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할아버지와 줄넘기 북극곰 무지개 그림책 78
모리야마 미야코 지음, 구로이 겐 그림, 박영아 옮김 / 북극곰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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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가장자리에 높은 나무 위에 있는 다람쥐 할아버지의 집. 조금 전까지 떠들썩하던 풀밭은 이제 조용하기만 한데, 사르륵 사르륵 풀 밟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궁금해진 할아버지가 창밖으로 몸을 내밀고 바라보니 나뭇잎 사이로 보이는 꼬마 곰.

 

꼬마 곰이 갑자기 줄넘기를 시작합니다. 하나, 둘, 셋. 셋을 못 넘기는 꼬마 곰은 나무 위에서 다람쥐 할아버지가 바라보는 것도 모른 채 열심히 연습을 해요. 다음날 또 찾아온 꼬마 곰. 이번에는 여섯까지 성공합니다!! 꼬마 곰에게는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잘했다'며 칭찬을 하는 다람쥐 할아버지의 마음도 흐뭇해집니다.

 

여느 때 같으면 그냥 지나쳤을 아이들 무리에서 꼬마 곰을 발견한 다람쥐 할아버지. 그 무리에서 유독 꼬마 곰만이 줄넘기를 잘 하지 못합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꼬마 곰의 연습을 지켜보던 다람쥐 할아버지는, 꼬마 곰이 열 개까지 성공했을 때 자신도 모르게 '잘했다!'라며 큰 소리를 내고 말죠. 다람쥐 할아버지가 살고 있는 나무가 목소리를 낸 거라 착각한 꼬마 곰. 이 아이를 향한 다람쥐 할아버지의 진심어린 응원이 시작됩니다!!

 


 

매일매일 줄넘기 연습을 하는 꼬마 곰과 그런 꼬마 곰을 아무도 모르게 열심히 응원하는 다람쥐 할아버지의 가슴 따뜻한 이야기예요.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를 내고 만 이후, 자신을 나무로 착각하는 꼬마 곰을 위해 한층 더 목소리를 내는 다람쥐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면 제 마음도 벅차오릅니다. 정체가 발각된 후 꼬마 곰이 자신을 싫어할까 이사할 계획까지 세우는 모습에는 '아니야, 그러지 마!'하며 저도 모르게 발을 동동 구르게 되었죠. 누가 응원한들 어떻습니까. 중요한 것은 누군가가 나의 발전을 간절히 기원하고 있다는 것 아닐까요.

 

독특한 디자인의 그림책이예요. 일본의 교과서처럼 글자들이 세로로 앉아 있습니다. 아이도 이런 디자인의 그림책을 처음 보는 지라 신기한지 이건 무슨 책이냐고 연신 물어보네요. 저는 예전 일본 교과서를 공부하던 시절이 생각나 그립기도 하고 정다운 느낌이었지만 분명 색다르게 느끼실 분들이 많지 않을까, 추측해봅니다.

 


 

저는 이 페이지가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자신이 좋아하는 일들도 도중에 그만둔 채 꼬마 곰을 응원하기 위해 서둘러 귀가하는 다람쥐 할아버지. 그 마음이 가장 잘 표현된 부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읽다보면 다람쥐 할아버지와 한마음, 한뜻이 되어 어느새 꼬마 곰을 응원하는 자신을 발견하실 수 있을 거예요. 문득 꼭 부모가 아이를 응원하는 마음이 아니더라도, 삶에 있어 누군가가 누군가를 응원한다는 것, (좋은 뜻으로) 지켜봐준다는 것은 참 멋진 일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타인에게 점점 관심을 갖지 않게 되는 시국 속에서 마음을 포근하게 안아주는 따스한 그림책입니다.


  **출판사 <북극곰>을 통해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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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소녀들
C. J. 튜더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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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튜더의 작품에는 독특한 분위기가 있다. 호러와 스릴러 사이의 그 오묘한 경계. 마치 줄타기를 하는 듯 아슬아슬한 긴장감이 오컬트적인 소재와 만나 그 공포를 배가시킨 [불타는 소녀들]은, 지금까지 만난 작가의 작품 중 가장 재미있었다. 채플 크로프트라는 서식스의 작은 마을이 주는 폐쇄성, 메리 여왕의 신교도 박해로 화형당한 여덞 명의 주민이라는 소재가 주는 기괴함, 희생자들 중 두 명이 어린 여자아이라는 비극과 공포 등의 요소들이 사이코패스 살인마라는 소재와 자연스럽게 어울리면서 스릴러로만 맛볼 수 있는 짜릿한 북캉스의 묘미를 느끼게 해준다.

 

 

초반에 등장하는 악마와 신부, 그리고 구마의식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 설정으로 인해 '엑소시스트'같은 장르인 줄 알았다. 영화를 통해 느꼈던,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그 적막감과 까슬까슬한 분위기를 간직한 과거에 잭 브룩스라는 신부의 현재가 덧입혀진다. '잭'이라는 이름에 신부라는 직업까지 더해져 주인공이 '당연히' 남성일 것이라는 편견을 깨트린 그는 여성 사제다. 자신과 딸 플로를 지칭하면서 '모녀'라는 단어가 등장하길래 순간 '뭐지?'하고 생각했는데 오타가 아니었던 것!

 

 

원래 있던 교구에서 비극적인 사건과 연관되어 있던 그녀가 새로 향한 곳이 바로 채플 크로프트다. 처음 이미지부터 오싹함을 풍기는 교회와 무언가 비밀을 간직한 듯한 마을 사람들. 이곳에서 일어났던 심상치 않은 실종과 죽음들. 그리고 플로 곁을 맴도는 리글리라는 남자아이까지 작품은 비밀과 수상함으로 가득 차 있다.

 

 

헐렁한 듯 하면서 촘촘한 구성이다. 헐렁하다고 느낀 이유는 글이 술술, 너무나도 쉽게 잘 읽힌 덕분이며 구성이 촘촘하다고 생각한 것은 결말 부분에 가서야 첫 장면을 이해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모든 의문의 해답이 바로 거기, 분명히 보였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 있었다. 독자들을 알쏭달쏭하게 만들면서 마치 출구 없는 미로 속을 헤매는 듯한 기분이 들게 만들었던 이야기는, 어느 순간 보이는 한줄기 빛으로 순식간에 충격적인 결말을 향해 내달려간다.

 


여기에 악마가 있다. 여기, 가장 위험할 것 없어 보이는 이곳에.
p 11

 

 

너무 많은 이야기를 꺼낼 수 없어 조심스럽지만, 한 가지, 아이의 성향을 결정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타고난 천성인가, 양육환경인가. 그 아이도 그런 일을 겪지 않았다면 모든 것은 평범하게 제자리에 존재할 수 있었을까. 하지만 환경 탓만을 하기에는 설명이 부족한 아이도 등장하기에 명확한 답을 낼 수 없다는 것에 답답함을 느낀다. 맹목적인 집착에 사로잡힌 부모란, 또 얼마나 위험한 존재인가.

 

 

어쩐 일인지 꾸준하게 읽게 되는 C.J.튜더의 작품들. 긴가민가 하는 단계를 지나 이제는 챙겨보는 작가 중 한 명이 되었다. 새삼 반가워요! 말씀대로 내년 이맘 때 또 만나게 되기를!

 

 

**출판사 <다산책방>으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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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토 에코 특별판 박스 세트 - 전2권 - 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하는 방법 +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움베르토 에코 지음, 박종대.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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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하는 방법]에 이어 두 번째로 만나게 된 에코의 에세이.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이 앞서 읽은 책보다 제목부터가 더 노골적이라고 느껴진 것은, '세상'이라는 단어보다 '바보들'이라는 단어에서부터 드러나는 직접적인 비판 때문이라고 할까. '세상'이라는 덩어리 속에 바보는 몸을 숨길 수 있을 것 같지만, '바보'라고 직접적으로 말하면 그 덩어리가 짠!하고 없어져서 마치 발가벗겨진 듯한 이미지가 강하게 전달되는 것만 같다. 내용 면에서도 바퀴 달린 여행용 가방을 만드는 사람, 택시기사, 호텔이나 침대차에서 구정물 같은 커피를 제공하는 사람들 등 그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을 대놓고 바보라 칭하니, 이 난데없는 날벼락에 그들은 과연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무척 궁금하다!

 

 

그의 눈에 비친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작가가 칭한 '바보들'을 읽다보면 나 또한 바보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내 경우에는 조금 불편해도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던 반면, 작가는 사소한 일상 하나조차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이고 강렬한 예는 역시 '여행가방'이다. 여행가방에 대한 심오한 고찰. 이 여행가방의 문제점을 깨닫고 불편함을 개선하는 데 2,3년이나 걸릴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경악(?)!! 세상에 바보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그 바보들의 봉급이 얼마나 될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는 말에 공감하면서 웃음보가 터져버렸다.

 

 

심각한 것 같은데 재미있어! 이 책을 읽은 독자라면 누구라도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그 웃음이 와하하 터져나오는 웃음이든, 씁쓸한 미소이든 재치로 가득 찬 그의 글을 읽다보면 생전에 작가는 어떤 사람이었을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 것 같으면서도, 책을 읽고 있으면 과연 그럴 만하다는 생각이 들어 고개가 끄덕거려지기도 하고, 세상에나 어떻게 이런 일까지 생각할 수 있냐며 호들갑을 떨고 싶어지기도 한다. <연어와 여행하는 방법>에서는 한편의 시트콤을 보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이스크림 하나에서조차 통찰을 발휘하는 장면을 보면 '과연 이래서 세기의 지성인이라고 불리는가' 싶기도 했다.

 


 

다소 과격하다 여겨지는 부분들도 당연히 있다. 가령 <텔레비전에서 교수형 생중계를 보는 방법>에서는 사형제도에 찬성하는 이들을 향해, 사형제도를 그렇게 지지하고 좋아한다면 아무 거부감 없이 사형이 집행되는 장면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직격탄을 날린다. 사형의 정당성을 인정한다면서 마치 그 제도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인데 그래도 너무 과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논조가 강하다. 내가 사형제도를 완전히 반대하는 입장이 아니기 때문인가??!! 사형제도의 유무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나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만약 내가 피해자의 입장이라면, 혹은 희생자 가족의 입장이라면 사형제도에 완벽히 찬성하지 않았을까.

 

 

과격한 표현에서조차 그의 글은 자신감이 넘친다. 사형제도와 관련된 글을 발표하고 현지에서는 어떤 반응이 있었을까 궁금하지만, 작가와 의견이 다른 사람도 분명 있었을 것이기에 비판도 받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하지만 그런 비판조차 거리낌없다는 느낌. 어디 나처럼 자신있게 너희 주장을 펼칠 수 있다면 한 번 해봐!라는 작가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한 글들이다. 그럼에도 '웃으면서' 화내고자 했던 그의 마음 또한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책이라고 할까. 그렇지 않았다면 유머와 재치를 활용하지 않고 그저 화만 내면 됐을 일이다!

 

 

쉽게 읽히는 글들이지만 그 속에 담긴 메시지는 결코 쉽다고만은 할 수 없었다. 무심코 지나쳤던 모든 것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해주는 책. 여전히 어디선가 플라스틱 포크로 비행기 안에서 콩을 찍어먹으며 투덜거리고 있을 것만 같은 그가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이제서야 굉장한 유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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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토 에코 특별판 박스 세트 - 전2권 - 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하는 방법 +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움베르토 에코 지음, 박종대.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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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들은 당연히 사형 집행 장면을 보아야 한다.

p 159

 

미국에서 집행한 마지막 교수형을 텔레비전에서 보지 못해 유감이라고 해서 이게 뭔 소리인가 했더니, 결국 이야기의 주제는 '사형제도의 반대'였다. 사형제도를 찬성한다는 사람들에게 하는 이야기는, 당신이 사형이 최고의 정의라 생각하고 그 정의를 지지한다면 사형집행 장면도 좋아해야 마땅하다는 것.

 

지금까지는 작가님이 하는 말씀에 유쾌상쾌통쾌함을 느꼈는데 이 부분은 뭔가 살짝 불쾌했다. 어쩐지 내 말이 맞아, 너 이거 싫어? 그럼 이거 해!-라고 강요하는 느낌이라고 할까.

 

사형제도에 대해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 나는 여전히 나의 마음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사형제도를 찬성하는 사람에게 저렇게 심하다고 생각되는 말을 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사형제도를 반대하는 사람이 아니라서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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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토 에코 특별판 박스 세트 - 전2권 - 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하는 방법 +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움베르토 에코 지음, 박종대.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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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어느 곳을 가든 택시 운전사를 알아보는 확실한 방법이 하나 있다. 잔돈을 일절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 그가 바로 택시 운전사이다.

p39

 

세상에나! 이런 통찰력이라니! 커피를 구정물이라고 서슴없이 말하는 그도 너무 좋고, 택시운전사의 특징을 이렇게 정확하게 콕 집어내는 그도 너무 좋다. 날도 더운데 웃음이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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