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안,지날 때까지>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피안 지날 때까지
나쓰메 소세키 지음, 심정명 옮김 / 예옥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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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눈 송아지. 대학 때 나와 내 친구들이 나쓰메 소세키에게 붙인 별명이다. 일본어로 '나쓰'는 여름, '메'는 눈, '소세키'는 그냥 발음의 특성상 송아지가 생각나 붙였던 별명인데 우리 사이에서는 나쓰메 소세키라는 이름보다 더 자주 불렸었다. 그 여름눈송아지 분의 작품은 일본문학사에서도 그렇지만 우리가 공부하던 부분 중에서도 꽤 큰 비중을 차지했다. 대학에서의 강의, 시험 뿐만 아니라 임용시험에도 단골로 출현하는 데다가 일본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 할 게 없으면 이 여름눈송아지 이야기를 꺼내라는 말을 들었을 정도였으니까. 우리나라의 근대소설은 잘 읽지 않는 나도 이 여름눈송아지의 작품은 재미있었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보다도 [마음]이나 [몽십야] 같은 작품이 더 기억에 남는데 [피안 지날 때까지]도 그 작품들과 같은 냄새가 난다. 

[피안 지날 때까지]는 [행인], [마음]과 더불어 소세키의 후기 3부작으로 일컬어질만큼 유명한 작품이다. (전기 3부작은 [산시로], [그 후], [문] ) [행인]은 아직 읽어보지 못했지만 [마음]은 등장인물의 고뇌와 내밀한 심리묘사가 일품이라고 여겨질만한 수작이었다. [피안 지날 때까지]를 펼쳐 읽기 시작할 때만 해도 어째서 이 작품이 후기 3부작으로 여겨지는 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요즘 읽는 일본소설의 가벼운 맛이 살짝 났으니까. 일자리를 찾고는 있으나 무사태평한 성격의 게이타로가 여기저기서 이야기를 주워들으며 그 날 그 날을 보내는 인물로 등장한다. 각각의 이야기는 단편의 형식을 띠고 있으나 결국은 하나의 이야기로 모아지는데 게이타로는 주인공이라기보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청중에 지나지 않는다. 이 작품에서 굳이 주인공을 꼽아보자면 그의 친구 스나가 이치조라고 해야 할까. 

[마음]에서도 '나'가 주인공으로 비춰졌지만 결국에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사람은 '선생님'이었다. 그 작품에서 '나'는 이야기를 들어주고 사건의 처음과 끝을 우리에게 들려주는 전달자의 역할이었는데 이 작품의 게이타로 또한 그런 중간매개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보면 되겠다. 스나가가 얽혀있는 가족관계, 사람들과의 인연, 혼담문제, 그 누구도 해결해 줄 수 없는 개인적인 고뇌가 있는 그대로 전해지는 것이다. 

[마음]에서도 그랬지만 이 여름눈송아지씨는 사람의 심리를 묘사하는 데 뛰어난 능력이 있는 듯 하다. 말로는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는 인간심리의 불안정함, 한 번에 맺거나 끊을 수 없는 인간관계를 심오하게 담아내면서도 느긋하게 바라볼 줄 안다.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어째서 질투하느냐와 같은 설명할 수 없는 의문들이 박혀있는 삶을 스나가의 모습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으나 대단하게 느껴지는 일상의 모습, 고민하면서도 해결할 수 없다는 뼈저린 깨달음, 삶은 문장처럼 어느 한 곳에 마침표를 찍을 수 없다는 모호함이 작품의 전반을 지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게이타로의 얼빠진 모습에 가벼움이 느껴진다. 작품 속에 등장한 '자기 같으면서도 남 같고, 긴 듯하면서 짧고, 나올 듯하면서도 들어갈 듯'한 이야기라고 해야 하나. 

저자의 머리말은 잘 읽지 않는 편인데 이번 경우는 조금 달랐다. 유명한 여름눈송아지 분이었으니까. 특히 그 중 '재주가 모자라 나 이하인 것이 완성되거나 뽐내는 마음 때문에 나 이상인 것이 씌어져서 독자에게 죄송한 결과를 내놓게 될까 우려할 뿐이다' 라는 문장이 와 닿는다. 근대에, 바다 건너 저 나라에 글쓰기를 업으로 삼았던 사람의 글에 대한 사랑과 애틋함 겸손함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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