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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토 에코 특별판 박스 세트 - 전2권 - 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하는 방법 +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움베르토 에코 지음, 박종대.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1월
평점 :
품절

움베르토 에코의 에세이도 그렇고, 얼마 전 읽은 <사무사책방 시리즈>의 도정일 작가님의 책들을 보면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항상 관찰하고, 그 나아가는 방향이 올바른지 따져보는 것은 전세계 지성인들의 의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이 책에 실린 자신의 거의 모든 칼럼은 '유동 사회'라는 사회적 현상에 대한 성찰로 이해될 것이라 요약했다. 유동 사회, 또는 유동 근대는 지그문트 바우만이 처음 사용한 개념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의 등장, 국가의 위기, 이데올로기의 위기, 가치 공동체의 위기, 무분별한 개인주의로 인해 법에 대한 믿음을 잃었고 소비주의, 욕망이 충족되지 않는 상황 등을 일컫는 말로 보인다. 이 유동사회에 대처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그 첫번째 발걸음으로 제시한 대안이 상당부분 도정일 작가님과 들어맞는다.
우리가 유동 사회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그런 사회를 이해하고 극복하려면 새로운 수단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면 된다.
p 16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아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것. 그리하여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은 작가가 이래서는 안 된다, 뭣이 중요한디?!-에 대한 지표를 제시하는 글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작가의 주관적인 견해일 뿐이고 세상에는 사람 수만큼의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므로 작가의 글에 반박하는 이들도 존재하겠지만, 나의 경우에는 이미 도정일 작가님의 책을 인상깊게 읽은 터라 어쩐지 그를 연상시키는 에코의 글에도 동조하게 되었다고 할까. 이 두 명의 지성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어떻게 하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가-하는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에코의 통렬한 비판이 향하는 대상 중 하나는 '휴대폰'이다. 그 휴대폰을 사용하는 '사람'이라고 할까. 끊임없이 휴대폰만 들여다보는 사람은 어릴 때 벌써 없애버려야 했다-며 다소 광기어린(?) 분노를 표출하는 그는, 휴대폰으로 인해 보급되어 떠도는 인터넷 상의 짧은 글도 비판의 도마 위에 올려두었다. 심지어 트위터에서 표출되는 의견을 하찮다고 표현하면서 '입 뚫린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마디씩 한다'며 신랄하게 비판한다. 그 미움이 어찌나 강한지 <인터넷 세상>이라는 소주제로 여러 편의 글을 실었을 정도.
작가는 역사에 대한 무지를 비판하고, ZOOM 시대에 학교와 교사의 역할에 대해 피력하며, 평범한 사람들이 의무를 다하는 사회를 지향한다.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에 대해 고찰하고, 이 시대가 아무리 디지털로 변한다 한들 아날로그의 아름다움을 예찬하고, 잘못을 저지른 상대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은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평소 내가 생각한 것을 글로 정리한다면 이런 형식으로 완성되려나. 물론 작가님에게는 훨씬 못미치겠지만 말이다.
통렬한 비판에 몸이 움츠러들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네, 맞습니다, 맞아요' 수긍하면서 읽었다. 이런 촌철살인의 글을 쓸 수 있는 작가님이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게 안타깝다. 이번에 <움베르토 에코 특별판 박스 세트>로 만난 이 책 외에 한 권의 책이 더 남아 있어서 다행이다. 심지어 제목도 더 노골적이다.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를 낸다니. 어떤 비판과 조롱을 가장한 인간에 대한 애정을 맛볼 수 있으려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