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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 하나로 세상을 희롱한 조선의 책 읽어주는 남자
이화경 지음 / 뿔(웅진) / 2010년 1월
평점 :
품절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야기'를 좋아할 것이다. 언제 어디에서 누가 뭘 했다더라, 이런 일이 있었다더라 하는 이야기. 예전에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가난하게 산다는 말을, 어느 책에선가 읽은 적이 있다. 자신에게 몰두하지 못하고 주위에 관심을 쏟아붓는다는 의미인가, 그래서 이야기만 좇아 살아가기 때문에 가난해진다는 말이던가. 처음에는 가난하게 산다는 그 말이 무섭기도 했지만 책은 본래 이야기를 품고 있는 하나의 세상이므로 어쩔 수 없다고 여기게 되었던 듯 하다. 그런데 여기, 가난해졌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이야기를 통해 세상을 잡아보고자 했던 남자가 있다. 검은 놈, 김흑. 

이야기는 사람에게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것일까. 이야기가 없었다면 이 세상은 적막하고 외로워졌을까. 문득 이야기란 무엇인가 궁금해졌다. 김흑이 이야기를 통해 주름잡고 싶었던 세상을, 어떤 왕은 고통으로 살아내며 이야기를 억압하고자 했다. 절제되고 깨끗한 글에 비해 저잣거리에서 읽혀지는 '소설'이라는 것은 그에게 글이 아니라 풍기문란을 주도하는 또 다른 적군이었다. 그래서 한없이 외로웠을 군주. 이 책은 그렇게 김흑과 어떤 군주의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마음을, 담담하게 풀어놓고 있다. 

이야기가 여인들을 중심으로 퍼져나갔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금에 비해 턱없이 자유롭지 못했을 시절, 기생으로 보낸 세월을 통해 사랑과 인연의 덧없음을 깨달았고, 남편에게 불만이 있어도 속으로 삭여야 했으며, 자신을 사랑해주지 않는 남편에게 정인인 남정네가 있다는 그 비밀을 눈물을 흘리며 지켜내야 했고, 걷지 못하는 다리로 인해 누군가에게 사랑받을 꿈조차 꿔볼 수 없는 여인네들이 있었다. 그런 그들의 마음 속으로 김흑이 들어간다. 빗장 걸린 문을 열게 하고 상대의 입장을 절실히 이해하며 상처를 어루만져 줄 수 있는 손길을 가진 그. 이야기란 한낱 쓸 데 없는 유흥거리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마음을 나누는 소통의 수단이다. 예나 지금이나. 

그런 이야기의 속성이 이 책에는 잘 녹아들어 있지만, 작품 전체를 놓고 볼 때 그리 뛰어난 작품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작가는 김흑의 이야기꾼으로서의 자질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인가, 그의 사랑을 말하고 싶었던 것인가. 그도 아니라면 '이야기'를 사이에 둔 두 남자의 확연히 다른 삶을 이야기해보고자 했던 것인가. 도저히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글의 방향은 결국 그의 사랑으로 끝을 맺는다. 이야기 하나로 세상을 희롱했다고 평가하고 싶었다면 김흑은 여인네들의 마음만 헤집고 다녀서는 안 되었다. 그의 이야기가 여인들을 통해 바깥으로 퍼져나가고 또 그를 통해 세상에 혼란이나 반향을 일으켰을 때에야 진정으로 세상을 희롱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김흑은 세상을 희롱했다고 하기에는 조금 모자란, 사랑이라는 결승점을 향해 가기 위해 수 많은 여인의 마음만을 희롱했을 뿐이다. 

덧붙여, 문장 또한 내가 좋아하는 맛이 모자랐던 듯 하다. 깔끔하지 못하고 어딘가 질척질척한, 단순하고 극명하게 묘사할 수도 있는 부분들을 너무 길게 늘여버려 오히려 책을 읽는 재미가 떨어졌다. 문장의 탓인지 방향을 잃은 주제 탓인지 모아지는 한 점이 부족하고, 기승전결의 묘미를 느낄 수 없는 무덤덤한 책이었다. 작가가 이야기꾼이 되기에는, 이야기로 세상을 희롱하기에는 아직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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