. 가령 예를 들자면.

 

여자 키는 160에서 163센티미터, 균형 잡힌 몸매에 체중은 50킬로그램 미만, 피부는 약간 까무잡잡하고 평소 옷차림은 깔끔하고 단정해. 걸음은 빠른 편이고, 목소리는 낮고 거칠거야.

p48

 

용의자가 도망간 현장에서 상황을 분석한 장이앙이 차분하게 용의자의 용모를 설명하는 부분이다. 이런 장면을 접하면 '오잉? 실력 좀 있는데?'라고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그 뒤 등장하는 대사에 또 푸핫 웃음이 터졌다. 남자의 용모에 대해 부하들이 물어보자, 남자는 모른다며, 여자에 대해서는 어젯밤 보지 않았냐며 대꾸하는데, 대부분의 대사가 이런 식으로 엉뚱함으로 무장되어 있다. 심각한 분위기의 작품만 선보였던 작가가 '이번에는 제대로 웃겨주겠어!'라고 마음 먹은 듯한 느낌이랄까.

 

 

아무래도 '소 뒷걸음질치다 생쥐 잡은 격'의 성공이 아닌가 싶은 부분도 없지 않지만 그것도 다 장이앙의 복이렷다. 경찰로서의 감각과 열정은 그 누구에도 뒤처지지 않는 듯. 이런 종류의 웃음을 좋아하는 편이라 장이앙을 주인공으로 한 시리즈로 계획되어도 즐거울 것 같다. 그런데 이 작품, 스릴러가 아니라 코메디로 분류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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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는 우리를 즐겁게 해요! - 행복한아침독서 추천도서 상수리 그림책방 9
소피 비어 지음 / 상수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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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줍음을 많이 타는 첫째 아이는 인사하는 것도 부끄러워했습니다. 그럴 때는 인사하기를 강요하지 말고 부모가 먼저 인사를 하고, 그 모습을 아이가 많이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글을 어디선가 읽었어요. 사실 어른들도 모르는 사람에게 먼저 인사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역시 부모는 아이가 관계되면 안 하던 일도 하게 되는 것인지, 눈을 마주친 사람에게는 가급적 인사를 건네려고 노력 중입니다.

 

 

[인사는 우리를 즐겁게 해요] 는 다양한 인사 표현과 함께 밝고 행복한 분위기가 특징인 그림책이에요. 팔꿈치를 '툭'치며 '안녕'하기도 하고, '쪽' 뽀뽀하면서 '엄마, 사랑해요' 하기도 하고, 오랜만에 만난 사람에게 아는 척을 하면서 '오랜만이에요' 말을 건네기도 하죠. 맛있는 걸 먹을 때는 '제 것도 드릴까요?' 묻기도 하고, 마음을 담아 '사랑해요'라고 말합니다.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말들, 기쁘게 하는 인사는 무엇이 있는지 아이들과 이야기나누기 참 좋은 책이예요. 남을 기쁘게 하면 자신도 기쁠 수 있다는 것을 은연 중에 배울 수도 있고요.

 

 

요즘은 아파트들도 앞집과 자신의 집이 들어가는 입구가 달라 얼굴 보기도 참 힘들다고 합니다. 사생활을 중요시여기는 풍조가 강해졌기 때문이겠지만, 누군가에게 이런 말을 들었을 때 쓸쓸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사람과의 관계에서 단점만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분명 좋은 점이 더 많을 거라 믿으면서, 내일도 아이들과 함께 힘차게 인사해보리라, 엄마인 저부터 다짐해봅니다!

 

**출판사 <상수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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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나구치 요리코의 최악의 낙하와 자포자기 캐논볼
오승호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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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호님의 작품이라니, 이제는 믿고 읽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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