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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 마련의 여왕
김윤영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9년 12월
평점 :
품절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은 분명 즐거운 일이나, 나는 집에서 웅크리고 가만히 있는 것 또한 좋아한다. '집'이라는 공간이 주는 아늑함, 혼자 있어도 고독함은 절대 느껴지지 않고, 아무 것에도 신경쓰지 않아도 좋을 자유. 집은 내게 그런 공간이었다. 집에만 있으면 머리가 아파온다는 친구들은 집에서 혼자 책을 보거나 영화를 보는 나를 독특한 사람으로 취급했고, 나 또한 집에서 편안함을 느끼지 못하는 친구들을 이상하게 생각하기도 했다. 힘든 일이 있어도 '집에 가서 쉬면 좀 나아지겠지' 라는, 그런 위안을 주는 곳이 바로 집이었다.

나는, 건물 자체의 조건은 물론 누구와 함께 생활하고 있는가, 자신 안에서 집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가, 그 곳이 나에게 전달하는 정서는 무엇인가에 따라 진정한 집의 정의가 규정지어진다고 생각한다. 처음 자취를 시작했을 때, 나는 그 방이 싫었다. 습기찬 냄새와 층간소음도 한 몫했지만 무엇보다 늘 혼자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나에게 그 곳은 편안히 쉴 수 있는 곳, 안정을 취할 수 있는 집이 아니라 그저 잠시 머물 공간일 뿐이었다. '집에서는 혼자 있어도 괜찮았는데 왜 여기서는 이렇게 싫을까, 밤에 도둑이라도 들면 어쩌지' 등의 온갖 잡다한 생각을 다 했던 것 같다.  

그러던 것이 지금 사는 집으로 옮기면서 편안해졌다. 탁 트인 경치를 볼 수 있는 창과 조금 넓어진 공간, 안전에 대해 조금 덜 걱정할 수 있게 된 점. 기본적인 환경과 정서적인 조건 모두가 나를 편안하게 해주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전에 살던 곳에서는 하기 싫던 청소가 지금 집으로 옮기면서는 구석구석을 찾아가며 하게 되었는데, 그래서 사람들이 '내 집'을 그렇게 외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온전한 나만의 것, 우리 가족 외에는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따뜻하고 아늑한 공간, 마음 편하게 쉴 수 있는 곳.  

[내 집 마련의 여왕] 은 그런 집에 관한 이야기다. 보증을 잘못 써서 집을 빼앗기게 될 처지인 주인공 송수빈이, 어느 날 갑자기 바람처럼 눈 앞에 나타난 정사장의 의뢰로 어린 딸 지니와 함께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들만의 보금자리를 찾아주는 이야기. 경매와 부동산 등 그 쪽 방면으로는 아무것도 모르는 나에게 어렵게만 느껴지는 내용도 등장하고 집을 쉼터가 아닌 재산증식의 도구로 사용하는 암울한 내용도 등장한다. 송수빈에게 맡겨진 사람들도 돈에 맞춰 집을 구하고 수도관, 가스, 주변환경 등을 따진다. 하지만 그렇게 찾아진 집은 결국 따스한 보금자리로 자리잡아가는 것이다.  

재미있게 읽히지만 억지 설정같은 것도 보인다. 마법사처럼 훌쩍 나타난 정사장, 누이의 소개라지만 한 번 만나고 일자리를 제안하는 그런 사람이 어디 흔할까. 평생을 부자로 살아오다 이제 좋은 일 해보겠다고 두 팔 걷어붙이는 사람, 병까지 걸려 연민마저 불러일으키는 사람. 현실에서는 좀처럼 있을 법하지 않은 키다리 아저씨같은 사람이다. 게다가 송수빈이 집을 찾아준 사람 중 한 명인 박사장과 정사장의 관계는, 내가 생각하기에는 엄청 억지스러웠다. 이런 저런 점-부동산과 경매 부분은 내가 잘 모르니 논할 수 없으니 제외하고-을 제외하면 집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는 인상만큼이나 따뜻하고 희망있는 소설이다.  비록 허구의 인물이지만 자유롭고 당찬 그녀의 모습이 부럽기도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실은 책과 다르다. 경기는 점점 힘들어진다고 하고 책 속에서 뿐만 아니라 현실 속 TV 안에도 좁은 방에 여러 명의 가족이 모여 사는 모습이 존재하며 철거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도 있다. 책과 같이 우연처럼 마법처럼 자신들에게 딱 맞는 집을 구할 수는 없다. 희망을 노래하는 것은 좋지만 좀 더 현실감 있게 사회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문제들을 다루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오늘도 집에서 뒹군다. 내 것이 아니지만 내가 살고 있는 공간. 이 책을 읽고나니 더 소중하게 다가온다. 에혀, 사람이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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