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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이것은 누구나의 삶 - 특별하지 않은 청춘들의, 하지만 특별한 이야기
박근영 지음, 하덕현 사진 / 나무수 / 201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그냥, 마음이 무거웠다. 내년부터 실시될 교육과정에 관한 이야기를 여기저기에서 들을 때마다, 학교에서는 그리 중요하다고 인식되지 않는 내 과목 때문에 괜시리 서러웠다. 대학 가는 데 필요없으니 공부하지 않아도 괜찮다, 굳이 공부할 필요 없다고 말씀하신다는 어떤 선생님에게도 섭섭했고, 하루하루 흘러가는 시간이 헛된 것만 같아서 가슴이 답답했다. 아이들이 감정에 치우쳐 내뱉는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상처받으면서 이 자리가 내 자리가 맞는지, 어울리지도 않는 공명심에 사로잡혀 내 것이 아닌 일에 집착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온갖 생각이 다 들던 때였다. 

처음부터 이 책을 꼼꼼히 읽을 생각은 아니었다.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삶, 읽고 돌아서면 그만일 타인의 삶 따위 내게는 중요하지 않았으니까. 누군가의 성공은 내 성공이 될 수 없고, 누군가의 실패 또한 내 것이 아니었으므로 읽고나서 금방 잊어버릴 책이라면 대충 읽어도 어떠랴 싶었다. 그런데. 이 책의 첫 번째 주인공 포토그래퍼 하덕현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생각지도 못하게, 눈물이 뚝 떨어지고 만다. 하등 슬픈 이야기가 아니었다. 울만한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었다. 하지만 이이의 이야기를 읽기도 전에 제목에서부터 나는 눈물을 예감한다. <상처 받은 자는 걷는다>. 

이 책을 읽기 며칠 전 나는 일본여행을 위해 항공과 호텔편을 예약했다. 근 5년만의 여행, 그리고 태어나 처음 발딛는 나홀로 여행이었다. 국내도 아닌 국외에 혼자 가겠다는 나를 부모님은 무척 걱정하셨지만 나에게는 어떤 결심같은 것이 있었다. 이제는 다른 사람에게 나를 맞추면서까지 내가 원하는 것을 잃지 않겠다는 의지, 혼자서도 뭐든 잘 해내고 싶다는 욕망, 만약 무언가를 선택해야 하는 때가 왔을 때 결코 도망가지 않겠다는 다짐, 그런 것. 나는 용감해지고 싶었고 당당해지고 싶었다. 

이 책 속에서 숨쉬는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이었다. 흔한 성공 스토리의 주인공이 아니라 지금도 어디선가 이 삶을 살아내고 있을 사람들. 아프고 힘들어서 멀리 여행을 떠났다가도 위로받고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면 다시 또 돌아와 다른 사람의 시선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내는 사람들. 이 책이 공감을 받을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의 이야기가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과거의 영광과 아픔에 사로잡히지 않고 앞만 보며 더 나은 미래를 꿈꾸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인생에 닥친 어려움을 영웅처럼 뛰어넘은 사람이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고민하고 아파하고 두려워하면서 한 발 한 발을 내딛는 그들의 모습 속에서 나는, 또 다른 내가 저기서도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구나, 라는 감동을 느꼈다.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누군가의 삶에 대한 경이와 순수한 감동이었다. 

놀라운 것은 그들에게 '정해진' 인생은 없다는 것이다. 몇 살에는 취직을 해야 하고, 몇 살이 되면 결혼을 해야 하고, 또 몇 살이 되기 전에는 집과 자동차와...같은 틀은 찾아볼 수 없다. 현대인들에게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조바심과 타인에 대한 경쟁심 대신, 그들의 마음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자신들의 삶에 당당해지고자 하는 의지다. 내가 알 속에 갇힌 병아리라면 그들은 날개를 활짝 펴고 비바람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는 성숙한 새였다. 

나는 시간이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말을 믿는다. 나 또한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지금의 내가 아닌 더 멋진 사람이 되고 싶다. 인생을 즐길 줄 알고, 타인의 눈 때문에 내가 원하는 것을 놓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는 사람. 겁내지 않고 무엇이든 부딪혀 볼 수 있는 용기를 지닌 사람,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7월에 계획한 일본 여행에 대한 얕은 두려움이 사라져버린 것은 이들의 영향이 크다. 그들은 나를 모르겠지만, 언젠가 우연히 그들 중 한 명이라도 만나게 된다면, 당신 때문에 위로 받았노라고, 참 고마웠다고 말하고 싶다. 

언제부터였을까.
막연히 무언가 모든 것이 두렵고 낯설어졌다.
시간과 존재에 대한 질문들이 소년기를 관통했다.
그 정답은 위대한 수령님도 모를 듯 하다.
떠나야 할 시간이 왔다.
이제는 늙지 않고 영원히 성장해야 할 시간. -p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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